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59)화 (159/393)

<던전리셋 159화>

<정다운 : 승우 형? 뭐 하고 있어?>

“얘도 양반은 못 되네.”

때마침 정다운의 귓말이 도착하자 류승우는 피식 웃었다.

마음 같아선 곧장 답장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귓말을 보내려면 생명 에너지를 제물로 바쳐야 했고, 그러려면 우선 밥부터 먹어야 했다.

치열한 전투로 몹시 지쳐 있던 류승우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소지품을 열었다.

이럴 땐 정다운처럼 우아하게(?) 된장찌개와 숭늉을 곁들인 한상차림이라도 차려먹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런 건 평소에도 혼자서도 잘 차려먹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끄응, 지금처럼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땐 역시…….’

역시 꺼내자마자 바로 입으로 쑤셔 넣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 최고였다.

던전의 인스턴트식품.

바로 괴물 고기로 만든 ‘훈제고기’가 던전에서는 편의점 삼각김밥 같은 식량이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긋지긋하지만 막상 먹어 보면 또 맛은 있는…….

다만 가끔 먹다가 목이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한텐 사이다도 있지.”

그는 입맛을 다시며 조그만 훈제고기 한 조각과 정다운이 나눠 준 사이다 한 잔을 꺼내, 한입 쫘악 물어뜯고 시원하게 쭈욱 들이켰다.

그러다 사래가 들렸다.

“쿨럭!?”

사래가 심하게 들렸다.

“쿨럭, 쿨럭! 크흠흠! 어우, 기껏 잘 싸워 놓고 밥 먹다 죽을 뻔했네.”

새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기침하다가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쉰 류승우.

이러고 있으니…… 어쩐지 스스로가 좀 궁상맞은 기분이었다.

피비린내 가득한 시체의 산 위에 앉아 고기 쪼가리나 오물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세상 처량해 보였다.

겨우 얼마 전만 해도 정다운이 마련해 준 온갖 부귀영화(?)와 호사를 다 누리고 왔더니, 상대적으로 더 아련하고 슬펐다.

“쩝. 그래도 맛은 있네…….”

그래도 먹을수록 점점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다들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정다운보다는 전투 중에 흩어진 윤진수와 구호열과 다시 합류하는 게 먼저였다.

사방에 뇌전을 줄줄 뿌려 대며 민폐를 끼치는 그의 전투 스타일상,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면 동료들이 슬슬 곁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이것만 마저 먹고 슬슬 주변을 찾아볼까…….”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그 때였다.

쭈뼛!

“……!”

류승우는 갑자기 뭔가를 느끼고 무서운 눈빛으로 위를 팍 쳐다봤다.

쿠르릉!

마른하늘에 천둥이 내리치고 있는 하늘 위.

그곳엔 언제 다가왔는지 찬란한 은발이 나부끼는 거구의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류승우가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이를 드러냈다.

“루갈…….”

[오랜만이군, 류승우.]

사내의 신형이 천천히 하강하며 류승우의 앞으로 내려섰다.

무감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사내의 얼굴은 놀랍게도 인간이 아니었다.

전신에 둘러진 찬란한 은빛 갈기.

흉악하고 날카로운 송곳니.

직립보행이 가능한 3미터가 넘는 거구의 늑대.

늑대인간 루갈.

그는 바로 스테이지-3의 도우미였다.

“스테이지-3의 도우미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호전적인 모습으로 그를 노려보는 류승우.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도우미라는 존재는 그 등장만으로도 참가자들에게 안 좋은 일이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루갈은 그의 반응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쯧. 이 던전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군. 심지어 제단도 없다니. 아깝게 됐어.]

“여기 무슨 일로 왔냐고 내가 물었다.”

[……류승우, 너무 날 세우지 마라. 나는 꼴사납게 참가자들과 드잡이질이나 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루갈 특유의 무미건조하고 낮게 깔린 중후한 목소리는 천둥과 지진으로 붕괴되어 가는 이 땅 위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팔짱을 낀 채 천둥 벼락을 등지고 굳건히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강자의 여유가 류승우는 무척이나 아니꼬웠다.

“누가 꼴사납다고?”

우적.

손에 든 마지막 훈제고기를 씹어 먹는 순간, 류승우의 눈빛이 변했다.

