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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26)화 (126/393)

<던전리셋 126화>

“굳이 저렇게 머리통이 2개나 있다는 건 그만큼 시야가 넓다는 뜻이겠지?”

[……?]

정다운이 트윈헤드 오거의 머리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토끼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남들보다 머리가 많아지면 그만큼 눈도 많아지고, 귀도 많아지고 이래저래 2배로 이득일 듯요?]

“그렇지? 그럼 눈앞이 캄캄해지면, 남들보다 2배로 더 당황하겠네?”

[호오? 그럴싸한 말이네요? 그 틈에 도망치게요?]

“아니?”

[……?]

정다운이 씨익 웃는 그 순간이었다.

앞으로 달려나간 그림자 고양이가 앞발로 횃불 하나를 훅, 꺼 버렸다.

그러자 그만큼의 어둠이 동굴 안에 찾아왔다.

니야앙!

새까만 어둠 속에서 그림자 고양이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주변에 남은 횃불은 9개.

“계속 꺼.”

정다운의 말에 그림자 고양이는 쥐를 쫓는 고양이처럼 쏜살같이 다른 횃불을 노리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이번엔 입으로 물어뜯었다.

훅! 훅, 훅!

여덟, 일곱, 여섯…….

동굴을 밝혀 주고 있던 횃불들이 순차적으로 하나씩 꺼져 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트윈헤드 오거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흙 골렘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크르렁!”

콰앙!

“크워어!”

쿠궁!

그런데 오거의 힘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덩치도 무게도 서로 비슷할 텐데도 고릴라 골렘이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리고 있었다.

“힘에서 밀리는데?”

[당연하죠. 스테이지-1의 보스와 스테이지-4 보스가 만났는데, 누가 이기겠음?]

“그야 쪽수 많은 편이 이기겠지.”

[그 말도 맞지!]

토끼가 쌍수를 들고 골렘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트윈헤드 오거의 뒤로 다른 골렘이 나타나 등을 덥석 끌어안았다.

“크르렁!?”

트윈헤드 오거가 짜증을 부리며 힘으로 녀석을 뿌리쳤다.

콰직!

콰앙!

“크워어!”

정말이지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하나가 안 되면, 둘.

둘이 안 되면 셋으로 늘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전부 덤벼서 붙잡아!”

“크워어!”

“오옴!”

덥석, 덥석, 덥석!

다른 골렘들이 전부 합세해서 트윈헤드 오거의 몸을 사방에서 끌어 안았다.

“크르렁!”

격렬하게 저항하는 트윈헤드 오거의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어서 범독수리 그리피오스를 떠올리게 했다.

범독수리도 저렇게 골렘들의 몸을 사정없이 짓뭉개지 않았던가.

[휴우, 이번에 골렘들한테 철갑을 두르지 않았다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요.]

다행히 이번엔 범독수리 때와는 달랐다.

이쪽도 방어력이 상당히 높아져 있어서, 쉽게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

물론 트윈헤드 오거의 방어력도 그에 못지않아서 치명타를 입히는 게 쉽지 않았다.

[여기서 더 격렬하게 싸우면 진짜 동굴 무너질 것 같아요.]

“알아.”

정다운은 그래서 골렘들에게 싸우라 명령하지 않고, 그저 꽉 붙잡고 있으라 한 것이었다.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쪽도 준비가 끝났어.”

그리고 마침 그림자 고양이가 동굴에 있던 마지막 횃불을 집어삼켰다.

후욱!

어둠이 동굴을 집어삼켰다.

“크르릉!?”

트윈헤드 오거는 눈앞이 캄캄해지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적들은 바로 지척에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때.

딸랑-.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영롱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비술.”

그 순간 그림자 고양이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그 실루엣은 주인인 정다운과 똑같았지만, 빛이 사라진 지금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는 여기 없었다.

정다운은 녀석을 불러 그 손에 도살자의 칼을 들려주며 물었다.

“도축하는 법 기억하지?”

“니야앙.”

어둠 속에서 식칼을 들고 있는 그림자 하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림자 하인은 ‘기억’을 토대로 움직인다.

도축.

그건 가장 최근에 배운 따끈따끈한 기억이었다.

“생긴 건 조금 다르지만, 기억나는 대로만 도축하고 와.”

