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05)화 (105/393)

<던전리셋 105화>

*   *   *

정다운은 일단 스테이지-1에 들러 흙 골렘의 핵부터 챙겨왔다.

예전엔 공포의 대명사였던 최종유적지가 이젠 그냥 편의점 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대신전 뒤뜰로 바로 돌아와 10번째 골렘 제작에 착수했다.

“흐음, 재밌겠는데?”

정다운의 입꼬리가 아까부터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이번 골렘은 만들면서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흥미진진했다.

거의 무슨 프라모델이라도 만드는 기분!

아니, 마치 던전 최초로 드론을 개발하려는 열정 넘치는 발명가가 된 기분이었다.

“부유석을 이용하면 골렘을 하늘로 띄우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래서는 그냥 한자리에만 머물러 있겠지.”

<우선적으로 추진력과 방향전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흠.”

하늘을 걸어 다닐 수는 없으니, 헬리콥터나 열기구처럼 하늘에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뒤집히지 않게 무게 중심과 균형까지도 신경을 써야 했다.

“흠. 일단 위아래로 고도 조절하는 건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은데.”

정다운은 아까부터 계속 턱을 어루만지며 흠흠거리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왠지 자신이 좀 과학자 같아 보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옆에서 한 소리해 줄 토끼가 없었다.

<참고로 망령석에 생명 에너지를 충전하는 건 가능하지만, 다시 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망령석이나 부유석을 통째로 제물로 바치셔야 합니다.>

“흠?”

알파는 아까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행여나 이 높이에서 추락하기라도 하면, 그날부로 생명의 신전은 주인을 잃게 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망령석으로 컨트롤이 힘들다면, 무게를 수동으로 조절하는 게 나으려나? 흙이라도 꺼냈다 뺐다 하지, 뭐.”

정다운은 번거롭게 되었다며 혀를 찼다.

“흠. 그렇다면…… 이런 형태라면 어떨까?”

잠시 고민하던 정다운이 뭔가를 떠올리고 바닥에 대략적인 스케치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슥슥.

먼저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고.

그 아래 8개의 선을 찍찍찍.

[오오! 이럴 수가!]

때마침 처음 와 본 대신전 안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바하무트가 정다운이 그린 따끈따끈한 도안을 발견하고 박수를 쳤다.

[우리 주인님은 이제 보니 그림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셨군요! 버러지를 그리셨나이까?]

정다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문어야.”

[……!]

바하무트는 크게 당황했다.

아니, 이게 어딜 봐서 문어란 말인가!

기껏해야 거미나 바퀴벌레쯤일 거라 생각했는데!

바하무트는 진심으로 한탄했다.

[허어, 안타까운지고! 비운의 천재가 태어났도다! 그림은 아름다우나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가 여기 나셨다!]

“……차라리 그냥 못 그렸다고 하라고.”

토끼는 항상 직설적으로 까더니, 이놈은 어째 교묘하게 돌려 까는 기분이었다.

약 오르긴 둘 다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이렇게 문어 골렘을 만들 거야. 머릿속을 텅 비우고 그 안에 타고 다니면 여러모로 안전하지 않겠어?”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하면 확실히 독구름이 안쪽까지 침투하지 못하겠군요.>

“맞아. 그리고 바람도 막아 주겠지.”

독구름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 생각이라, 아무리 열심히 정화를 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콧속으로 수면독이 흘러들어 올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높은 하늘이다 보니 갑작스런 강풍에 휘말려 골렘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에 타고 다니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점은 또 있어. 머릿속에다추가로 흙을 채우면 무거워서 고도가 내려갈 거야. 올라가고 싶으면 흙을 없애면 되고.”

[탁월한 아이디어십니다.]

정다운은 도안 한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문어 주둥이가 출입구야. 여길 통해서 정화 스킬을 밖으로 발사하는 거지.”

바하무트가 또 한 번 탄식했다.

[아아, 이게 더듬이가 아니라 주둥이셨군요! 정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얘 그냥 녹여 버릴까?’

사악한 마음이 무럭무럭 커져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녀석은 이번 문어 골렘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여기 꽁무니에 있는 구멍들은 전부 바하무트 네 자리야. 이른바 조종석이지.”

[조종석! 제가 기거할 곳까지 일부러 신경 써 주시다니, 이 바하무트, 크게 감격했나이다.]

“넌 여기서 블리자드만 계속 쓰면 돼.”

