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31화>
한편, 스테이지-1를 한 바퀴 둘러본 토끼는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한때 자신이 열심히 관리했던 던전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쯧, 진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네.]
바분이 다크모들의 손에 강화 무기를 들려 줬다는 건 저번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던전의 최약체 다크모.
개구리를 닮은 검은 난쟁이들의 손에 위험한 장난감이 들려진 순간, 스테이지-1의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다크모들은 지금까지 무서워서 피해 다니기만 했던 상위 개체 괴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화 무기의 압도적인 위력에 흠뻑 취해 버렸다.
“키히이!”
아아, 힘이라는 건 얼마나 좋은가!
자신의 앞에 무력하게 죽어 가는 저 시체들을 보라!
나는! 강하다!
“키햐아!”
힘의 마력에 매료된 다크모들은 더 강한 힘, 더 많은 무기를 원했다.
그리고 급기야 바로 옆에 있던 동족들의 무기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키히?”
“키햐아…….”
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탐욕스런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무기! 저 무기까지 갖게 되면 자신은 지금보다 더 많이 강해지리라!
“키햐악!”
다크모들은 강화 무기를 약탈하기 위해 자기 동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쯧쯧, 워낙 약해 빠진 놈들이 엉겁결에 강해지니까 다들 미쳐 버렸구나.]
토끼는 다크모들의 한심한 행태를 보며 혀를 찼다.
진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참가자들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괴물들이라니…….
물론 그렇다 해서 그 결과로 참가자들이 안전해진 것은 또 아니었다.
다크모들은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었을 때마다 그 강함을 자랑하기 위해 인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공포와 절망에 찬 인간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인간들 또한 점점 다크모의 행태를 닮아 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하, 하하……. 잡았다……!”
운 좋게 다크모를 잡는 데 성공한 참가자들.
서로 무기를 놓고 싸우다가 치명상을 얻고 멍청하게 죽어 가던 다크모들을 찾아낸 참가자들.
그들의 손에 강화 무기가 들려졌다.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개.
“나, 나도 무기가 있다!”
엉겁결에 엄청난 아이템들을 얻게 된 참가자들은 한 순간에 신분이 상승한다.
겨우 1강짜리 아이템일 뿐이지만, 그것도 여러 개가 있으면 갑자기 확 강해지는 것이다.
다크모들처럼.
그리고 그들 중에선 반드시 미친놈들도 생겨난다.
“으하하! 나는 강하다!”
[어휴, 저런 말을 진심으로 하는 인간이라니. 쪽팔리지도 않나?]
제정신이 아니라며 토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모습은 아니었다.
던전을 관리하다 보면 저런 인간들은 늘 존재해 왔으니까.
던전이 주는 공포에 짓눌려 정신이 황폐해진 인간들.
현실이 너무 무서워서, 오히려 자신이 더 악랄해지는 인간들.
[흠, 저런 부류는 보통 힘을 얻기 시작하면…….]
약한 동족을 짓밟으며 자신의 강함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마치 다크모들처럼.
“제, 제발 살려 주세요…….”
“흐흐. 누가 죽인데?”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참가자의 모습이 토끼의 눈에 밟혔다.
화이트 셔츠에 정장 바지.
예전엔 분명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안정적인 일상을 지니던 회사원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는 배고픔을 못 참고 같은 인간을 칼로 위협하는 한낱 무뢰배일 뿐이었다.
“일단 무기부터 다 내려놓고 입고 있는 옷도 다 벗어.”
“아, 안 돼……. 부디 자비를…….”
“흐흐, 네 소지품에서 쓸 만한 게 나온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어휴, 꼴 보기 싫어.]
토끼는 인상을 찌푸렸다.
던전 꼴이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다크모가 다크모를 약탈하고, 인간이 같은 인간을 겁박하고.
하지만 사실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강자는 약자를 짓밟고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던전의 법칙이자 세상의 이치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토끼는 그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아, 진짜. 작작들 좀 해요.]
흠칫!
“누, 누구냐!”
토끼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회사원이었다.
[나 진짜 웬만하면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님들 진짜 뭐함? 던전에 왔으면 곱게 던전이나 깨셈.]
“헉, 왜 토끼가 말을 하지!?”
빠직.
토끼가 짜증을 부렸다.
[아 놔, 지금 그게 중요함!? 사이좋게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님들끼리 싸우면 어떡해요! 집에 안 돌아가고 싶어요?]
“……!”
토끼의 말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는 참가자들이었다.
“지, 집에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으잉?]
토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의외의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놀라고 있었다.
지쳐 쓰러져 있던 사람도 그 사람을 협박하던 사람도.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토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또 뭔 반응임?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이…….]
“처, 처음 들었다고!”
“방금 그 말 진짜입니까? 집에 돌아갈 방법이 있나요?”
[헐? 설마……. 던전 게임을 끝내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 못 들었음?]
“못 들었다, 이 토끼야!”
“아무도 말 안 해 줬다고요!”
결국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토끼는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바, 바분 이 자식……! 설마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말 안 해 주고 방치한 거였어!?]
맙소사.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어쩐지 다들 아무 생각 없이 깽판이나 치고 있더라니!
애초에 던전을 공략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목적부터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하기야 스테이지-2만 관리하던 바분 입장에선 그런 건 지금까지 전혀 신경 안 썼을 것이었다.
이미 스테이지-1에서 다 배워서 올라온 참가자들만 봤을 테니까!
