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79)화 (179/393)

<던전리셋 179화>

*   *   *

머엉-

뽀뀨는 가끔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을 때가 있었다.

“…….”

머엉-

초점도 없는 까만 콩알 같은 눈.

그 앞에는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서 모아 둔 뼛조각들이 진수성찬처럼 쌓여 있었다.

땅다람쥐의 부귀영화가 바로 여기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뽀뀨에게선 아무런 욕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속을 초탈한 현자 같은 표정으로 벌써 한 시간째 숨만 쉬고 있었다.

[설마 죽었나?]

토끼가 고개를 갸웃하며 뽀뀨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봤으나 뽀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머엉-

그래도 동그란 등짝이 천천히 부푸는 걸 보면 숨은 쉬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 뽀뀨가 갑자기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뽁!”

[으잉?]

후다닥.

별안간 뽀뀨가 뼛조각을 입에 물고 달리더니, 다른 곳으로 전부 옮기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토끼.

무려 한 시간 만의 고민 끝에 뽀뀨의 대대적인 이사가 시작되었다.

위치는 처음 있던 자리에서 약 3미터 정도 떨어진 부근.

사실상 바로 옆이었다.

후다닥, 후다닥.

쪼르르.

그런데 또.

우뚝.

“……?”

뽀뀨가 갑자기 고장 났다.

중간에 움직임을 멈추고 멀뚱히 서서 사색에 잠기는 뽀뀨.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뽀뀨를 유심히 관찰하던 토끼는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뽀뀨의 주인이라는 인간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곧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땅다람쥐나 그 주인이라는 인간이나 다 똑같은 종자들이었다.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콰득! 콰직!

[……진짜 왜들 이러는 걸까?]

정다운은 벌써 며칠째 문어 골렘 머리 위에 올라타 계란섬 표면에 붙어 있는 태양석들을 열심히 캐고 다니고 있었다.

태양석을 계속 쳐다봤더니 눈이 부시다면서 저번에 다크모들에게서 뺏어 온 선글라스까지 쓰고 바캉스 나온 사람처럼 신나게 돌을 깨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에 돌가루가 떨어져서 머릿결이 푸석해진다면서, 비니모자까지 만들어 썼다.

그리곤 하는 말이 자기가 래퍼 같지 않느냐며 헛소리를 찍찍 했다.

“욥! 돌 깨기! 돌 깨욥!”

콰득, 콰직, 쾅쾅! 쿵쾅쾅!

[……진짜 놀고 있네.]

돌 깨는 소리로 비트까지 주는 모습이 진짜 흥겨워 보였다.

사실 돌래퍼 정다운에겐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나는 빛을 전부 없애겠어.’

- MC 정똘

돌래퍼 정다운은 궁극적인 어둠을 추구했다.

며칠 전 그는 태양석들을 전부 뜯어 계란섬을 완전 어둡게 만들고 말겠다며 선언했고, 토끼는 바로 비웃었다.

하지만 그의 광팬인 바하무트는 역시 포부가 원대하시다고 칭송하며 매니저처럼 문어 골렘을 열심히 운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정다운이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돌 깨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끊임없이 주차 위치를 바꿔 나갔다.

그가 내세운 전략은 이쪽으로 모여드는 범독수리들의 숫자를 싸우기 전부터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이쪽의 병력을 늘릴 수 없으니 적의 병력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계란섬을 어둡게 만들면 밤이 되면 범독수리들이 무서워할 테고, 낮에도 좋아하는 태양석이 하나 없으니 지나가다 들를 이유도 없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놈들이 한 마리도 안 올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 일대에 부유섬은 한둘이 아니었고, 밤만 되면 그것들이 가로등처럼 조명을 밝혀 주고 있었다.

물론 그 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밤하늘의 별 같은 수준이긴 했다.

아마도 스테이지-4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별들도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다운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말 그대로 밤하늘의 별을 따고 있는 셈이었다.

[에효. 진짜 대책 없는 인간이라니까. 이걸 대체 어느 세월에 다 까겠다는 거지?]

……라고 하기엔 벌써 계란섬의 4분의 1이 어두워져 있었다.

실로 엄청난 속도!

그는 명실상부 돌 깨기 마스터였다.

“돌 깨기! 돌 깨기!”

콰득! 콰득! 쩌적!

그냥 하는 건 심심하다며, 그는 일부러 제국창술을 연습도 할 겸 곡괭이가 아니라 쇠꼬챙이를 찔러 태양석을 깨뜨렸다.

“어때? 나 좀 창술 실력 늘지 않았어? 연습한 보람이 있지?”

토끼가 곁으로 다가오자 정다운이 으스대며 생색을 냈다.

토끼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이거 서연 아씨한텐 절대 보여 주지 마요. 충격받을 거임.]

창술보단 그냥 재봉틀 같았다.

어쩜 이렇게 틀린 동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할 수 있는지, 토끼는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 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돌을 캐는 데만 한정 짓자면, 그의 모든 움직임은 몹시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정다운 채석 공장 시스템>

1) 돌 깨기로 태양석을 아래로 떨구기.

2) 그럼 그 아래 손바닥처럼 가지런히 모여 있는 문어 골렘의 8개의 다리가 태양석을 받아 든다.

3) 그럼 그것들을 그림자 하인들이 재빨리 들고 올라와 정다운에게 넘겨준다.

(가끔 못 참고 녀석들이 빛을 날름 먹어 버려서 불량품이 몇 개 섞여 있긴 함)

4) 태양석을 받으면 바로 소지품에 보관한다.

