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23화>
“그래도 한 마리는 미리 잡아놔서 다행이다.”
딸랑.
정다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곁으로 다가온 그림자 고양이를 향해 팔찌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림자 고양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두 발로 벌떡 일어났다.
방울을 만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 고양이의 특성상 점프는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리 앞발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니야악!
그림자 고양이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맹렬하게 앞발을 허우적거렸다.
“이거 달라고?”
정다운은 팔찌를 착용한 손으로 그림자 고양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원래라면 실체가 없어서 만지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신기하게도 촉감이 느껴졌다.
니야아-
그의 손길에 그림자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르릉거리며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그리곤 스르륵 그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헐, 녹아 버렸어. 설마 죽었나!?”
애옹-?
“휴.”
그가 깜짝 놀라자, 그의 그림자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지는 바하무트의 설명에 정다운은 안심했다.
[비술을 푸시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나이다.]
“지금은 무슨 모습인데? 아무 것도……, 헐?”
정다운은 말을 끝까지 맺을 수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림자 비술 (1레벨)
- 그림자를 실체화한다.
“이건……?”
[주인님의 그림자에서 태어난 그림자 마수. ‘그림자 하인’이 완성되었나이다.]
그림자 하인.
놀랍게도 정다운과 똑같은 키와 실루엣을 가진 그림자가 그의 그림자에서 독립되어 떨어져 나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림자 하인이라고?”
정다운이 놀라며 손을 들자, 그림자 하인도 바로 그 움직임을 따라서 손을 들었다.
그림자라면 너무나 당연한 상황.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지금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하고 있었다.
“바, 반갑다.”
“…….”
흔들흔들.
“하하, 녀석 참. 과묵한 아이구나.”
“…….”
“하하…….”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정다운은 괜히 뻘쭘했다.
게다가 손을 마주잡는 아귀힘은 자신의 힘과 정확히 똑같아서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소름도 끼쳤다.
<불길한 손. 검은 손. 나쁜 손.>
알파의 혼잣말이 마주 잡은 두 손 위에 계속 자막처럼 깔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이목구비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토끼가 기웃거리며 말을 하는 순간, 그림자 하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냐아옹.”
[……!]
뜬금없이 가냘프고 구슬픈 고양이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자, 크게 놀라는 정다운과 토끼였다.
“고, 고양이다!”
[헉쓰. 이제 보니 그림자 비술이 아니라 고양이 비술이었네! 고양이 하인을 실체화하는 비술이었어!]
[흠흠. 그게 바로 마녀님의 연구였나이다.]
[헐, 고양이를 연구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림자 마수에 대한 연구였소이다.]
바하무트의 설명은 이러했다.
본래 그림자 비술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난이도 마법이었다.
그림자 안에 마력을 불어 넣고 기억을 새겨 넣는 일은 아무나 하기 힘든 고도의 마력 테크닉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녀는 비술의 주재료인 ‘마력이 깃든 그림자’와 ‘기억’을 그림자 마수로 대체해서 마법의 난이도를 대폭 낮춰버렸다.
마력에서 태어난 그림자 마수.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림자 고양이는 악몽을 배출하기 위해 ‘기억’을 수집하는 본능까지 있었으니 모든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절묘하네.”
[똑똑한 마녀였네요. 자, 그런 의미에서 이 고양이 하인, 아니 그림자 하인으론 뭘 할 수 있어요? 전투? 살인?]
[뭐든 가능하나이다. 단, 어디까지나 그 행동은 그동안 주인님이 했던 행동들을 토대로 따라서 움직이게 될 것이나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했던 행동을 따라 한다고?”
바하무트의 말에 정다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토끼는 바로 알아들었다.
[아하. 그림자가 기억하는 움직임만 가능하다는 거네요. 그럼 얘도 싸움 못하겠네요? 그림자 주인이 몸치니까?]
그 말에 울컥한 정다운.
“내가 왜 싸움을 못해!? 이래봬도 내가 이 두 손으로 던전 도우미도! 어!?”
……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림자 하인이 갑자기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꼼지락 꼼지락 어떤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정다운은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 왜 흙을 뭉치니.”
“니야옹.”
만지작 만지작.
“…….”
그림자 하인은 흙을 뭉치고 있었다.
멍하니 주저앉아 맨손으로.
정다운의 그림자 속에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기억을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짠하네요.]
“아니, 차라리 스킬이라도 좀 쓰던가…….”
[그림자 하인은 움직임만 따라할 수 있나이다. 스킬이나 마법 같은 건 사용하지 못하나이다…….]
또르륵.
[더 슬프네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림자 하인은 흙을 뭉치는 것도 모자라, 맨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치 흙 뭉치기 스킬로 땅을 파는 느낌이었으나, 스킬이 안 나와서 그 흙을 또 일일이 뭉쳐야 했다.
[그, 그만해! 슬퍼서 더는 못 보겠어!]
토끼는 눈물을 훔치며 그림자 하인을 뜯어 말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꺄하핫! 이제 좀 쓸만한 스킬이 생겼나 했더니, 또 꽝이네요!]
“……아냐. 이거 대박이야.”
[음?]
신나게 놀려주려던 토끼가 흠칫 놀랬다.
정다운의 표정이 몹시도 불길하게…… 씨익 웃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그렇게……, 음?]
토끼는 그의 시선을 따라서 그가 뭘 쳐다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그림자 하인이 방금 뭉친 동그란 흙덩어리였다.
주먹만한 크기의 별거 없는 아주 평범한 흙덩어리…….
그런데, 저 동그란 느낌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구체!
저 엄청난 꼼꼼함이라니!
[뭐, 뭐지? 완벽해!]
“그렇지? 너도 알아봤구나.”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토끼도 저 흙덩어리의 완성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정확하게 내가 만든 흙덩어리야. 내 손맛이 느껴진다고!”
