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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10)화 (110/393)

<던전리셋 110화>

*   *   *

뽀뀨는 오늘도 바쁘다.

“뽀뀨, 뽀뀨!”

뽀뀨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삐걱삐걱.

한번 달리기 시작하자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멈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려서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리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멀어지는 저 높은 곳!

“뀨우!”

뽀뀨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더욱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아래 있는 다람쥐 쳇바퀴도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삐걱삐걱!

이 쳇바퀴는 어느 날 뽀뀨의 커튼처럼 늘어진 핑크 뱃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정다운이 다이어트 좀 하라며 만들어 준 물건.

그 후로 뽀뀨는 이상하게 이 동그란 물건만 보면 어느새 그 안에서 지칠 때까지 뜀박질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뀨우!”

더듬?

그리고 그 앞을 지나가는 손가락만 한 개미 한 마리.

이 녀석도 요즘 워낙 잘 먹고 살았더니 무척 살이 올라서 몸이 통통했다.

더듬더듬.

뽀뀨가 항상 바쁘듯 개미도 지하 신전을 뽈뽈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미의 사명은 주인님의 곳간을 채우는 것.

벼 이삭에서 쌀을 한 톨 한 톨 모아 와 정다운이 만들어 준 쌀통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때부턴 자유 시간이었다.

개미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자신의 둥지를 조금씩 건설하고 있었다.

정다운이 녹슬었다며 구석에 버리고 간 쇠꼬챙이를 뜯어서 말이다.

썩둑!

자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한참을 쇠꼬챙이와 씨름하던 끝에 결국 자투리 조금을 뜯어내는 데 성공한 개미.

녀석은 그걸 입에 물고 아장아장 이동해 자신의 둥지로 가져갔다.

둥지라고 해 봐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은 너무나 하찮은 형상.

그 한쪽 벽에 철 조각을 내려놓은 개미는 그 연결 부위에 자신의 침을 살살 묻혀 철을 녹이기 시작했다.

마녀의 실험체 키메라 엔트.

그중에서도 특히 병정개미의 침은 금속을 녹인다.

그리고 집게처럼 생긴 주둥이로 금속을 잘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병정개미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고 여려 보이는 정다운의 개미도 지금 철을 녹여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더듬?

녹은 철이 다시 굳으며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며 개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

결국 몇 번이나 다시 자르고 녹이고 해서 마음에 드는 모양을 만들어 내고 나서야, 녀석은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다.

주인님의 이 멋진 신전처럼 자신의 둥지도 언젠가 완성될 날을 상상하며, 녀석은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것이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이유라도 되는 듯이.

*   *   *

“맙소사…….”

참가자들은 정다운의 행동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철갑조개가…… 녹고 있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정다운이 꺼낸 수통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액체가 철갑조개에 닿자, 그 표면이 점점 발갛게 익으며 흐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토끼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 이게 진짜 녹네요? 대박 신기하다. 이 철갑조개는 심연의 영향으로 방어력이 진짜 엄청날 텐데.]

“이름부터 철갑조개라며? 나한텐 듣자마자 녹여 달라는 느낌이었는데.”

[철갑조개 듣자마자 그런 생각하는 사람은 님밖에 없을 거임.]

마침 정다운에겐 개미굴을 소탕하면서 수집해 둔 병정개미의 머리가 한가득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침샘을 일일이 짜서, 개미의 침을 모아 대나무 수통에 따로 보관한 게 바로 이것.

철 방패를 녹이던 개미의 침이 나무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 구멍 뚫렸다!”

한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더니 철갑조개 표면에 드디어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러자 그 안에서 반가운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어? 빛이다!”

“구멍이다!”

류승우와 구호열.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구멍에 대고 소리쳤다.

“쇳물에 닿으면 뜨거우니까 좀 뒤로 물러나 있어!”

“다운아! 바깥 상황은 지금 어때?”

“아, 여기?”

류승우의 물음에 정다운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봤다.

“크워어!”

“오옴!”

여덟 방위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흙 골렘들.

