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13)화 (113/393)

<던전리셋 113화>

*   *   *

“꺄아아악!”

“……!”

심연의 어둠 속에서 처절한 비명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으아아! 오지 마! 오지 마!”

“어, 엄마…….”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를 바짝 쫓아오는 불길한 그림자들.

놈들의 입이 벌어지며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쩌어억!

그 모습에 뒤쳐진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사, 살려……!”

“끄아아아악!”

그렇게 그들은 산 채로 뜯어 먹히기 시작했다.

가장 잔인하고, 가장 처참하게.

그들의 입에서 피맺힌 절규가 터져 나왔다.

“저건 뭐야…….”

너무도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 윤진수는 그만 눈을 돌렸다.

“보지 말거라. 애들 정서에는 좋지 않을 게야.”

오창석 촌장이 윤진수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결코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 중에는 익히 아는 얼굴들도 섞여 있었으니까.

동료, 혹은 친구.

이미 죽어버린 기억들.

‘오랜만일세, 모두들. 그리고…… 미안하네.’

사무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오창석 촌장은 결국 눈을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구해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엔 이미 늦었으니까.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으니까.

“끄아악……!”

처절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점차 반투명해지더니 어둠 속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저건 그냥 환상일세. 아니, 이 땅에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지.”

오창석 촌장이 굳은 얼굴로 모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찾은 것 같습니다. 악몽의 언덕.”

제3 던전 유적지. 

악몽의 언덕.

심연의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돌던 끝에 그들은 마침내 유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고지대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지만, 가장 선두에 서있던 오창석 촌장의 눈치 스킬이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그 생존본능이 경고하는 가장 불길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방향을 역으로 찾아다니다보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요행도 조금 섞여 있었다. 

심연의 바다는 온 사방이 위험하게 느껴졌으니까.

“여기입니까?”

류승우는 사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환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겨우 환상일 뿐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참상이 바로 지척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찌나 진짜 같은 지 실제로 손을 갖다 대보면 촉감조차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금방 반투명해지며 손이 투과되어 버리긴 했지만.

“세상에! 이 환상은 만져지는데?”

저도 모르게 죽임당하는 환상들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은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 오창석 촌장이 다급히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게! 우리가 만질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저들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들에게 잔인하게 잡아먹히고 있던 사람이 참가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를 드러냈다.

마치 좀비처럼.

“크아악!”

“헉!?”

촤아악!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는 참가자들. 

놀랍게도 그들의 옷깃이 조금 찢겨 있었다. 

오창석 촌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연거푸 주의를 주었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말게나. 이곳에 있는 환상들은 실체가 있다네. 지금이야 어설프지만 안으로 더 들어가면 더 위험해질 거야.”

“환상이 실체가 있다고요?”

그 말에 구호열이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네. 언제나 그러했지만, 여긴 정말 저주받은 땅이야.”

“휴. 진짜 끔찍한…….”

[왜요? 갑자기 첫사랑의 추억이 생각나셈?]

불쑥!

“엄마, 깜짝이야!”

갑자기 토끼가 옆에서 고개를 들이밀자 구호열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걸 보며 토끼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휴, 우리 호열 아재에겐 가슴 아픈 트라우마가 있지. 환상이지만 사랑했었다……, 읍읍!]

“그만!”

구호열이 다급히 토끼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토끼는 낄낄대며 그 우악스런 손아귀에서 쏙 빠져나와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아무튼 지금부턴 진짜 조심들하셈. 보니까 여긴 그림자 고양이들의 주 서식처인 것 같으니까요.]

“그림자 고양이라고?”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니양, 냐아앙…….

그러고 보니 항상 골치를 썩이는 그림자 고양이들이 주변에 많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토끼가 말했다.

[그림자 고양이는 빛을 삼키고 악몽을 배출해요. 그리고 심연의 바다는 힘이 담긴 빛을 삼키고 존재력을 유지하죠.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어떻게 되겠음?]

“심연의 바다 안에 점점 누적된 악몽들이 점점 실체를 갖고 현실에 존재하게 되지요.”

[정답.]

오창석 촌장의 대답에 토끼가 히죽 웃었다.

실체를 갖춘 악몽들이 모여 있는 땅.

그곳이 바로 심연의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자 제3 던전의 유적지였던 것이다.

오창석 촌장은 굳은 얼굴로 류승우에게 말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정서가 피폐해진다네. 마음들 단단히 먹고. 한번 들어가게 되면 최대한 빨리 공략해야 할 걸세.”

그 말에 류승우가 물었다.

“안으로 들어갑니까? 어디로요?”

“금방 알게 될 걸세. 일단 저 놈들부터 막지.”

좀 더 앞으로 나아가자 실체를 가진 환상들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앞서 죽어간 참가자들.

따라서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다.

휘오오!

죽어가던 시체가 갑자기 윤진수와 같은 바람의 칼날을 뿌리기도 하고. 

콰쾅!

상반신만 남은 환상의 손에서 화염 구체가 폭발하기도 했다.

[히익, 왜 환상들이 스킬을 쓰는 거죠?]

“네가 대신 놀라지 마!”

[헷, 님들이 바빠 보여서 내가 대신 말해드림.]

토끼는 제 버릇 남 못 주고 예전처럼 전투에 임하는 참가자들 주변을 날아다니며 낄낄댔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다운이 준 임무는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사람들 그림자 속으로 숨어드는 그림자 고양이들을 찾아내서 일일이 쫓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토끼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환상이야 싸우면 그만이지만, 빛을 빼앗기게 되면 정말 한 순간에 전멸할 수도 있었다.