“니야앙.”

그림자 하인은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트윈헤드 오거를 향해.

그리고 그 앞에 도착하자, 기억이 이끄는 대로 무심하게 식칼을 푹 찔러 넣었다.

“크르렁!?”

소스라치게 놀란 트윈헤드 오거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에겐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다.

심연의 어둠에서 태어난 그림자 마수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림자 마수는 엄연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식칼을 들고.

푹, 푹, 푹, 푹, 푹, 푹.

썩둑 썩둑.

“크라락!?”

본격적으로 살과 뼈가 해체되기 시작하자, 트윈헤드 오거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다운의 골렘들이 명령받은 대로 놈의 움직임을 철저히 붙들고 있었으니까.

“크르렁!”

마법 면역력이 있다던 트윈헤드 오거였지만, 그래도 식칼에 달린 옵션은 충분히 통했다.

이건 마법이 아니라 물리적인 효과의 아이템이었으니까.

애초에 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정다운에게 그런 건 사치였다.

생산직은 생산직답게 도축이나 하면 그만이었다.

[도살자의 칼 +4]

- 내구력 : 100/100(%)

- 옵션 : 도축 (3레벨)

뼈와 살을 해체하는 기술이 좋아진다.

- 특수 옵션 : 흡혈 (1레벨)

적의 체력을 빼앗아 자신의 체력을 회복한다.

특수 옵션은 잠시 접어 두더라도 저 도축 3레벨 효과는 이미 범독수리를 도축하면서 충분히 그 성능이 증명된 물건이었다.

[대, 대박……. 이거 거의 셀프 심연의 바다네요.]

토끼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꿈뻑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들려오는 건 오로지 식칼 소리와 비명 소리뿐.

푹푹, 썩썩.

[히익, 그런데 이거 뭔가 너무 잔인함!]

“뭐가 잔인해? 어차피 먹을 건데? 네가 지금까지 맛있게 먹었던 고기들이 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라고.”

그동안 워낙 도축을 많이 해 본 정다운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뭔가 다른 것 같음! 산채로 회를 뜨다니!]

“원래 도축은 싱싱할수록 좋은 거야. 너 저번에 생선회 맛있게 먹었잖아.”

[그, 그건 심연어였고 쟤는 곰돌이잖아요.]

“그래 봐야 사람 죽이는 곰이잖아? 심지어 머리도 두 개 달린 괴물이고. 심연어는 그래도 머리는 하나였다고.”

[근데 곰 고기는 맛있음?]

“나도 몰라. 오늘 한번 먹어 보자.”

[히히.]

토끼도 사실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서로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인 던전에서 이 정도 일이 대수겠는가.

둘이 노닥거리는 와중에도 어둠 속에서는 섬뜩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그러다 갑자기 그림자 하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니야앙!?

마구잡이로 발버둥 치던 트윈헤드 오거의 발길질에 맞은 그림자 하인의 몸이 그대로 펑 터져 버렸다.

몸이 쪼그라 들며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림자 고양이.

녀석이 몸을 달달 떨며 정다운의 발밑으로 돌아와 숨어 버렸다.

하지만 정다운은 가혹한 주인님이었다.

그가 자상하게 그림자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퇴근했어? 다시 출근해.”

딸랑-.

스르륵.

출근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시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키는 그림자 하인.

그는 다시 식칼을 들고 트윈헤드 오거를 향해 사뿐사뿐 다가갔다.

하지만 또 금방 한 대 얻어맞고 풍선처럼 터져 버리는 게 아닌가.

니야앙-!

“응, 또 왔어? 그림자 비술.”

딸랑.

스르륵…….

몇 번이고 몸이 터져서 돌아와도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었다.

“뭐지, 생각보다 바쁜데?”

아무 것도 안 하고 꿀만 빨려던 정다운은 자꾸만 죽어서 돌아오는 그림자 고양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또 고통에 몸부림치는 트윈헤드 오거의 깽판에 휘말리지 않게 계속 서 있는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

하지만 바쁘기만 할 뿐 큰 위험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오거는 차츰차츰 죽어가 고 있었다.

*   *   *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크륵…….”

결국엔 그 끈질긴 트윈헤드 오거의 숨도 끊어지고 말았다.

“휴, 길었다.”