그 덕분에 참가자들은 문어 골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유일하게 가드가 비어 있는 머리 위만 지키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싸우면서도 자꾸만 정다운의 모습을 힐끔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럭저럭 살 만해.”

정다운의 말에 구멍 안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다행이다. 왠지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네. 어쩌다 보니 이런 데 갇히게 돼서…….”

“됐고. 얼른 나올 생각이나 해.”

“어떻게 잘될 것 같아?”

“응, 그럭저럭? 지금도 잘 녹고 있고. 그런데 이 조개껍질이 생각보다 두꺼워서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정다운은 표면만 살짝 흐물거리는 조개를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 속도면 사람이 빠져 나올 구멍까지 커질 때까지 거의 하루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아, 아예 잘라 버릴까? 이 정도 구멍이라면 가위가 들어갈 수 있겠는데?”

정다운은 급기야 ‘개미 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개미 절단기 +2]

- 내구력 : 87/100(%)

- 옵션 1 : 절삭력 (1레벨)

- 옵션 2 : 단단함 (1레벨)

병정개미의 주둥이를 X자로 크로스해서 만든 가위였는데, 여기에 쓸 만한 옵션도 몇 개 강화해 놔서 제법 쏠쏠하게 써먹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엔 주로 쇠꼬챙이를 필요한 길이로 잘라 낼 때 사용하고 있었다.

푸욱!

정다운은 개미 절단기의 뾰족한 끝을 철갑조개의 구멍 속으로 푹 쑤셔 넣었다.

그리고.

“외뿔 멧돼지의 기운!”

스킬까지 써서 있는 힘껏 가위를 오므렸다.

콰드득!

“어우, 딱딱하네?”

이가 나가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렸다.

하지만 우악스러워도 철갑조개의 껍질 또한 착실하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콰득! 콰드득!

“어우, 빡세다.”

정다운은 온 힘을 다해 철갑조개를 동그랗게 오려 냈다.

어찌나 딱딱한지 가위를 오므릴 때마다 팔뚝 위로 힘줄이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거의 힘으로 뜯어내는 수준.

그러다 결국 시간이 지나 스킬이 풀리자, 팔이 저려서 더 이상 가위질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한 뼘이나 커진 구멍 안으로 구호열의 놀란 표정이 빼꼼 보였다.

“이 가위는 뭐야? 어디서 샀어?”

“사긴 어디서 사요? 핸드 메이드지. 아, 그렇지. 나 이제 힘드니까 호열 형님이 안에서 직접 잘라요.”

“그래, 그 편이 더 빠르겠다.”

구멍을 통해 개미 절단기를 넘겨받은 구호열이 힘을 불끈 쥐었다.

콰드드득!

엄청난 소리와 함께 철갑조개가 종잇장처럼 오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개미 절단기도 박살이 나 버렸다.

콰직!

구호열은 몹시 당황했다.

“어? 미, 미안. 이거 고장 났는데?”

“응, 그럴 줄 알고 지금 하나 더 만들었어요.”

“……!”

정다운은 아무렇지 않게 개미 절단기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워낙 개미 주둥이가 가위처럼 생겨 있어서, 구멍만 잘 뚫고 고정시키면 만드는 건 금방이었다.

“이건 강화는 따로 안 했는데, 호열 형님의 힘이라면 강화 같은 건 안 해도 충분할…….”

콰직!

또 부서졌다.

“미, 미안…….”

“괜찮아요. 그럴 줄 알고 2개 더 만들었어요.”

하나 더 건네주자, 토끼가 가볍게 비아냥댔다.

[어휴.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 절단 정다운 선생이시네. 아무리 동료라도 낭비가 너무 심한 거 아님?]

“개미 주둥이 하나로 쩨쩨하게 굴어서 뭐 하게? 남아도는 게 개미 머리구만.”

결국 절단기 4개가 파손되고 나서야 류승우와 구호열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우, 고맙다. 다운아.”

“난 다운이가 어떻게든 해 줄 줄 믿고 있었어. 진짜야.”

“형님, 안 믿었잖아요.”