[오오! 제가 이 배의 선장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 엔진.”

그는 마법의 바람으로 골렘의 동체를 움직일 생각이었다.

문어 여기저기에 바람구멍을 뚫어 놓으면 상황에 맞춰서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리라.

일단 그렇게 계획이 잘 세워지자, 형태가 워낙 단순해서 작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먼저 다리부터 만들고.’

척척척.

조물조물.

그는 동서남북, 그리고 그 사이사이까지 총 8개의 방위로 쭉쭉 뻗은 문어 다리를 만들었다.

진짜 문어처럼 빨판도 만들고, 혹시나 무거워서 하늘에서 뚝 부러질까 봐 다리에 던전 감자를 잔뜩 심었다.

이러면 감자의 뿌리들이 서로 얼키설키 연결되어 안쪽에서 심봉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머리는 최대한 안락하게.’

다리들이 만나는 중심에 이글루를 만들 듯이 차곡차곡 벽을 쌓아 동그란 머리통을 만들어 나갔다.

‘아래는 두껍고 무겁게, 위로 갈수록 벽을 얇게 만들자.’

뒤집히면 안 되니까 무게 중심이 아래로 향하는 게 중요했다.

여기에 추가로 8개의 다리들까지 있으니 이리저리 움직여서 균형을 잡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벌써 거의 다 만들었다.

여기에 추가로 이글루 입구처럼 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만들고 군데군데 바하무트 엔진을 위한 바람구멍도 숭숭 뚫었다.

“좋았어, 얼추 완성!”

<어째 처음 생각보다 너무 커진 기분입니다만.>

“흠, 그런가?”

눈대중으로 무작정 쌓다 보니 10평 남짓한 원형의 돔이 만들어져 있었다.

머리통만 거의 코끼리 골렘 크기고, 여기에 쭉쭉 뻗은 다리들까지 합쳐지자 날아다니기엔 너무 부담스런 크기가 된 것.

아마 보통 골렘이라면 자신의 몸무게를 못 견디고 느릿느릿 기어가다가 머리부터 엎어질 것 같은 모양새였다.

“뭐, 부유석으로 가볍게 하면 문제없겠지.”

생각해 보니 이제는 얼마든지 골렘을 크게 만들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물론 골렘의 진정한 힘은 압도적인 무게에서 오는 파괴력이라, 무게는 가볍고 덩치만 커지는 게 딱히 전투에 도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번 잘 생각해 보면 부유석을 이용해 재미난 걸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망령석을 심어 보자.”

문어 골렘이 통째로 부유석이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파아앗!

생명 에너지를 충전한 망령석을 문어의 최중심부에 박아 넣었다.

들썩!

“오, 되나!?”

그러다 말았다.

[안 되는군요.]

“쳇.”

족히 10톤은 훌쩍 넘을 것 같은 문어의 무게 때문인지 망령석 하나로는 버거운 것 같았다.

“에너지 좀 더 올려 봐.”

<지금이 최대치입니다. 이 이상의 에너지를 망령석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망령석을 더 추가해야겠네.”

정다운은 문어 골렘이 떠오를 때까지 문어 곳곳에 망령석을 계속 심기 시작했다.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더니, 어느새 그 숫자가 30개가 넘어갔을 때쯤.

이젠 다리들 하나하나에도 망령석이 들어가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들썩!

드디어 문어가 순조롭게 떠올랐다.

“오오, 떴다!”

정다운은 쾌재를 불렀다.

대성공!

“그럼 이제 여기다 핵만 박으면 끝!”

그가 흙 골렘의 핵을 문어의 안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살아나라!”

번쩍!

“부오오!”

그 순간 문어 골렘이 입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생명력을 얻었다.

풍선처럼 공중에 떠올라 진짜 문어처럼 다리를 꼬물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곰살맞은지!

[가히 던전 보스로 써도 될 기세입니다. 흉포한 괴수를 창조하신 걸 감축드립니다.]

“…….”

정다운의 눈에만 귀여워 보이고, 누가 봐도 최종 보스였다.

생긴 것만 보면 범독수리와 맞붙어도 이길 것 같았다.

“아무튼 타 보자고!”

정다운은 문어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온돌부터 설치했다.

[온돌을 설치합니다.]

하늘 위는 기온이 몹시 낮아서 난방이 가장 중요했다.

“휴, 좋아. 그럼 출발해 볼까? 바하무트?”