정다운은 그림자 비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깨달았다.
“훌륭한 일꾼이 생겼어! 세르파 이 멍청한 자식! 이 좋은 스킬을 그냥 싸움에나 쓰다니.”
정다운은 먼저 떠난 세르파의 어리석음에 혀를 찼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철갑 골렘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서 손이 몹시 부족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던 그였다.
그래서 처음엔 일을 좀 도와달라고 다른 참가자들을 몇 명 불러들인 적도 있었는데, 전부 꽝이었다.
쇳물을 엎지르던가 조개껍질 방향이 틀려서 아귀가 안 맞던가.
도와달라고 불렀더니 오히려 사고만 안 치면 다행이었다.
‘그냥 오리고 붙이는 건데, 이 쉬운 일을 왜들 그렇게 못하는지!’
결국 정다운은 제대로 된 일꾼을 찾지 못해 그 모든 작업을 혼자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림자 하인의 손재주는 정다운 자신과 완벽히 똑같았다.
아니, 정다운 그 자체였다!
“이, 일을 시키자……!”
정다운은 너무 흥분해서 손을 덜덜 떨며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최근에 만들다 만 골렘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오옴!”
“오오옴!”
성 외벽을 기어가느라 고릴라 골렘 위주로 철갑 작업을 했더니, 아직 대부분의 켄타우로스 골렘들은 알몸(?)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조금 남아 있던 조개껍질들을 꺼내며 그림자 하인을 불렀다.
“우흐흐, 그림자 하인아. 우리 함께 재밌는 일을 하자꾸나.”
“냐앙?”
[히익? 저런 변태 같은 표정이라니!]
토끼가 못 볼 꼴을 봤다며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조개껍질을 받아든 그림자 하인은 몹시 능숙하게 켄타우로스의 몸에 척척 붙이기 시작했다.
그냥 붙이는 것 같아도, 그 단련된 손끝에는 절도가 느껴졌다.
“머, 멋져! 역시 이거지!”
자신이 생각하던 느낌 그대로 철갑 골렘을 만들어 나가는 그림자 하임의 모습에 정다운은 감동해버렸다.
정말 쓸만한 부하를 얻은 것이다!
이런 섬세한 작업을 대체 누구한테 부탁할까?
골렘에게? 뽀뀨에게?
“바하무트, 이 그림자 하인 체력은 좀 어때? 뭘 먹여 키워?”
[그림자 하인은 먹지도 않고 결코 지치지도 않는 충성스런 노예이나이다.]
“……!”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맙소사! 먹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하인이란다!
“처, 천사인가!”
[다만, 방어력이 약해서, 적의 공격에 형태가 망가지면 그 틈으로 마력이 새어 나가 무너져 내릴 것이나이다.]
[헐, 약해 빠졌어…….]
방어력은 상당히 약하다는 것은 큰 약점이었다.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었다.
“풍선처럼 바람이 빠지는 원리인가? 세르파가 소환했던 그림자 야수는 제법 튼튼했던 것 같은데?”
[세르파는 뛰어난 마법사였나이다. 분명히 그림자 비술 외에도 여러 마법을 동시에 사용해서 그림자를 강화했을 것이나이다.]
기본적으로 그림자 비술의 용도는 잊혀진 추억을 되새기는데 목적이 있었다.
싸우기 위한 게 아니다보니, 방어력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결론은 님이 마법사가 아니라 약한 거래요.]
“또 그놈의 마법사, 마법사!”
정다운이 분통을 터뜨렸다.
“진짜 내 눈에 언제 마법사 한 놈만 딱 걸려라! 내가 진짜 가만 안 둔다!”
깜짝?
[…….]
정다운의 말에 리치 마법사 바하무트가 몸을 흠칫 떨었다.
[하, 하지만! 방어력이 약해도 괜찮나이다! 자, 이걸 보시지요!]
바하무트가 열심히 조개껍질을 붙이고 있던 그림자 하인의 등짝을 사신의 낫으로 푹 찔렀다.
[히익? 그림자 살인마다!]
“호오?”
죽인 게 아니었다.
그림자 하인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시식 쪼그라들었다.
그러자.
니야앙?
그림자 하인이 있던 곳에는 그림자 고양이가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있던 그림자를 찾아서 쏙 숨어버렸다.
[보셨듯이 그림자 마수는 결코 죽지 않나이다. 다만, 약해질 뿐.]
“체력은 무한에, 내구력은 약한 반면 영구적으로 재활용은 가능하다는 말인가?”
바하무트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던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진짜 대박이잖아! 이런 하인이 또 어딨어!?”
정다운은 그림자 고양이가 숨은 그림자에 손바닥을 대고 다시 스킬을 썼다.
“그림자 비술!”
딸랑-.
그 순간 다시 그 앞에서 쑤욱 그의 모습과 똑같은 그림자 하인이 몸을 일으켰다.
“완벽해! 최고야! 바하무트! 이거 몇 마리까지 늘릴 수 있어?”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만, 이론적으로는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최고야!”
[저 ‘역량’이라는 건, 우리한테는 ‘격’을 말해요.]
토끼의 뒷말은 이미 들리지 않았다.
정다운의 머릿속으로 수백명의 그림자 하인들을 호령하는 자신의 모습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그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자, 그럼 만들어 볼까?”
[또 뭘요?]
“고양이를 잡을 덫을 만들 거야. 공중에.”
[공중?]
실체도 없고 워낙 잽싼 그림자 고양이들을 잡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성공한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림자들이 도망칠 곳이 없는 저 하늘!
“어차피 제단도 하나 늘었겠다, 신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정다운은 곧바로 검은 여왕의 성 제단을 찾아내 바닥 채로 뜯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