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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25)화 (125/393)

<던전리셋 125화>

스테이지-4의 첫 번째 던전 ‘야수의 숲’은 죽음의 산맥 바로 앞에 위치한 ‘평범한 숲’이었다.

던전 콩이 자랄 정도로 초록이 가득하고, 사냥감들도 풍족한 땅.

덕분에 식량 수급도 제법 쉬운 편이라 틈새 마을 사람들도 식량 확보를 위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던전에서 ‘평범’이란 언제나 위험을 동반했다.

이 일대는 바위산과 붙어있어서 정체모를 동굴들이 잔뜩 분포되어 있었고, 그 안엔 언제나 위험한 짐승이나 괴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할 일은 그 많은 동굴들 중에서 최종유적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거기 웅크리고 있는 보스 괴물을 죽여야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쿠우웅!

결국 최종보스의 육중한 몸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충격에 동굴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자, 잡았다!”

참가자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씨발, 이번엔 진짜 죽을 뻔 했네. 이놈의 던전은 언제나 사람을 피가 마르게 한다니까!”

거칠게 욕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는 사내의 몸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저 새끼들이 방해만 안 했어도! 더 빨리 끝났을 텐데!”

그의 시선이 홱 하고 돌아가 동굴 반대편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참가자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들도 지지 않겠다는 듯 사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누, 누가 할 소리입니까! 애초에 석정호 씨가……!”

“뭐, 이 자식아?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눈을 확 후벼 파버릴라!”

흠칫.

험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는 ‘석정호’의 기세에 몸을 주춤거리는 상대편 참가자들이었다.

이번 던전 공략이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사실 유적지를 찾는 것도 괴물들과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참가자들 간에 파벌이 생겨서 힘이 집중되지 못하고 두 쪽 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일쯤은 던전에 종종 있어나는 일이었다.

류승우도 겪었고, 정다운도 겪어본 흔한 참가자들간의 알력 싸움.

워낙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있기에 분란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 중심에 소중한 식량까지 걸려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팍팍해지고 예민해진다.

특히나 이번처럼 최종보스가 거대한 ‘곰’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신장이 거의 5미터가 넘는 야수들의 왕 ‘트윈헤드 오거’.

머리가 2개 달려있고 비상식적인 힘과 맷집이 문제였지만, 일단 숨이 끊기는 순간부턴 독도 없고 양도 많은 ‘고기’ 식량일 뿐이었다.

“도축 시작해!”

“예, 예……!”

석정호가 버럭 소리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생산직들이 후다닥 도축용 칼을 들고 최종보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도축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석정호를 따르는 생산직들뿐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반대 파벌 참가자들에겐 식량을 노획할 자격이 없었다.

‘누군가’의 방해로 유적지에 늦게 도착한 것이다.

보스 전에 기여하지 못했으니, 그들에게 최종보스의 고기를 노획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지극히 당연한 일. 참가자들간에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룰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누군가’가 바로 저 석정호라는 게 문제였다.

“큭, 저 자식이 우리를 방해만 안했어도!”

“참으세요. 지서연 씨, 흥분하시면 석정호 저 자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겁니다.”

“하지만 속상하잖아요.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분노한 표정으로 이를 악무는 ‘지서연’을 그 옆에 있던 참가자들이 뜯어 말렸다.

석정호와 지서연.

그들은 던전 게임을 이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는 앙숙이었다.

벌써 몇 달을 이렇게 얼굴을 보고 있는 사이면 이젠 좀 친해질 법도 한데, 석정호의 저 야비한 성정이 언제나 문제였다.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이고, 업적과 아이템을 독식하기 위해서라면 잔인한 일도 서슴치 않는 인물.

그게 바로 석정호였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인간성을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도 가혹했다. 

“이 식충이들아! 빨리 서두르지 못해!? 그러다 고기가 썩기라도 하면 다 네놈들 입에 쑤셔 넣겠다!”

“네, 석정호 씨……!”

계속되는 석정호의 닦달에 생산직들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전투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생산직들은 석정호에게 식충이 취급을 받으며 괄시를 당했다.

하지만 말이 너무 험해서 그렇지 그가 하는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도축은 언제나 시간 관리가 생명.

죽은 지 1시간이 넘어가면 고기는 썩기 시작한다.

특히나 이곳은 냉장 시설이 갖춰져 있는 정육점도 아니었고, 온갖 세균들에 노출되어 있는 야외여서 더욱 그러했다.

물론 바로 소지품에 넣어 보관한다면 그 동안 만큼은 시간이 멈춰있겠지만, 그래봐야 도축하기 위해선 다시 밖으로 꺼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

결국 사냥이 끝나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뼈와 살을 분리해내고, 먹기 좋게 조리를 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걸 뻔히 알기에 석정호는 ‘게을러터진’ 생산직들을 항상 윽박지르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생존자 전체 회복]

“아아……!”

때마침, 은빛 가루가 내려와 참가자들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되돌려주자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또, 또! 이것들 또 손 느려지는 거 봐라! 힘이 돌아 왔으면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

화들짝!

“아, 알겠습니다!”

석정호의 고함 소리에 생산직들은 다시 도축을 시작했다.

석정호는 조금 전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던전이 공략되었는데도 도우미가 나타나질 않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 상, 이럴 땐 보통 자동으로 게이트 마법진이 생성되어 자신들을 다음 던전으로 날려보내곤 했다.

그러면 최악의 경우 일행들과 그쪽에선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봐. 일단 연한 부위부터 도려내서 나한테 넘겨 봐.”

뭔가 불안감을 느낀 그는 생산직들의 손에서 곰 고기를 넘겨받아 자신의 소지품 안에 채워 넣었다.

조리가 안 되어 있긴 하지만, 그건 또 나중에 만만한 참가자들을 잡아서 시키면 그만이었다.

