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12화>
토끼는 이상함을 느꼈다.
정다운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골렘술 따위의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만 새로운 골렘을 창조해 내고 있었다.
형태도 마음대로 크기도 제멋대로, 얼마 전엔 하늘로 띄워 보는가 싶더니 이번엔 새로운 재료까지 추가한 것이다.
[흐으음. 대체 왜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역시 오류종자라서 그런가?]
토끼가 지금까지 봐 온 많은 참가자들 중에는 흙 골렘의 핵을 얻은 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골렘을 다시 만들어 내진 못했던 것이다.
토끼의 중얼거림을 들은 알파가 말했다.
<이상할 것 없습니다. 원래부터 골렘술의 시초는 수작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마법사들이 마력의 힘으로 흙 인형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지요.>
뜻밖의 사실에 토끼는 깜짝 놀랐다.
[헐? 그럼 처음엔 다 이 인간처럼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이심?]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마법조차 아니었습니다. 무릇 골렘술이란 본인의 형상을 본뜬 흙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 즉, 신의 영역이었지요.>
[뭐, 뭐래. 무서워……. 골렘 얘기하다가 뜬금 신까지 등장했어…….]
종말의 용 출신이었던 토끼는 지레 겁먹고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한껏 거들먹거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 난 사실 처음부터 그럴 거라 생각했어. 어차피 자동차도 비행기도 다 사람 손으로 만든 건데, 골렘이라고 크게 다를 거 있겠어?”
[뻥 치시네! 님도 지금 알았으면서 왜 이제 와서 아는 척하심?]
“어허. 이거 왜 이래? 난 알고 있었다니까? 아무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
정다운은 얼른 말을 돌렸다.
“전력이 상승했으니 이제부턴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13>
어느덧 참가자들의 머리 위에 찍힌 검은 각인은 13까지 떨어져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이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숫자를 확인하곤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 수명도 이제 겨우 13일밖에 안 남았구나.”
“빨리 유적지를 찾아야 할 텐데. 대체 어디 숨겨져 있는 거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오창석 촌장에게로 향했다.
그는 이미 한 번 이곳에 와 본 사람 아니던가.
하지만 정작 오창석 촌장은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여긴 너무 캄캄해서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네.”
“…….”
안타깝지만 그 누가 이 어두운 심연의 바다에서 어떻게 길을 기억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그가 기억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최대한 고지대로 올라가야 한다네. 내 기억상 유적지는 가장 높은 언덕에 있었으니까.”
“흐음. 가장 높은 곳이라……. 그래도 실마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늪지대의 능선을 확인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대략적인 방향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그럼 일단은 이쪽 방향으로 가 봅시다. 아니다 싶으면 또 그때 가서 방향을 트는 수밖에요.”
그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때 윤진수가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다운이 형, 안 그래도 우린 계속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어요.”
“……아, 그래?”
“네.”
“…….”
[어휴, 괜히 이때다 싶어서 리더십 있는 척하시는 거 봐. 숨겨진 권력욕에 소름이 돋, 아얏? 왜 때리셈? 민망해서 그래요? 아얏. 아얏.]
토끼는 맞으면서도 낄낄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 * *
한번 손발을 맞춰 놓자 그 후부터는 자동이었다.
휘황찬란한 문어 골렘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참가자들이 고지대를 향해 이동하고.
그러다 철갑조개를 발견하면 류승우가 혼자 뚝딱 잡아 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조개껍질을 순식간에 모아서 정다운에게 인계했다.
그럼 그걸 건네받은 정다운은 문어 골렘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두 번째 철갑 골렘 제작에 착수했다.
심연어들?
그딴 놈들은 이제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았다.
철갑 골렘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크워어!”
콰직!
“키햐악!”
푸르스름한 빛깔의 나전칠기 철갑.
그 막강한 방어력은 한낱 심연어의 이빨로 감히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심연어들은 괜히 한입 물어뜯으려다 이빨만 부러지고, 골렘의 손에 우악스럽게 붙잡혀 산 채로 찢겨져 죽곤 했다.
“크워어!”
그야말로 압도적!
철갑을 두른 고릴라 골렘은 심연의 바다를 압도하는 무뢰배가 되어 있었다.
[와, 저 정도면 흑안개 속에 혼자 들어가도 무사하겠는데요?]
“안 되지. 그러다 저 어둠 속에 산처럼 큰 물고기라도 있으면 어쩌게?”
[저렇게 강한데 몸을 너무 사리시는 거 아님? 어차피 쟤 재생도 하잖아요.]
“네가 만들었냐? 저거 내 손으로 만든 내 새끼라고. 밖에 내놨다가 잃어버리면 나 진짜 울지도 몰라.”
[흥. 나나 좀 그렇게 예뻐하시지.]
“응?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내가 널 왜 예뻐해? 뭐가 이쁘다고?”
[……흥.]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하자 토끼는 콧방귀를 뀌며 뒤로 돌아앉았다.
바하무트 때문인지 요즘 들어 자꾸 칭얼대는 토끼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킁킁.”
고소한 향내가 코를 간지럽혔다.
류승우의 뇌전에 철갑조개의 속살이 딱 좋게 익은 것이다.
“냄새 좋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먹고 할까요?”
조개껍질을 줍던 사람들의 입에서 군침이 흘렀다.
그들은 이미 베테랑이었다.
먹는 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철갑조개를 먹기 위해선 소화액이 들어 있는 부위부터 잘 도려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서 정화 스킬이 필수였다.
“흠흠. 정다운 씨, 정화 좀 부탁드립니다.”
조개 속살을 접시에 담아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정다운이 히죽 웃었다.
“네. 그리고 소금도 좀 뿌려야겠죠?”
