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09)화 (109/393)

<던전리셋 109화>

*   *   *

윤진수는 원래 지독한 근시였다.

안경 없이는 거의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불행히도 스테이지-1 초입에서 안경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빛과 색으로 뭉개진 시야.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들리는 건 귓가로 휙휙 지나가는 바람 소리뿐.

그리고 그 안에 은밀하게 섞여 들려오는 괴물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지옥의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 공포는 겨우 열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하지만 윤진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끝까지 발버둥 쳤다.

그 결과 절망의 끝자락에서 기적적으로 새로운 스킬이 탄생했다.

시력 강화

- 눈이 좋아진다.

더욱 멀리,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스킬.

처음에는 겨우 눈 나쁜 사람이 앞을 분간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체 시력도 좋아져서 전투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결국 어둠 속에서조차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왼쪽 위에서 와요! 그리고 오른쪽 아래!”

류승우가 발이 묶인 난감한 상황에서, 윤진수는 남겨진 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었다.

윤진수 자신이 컨트롤 타워가 되어, 어둠 속에서 은밀히 다가오는 괴물들의 동선을 꿰뚫어 보고 그 방향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뒤! 그리고 머리 위!”

키야아악!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심연어들이 창처럼 날아와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다.

말이 창이지, 한 놈 한 놈의 크기가 거의 승용차 한 대급.

횃불에 의지해 주변의 흑안개를 모두 몰아냈지만, 이곳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캄캄한 도로 위를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폭주족들을 피해 가로등 밑에 모여 있는 기분이었다.

“횃불이 더 많이 필요하겠어요!”

“흑안개를 더 뒤로 물려야 덤벼들지 못해!”

심연어들은 흑안개 안에서만 헤엄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돌고래들처럼 흑안개 밖으로 튀어나오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밝은 공간을 더 넓게 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니야앙-

오싹!

어딘가에서 가느다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윤진수는 창백해진 얼굴로 사방을 탐색하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림자 고양이예요! 모두 발밑을 조심하세요!”

“젠장!”

그 말에 사람들은 싸우던 것도 멈추고 자신의 그림자부터 확인했다.

횃불이 만들어 낸 그림자.

그 속에 인위적인 그림자 하나가 은밀히 숨어들어 와 있었다.

니야아앙-!

그때 한 참가자의 그림자 뒤에서 하얀 눈동자가 눈을 떴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검은 고양이.

녀석은 빛을 증오한다.

후욱.

“……!”

그림자 고양이의 앞발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결국 그가 들고 있던 횃불을 꺼 버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지역으로 갑자기 흑안개가 몰려왔고, 그 뒤에 있던 심연어들도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키야아악!

“꺄아악!”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면 바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참가자를 보며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윤진수가 냉철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소용돌이! 바람의 화살!”

휘오오!

더블 스킬.

거친 바람으로 참가자의 몸을 뒤로 확 끌어당기며, 동시에 바람의 화살을 날려 심연어의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캬악!?

가까스로 참가자 옆을 비껴 나간 심연어는 재빨리 미꾸라지처럼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윤진수는 재빨리 참가자 곁으로 다가와 그림자 고양이를 발로 콱 밟았다.

냐앙-!

그림자 고양이는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저 얄미운 놈을 실체가 없어 죽이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휴우. 괜찮아요, 누나?”

윤진수는 식은땀을 닦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참가자를 향해 다가갔다.

“고, 고마워요.”

얼마나 놀랐는지 참가자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윤진수보다 나이는 많지만, 그래 봐야 10대 소녀.

어둠과 괴물이 주는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진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강력한 한 방 스킬을 가진 사람들 두 명이 전부 철갑 조개 안에 갇혀 버린 터라, 그들이 빠져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 횃불이요.”

윤진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는 소지품에서 횃불 하나를 꺼내 들려 주었다.

그 씀씀이에 놀란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진수를 쳐다봤다.

“이, 이거…….”

“얼른 받아요. 난 많으니까.”

어차피 정다운에게 받은 횃불이 한 가득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니꺼 내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거기! 두 마리 또 와요!”

윤진수가 다시 멀어지자,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소녀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심연어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   *   *

쾅쾅!

한편, 철갑조개의 안에 갇힌 류승우와 구호열은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길. 진짜 단단하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무리야.”

결국 구호열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이 급했다.

귓말을 통해 윤진수에게 바깥 상황을 계속 전해 듣고 있던 터라,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모두 전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놈의 껍질이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승우야, 어떻게 안 되겠어?”

“…….”

구호열가 자신을 돌아보자 류승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난감한 상황이었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봤지만 철갑조개를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건 네 뇌전밖에 없다.”

“알아요, 아는데…….”

그래, 힘을 집중시킨다면 가능은 할 것이다.

어떻게든 파괴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좁은 데서 전격을 썼다가는 가까이 있는 구호열까지 휘말릴 거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진짜 신경 쓰지 마.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까. 재생 스킬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구호열은 일부러 과장되게 자신의 알통을 보여 주며 말했다.