그의 기세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그의 전신에서 푸른 스파크가 줄기줄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바분과 세르파, 2명의 도우미를 힘으로 때려눕힌 경험이 있는 류승우에게 더 이상 도우미라는 존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루갈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성급한 녀석이군. 아서라. 그러다 죽는다.]

“뭐 이 자식아!?”

콰르릉!

류승우가 뇌전이 집중된 주먹을 바닥에 쿵 찍자, 바닥에서 시퍼런 전류가 솟구쳤다.

그의 안광이 투기로 불타올랐다.

“감히 누가 누구한테 죽는다는 거지? 보여 주마. 네놈들이 하찮게만 생각해 왔던 미천한 인간의 힘을……!”

[내가 죽는다.]

……네?

순간 얼빠진 표정이 된 류승우.

갑자기 단톡하다 오타가 나온 기분이었다.

“지금 뭐라고……?”

[싸우면 내가 죽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덤비지 마라. 나는 꼴사납게 죽고 싶지 않다.]

“…….”

진지하게 다시 또박또박 말하는 루갈을 보며 류승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루갈 이 자식?’

이놈 이제 보니 아까부터 표정은 덤덤한데 북실거리는 꼬리가 가랑이 사이로 바짝 말려 있었다.

“너…… 설마 쫄았냐?”

황당해하며 묻자 루갈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하지만 개념치 마라. 나보다 힘이 강한 자 앞에서 꼬리를 마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 그러냐……?”

진심으로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그의 태도에 전투 의욕이 점점 사라져 가는 류승우였다.

*   *   *

한편, 갑작스런 범독수리들의 맹공에 하늘 신전은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었다.

크러렁!

콰득! 콰지직!

범독수리들이 날파리처럼 사방팔방 날아다니며 신전의 모서리를 발톱으로 뜯어냈다.

“으아악! 누가 쟤네 좀 막아 봐!”

정다운은 더 바쁘게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싸우는 것보다 부서진 하늘 신전을 실시간으로 보수하는 게 더 바빴다.

짬짬이 그림자 하인들과 함정들을 이용해 공격과 방어도 해 봤지만, 이게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던전 콩을 사방에 뿌려 봐도.

화살 발사대를 쏴 재껴 봐도.

범독수리들의 엄청난 비행 속도를 도저히 맞출 재간이 없었다.

정다운의 ‘과녁’ 보는 눈조차 놈들의 산발적이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따라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골렘들은 아예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섣불리 우르르 덤벼들었다가 골렘들이 밑으로 추락하기라도 하면 아까운 골렘들만 잃게 되는 것이다.

“너흰 여기 가운데서 꼼짝 말고 돌만 던져!”

“크워어!”

“오오옴!”

골렘들은 정다운이 발 앞에 쏟아부어 준 돌덩이들과 흙벽돌들을 주워 들고 열심히 하늘로 던졌다.

하지만 견제는 가능할 수 있어도 그 둔한 움직임으로는 적중시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미친! 원래 이렇게 빠른 놈들이었어!?”

[당연하죠! 범독수리 그리피오스는 하늘의 제왕이라고요! 아이고! 신전 다 망가진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신전이 공중분해되고 말 겁니다!>

크르렁! 크르르릉!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그나마 바하무트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블리자드!]

쿠와아아!

“바하무트 나이스 샷!”

[눈사람 잘한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놈들의 비행 방향을 중간에 흐트러뜨려 움직임을 견제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하늘 위에서 범독수리 그리피오스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저 미친 속도를 어떻게든 늦춰야 해! 어떡하지?’

정다운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렇지! 시멘트를 쓰자!”

마침 그림자 하인들이 열심히 물에 개고 있던 끈적한 시멘트가 떠올랐다.

시멘트는 기본적으로 돌처럼 무거운 접착제!

이걸 놈들의 몸에 바른다면 그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질 것이다!

[시멘트를 던져서 맞추겠다고요? 그게 가능했으면 화살로도 다 맞추겠네요!]

이 바쁜 와중에도 사명감을 갖고 재빨리 태클을 거는 토끼였다.

“누가 던져서 맞춘대?”

정다운은 다급히 시멘트의 위로 손을 대며 외쳤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꾸왁!

물과 섞여 물렁이는 시멘트가 네모나게 뭉쳐짐과 동시에 소지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재빨리 그걸 가지고 범독수리들을 쏘아봤다.

던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의 우악스런 발톱이 신전을 박살내기 위해 모서리를 움켜쥐는 그 순간!