“흐흐, 소금이야 저희가 다 이미 세팅했죠.”
“그럼 이번엔 간장에 찍어 먹어 볼까요?”
“크으, 역시 배우신 분!”
하늘에서는 심연어가 미쳐 날뛰고, 그놈들을 찢어발기는 골렘들의 사이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정다운이 합류한 후부터 생겨난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어느덧 다들 익숙해졌고 이제는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니야앙-!
“헉. 그림자 고양이다!”
“찾아!”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나 횃불만 끄고 가는 그림자 고양이는 심연의 바다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림자라서 죽일 수도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들이 횃불만 끄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후욱!
“어? 태양석 하나가 꺼졌어!”
정다운은 깜짝 놀랐다.
바닥을 기어가고 있던 문어 골렘의 다리 하나가 갑자기 어두워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고양이를 닮은 작은 그림자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잡았다, 요놈!”
때마침 근처에 있던 윤진수가 그림자 고양이를 콱! 밟았다.
에오옹-!
그림자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며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와, 저 고양이 대박인데? 횃불만 끄는 게 아니라 태양석까지도 꺼 버릴 줄이야.”
정다운은 혀를 내두르며 더 이상 빛을 안 내는 태양석을 새로운 태양석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그때 문어 골렘을 조종하고 있던 바하무트가 그림자 고양이를 발견하고 아는 체를 했다.
[호오, 쉐도우 캣이라니? 주인님, 여기서 숙면을 취하실 때는 가급적 조심하시옵소서.]
“왜? 너 아는 애야?”
정다운의 묻는 말에 바하무트는 밖을 주시한 채로 대답했다.
[어비스의 잔재 중 하나로, 빛을 잡아먹고 악몽을 배출하는 그림자 마물이나이다.]
“악몽?”
[말 그대로 악몽을 꾸게 하나이다. 사람의 그림자에 숨어들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악한 마물인 것입니다.]
“정신이 피폐해져? 그럼 어떻게 되는데?”
그 대답은 토끼가 대신했다.
[어떻게 되긴요? 우울증에 걸리거나 살인마가 되거나, 아무튼 나쁜 놈이 되겠죠. 우와. 심연의 흑안개와 쉐캣의 조합이라니, 여기 진짜 헬 파티네요.]
전직 도우미인 토끼는 이번 던전의 완벽한 구조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여기선 잠도 마음 놓고 제대로 못 자는 거임. 옆에서 졸던 사람이 갑자기 미쳐 날뛸 수도 있고요.]
“여기 진짜 최악이네. 항상 최악이었지만.”
정다운은 인상을 찌푸리며 토끼에게 물었다.
“쟤 죽일 방법은 없어?”
[네. 절대 못 죽이죠. 근데 겁쟁이라서 사람에게 들키면 바로 도망쳐요. 앗, 저기! 또 한 마리 숨어들었음!]
니양!?
때마침 반대쪽에 있는 문어 다리로 숨어들었던 그림자 고양이가 토끼에게 들키곤 깜짝 놀라 후다닥 사라졌다.
그걸 보며 정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네 재능을 찾은 것 같다. 주변 돌면서 고양이나 잡아.”
[쳇. 너무하시네. 토끼한테 고양이를 잡으라고 하다니.]
“이제 와서 갑자기 평범한 토끼인 척하지 말라고.”
투덜대긴 했지만 그림자 고양이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재밌어 보이긴 했다.
그때부터 토끼는 눈을 부릅뜨고 문어 골렘 주변을 빙빙 돌며 순찰을 시작했다.
그 뒤로도 그림자 고양이들은 자주 나타났다.
한 마리씩 나타나기도 했지만, 한 번에 서너 마리가 출현하는 경우엔 토끼도 제법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뒤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정다운이 뭔가를 발견했다.
“그런데 저놈들, 왜 자꾸 다리만 공격하지?”
[주렁주렁 달린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님?]
“그런가?”
빛이 나는 물체가 바닥을 기어 다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어라? 잠깐만? 그런데 저번에 하늘을 날아다닐 땐 고양이들이 나타난 적 없었잖아? 아하, 이놈들 이제 보니 하늘은 못 나는구나?”
그러고 보니 녀석들은 바닥에 닿아 있는 다리들의 그림자 속으로만 숨어들고 있었다.
“바닥과 연결된 그림자를 타고 올라오는 거였어.”
그림자 고양이들의 약점을 깨닫자 정다운은 문어 골렘의 고도를 조금 높였다.
문어 골렘이 둥실 떠오르자, 그림자 고양이들은 더 이상 태양석을 만지지 못했다.
“좋아. 이제 하나 해결됐고.”
정다운은 흡족하게 웃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때마침 두 번째 철갑 골렘도 완성되었다.
“오오옴!”
이번에 철갑 켄타우로스였다.
문어 골렘 입구가 크게 열리며 용맹하게 밖으로 뛰쳐나가는 철갑 켄타우로스의 모습은 마치 갑주를 걸친 말에 올라탄 기사 같았다.
녀석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심연어들을 적극적으로 잡아 찢어 버리기 시작했다.
“오옴! 오오옴!”
“키햐악!”
심연어들에게는 두 배의 지옥이 시작되었고, 참가자들은 두 배로 안전해졌다.
“자, 이제 세 번째를 만들어 보실까? 음?”
또 한 기의 골렘을 문어 안으로 들이던 정다운의 눈에 문득 이채가 떠올랐다.
문어 골렘의 한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얘는 또 언제 올라왔데?”
문어 골렘이 둥실 떠오르기 전에 빛을 따라서 우연히 탑승하게 된 그림자 고양이 한 마리.
도망칠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얘 길들일 수 있나?”
[택도 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