하지만 재생 스킬이 부활 스킬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철갑조개가 진짜 철로 이루어졌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금속 재질 아닌가.

전기에 감전되서 쇼크사해 버리면 재생 스킬이 과연 자신을 살려 줄까?

구호열로서도 장담할 수 없었다.

“……형님. 일단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 다운이가 도착할 때까지만 기다려 봐요.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다운이라고 해서 뭔가 뾰족한 수가 있겠어? 이러다 밖에 있는 사람들 다 죽겠다고.”

“골렘들의 힘으로 밖에서 열 수 있지 않을까요?”

“난 안 될 거라고 본다. 골렘이라고 해 봐야 흙이야. 입을 꽉 다문 바지락 열어 봤어? 겨우 흙으로 된 손으로 열기엔 마찰력이 부족해.”

“젠장. 차라리 죽이지 말 걸 그랬나.”

“그러게. 살아 있었으면 스스로 입을 열게 할 방법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이 안에 갇히자마자 철갑조개를 죽여 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잡아먹으려고 다가오던 물컹한 본체를 보는 순간, 습관적으로 힘으로 찢어 죽여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여는 것이 힘들어져 버렸다.

놈이 죽어 버렸으니 스스로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정다운이라면,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거라 믿어요.”

“그래, 휴우. 거의 다 왔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리고 정다운이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

*   *   *

“……!?”

“뭐야, 저건 또!”

“설마 최종 보스인가!?”

심연의 바다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문어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하마터면 정다운에게 총공격을 감행할 뻔했다.

“잠깐! 공격 금지! 저거 우리 편이에요!”

미리 소식을 접해 들은 윤진수의 외침에 사람들의 손이 가까스로 멈췄다.

하지만 정작 윤진수의 얼굴에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뭐야? 또 대체 뭘 만든 거야? 황금마차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 캄캄한 어둠 속을 뚫고 갑자기 황금마차라도 나타난 것 같았다.

번쩍번쩍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문어 골렘!

태양석으로 덕지덕지 도배된 머리통과 사방으로 쫙 펼쳐진 8개의 다리 끝도 호롱불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형광등?

아니, 태양석이 밧줄에 줄줄이 엮여서 무슨 결계처럼 주변 어둠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정다운이 문어 골렘 밖으로 나오며 윤진수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의 이마에 손을 대고 정화 스킬을 펼쳤다.

“정화! 정화! 정화!”

그는 동료들과 함께 출발하지 않고 굳이 따로 움직여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잊지 않았다.

윤진수의 이마에 찍힌 검은 숫자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젠장. 아직도 멀었나?”

[아직 무리인가 본데요.]

정다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레벨 업을 많이 했는데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 같이 처음부터 던전 공략할 걸 그랬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항상 보상이 따라오는 건 아님. 그래도 대신 이번에 정화 레벨은 많이 올렸잖아요?]

[그렇나이다. 다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옵니다.]

정다운의 한탄에 토끼와 바하무트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다운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좀처럼 좋은 소리를 하지 않는 토끼까지도 위로를 할 정도였다.

잠시 눈치를 보던 윤진수가 정다운에게 말했다.

“형, 일단은 여기 좀 정리해 줄 수 있어요? 승우 형이…….”

“알았다. 이젠 나한테 맡겨. 그동안 고생 많았지?”

정다운은 윤진수의 머리를 거칠게 흐트러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틈새 마을에서 본 얼굴도 있었고, 모르는 얼굴도 보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일단 나중에 듣기로 하고…….’

정다운은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다들 나와.”

그러자 게이트 안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그의 골렘들!

“크워어어!”

“오오옴!”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사람들을 지켜. 덤벼드는 생선들 다 잡아.”

“크워어!”

그 말에 골렘들은 번쩍번쩍 빛나는 문어 골렘을 중심으로 여덟 방위로 흩어졌다.

그리고 덤벼드는 심연어들을 거침없이 찢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정다운을 처음 본 참가자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뭐, 뭐야?”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들은 모두 스테이지-1을 지나온 사람들.

그곳에 있던 최종 보스를 마음대로 부리는 인물이 대체 누군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시선 속에서 정다운은 류승우와 구호열이 갇혀 있는 철갑 조개 앞으로 걸어갔다.

툭툭.

“형들, 나 왔어. 지금 꺼내 줄게.”

푸른빛으로 반질거리는 철갑조개를 손으로 두드려봤다.

구호열이 이 안에 갇혀 있는 것만 봐도, 그 단단함이 얼마나 대단할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 진짜 철인가? 아니면 그냥 비슷한 금속? 뭔지는 몰라도 마침 적당한 게 있지.”

그는 소지품을 열었다.

<소지품>

병정개미의 머리(99)…….

개미의 침액(99)…….

금속이라면, 녹이면 그만 아닌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