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08화>
심연어는 몹시 무섭고 흉악하게 생겼다.
하지만 물고기를 확대해서 놓으면 어느 물고기가 무섭지 않을까.
크기가 커서 그렇지, 심연어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멸치였다.
그동안 먹은 사자상 연못 은둥이들이 워낙에 크다 보니, 정다운은 큰 생선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럼 싱싱할 때 회부터 떠 볼까?”
<여기 계속 머무르실 생각이십니까? 조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식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알파는 정다운이 문어 골렘을 흑안개가 없는 곳으로 높게 올라가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정다운은 잠시 배를 만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배고프니까 여기서 먹고 출발하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때를 어길 수는 없지.”
<…….>
정다운의 단호함에 알파는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부유석이 떠오르는 속도도 느린데, 언제 저 높은 곳에 다 올라가서 밥을 먹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게이트를 통해 잠시 대신전에 다녀오는 것도 불안했다.
이런 알 수 없는 곳에 문어 골렘을 덩그러니 주차해 뒀다가 어떤 괴물이 견인이라도 해 가면 어쩌란 말인가.
“휴, 이래서 비싼 차를 타는 사람들이 주차를 아무데나 안 하는 건가.”
던전의 부르주아 정다운은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고충을 느끼며 작게 탄식했다.
“아무튼 시작해 볼까.”
정다운은 여전히 살아서 몸을 퍼덕거리는 심연어를 먼저 기절시키기 위해 망치로 머리를 세게 때렸다.
퍽.
“키야악!”
“어? 미안. 어중간하게 때려서 괜히 아프게만 했네. 외뿔 멧돼지의 기운!”
심연어가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자 정다운은 머쓱하게 더 강하게 때렸다.
퍼억!
찍.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마는 심연어.
정다운은 흡족하게 웃으며 도살자의 칼로 본격적으로 회를 뜨기 시작했다.
비늘부터 슥슥 쳐 내고, 그 안에 숨겨진 살점을 뼈에서 분리해 낸다.
그리고 큼직한 살덩이 하나를 도마 위에 쿵 내려놓고, 먹기 좋은 두께로 삭삭 잘라 나간다.
지방은 덜어 내고 야들야들한 살코기만.
꿀꺽.
“아우, 벌써부터 침이 고이네. 여기에 초고추장만 있으면 딱인데. 와사비도 괜찮고.”
새하얀 살점이 무척이나 싱싱해 보였다.
초고추장도 와사비도 없지만, 간장은 있었다.
지난번 메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위로 생겨난 검은 액체가 바로 간장이었다.
꼴깍.
“보기도 좋은 게 먹기도 좋은 법.”
군침을 삼키며 생선살을 척척 발라 접시에 예쁘게 올려놓는 정다운.
그 능숙한 손길에 바하무트는 크게 감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주인님은 숙련된 고문 기술자셨구나. 설마 살아 있는 채로 피와 살을 뜯으려 하시다니.]
“야, 누가 들으면 살인마인 줄 알겠네. 너 회 안 먹어 봤어?”
[저는 눈사람이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나이다. 하지만 소싯적에는 적들의 피와 살을 씹으며 수라의 길을 걸었나이다.]
“아쉽네. 이 맛있는 걸. 그럼 넌 옆에서 이 생선을 계속 차갑게 유지 좀 시켜 줄래?”
[그 명 받들겠나이다. 미니 블리자드!]
휘오오!
회는 역시 차가워야 제맛.
심연의 바다는 조금 후덥지근한 기후였고, 습도도 높은 편이라 불쾌지수가 상당했다.
이런 곳에서 회를 먹기 위해서는 바하무트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휘오오오!
정다운이 회를 뜨는 동안, 문어 골렘 안은 점점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 찬 은행처럼 속까지 시원해질 정도로 추워졌다.
그리고 옆에 선인장 제습기도 하나 설치(?)해서 습도도 낮췄더니, 쾌적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 안에서 정다운은 신중한 표정으로 아무 양념장도 없이 순수한 상태의 회 한 점을 입에 쏙 넣었다.