진짜 공장이 따로 없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진짜 공장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공장처럼…… 일이 끝도 없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결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노가다라는 건 언제나 관성과 중독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까도 까도 태양석이 자꾸 눈에 들어오니까 도저히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돌리기> 스킬이 2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레벨 업!

“오! 어쩐지 드릴 스피어가 점점 요령이 붙는다 했지!”

[대박. 그냥 찌르기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일일이 돌려서 찌르고 있었던 거임?]

“그냥 찌르면 재미없잖아? 이렇게도 찔러 보고 저렇게도 찔러 보는 거지.”

정다운이 실실 웃으며 쇠꼬챙이에 스냅을 먹여 태양석을 찔렀다.

콰드득!

이젠 두 손이 아니라 한 손으로 찔러도 잘 돌아갔다.

회전력도 더욱 빨라졌다.

새로 익힌 기술이 완전히 요령이 잡혀 버린 것이다.

“음하하! 나는 더 강해졌다!”

[……아니 뭐, 공격 기술이 더 강해진 건 분명 축하할 일이긴 한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토끼는 그가 좀 남들처럼 평범하게 전투를 하면서 강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한도 끝도 없는 돌 깨기 속에서 반가운 소식은 자꾸 들려왔다.

[<돌리기> 스킬이 3레벨로 발전했습니다.]

“으하하! 좋구나! 내 드릴이 더 강해졌어!”

그리고 원래 좋은 소식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이었다.

미야옹-.

[히익? 갑자기 얘가 왜 이래?]

하늘 신전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그림자 고양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지하 감옥에 가둬 두긴 했지만, 녀석들 입장에선 그곳이 좋아서 살고 있는 거지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밖으로 외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난히 통통해 보이는 한 마리가 어느 날부터 토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몸을 부비적거렸다.

미야앙-?

[뭐, 뭐임? 내가 먹이 준 적도 한 번 없는데 부담스럽게 왜 이래?]

토끼는 크게 당황했다.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뜬금없이 친근한 척하며 머리를 들이미는데 너무 부담스러웠다.

[쓰, 쓰다듬어 달라고? 왜 나한테?]

토끼가 우물쭈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더욱 기분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정다운과 바하무트가 엄청 신기해했다.

“와, 이런 식으로도 길들여지네?”

[요즘 신전에 굴러다니는 태양석 부스러기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나이다.]

[그, 그래서 그거 다 주워 먹고 기분이 좋아졌나 본데요? 이 놈 배 빵빵한 것 좀 보세요. 고양이가 아니라 완전 돼지 그림자임.]

4번째 그림자 고양이는 다른 놈들에 비해 유독 크고 통통했다.

[얘를 그림자 하인으로 만들면 님 돼지 버전이 나오는 것 아님?]

“윽.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데…….”

딸랑-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림자 비술을 펼쳤더니,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정다운의 실루엣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정다운이었다.

“휴, 아무튼 잘됐다. 일손이 늘면 더 좋지. 좋았어, 조를 나눠 볼까?”

그림자 하인 2명은 운반조.

그리고 다른 2명에게는 곡괭이를 들려 주고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곡괭이질을 시켰다.

참고로 그림자 하인들은 스킬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행동 자체는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차이냐면, 정다운의 모든 움직임은 스킬이기 이전에 직접 노가다를 통해 몸에 밴 숙련된 동작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는 그림자 하인들은 상당한 속도로 돌을 캐는 게 가능했다.

곡괭이도 강화된 버전이라 장비도 훌륭해서 척척 태양석을 캐 나갔다.

정다운은 깨달았다.

“아하, 일본 속담 중에 바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인가?”

아니었다.

아무렴 어떤가.

정다운은 더욱 의욕에 불탔다.

“흐흐, 그래도 옆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으니까 더 재밌는데? 1호기는 왼쪽, 2호기는 오른쪽을 맡아. 나는 대장이니까 가운데를 맡겠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재밌으면 빨라지는 게 당연했다.

“어? 벌써 반이나 캤네!?”

[……뭐, 뭐지?]

토끼는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이러다 진짜 며칠 안에 다 끝날 기세였다.

문득 소지품을 열어 보니 가관이었다.

<소지품>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태양석(99),

…….

[이걸 다 어디다 쓰게요? 이거 다 모으면 태양도 만들겠네요.]

“응. 그 비슷한 건 만들려고.”

[네? 난 그냥 해 본 말인데?]

정다운은 진심이었다.

얼마 후 돌래퍼 정다운의 원대한 계획 두 번째가 시작되었다.

‘나는 빛을 만드는 자.’

- MC 정똘

어둠에 점점 물들어 가는 계란섬 위에 어느 날부턴가 거대한 돌탑이 쌓여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진짜 탑이라고 해야 할까?

그 크기가 너무나 크고 웅장했다.

범독수리들의 눈을 피해서 차곡차곡 쌓여 가는 돌탑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도자기 같았다.

하지만 범독수리들의 눈에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범독수리의 둥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황제라도 살 것 같은 거대한 성곽!

탐욕과 부귀영화의 상징!

정다운은 나중에 그 안을 태양석으로 도배해 버릴 생각이었다.

“내가 진짜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 준다.”

[대체 무슨 생각이심?]

“새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토끼의 물음에 정다운은 그저 음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동안 정다운은 돌만 캔 것이 아니었다.

범독수리들이 살아가는 생태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놈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어디에서 잘까?

첫 번째의 답은 바로 심연어였다.

이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의 먹이는 당연히 바닷속에 있는 물고기들이었다.

그렇다고 심연어를 일일이 잡기는 힘드니까, 정다운은 토끼 던전으로 가서 사자상 연못에서 기르는 은둥이들을 차곡차곡 잡아서 모으고 있었다.

“미끼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이놈들아.”

그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중요한 미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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