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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07)화 (107/393)

<던전리셋 107화>

*   *   *

[<정화> 스킬이 중급 6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또 한 번의 레벨 업!

“아싸, 성공이다!”

정다운은 레벨 업을 한 것보다 다른 게 더 기뻤다.

드디어 정화구체가 완벽한 원을 그리며 문어 골렘의 둘레를 한 바퀴 돈 것이다!

“좋아. 마치 인공위성 같군! 빙글빙글 도는 물레방아!”

정다운은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겨우 한 바퀴였지만, 정말 코피 터지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계속 비명초의 차를 마시느라 이젠 눈물도 잘 안 나올 정도.

처음엔 반원이 한계였던 각도를 진짜 야금야금 넓혀 나가다 보니 결국 한 바퀴까지 돌리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보람찬가!

하지만 알파는 옆에서 혀를 찼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만.>

“아니, 의미가 있지. 이상하지 않아? 하필 딱 이 타이밍에 레벨 업을 했다는 게?”

정다운은 사건을 추리한 소년 탐정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무 공교롭잖아. 혹시 내가 스킬을 컨트롤한 행위가 레벨 업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그리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말이 돼. 나름 이것도 업적이라면 업적 아냐?”

이럴 때 토끼가 옆에 딱 있었으면 바로 물어봤을 텐데, 개똥도 약에 쓰이려니 없어서 아쉬웠다.

“그 녀석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정다운은 오랜만에 토끼에게 귓말을 보내기로 했다.

궁금한 것도 있지만, 중급 6레벨이나 됐으면 사람들 이마의 숫자 저주도 정화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슬슬 그쪽으로 넘어가게 게이트라도 열어 달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주인님.]

미니 블리자드로 문어 골렘을 운전하고 있던 바하무트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바깥 상황이 조금 이상하나이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어두워?”

바하무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본 정다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덧 그들 주변을 메우고 있던 새하얀 독구름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정말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

불길할 정도로 새까만 먹구름이 주변 시야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이거 지금…… 밤이라서 어두운 게 아니지?”

[바로 조금 전에 점심 식사를 하셨나이다.]

“그럼 이건 구름이 까만 거야? 새로운 독인가? 정화, 정화!”

번쩍!

정다운은 늘 하던 대로 정화 스킬을 밖으로 날려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화구체는 먹구름을 전혀 녹이지 못했고, 오히려 먹구름에게 그대로 잡아먹혔다.

그 모습에 바하무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럴 수가! 빛을 살라먹는 심연(深淵)! 어비스(Abyss)의 잔재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나이다.]

<지금 어비스라고 했습니까?>

그 말에 알파가 갑자기 엄청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정다운이 물었다.

“어비스가 뭔데?”

<‘어비스’란 마녀들이 연구하던 금단의 경계를 뜻합니다. 매우 불길하고도 불안정하며 혼돈으로 가득 찬 영역입니다.>

“뭐여? 다 같은 말이잖아.”

갑자기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 튀어나오자 정다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언제는 비명초도 불길하다며? 그럼 이 먹구름도 비명 같은 거라도 지르나?”

그에 바하무트가 대답했다.

[비명은 아니지만, 빛을 삼키나이다.]

“빛을 삼켜?”

[정확히는 힘이 담긴 빛. 즉, 마력이나 생명 에너지. 주인님의 경우에 빗대자면, 스킬에 담긴 힘을 잡아먹고 존재력을 유지하는 ‘심연의 흑안개’가 바로 이 먹구름의 정체이나이다.]

“스킬을 잡아먹는다고?”

정다운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 정화구체가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스킬의 무효화’였다.

그 말에 놀란 건 알파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입니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흑안개에 닿으면 게이트조차 힘을 빼앗겨 파괴될 것입니다. 게이트를 열지 못하면 유사시에 대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안 되지.”

정다운은 깜짝 놀라며 바로 문어 골렘의 방향을 틀게 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흑안개가 이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는 것 같은데? 왜지?”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아무래도 실내의 온도가 높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나이다.]

“실내? 아하, 온돌 덕분이구나.”