“이거나 먹어라!”

처처처척!

그 위에 시멘트 벽 한 줄이 생겨났다.

처처처처척!

그 위에 또 한 줄이 올라갔다.

그리고 범독수리의 발톱이 그 벽을 움켜쥐었다.

콰직!

시멘트가 가차 없이 뭉개지며 놈의 발톱 사이사이에 엉겨 붙었다.

“크르렁?”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발을 터는 범독수리.

하지만 털이나 주름 사이사이에 들러붙은 게 쉽게 털리면 그건 시멘트가 아니었다.

“크르릉?”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얼굴에 찝찝한 표정이 다 드러났다.

사실 그렇게 묻은 시멘트의 무게가 범독수리에게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발가락이 괜히 끈적거려서 신경 쓰이는지, 공중에서 자꾸 발을 털면서 멈칫거리는 일이 빈번했다.

[오! 나름 성공인 듯?]

“좋았어! 계속 이런 식으로 가자!”

정다운은 놈들이 공격하고 싶게 생긴 곳곳마다 시멘트벽을 쭉쭉 미리 세워 놨다.

그러자 전부는 아니라도 생각보다 자주 범독수리들이 그걸 맨발로 만지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때다! 발사!”

놈들이 발을 터느라 멈칫거리는 사이.

한쪽 발에 실린 시멘트의 무게로 균형이 맞지 않아 비행이 어설퍼진 찰나.

“쏴!”

피융! 퓽퓽!

그림자 하인들이 사방에 흩어져 여기저기로 활을 쏘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 화살들은 모두 화살 발사대에서 미리 빼 둔 것들로, 하나하나에 마비 독 옵션이 깃들어 있었다.

살짝이나마 스치기라도 하면 움직임이 둔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토끼가 응용 동작에 들어갔다.

[옛다! 이건 선물이다!]

토끼가 빙빙 날아다니며 시멘트 벽 사이사이에 큼직한 태양석 덩어리들을 초코칩 쿠키처럼 쏙쏙 박아 놓았다.

그러자 마침 그걸 움켜쥔 범독수리의 발바닥에 태양석이 들러붙었다.

“크르렁? 크르릉?”

빛나는 물건을 좋아하는 범독수리는 자신의 다리에서 빛이 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습을 마침 딱 목격하게 된 지나가던 다른 범독수리!

그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크르렁!”

“캬오오!”

동족이고 뭐고 태양석을 빼앗기 위한 내부 분열이 시작되었다.

[아싸! 미끼 작전 성공!]

“잘했다! 진짜 잘했다!”

[이히히! 봤음? 지금 봤어요? 이게 바로 나다! 에헴!]

“이번만큼은 인정한다! 진짜 잘했다!”

[으히히!]

흔치 않은 정다운의 칭찬에 토끼는 한껏 기고만장해졌다.

그리고 이 절호의 순간을 사신 바하무트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블리자드!]

휘오오오!

공중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마리의 범독수리들에게 새하얀 냉기가 뿜어지자, 날개에 성에가 끼며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우리도 발사!”

퓨바바박!

놈들을 향해 화살 발사대와 그림자 하인들이 재빨리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기세에 놀라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지는 범독수리들!

그 속도가 처음에 비해 엄청 느려져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정다운은 다급히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부유섬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지금이다! 일단 저기로 튀자!”

애초에 놈들을 사냥할 욕심 같은 건 없었다.

가뜩이나 상대는 터프한 맷집과 근성으로 유명한 범독수리 아닌가.

마비독? 그까짓 거 그냥 멀리 날아서 도망쳐서 쉬다 오면 금방 풀릴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하늘 위에서 범독수리들을 오래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럴 때는 역시 이쪽에서 먼저 도망쳐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바하무트! 신전을 섬 아래쪽에 바짝 붙여! 도킹한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블리자드!]

쿠오오!

하늘 신전의 뒤로 맹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신전은 조금씩 부유섬을 향해 이동했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다.

육안으로만 봐도 최소 하늘 신전보다 1000배 이상은 커 보였다.

그러다 보니 섬 아래쪽에 바짝 몸을 붙이는 데 성공하는 순간, 범독수리들 입장에선 비행 각도가 나오지 않아 이쪽을 전혀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예쓰! 좋았어!”

[이제 안심쓰!]

토끼와 나란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이었다.

[오류! 던전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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