결국 토끼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하던 것 다 멈추고 여기로 모여 봐요.]
어쩌다 보니 참가자들을 모아 놓고 던전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하는 토끼였다.
[아, 거기! 죽는 것도 잠깐 멈추고 똑똑히 새겨 들으셈! 그러니까 던전이라는 게 뭐냐면……!]
토끼가 설명을 시작하자 참가자들이 반목을 멈추고 점점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뭐지? 새로운 괴물인가?”
“말을 하는 거 보니까 도우미인가 본데?”
[…….]
이 넓은 던전에 이런 소문은 또 잘도 퍼졌다.
“키히잇!”
인간들이 모여들자 자연히 다크모들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 따라 왔다.
[아, 잠깐! 너네도 이따 싸워!]
번쩍!
토끼의 손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그러자 그 너머에서 스테이지-1에서 모습을 감췄던 최종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궁!
“크워어어!”
“키힛!?”
후다닥!
“키히이……!”
다크모들은 흙 골렘을 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 버렸다.
그러자 참가자들도 덩달아 겁을 집어 먹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악! 괴물이다!”
[님들은 설명마저 듣고 가욧!]
우뚝.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토끼에게서 전직 도우미의 박력이 터져 나왔다.
그 위압감에 참가자들은 순순히 발을 멈추고 토끼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던전을 공략하면 말이죠……. 보상이 어쩌고……. 생존자 전체회 복이 어쩌고…….]
“저, 질문 있는데요.”
[내 얘기 다 듣고 이따 한꺼번에 손 드셈!]
“넵…….”
* * *
토끼는 스테이지-1에서 알아낸 사실들을 정다운에게 귓말로 미주알 고주알 전부 일러바쳤다.
<토끼 : 아무래도 바분이 제단이 사라진 후로 스테이지-1에 흥미를 잃어버렸나 봐요.>
<정다운 : 그렇게까지 방치되어 있었다고?>
<토끼 : 네. 여기선 아무리 일해도 마력을 수거할 수가 없으니 완전히 손을 떼 버린 거죠.>
<정다운 : 그러다 사람들이 모두 스테이지-2로 넘어가지 못하고 다 죽으면, 자기도 손해 아냐?>
<토끼 : 그렇죠. 나도 그게 궁금해서, 던전이 리셋되고 새 게임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 봤는데요.>
<정다운 : ……?>
<토끼 : 알고 보니 참가자들의 기본 무기조차 강화 무기였어요.>
던전에 참가자들이 처음 소환되면 기본적으로 무기가 하나씩 주어진다.
정다운도 받았고 류승우도 받았던 기본적인 칼 한자루.
그런데 그게 전부 강화 무기로 대체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무기를 들고 던전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스킬이 약한 생산직들은 전부 다른 전투직들에게 자신의 무기를 빼앗기며 게임을 시작했다.
<토끼 :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인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생산직들의 생존 확률이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이 말이 뭔 뜻인지 아시겠음?>
<정다운 : 참가자들 전체적으로 보면 식량이 점점 줄어들겠구나.>
<토끼 : 네, 바로 그거임. 전투직들은 사냥이나 할 줄 알지, 도축이나 식량을 관리하는 스킬들이 없으니까요. 결국 그건 약탈로 이어지는 거임.>
토끼의 귓말을 다 들은 정다운이 녀석에게 물었다.
<정다운 :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결론이 뭔데?>
<토끼 : 당분간 내가 스테이지-1을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어휴, 내가 잠깐 손을 놓았더니 영 엉망이더라고요. 이러다 참가자들이 전부 자멸하게 생겼음.>
의외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토끼가 조금 신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어차피 토끼가 평소에 하는 일도 없으니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다운 : 그거야 상관없는데, 그러다 바분과 마주치면 어쩌려고?>
<토끼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여기요. 던전 게임이 새로 시작했는데도, 바분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더라고요.>
“음? 진짜로 아예 손을 뗐나?”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다운 : 바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스테이지-2로 완전히 돌아간 건가?>
<토끼 : 사실은 아무 생각도 없는 걸 수도 있어요. 원래 멍청한 놈임. 욕심도 많고.>
토끼의 귓말은 거기서 끝이 났다.
정다운은 토끼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욕심이 많다라…….”
욕심이 많은 도우미라는 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럼 마저 만들까?”
정다운은 한창 3번째 신전을 건설하기 위해 틈새 지역에 돌아와 있었다.
굳이 어두운 심연의 바다에서 만들 필요는 없으니, 밝은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키키키키……!
해골 병사들로 가득한 저주받은 보라색 땅.
정다운은 해골 병사들의 머리 위로 새로운 땅을 건설하고 있었다.
“공중 계단, 공중 계단!”
처처처처척!
해골 병사들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키키키……!
그런데, 언데드들의 본능인 걸까?
그 어두운 그림자 아래로 해골병사들이 자꾸만 모여드는 것을 보며, 정다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휴, 이러다 해골들을 전부 끌고 다니게 생겼네.”
그 모습에 지나가던 바하무트가 정다운의 위업을 보며 감탄을 했다.
[오오, 우리 주인님께서 새로운 지옥을 만들고 계시는구나.]
[호우!]
<언데드를 몰고 다니는 신전이라니. 불길하고 불길하구나.>
알파의 한탄에 정다운은 민망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아래쪽에 부유석이라도 박아야겠다. 음?”
그런데 그때, 정다운의 시야로 묘한 광경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