“아냐, 믿었다고!”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류승우와 구호열의 굳어 있던 표정이 점점 풀려 갔다.

그들이 무사히 탈출하자 주변을 지키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류승우 님! 진짜 다행입니다. 괜찮으십니까?”

“호열 아저씨! 다치진 않으셨어요?”

“안에서 무슨 독이라도 당하신 건?”

“멀쩡합니다. 본의 아니게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류승우는 싱긋 웃으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철갑조개는 먹이를 입에 가두고 오랜 시간에 걸쳐 안에서 녹여 먹는다.

하지만 잡아먹히자마자 조개의 본체를 죽였더니 그들에게 위험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산소가 부족해질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그 전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그런데 문득 류승우의 시선이 자신들이 갇혀 있던 철갑조개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말이지.”

파지직!

그는 한 손에 뇌전을 집중시키곤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이거…… 전기가 통할까?”

파칙!

푸른 뇌전을 머금은 그의 손바닥이 철갑조개에 닿았다.

그리고 힘을 집중, 방출.

“감전.”

파지지지직!

“……!”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철갑조개가 푸른 전격에 휘감겼다.

그리고 새파란 거미줄을 따라 그 굳건하던 껍질에 쩌저적 금이 가며 산산이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쿠르릉……!

“……!”

실로 엄청난 힘!

그 단단하던 철갑조개가 산산조각 나는 광경에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 엄청나……. 저거 우리 힘으로는 절대 꿈쩍도 하지 않았었는데.”

“여, 역시 류승우 님……!”

“아, 통한다.”

류승우는 개운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 구호열만 옆에 있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혼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토끼가 옆에서 소름이라며 자신의 팔을 더듬었다.

[히익? 뒤늦게 힘자랑 하시네! 괜히 갇혀 있다 풀려났더니 쪽팔려서 기선 제압하시는 거임?]

“어, 어?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아냐!”

[어휴, 소름. 촌스럽네요. 님처럼 강한 사람이 허세까지 부리면 너무 재수 없다고요. 초심 좀 찾으셈.]

“아냐! 진짜 아니라고!”

토끼가 깔깔대자 류승우는 억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유치한 의도일 리가 없지 않나!

그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사람들울 향해 정중히 말했다.

“흠흠. 아무튼. 앞으로 철갑조개가 나타나면 제가 혼자 상대하겠습니다. 땅에서 갑자기 이놈들이 입을 벌리면, 무조건 뒤로 빠지세요. 갇혀도 저 혼자 갇히겠습니다.”

“…….”

누가 저 말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본능적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잡아먹히게 되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절대 허세나 희생정신이 아님을 그는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앞으로 철갑조개는 무조건 류승우가 맡는 걸로 정해졌다.

그런데 이 분위기 속에서, 약간 다른 포인트에 감탄하는 사람 한 명이 있었다.

“오, 전기가 통하나 보네? 이거 진짜 철인가 보다. 무쇠쯤 되나?”

정다운은 완전히 박살 난 철갑조개의 조각을 주워 들고는 천으로 잘 닦아서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골렘들을 돌아봤다.

“크워어어!”

키야아악!

치열한 전투.

이곳의 심연어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문어 골렘 때도 그랬지만, 저 흉악스런 생선 아가리는 흙 골렘을 한 입에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저것.

“오오옴!”

키야악! 캬우웁!

“크워어!”

흙 골렘들은 끊임없이 몸을 물어뜯기고 재생하며 심연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조금 불쌍해 보였다.

“흐으음?”

무슨 생각인지 조개껍질을 유심히 쳐다보던 정다운이 문득 토끼에게 물었다.

“보통 물고기들이 조개를 씹어 먹는 건 못하지, 아마?”

[그럴 듯요? 왜요? 조개로 방패라도 만들게요? 조개가 둥글둥글한 곡면이라 방패나 갑옷 같은 건 만들기 어려울 텐데요?]

“나전칠기라고 알아?”

[……그건 또 뭐임?]

정다운이 해맑게 웃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철갑조개가 많이 필요해질 것 같았다.

류승우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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