정다운이 곧바로 태양석을 꺼내 동굴을 밝혔다.

그러자 동굴 바닥엔 트윈헤드 오거의 고기가 깔끔하게 부위별로 정돈되어 있었다.

[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했더니 이거 일일이 열 맞추느라 그랬군요?]

“내가 처음에 시범 보여 준 대로네. 이 녀석 진짜 쓸 만한데?”

그림자 하인의 출중한 능력에 정다운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독수리와 다르게 생긴 부위는 건드리지 않고 비슷하다 싶은 곳만 깔끔하게 도축해 놓았는데, 그 솜씨가 딱 정다운 자신과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칭찬 따위는 관심도 없는지, 녀석은 고양이 모습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누워 배를 할짝거리고 있었다.

[다 좋은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네요. 앞으로 이 곰돌이랑은 싸우지 말죠.]

“그러게. 아니면 밝은 데서 싸우든가 해야지 원. 거의 반나절은 싸운 것 같은데.”

정다운도 오거의 고기를 소지품에 주워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걸 얻었다.

바로 이 마법 면역력이 있다는 트윈헤드 오거의 가죽 말이다.

“이걸로 옷을 만든다면 어지간한 스킬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겠네요. 그래도 완전한 건 아니에요. 방금 이 녀석이 식칼로 찔려 죽은 걸 잊지 마셈.]

“참고할게.”

토끼의 조언을 정다운은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그보다 그림자 하인은 다 좋은데 맷집이 너무 약한 게 너무 흠이네요. 한 대만 스쳐도 무조건 몸이 터져 버리니 원.]

“그래도 나중에 숫자가 더 늘면 점점 효율이 좋아지겠지.”

[그건 그래요. 그래도 오늘 보니까 그림자 하인은 진짜 완벽한 암살자였음. 소리나 기척도 없다니.]

“나중에는 이런 녀석들을 몇 백 마리 정도 우르르 끌고 다니면, 그야말로 밤의 황제가 되겠는데?”

[또 오버하시네. 그림자 마수를 그렇게나 많이 데리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님의 ‘격’이 높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토끼는 그림자 하인의 성능에 내내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겨우 한 마리로도 충분히 쓸 만했다.

맷집이 약해도 너무 약한 게 흠이라지만, 어차피 암살자들의 운명이란 들키는 순간 잡혀서 죽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차피 그림자 하인은 아무리 죽어도 얼마든지 다시 살릴 수 있었다.

[흐음, 이런 게 겨우 1레벨짜리 비술이라니. 스킬이 아니라 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이라서 레벨 업이 안 되는 게 아쉽네요.]

“그러게. 이거 제단에 바쳐서 옵션질 할 수는 없겠지?”

[네. 특수 옵션은 강화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아요. 장인들이 무기를 만드는 과정 중에 각인시키는 거니까요.]

괜히 일반 옵션과 특수 옵션이 나뉘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바하무트의 주인이었다던 ‘마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런 대단한 능력이 있는 그림자의 팔찌를 고작해야 키우던 고양이 목에 달아 주다니……. 배포가 큰 건지 사치가 심한 건지, 아니면 고양이를 그만큼 좋아 했던 건지.]

“역시 고양이 농장을 빨리 만들어야겠어.”

[…….]

정다운도 이제 슬슬 이 쓸 만한 그림자 고양이가 점점 예뻐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기다려도 업적이 달성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뭐지? 던전 왜 안 끝나?”

[음, 그러게요? 혹시 얘 말고 보스 괴물이 몇 마리 더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방식도 있어?”

[던전 게임 방식은 다양해요. 여긴 자잘한 보스들을 다 잡아야 던전이 끝나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 비슷한 동굴들이 잔뜩 보였던 것 같다.

“아, 그래서 틈새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 내 골렘들을 보고 새로운 유적지를 발견한 것 같다고 했던 건가?”

무심하게 넘겼던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다운이었다.

“아무튼, 굳이 이 던전을 공략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이쯤하고 돌아가자. 제단도 얻었고.”

[이제 마녀의 집으로 가실 거임?]

“아니, 그런데 그 전에 스테이지-1에 잠깐 다녀오자. 내친김에 골렘도 하나 챙겨 오게.”

[바분…….]

그러고 보니 토끼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바분과 마주쳐도 싸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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