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34화>
때아닌 공성전이 벌어졌다.
목표는 해골성.
하지만 공성과 수성 중에서 누가 더 유리한가를 따지자면 당연히 성을 방어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치지직!
퍼벙! 펑!
석정호의 스킬 ‘화염충’은 날아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는 곤충이라기보단 불의 정령에 가까웠는데, 그의 명령이라면 언제든 폭발하는 벌레였다.
지금 그런 놈들이 벌집을 지키는 말벌 떼처럼 성벽 위에 바글바글했다.
지서연 일행이 분통을 터뜨렸다.
“나 저 스킬 진짜 짜증 나요.”
“누가 아니랍니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짜증 나게도 석정호의 화염충은 정말 대단한 스킬이었다.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인 데다 상대를 따라 움직이는 유도탄 기능까지 있었다.
한 발 한 발이 무슨 다이너마이트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폭발에 당하면 큰 화상을 입는다.
그걸 얼굴에 직격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주변에 데리고 다니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 주기까지 하니까 횃불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석정호가 안 보입니다!”
“아까 보니까, 신이 나서 성벽 아래로 내려가더라고요.”
석정호는 이미 성벽 위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 중 원거리 공격수 몇 명만이 남아서 화염충들과 함께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궁금했다.
“대체 저 안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무슨 대단한 아이템이라도 발견한 걸까요?”
“아니면 벌써 보스 괴물을 발견해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죠.”
“설마 던전에 들어온 지 하루 만에 보스가 나올까요?”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그 전에 여기가 던전인 건 맞을까요? 도우미가 통 안 보이는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항상 꼴 보기 싫던 도우미라는 존재가 막상 나타나지 않으니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서연 일행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해골성 안은 지금 텅텅 비어 있었다.
“지서연 저 연놈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얼른 공략을 끝내야 해!”
마을 안쪽에선 석정호는 마음이 바빴다.
밖에선 한껏 잘난 척하고 왔지만, 그들도 사실 이곳에 도착한 건 겨우 한 시간 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엔 엄청 실망을 했었다.
겉보기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처럼 생긴 이 마을에 남아 있는 건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잔해들과 쓰레기 더미뿐이었던 것이다.
그건 예전에 이 마을에 설치되어 있던 수많은 천막들을, 오창석 촌장이 던전으로 떠나기 전에 싹 수거해서 들고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촌장이 떡하니 남겨 두고 간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다운이 쓰던 천막이었다.
그리고 석정호는 바로 조금 전에 그 천막 아래에 뚫려 있는 수상한 계단을 발견하고 크게 흥분해 버렸다.
“으흐흐, 난 역시 운이 좋단 말이지.”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계단이라니?
누가 봐도 이건 유적지로 가는 통로처럼 보이지 않은가!
“이 아래엔 분명 보물이 있을거야! 아니면 보스가 있을 지도 모르지? 함정이면 또 어때? 뚫고 가면 되지.”
그에게 있어 화염충이라는 스킬이 생긴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깟 함정 따위는 화염충을 보내서 미리 발동시켜 버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화염충에도 약점이 존재한다는 게 최근에 밝혀진 참이었다.
최근에 그들이 야수의 숲에서 만난 트윈헤드 오거!
그놈처럼 마법이 통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할 때는 화염충이 맥을 못 췄다.
화염충은 실제 곤충이 아니라 스킬로 만들어 낸 불의 정령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 지하에도 마법을 무효시키는 괴물들이 있으면 진짜 큰일이란 말이지.”
그가 아직도 유적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조심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는 화염충을 못 쓰는 상황을 상정하고 유적지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럴 경우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어둠’이었다.
빛 하나 없는 캄캄한 지하에서 화염충들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아주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만들어 두지 않은 횃불들을 부라부랴 생산직들에게 만들게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 굼벵이들아! 대체 횃불 하나 만드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결국 기다리다 못한 석정호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석정호 씨! 거의 다 만들었어요!”
그의 재촉에 생산직들은 횃불을 만드는 손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불만들이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자꾸 재촉만 할 거면, 좀 도와주든가!’
‘전투직들도 멀뚱히 구경만 하지 말고 좀 거들어 주면 얼마나 좋아!’
‘우리가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이런 게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줄 알아?’
횃불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우선적으로 나무 몽둥이가 있어야 하는데, 없으면 장작을 일일이 썰어서 적당한 사이즈로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손잡이 표면도 반들반들하게 다듬거나 천으로 감아야 했다.
들고 다니다가 괜히 전투직들의 손에 가시라도 박힌다면 그날은 크게 치도곤을 치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끝에 기름 먹인 천을 묶는 일도 엄청 신경 써야 했다.
꼼꼼하게 안 했다가 괜히 누구 손에 불똥이라도 흐르면, 진짜 그날은 생산직들 중에서 누구 하나 초상 치루는 날이었다.
석정호의 부하들은 대장을 닮아 조금이라도 일을 못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놈들이었다.
“석정호 씨, 이 정도면 될까요? 횃불 20개 완성했습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오래 걸려?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이 싸움도 못하는 무능력자들!”
“…….”
대체 이 인간은 뭐가 문제인걸까?
하여간 꼭 저렇게 미운 말만 골라 하는 인간들이 있다.
한 시간 만에 횃불 20개나 만들었으면 사실 엄청 빨리 만든 셈이었다.
일행의 숫자는 총 10명.