그러자 눈이 번쩍 떠졌다.
“오? 그럴싸한데!? 식감도 쫄깃하고. 고생해서 잡은 보람이 있네!”
진짜 맛있는 회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아도 맛있다.
잔뜩 신이 난 그의 입속으로 회가 계속 쏙쏙 들어갔다.
입이 슬슬 지루해질 무렵, 그는 작은 종지들을 꺼냈다.
그리고 그 위에 된장과 간장, 깻잎을 올렸다.
“어디 지방에선 회에 된장 찍어 먹는 곳도 있다던데. 어디?”
잘 삭힌 된장에 회 한 점을 푸욱 찍고, 쌉싸름한 깻잎에 싸서 한입에 쏘옥 넣어 봤다.
그리고 우물우물.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히야, 그럴싸한데!? 간장은 어떨까?”
간장은 의외로 실망스러웠다.
메주에서 직접 추출한 간장은 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시무룩해하던 정다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아. 그렇지! 식초를 만들어 볼까?”
던전에는 이름 모를 과일들이 참 많았다.
그중엔 사람이 먹기 힘든 맛도 있었지만, 익숙한 맛이 느껴지는 과일들도 있었다.
그걸 삭히면 식초가 될 것이다.
<불길한 것들 투성이군요.>
갑자기 알파가 질색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그가 꺼내 든 건 다름 아닌 부패의 흙이었으니까.
닿으면 부패가 진행되는 흙.
“흙 뭉치기! 흙 뭉치기!”
그는 부패의 흙을 얇게 빚어서 여러 모양의 도자기 형태로 만들었다.
부패의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일반 흙도 조금 섞었다.
“흠흠. 냠냠. 난 뭐 먹으면서 작업하는 시간이 제일 좋더라.”
그는 회를 날름날름 먹으면서 ‘부패의 도자기’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 여러 과일들을 종류별로 나눠 담았다.
<그러다 저주받으면 어쩌시려고.>
“어허, 내 정화 레벨이 몇인 줄 알아? 이러려고 내가 레벨 업하는 거야.”
<뭔가…… 초심을 잃은 느낌입니다만.>
정다운은 회를 먹는 내내 잠시도 손을 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왠지 재미있어 보여서, 처음엔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던 바하무트도 어느 순간엔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아! 그 그릇엔 과일청을 담글 거니까, 설탕 좀 채워 줄래?”
[명 받들겠나이다. 이 정도면?]
“오케이, 딱 좋아. 아, 맛있겠다. 빨리 삭아라.”
<…….>
알파는 더 이상 불평할 기력도 없었다.
부패의 도자기는 순식간에 식초와 과일청을 만들어 냈다.
“좋아, 딱이야!”
정다운은 그 식초를 간장에 잘 섞어서 초장을 만들었다.
“흠. 여기에 이제 와사비만 곁들이면 정말 좋을 텐데……. 아, 이건 어떨까?”
무슨 생각인지 그가 수박 선인장의 껍질을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녹색의 겉껍질과 흰색의 속껍질이 섞이며 그리운 연두색의 무언가가 탄생했다.
“여기에 이 식초를 좀 버무리면? 오? 비주얼만큼은 딱 와사비네!”
실제로 먹어 보니 진짜 와사비 비슷한 맛이 났다.
오히려 과일 향이 살짝 느껴져서, 일본에서 먹을 수 있을 법한 고급 와사비 느낌도 났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없는 살림에 초장과 와사비까지 억지로 만들어 낸 정다운은 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회 한 점에 와사비를 섞은 초장을 콕 찍어서 한입에 쏙 물었다.
그러자 눈물이 찌잉-.
“크으……! 좋구나!”
조금 와사비 양이 많았나 보다.
하지만 이 맛에 회를 먹는 게 아니겠는가!
“이제 먹자! 토끼야! ……음? 맞다. 토끼는 이제 없지…….”