정다운이 거의 무적함대의 선장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바하무트를 쳐다봤다.

그러자 바하무트는 눈뭉치 손으로 경례를 붙이며 바람구멍으로 향했다.

[공중 요새 바하무트 1호, 출격하겠나이다. 미니 블리자드!]

휘오오오!

문어 골렘의 뒤꽁무니에서 마법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동체가 덜덜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새하얀 구름의 바다로.

“크으, 좋구나! 진짜 바다의 선장이 된 기분!”

성공적인 출항이었다.

반면에 알파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혹시 모르니 망령석을 더 추가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알파도 이번만큼은 생명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여유분으로 망령석 몇 개를 더 추가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어디 독구름이 있는 데까지 내려가 보실까?”

쿠웅.

소지품에서 흙벽돌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유유히 하얀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던 문어 골렘의 고도가 천천히 구름 아래로 잠기기 시작했다.

온 사방이 몽실몽실한 새하얀 구름에 감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안전이 보장되었다.

주변에 범독수리 같은 비행 괴수가 돌아다녀도 이쪽의 위치를 들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예 독구름 안쪽까지 진입하게 되면 더욱 안전해질 것이었다.

“정화, 정화, 정화!”

독구름과 가까워질수록 정다운의 몸 주변을 떠도는 정화구체들도 점점 쌓여 갔다.

그리고 갑자기 숨을 들이켰더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수면 독이다. 발사!”

번쩍!

문어 골렘의 입에서 하얀 구체들이 따발총처럼 마구 연사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야를 꽉 막고 있던 구름들이 사각사각 녹아내리며 땅굴이 아닌 구름굴이 만들어졌다.

하늘까지 날게 되었는데도 변함없이 굴을 파야 하는 인생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튼 이제부터가 진정한 정화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정다운은 유유히 날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독구름을 정화해 나갔다.

사냥보다 효율이 좋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온 사방이 끝도 없이 수면 독이 펼쳐져 있으니, 물량에서는 결코 꿀리지 않았다.

위험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데 불편해.”

정다운이 갑자기 불만을 터뜨렸다.

정처 없이 날다 보니 진짜 배 타고 바다에 나온 것처럼 출렁임이 심했던 것이다.

이러다 뱃멀미라도 할 판이었다.

“알파, 여기서 잠깐 게이트 열 수 있어?”

<좌표만 고정된다면 가능합니다.>

“그럼 잠시 여기서 멈춰 봐, 바하무트.”

[분부대로.]

이윽고 문어 골렘이 독구름 한가운데에 멈춰 섰고, 게이트가 열렸다.

“잠시 다녀올게.”

그는 곧장 강화 제단 앞으로 이동해서 둘둘 말아 놓은 외뿔멧돼지의 털가죽을 잔뜩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저번에 개미굴에서 주운 잡템들 중에 쓸 만한 옵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강화 시스템 발동!”

알파는 아연실색했다.

이런 평범한 털가죽들에게 아까운 생명 에너지를 낭비하다니.

오늘 이러다 하루아침에 거지될 판이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에 쓰시려고…….>

[외뿔멧돼지의 털가죽 +2]

- 내구도 : 92/100 (%)

- 옵션 : 충격 흡수 (2레벨)

졸지에 2강 장비로 변해 버린 털가죽들을 보며 정다운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탈것은 승차감이 좋아야지.”

그는 문어 골렘의 머릿속을 온통 2강 털가죽으로 도배했다.

그러자 동체에서 느껴지는 흔들림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마치 고급 외제 세단을 탄 기분!

흔들림 없는 편안함!

“크으, 좋은데? 가죽이 좀 남는데 침대도 하나 만들까?”

내친김에 구석에 흙침대를 하나 만들고 털가죽 몇 겹을 쌓아 매트리스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한번 누워 봤더니, 허리에 닿는 쿠션감이 중력에서 오는 모든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헐, 허리가 녹아내릴 것 같아! 침대는 역시 과학이구나. 드르렁.”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

꿀맛 같은 숙면이었다.

[음? 수면 독이 흘러들어 왔었구나. 주무실 땐 입구를 막아 놔야겠군.]

뒤늦게 바하무트가 얼음벽을 만들어 외부의 공기를 차단했다.

그리고 문어 골렘을 절벽 옆으로 이동시켜 벽에 매달리게 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길.]

정작 바하무트는 온돌을 피해서 얼음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많이 불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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