정다운은 무릎을 탁 쳤다.

결국 이 흑안개도 안개는 안개라는 말이었다.

수증기가 액화된 것이 안개라면, 창문이 열려 있다 해서 따뜻한 집 안까지 안개가 흘러들어 오는 일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다운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이곳은 제3 던전 ‘심연의 바다’.

마력을 흡수해 존재력이 생긴 흑안개를 굳이 ‘바다’라고 지칭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콰직!

“……!?”

기우뚱!

갑자기 문어 골렘의 한쪽 벽이 뭉개지며 뾰족한 괴물의 이빨들이 불쑥 나타났다.

콰직! 콰직!

“으헉?”

캬아아오!

“뭐, 뭐야! 뭔데!?”

덜컹 덜컹!

갑자기 타고 있던 기체가 거칠게 흔들리자 정다운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두운 하늘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들!

흉악스럽게 생긴 괴어(怪魚)들이 문어 골렘을 발견하고 마구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캬아오!

키야아아!

콰득 콰득!

가뜩이나 얇게 만든 문어 골렘의 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기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이것들 뭐야? 왜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다녀!?”

깜짝 놀란 정다운은 다급히 흙벽돌로 구멍 난 곳을 다시 메우면서, 동시에 쇠꼬챙이로 물고기의 입천장을 찔렀다.

캬아악!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구는 물고기를 본 정다운은 그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크기가 거의 죠스급 아닌가!

한입에 사람을 꿀꺽할 것 같은 거대한 사이즈!

그런 놈들 수십 마리가 지금 문어 골렘에 다닥다닥 달라붙고 있었다.

[맙소사! 심연어(深淵魚)입니다!]

바하무트가 그 정체를 알아보고 경악했다.

놈들은 심연의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이었다.

“바하무트! 속도 올려!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미, 미니 블리자드!]

휘오오!

바하무트도 크게 당황하며 마법을 펼쳐 문어 골렘의 속력을 높였다.

하지만 벗어나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벽에 달라붙은 물고기들의 무게 때문에 자꾸만 고도가 내려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추락한다!’

정다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아 있는 부유석 덕분에 추락하는 속도가 느릿느릿하다는 것.

아직 여유는 있었다.

그는 결국 골렘 하나를 버릴 작정으로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 설치!”

<좌표가 불안정합니다.>

“……!”

설치 실패?

‘큰일 났다. 다른 수를 내야겠어.’

최후의 수단이었던 게이트가 열리지 않자 정다운은 다시 머리를 굴렸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언제나 살아날 방법은 있기 마련!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공중 계단! 공중 계단!”

정다운은 망령석과 흙을 잔뜩 꺼내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해냈다.

일단 물고기들의 입안에 공중 계단, 즉 부유석을 하나씩 만들어 던져 준 것!

꿀꺽?

캬야오!?

그러자 갑자기 몸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물고기들!

마치 풍선이라도 삼킨 것처럼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두둥실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정다운은 바닥에 흙을 잔뜩 쏟아, 문어가 추락하는 속도도 높였다.

“일단 밑으로 내려간 후에 게이트를 열면 되겠지! 물고기들부터 떨쳐 내자고.”

[시야를 확보해 주시면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방향을 잡겠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거야!”

바하무트의 말에 정다운은 횃불을 꺼내 뻥 뚫린 문어 골렘의 구멍 앞에 푹푹 꽂아 넣었다.

심연의 흑안개는 마력을 삼킨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불이라면 어떨까?

‘온돌이 따뜻해서 검은 안개가 가까이 올 수 없는 거라면, 횃불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화르륵!

횃불에 불이 붙는 순간, 가까이 있던 흑안개가 한발 뒤로 물러났다.

마치 빛을 두려워하는 듯이!

“역시 그렇구나. 스킬이 아닌 평범한 불빛에는 약한 거였어!”

그런데 의외로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효과가 있었다.

흑안개가 사라진 공간으로는 물고기들이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심연에서 살아가는 심연어(深淵魚)들에게는 어둠이 곧 물이었고, 빛이 있는 곳은 바로 뭍과 같았다.