습관대로 토끼를 부르던 정다운의 얼굴이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매일 밥 같이 먹던 녀석은 이제 자신의 곁에 없었다.
[아니, 누가 보면 내가 죽은 줄 알겠네!]
“응? 환청인가?”
갑자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버럭 하자 정다운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곳에 토끼가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정다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알파 님이 불러서 왔죠. 바로 근처에 있더만.]
“근처?”
그가 어리둥절하며 되묻자 토끼가 오히려 황당해했다.
[여기 제3 던전인 거 모르고 들어왔어요?]
“뭐? 여기가 던전이었어? 아, 그렇겠구나?”
뒤늦게 납득한 정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위험한 곳이 던전이 아니면 어디겠는가.
당연한 논리였는데, 조금 전까지 하늘에서 추락하던 입장이라 워낙 경황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분들이 있는 곳도 어둠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하기에, 제가 따로 연락해 봤습니다.>
범인은 알파였다.
사정을 이해한 정다운이 물었다.
“그런데 승우 형네는 어쩌고 여기 왔어?”
[어허, 이분? 단톡 못 보셨구만?]
토끼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맛있게 펼쳐져 있는 회 한 접시를 보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와, 어쩐지! 아무리 귓말을 해도 대답이 없더라니! 이제 보니 혼자 맛있는 거 먹느라 바빠서 귓말도 안 읽으셨구만!]
“…….”
찔림.
정다운은 괜히 머쓱해져서 토끼의 입에 회 한 점을 쏘옥 물려 주며 껄껄거렸다.
“자, 자, 그러지 말고 이거나 드시면서 말씀하시게, 토 선생. 그래서 귓말은 뭐였어?”
핸드폰으로 하는 단체톡방과는 다르게 알파를 통해 이루어지는 귓말들은 한번 지나가면 볼 수 없었다.
물론 알파가 기억하고 있다가 말해 주면 되지만, 알파가 하는 말조차 그 순간에 보지 않으면 지나가 버리는 게 문제였다.
토끼는 그가 주는 회를 날름 받아먹으며 여기 온 용건을 말했다.
[얌얌. 이거 맛있네요. 쫄깃하고.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라! 지금 님 동료들이 위험에 빠졌어요. 같이 가실?]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깜짝 놀라는 정다운.
하지만 토끼는 별로 급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니, 너무 흥분하진 마시고요. 그렇게까지 다급한 상황은 아님.]
“그게 무슨 말이야? 위험한데 급하진 않다고?”
[뭐, 가 보시면 아실 거임. 류승우 님이 혹시 님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해서 온 거임.]
“……?”
정다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그곳에 직접 가 봐야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하무트.”
[항해 시작하겠나이다. 미니 블리자드!]
휘오오오!
문어 골렘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만 따라와요. 이 안에선 길을 잃기 쉬우니까. 그런데 이런 건 또 언제 만든 거임?]
길을 안내하던 토끼가 문어 골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직접 걷지 않은 건 잘하신 거임.]
* * *
심연의 흑안개.
스킬을 무효화시키는 어둠 속을 헤매는 일은 참가자들에게 상당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횃불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둠에 삼켜지는 순간,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심연어들이 참가자들을 피라냐처럼 뜯어먹을 테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존재하는 위험들이 심연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연의 바다’의 환경은 깊은 바닷속과 비슷했다.
참가자들이 걷고 있는 질퍽한 늪지대.
그 밑에서 음흉하게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놈들이 또 있었다.
캬아웁!
“젠장! 거기서 피해!”
바닥인 줄 알고 있던 곳에서 거대한 입이 다물어지며 참가자들을 삼켰다.
심연의 철갑조개.
조개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심연의 영향으로 그 껍질의 방어력은 최강.
놈들의 입이 한번 다물어지면, 그 입을 다시 열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 구호열과 류승우가 갇혀 있었다.
“다운이 형은 언제 오지?”
윤진수는 철갑조개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