심연의 바다에 잡아먹히는 순간 수백 수천마리의 심연어들이 한꺼번에 덤벼들 테니 말이다. 

‘그러다 결국엔 철갑 골렘들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겠지…….’

열심히 그림자 고양이들을 물리치던 토끼의 시선이 문득 정다운이 들어가 있는 문어 골렘으로 향했다.

이러는 사이에도 정다운은 열심히 안에 틀어박혀 철갑 골렘이나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엔 종종 밖으로 나와 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안에 틀어박혀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나전칠기인지 뭔지에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어차피 재료는 사람들이 알아서 안에 가져다주고 식량도 충분했으니…….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밖에서 또 어떤 위험이 닥쳐오든,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다.

류승우를 믿었으니까.

동료들을 믿었으니까.

어차피 싸울 사람은 충분하니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미 4번째 철갑 골렘이 완성되었고, 드디어 5번째 철갑 골렘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악몽의 언덕의 가장 최심지에 도착한 것이다.

*   *   *

“이건……?”

어둠이 걷히고 정체를 드러낸 건축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게 건축물이 맞긴 할까?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높고 거대한 건물.

그 옆에 삐죽삐죽 돋아나 있는 수많은 뿔들. 

그 크기가 몇 십 미터 이상이라, 그 끝이 심연의 바다의 아득한 어둠 속에 가려져 끝까지 보이지도 않았다.

“소라 껍데기인가?”

“심연의 바다라서 유적지도 소라 모양이네.”

“엄청 크다……. 촌장님, 이 안에 들어가야 하나요?”

사람들의 시선이 오창석 촌장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던 것이다.

“촌장님?”

“난…… 자신 없네. 우린 다 죽을 거야!”

그는 막상 이 앞까지 도착하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진저리가 쳐졌다.

“이 소라 안은 온갖 악몽들이 가득 차 있다네! 우린 그 놈들 사이를 뚫고 최상층까지 도달해야 해.”

언제나 문제는 어둠이었다.

이 소라 껍데기야말로 그림자 고양이들의 소굴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안에 들어가면 수천의 그림자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한 줄기의 빛조차 용납하지 않을 거야!”

“뭐가 걱정이에요? 우리에겐 다운이 형이 있는데?”

윤진수가 가리킨 건 번쩍 번쩍 빛나는 문어 골렘이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문제였다.

“입구가 좁아서 골렘들이 들어갈 수 없으려나?”

막상 사이즈를 가늠해보니 이 소라처럼 생긴 유적은 입구가 좁아서 문어 골렘은커녕 다른 골렘들조차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 때 정다운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오, 엄청 큰 소라네요? 촌장님, 입구야 그렇다 치고 안쪽 공간은 어때요?” 

그는 마치 해외여행 나온 관람객처럼 마냥 태평했다.

입구만 좁다면 일단 사람들만 먼저 들어가서 안쪽에서 게이트를 열고 골렘들을 꺼내는 방법은 어떨까 싶었다.

“여기 복도가 골렘들이 돌아다닐 정도는 되나요? 마녀의 집보다만 넓으면 될텐데.”

“……그와 비슷하다네.”

“끄응. 그럼 안 되는데.”

계획이 무산되자 정다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철갑 골렘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이리 와서 여기 건물 벽 좀 부숴 봐.”

“뭣!?”

그 말에 경악하는 오창석 촌장.

“크워어어!”

“오옴!”

주먹에도 철갑을 두른 골렘들의 주먹질은 더 이상 무르지 않았다.

쿠콰아앙!

콰쾅! 콰쾅!

철갑 골렘들이 무서운 기세로 건물을 두들기기 시작하자, 흙먼지가 자욱히 올라오며 거친 후폭풍이 몰아쳤다.

“저, 저런!”

“저러다 유적지 무너지면 공략 못하는 거 아냐!?”

앞뒤 생각하지 않는 정다운의 행동에 참가자들이 겁을 먹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정다운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걱정 마세요. 유적지 부셔지면 부셔지는 대로 클리어할 방법이 있겠죠.”

“……다운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류승우마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철갑 골렘의 압도적인 폭력에도 소라 건물은 부셔지지 않았다.

“흐음? 이거 아무래도 같은 재질인 것 같은데요”

정다운이 결론을 내렸다.

“이거 설마 건물이 아니라, 진짜 소라인가? 철갑 소라 같은 거?”

직접 때려보니 확실해졌다.

이 건물은 콘크리트나 벽돌로 만든 게 아니라 철갑조개와 비슷한 느낌의 강도였던 것이다.

“그럼 녹으려나?”

[이걸 어느 세월에 녹여요? 이번엔 그냥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님은 왜 항상 요행을 바라셈?]

“흐으음…….”

토끼까지 합세했다.

[하여튼 이 인간은 항상 던전을 제대로 돌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 딴 짓만 하려고 든다니까요. 자, 다들 개인정비 하시고 건물 진입합시당.]

토끼의 말에 참가자들은 주섬주섬 무기를 고쳐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으로는 계속 정다운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이제…… 슬슬 들어갈까요?”

“아, 촌장님.”

정다운이 오창석 촌장을 멈춰 세웠다.

“여기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했죠?”

“그, 그렇습니다만……?”

“흐음, 그래요?”

까마득히 높아서 어둠 속에 가려진 소라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정다운이 눈을 빛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