횃불 20개라면 유적지 중간에 잃어버릴 것까지 계산해서 한 사람당 2개씩 돌아가는 숫자였다.
다 같이 뭉쳐 있으면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겠지만, 전투 중에 서로 흩어지게 되는 상황까지 상정하고 만든 숫자였다.
하지만 석정호의 계산법은 또 달랐다.
“너흰 하나씩만 챙겨! 싸울 일도 없는데 생산직이 횃불 잃어버릴 일이 뭐가 있어?”
“…….”
석정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생산직들 3명에게서 횃불을 하나씩 빼앗아 자신의 소지품에 모두 챙겨 넣었다.
그 뻔뻔함에 생산직들은 할 말을 잃었다.
생산직은 싸우다가 횃불을 잃어버릴 일이 없으니, 하나씩만 챙겨라?
언뜻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헛소리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생산직이 쓸 횃불은 하나씩만 만들라고 하든가.
아니면, 작업이 오래 걸린다고 욕이나 하지 말든가.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자기 것은 5개 만들라고 대놓고 주문했어도 기분은 덜 나빴을 것이다.
애초에 리더에게 횃불이 몇 개 더 돌아간다고 누가 뭐라 하겠냐는 말이다.
“휴우우…….”
한 명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오자, 나이 많은 생산직이 말없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말해 뭐 하나. 보호대라도 만들어 입자고. 우리 목숨 우리가 챙겨야 할 것 아닌가.”
“네, 그래야죠.”
그래. 이런 일에 일일이 화내서 뭐하겠는가.
어차피 자신들은 을이고, 전투직이 갑인 것을.
싸울 힘이 없는 자신들은 전투직들에게 빌붙지 못하면 던전에서 단 하루도 살아남기 힘든 운명인 것을.
* * *
화르륵!
“그럼 내려가자. 탱커들 앞장서.”
“넵, 대장.”
석정호는 부하들을 앞세우고 지하 계단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물론 그 전에 지서연 일행의 발을 최대한 묶어 놓기 위해 화염충들을 최대한 소환해 두고, 부하들 모두를 끌고 유적지(?)에 진입했다.
그런데 막상 발을 들여 보니, 이 아래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엔 온통 캄캄하던 공간도 계단을 점점 내려갈수록 아래쪽에 밝은 빛이 느껴졌다.
“뭐지? 왜 천장이 빛나지?”
“마법인가 본데요, 대장?”
어리둥절해진 그들.
하지만 여긴 던전이었다.
이럴수록 방심은 금물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이게 다 함정이야.”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 앞에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나타나자, 그들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 커졌다.
“대, 대장님, 저것도 함정일까요?”
“……!”
놀랍게도 그곳엔 천장에서 따사롭게 내리쬐는 태양광 아래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결혼식 화환처럼 선인장들이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어딜 봐도 괴물 같은 건 없었다.
“여기…… 대체 뭐지?”
“…….”
예상 밖으로 엄청나게 평화로워 보이는 경치에 압도되어 버린 석정호 일행은 쉽게 말을 못 꺼냈다.
“방심하지 마라! 나는 속지 않겠다!”
갑자기 석정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화염충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를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대장님! 안 됩니다!”
“맞아요! 화염충은 안 됩니다!”
“뭐, 뭐야, 이놈들! 갑자기 왜 그래? 미쳤냐!”
“저거 벼라고요! 쌀이라고요!”
“벼에 불이 붙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부하들은 너무 오랜만에 발견한 쌀이라는 식량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석정호도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얼른 화염충을 없앴다.
“그, 그렇군. 저거 쌀 나무였구나.”
“쌀 나무가 아니라 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른 추수를 해야 합니다.”
“추, 추수? 어떻게 하는 건데? 누구 추수 스킬 있는 사람 있나?”
“…….”
그런 스킬이 있을 리 없었다.
“이 중에 농사 지어 본 사람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었다.
“뭐, 이런 건 생산직 시키면 되겠지. 우리가 다른 곳을 돌아보고 있는 동안 쌀을 추수해 놔라.”
“……네. 알겠습니다.”
“위험한 건 안 보이니까 서로 흩어져서 탐색하자. 뭔가 발견하면 소리를 질러라.”
“네, 대장.”
결국 석정호는 생산직들을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농사가 뭐 별거 있겠냐며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낫이 있을 때 이야기였다.
생산직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단검으로 하나하나 벼를 뜯어야 했다.
그리고 쌀을 얻기 위해서는 두 손바닥을 마주 잡고 비벼서 한 알 한 알 모았더니, 겨우 한움큼 모였다.
그런데 그때 허무하게도 저쪽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어? 여기 쌀이 모여 있는 창고가 있습니다!”
“오? 진짜냐!”
석정호가 눈을 빛내며 그곳으로 달려가려는데,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여기 사우나도 있습니다!”
“……뭐? 갑자기 사우나라니?”
“그리고 눈사람도 있습니다!”
“뭐, 이 자식들아? 지금 장난하나!”
석정호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거짓말을 해도 정도껏 쳐! 사우나랑 눈사람이 왜 같이…….”
그런데 그때였다.
“으아악-! 눈사람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
[크크크! 누가 감히 내 주인님의 신전을 침범하느냐! 이 버러지들아!]
휘오오!
평화롭던 유적지에 북풍 같은 서릿발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헉! 최, 최종 보스인가!”
그들은 기겁하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쿠쿵! 쿠쿵!
“크워어어!”
갑자기 진짜 어마어마한 놈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