“점점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겠는데? 밝은 데론 못 온다는 거지? 그럼 횃불보다 더 좋은 게 있지.”

특징을 파악하자 정다운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듯이 어느 정도 공격은 가능했지만, 밝은 곳이 더 넓어진다면 다가오기도 힘들 것 같았다.

한참을 내려왔더니, 마침 문어 골렘의 높이도 거의 바닥 근처.

“여기서 더 떨어질 것도 없으니 이쯤에서 높이를 고정하자. 그리고…….”

정다운은 겁도 없이 밖으로 나가 문어 골렘의 위를 엉금엉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조금 전에 높은 곳에서 추락했는데도 두려워하거나 놀란 기색이 없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와, 완전 넝마가 됐네. 골렘이라 다행이지.”

문어 골렘은 이리저리 뜯기고 구겨져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새롭게 흙을 채워 주자 저절로 형태가 금방 복구되어 갔다.

정다운은 그 위에 추가적으로 태양석들을 꺼내 군데군데 박아 넣었다.

그러자 태양석들이 어둠을 물리치며 따사로운 빛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정다운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러니까 꼭 문어가 아니라 야광해파리 같네.”

어쩌다 보니 알록달록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야광 해파리 골렘이 탄생해 버렸다.

그걸 보며 알파가 감탄했다.

<탁월한 방법입니다. 태양석이 빛을 내는 건 암석 고유의 능력이라 마력과는 무관합니다. 아무리 심연이라도 이 빛을 해치지는 못할 겁니다.<

“뒷북 보게? 그런 건 미리 좀 말해 주라고.”

<저는 심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악하고 불길한 것에 무지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뭐지, 이 뻔뻔함은?”

미안하긴 한데 미안할 짓은 아니었다는 알파의 당당함에 정다운은 혀를 찼다.

하지만 다행이 그에겐 사악한 쪽으로 똑똑한 바하무트가 있었다.

[주인님, 아직 방심하실 때는 아니옵니다. 이곳은 심연의 바닥. 빛이 꺼지는 순간 모든 어둠이 우리를 집어삼킬 것이나이다. 빛의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합니다.]

“그래? 그럼 태양석을 더 꺼내자.”

정다운은 아예 부유석의 양 면에 태양석을 박아 넣고 문어 골렘 주변에 드론처럼 둥둥 띄웠다.

이른바 공중 가로등을 만든 것.

“이거 의외로 좋은데? 이 와중에 운치가 있네?”

뜻밖의 상황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그는 어느새 완전히 제 페이스를 찾은 상태였다.

본인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다.

“아, 이거 설마 범독수리의 용맹 덕분인가?”

정다운은 뒤늦게 깨달았다.

‘범독수리처럼 용맹해진다.’라던 다소 어설펐던 업적 보상이 의외로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높은 상공을 날다가 비행기째로 추락하게 된 셈인데, 그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몸이 바짝 굳고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을 터.

하지만 어떤 범독수리가 높은 곳을 무서워할까?

오히려 높은 상공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혀 먹잇감을 사냥하는 하늘의 무법자 아니던가.

이제 정다운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음? 그런데 쟤는 뭐지?”

그리고 마침 그의 눈이 하늘에서 잡은 사냥감 한 마리를 발견했다.

퍼덕 퍼덕!

“키야악!”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쇠꼬챙이에 입천장이 꿰뚫린 심연어 한 마리가 구석에서 몸을 바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 가만 보니까 좀 멸치 닮았는데? 아니, 노가리인가?”

정다운은 먹이를 포착한 범독수리처럼 입맛을 다셨다.

심연어의 맛은 어떨까?

생선이라고는 사자상 연못의 은둥이들만 먹어온 기나긴 세월…….

걔네가 아무리 맛있어도 이젠 질릴 때도 되었다.

이번 생선은 과연 어떤 맛일지 기대하며, 그는 도살자의 칼을 꺼내 들고 씨익 웃었다.

그 사악한 미소에 바하무트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의 주인님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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