파아앗!

그때 그들의 발밑으로 게이트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오, 역시! 강제 이동이었네.”

자신의 짐작이 맞아 떨어지자, 석정호는 씨익 웃으며 저쪽에서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서연 그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흐흐, 그럼 또 보자고? 서연 아씨?”

“죽어 그냥.”

지서연은 싸늘한 표정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석정호는 그마저도 재밌다는 듯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른한테 반말하는 싸가지하고는. 흐흐.”

파앗!

석정호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지서연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의 모습도 동굴 안에서 사라졌다.

…….

소란스럽던 유적지에 갑자기 적막이 찾아왔다.

남겨진 건 오로지 절반 정도 남은 트윈헤드 오거의 사체 뿐.

[던전이 리셋됩니다.]

얼마 후, 리셋이 시작되며 땅에 미세한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정다운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여기가 맞아?”

[확실해요. 조금 전에 분명 이 쪽에서 게이트 마법진의 마력 흐름이 느껴졌어요.]

“그런 것도 느낄 수 있어?”

[그럼요. 내가 이래봬도 격이 높은 토끼임!] 

정다운은 철갑 고릴라 골렘들을 우르르 끌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던전이 공략된 건 알고 있었지만, 괴물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제법 많은 잔당들이 덤벼들어서 전부 물리치면서 도착한 것이었다.

“오, 진짜 여기 맞나 보네?”

[에헴! 내가 뭐랬음?]

“그런데 사람이 죽어 있네.”

정다운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죽은 시체들을 쳐다봤다.

토끼는 붉은 피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엑, 상처를 보니까 괴물이 아니라 참가자에게 죽은 것 같은데요?]

“그러게. 저 커다란 곰이 칼로 찔렀을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흠. 딱 보니까, 절반은 싸우고 절반은 구경만 했네요. 누가 나중에 끼어들어 보려다가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며 죽임 당했어요.]

“아니, 그렇게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뭐가 그렇게 구체적이야?”

정다운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토끼는 도도한 얼굴로 한껏 잘난 척을 했다.

[훗. 그거 아셈? 전투의 흔적에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어요. 나처럼 싸움 구경 많이 하다보면 이 정도는 눈에 뻔히 보임.]

“너 잘났다. 어차피 확인도 못 할 거, 그냥 그렇다고 해두마.”

[헐? 진짜라니까요? 여기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내 눈엔 보인다고요. 완전 삼파전이었다고요.]

“그래, 그래.”

토끼는 억울하다는 듯이 정다운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계속 조잘댔다.

하지만 그런 걸 알아서 뭐하랴. 어차피 남 일이었다.

정다운의 관심은 오로지 이곳에 있는 제단 뿐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겐 그저 유적지 뒤에 병풍처럼 존재하는 배경 소품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찾았다.”

제단을 발견하자, 그는 그 앞에서 망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제단 앞의 바닥을 내리쳤다.

“돌 깨기! 돌 깨기!”

콰직! 콰직!

망치질 한 번에 동굴 바닥이 깔끔하게 쪼개지며 제단이 떨어져 나왔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리셋도 거의 끝나 가는데. 얘들아 이거 들어.”

“크워어.”

골렘들이 제단을 막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헐! 큰일났다! 최종보스가 리셋됐어요!]

“어? 벌써?”

아직 지진이 끝나지 않아서 조금 방심하고 있었더니, 최종보스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 버렸다.

정다운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시체였던 트윈헤드 오거가 멀쩡히 살아나 이쪽을 향해 흉악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크르렁!”

모골이 송연해지는 포효가 동굴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토끼가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셈! 하늘의 무법자가 범독수리라면, 오거는 숲의 왕이에요. 그 중에서도 트윈헤드 오거는 가장 위험한 개체임!]

범독수리와 비슷하다는 말에 정다운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위험한 놈이라고!?”

[네, 엄청 터프한 놈임! 게다가 지능도 좋아서 도구도 쓸 줄 알고요.]

정다운은 고민 없이 게이트부터 설치했다.

던전 공략이 목표도 아닌데, 싸워서 뭐하겠는가.

“게이트 설치!”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파아앗!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며 그의 곁에 게이트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낀 트윈헤드 오거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크르렁!”

쿵쾅 쿵쾅!

“……!”

정다운은 다급히 그곳에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놈이 노린 건 그가 아니었다. 

오거의 거대한 주먹이 게이트를 향해 내리 꽂혔다.

콰아앙!

게이트는 제대로 설치되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정다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헉, 게이트를 박살내는 게 가능한 거였어!?”

[그럼요! 트윈헤드 오거의 무서운 점은 힘도 힘이지만, 마법면역력이 있어서 힘으로 스킬을 깨부술 수 있어요!]

게이트 스킬도 결국 마법의 일종이었다.

조건만 맞으면 얼마든지 파괴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진짜 터프한 놈이네.”

“크르렁!”

트윈헤드 오거는 정다운이 도망치지 못하게 교묘하게 퇴로를 막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 똑똑하네.”

정다운은 놈의 영악함에 혀를 내둘렀다.

제단을 챙기느라 하필이면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더니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어차피 골렘들도 많아서 그냥 싸우게 하면 그만이었지만,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어쩌죠? 여기서 저 놈이랑 골렘들이 맞붙었다간 그 여파로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어쩌긴? 에휴, 최대한 빨리 잡아버리자.”

정다운의 시선이 동굴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을 찾아 움직였다.

역시 유적지라서 다른 동굴들과는 다르게 어둑한 실내를 밝혀주는 몇 개의 횃불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정다운이 말했다.

“불 꺼.”

그러자 그 순간 그의 그림자가 꾸물거리더니, 그 안에서 작은 그림자가 횃불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니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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