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85)화 (85/393)

<던전리셋 85화>

기본적으로 땅다람쥐는 머리가 나쁘다.

아무리 뼛가루로 꼬드긴다 해도 애초에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 지능이 부족했다.

하지만 정다운에겐 뽀뀨가 있었다.

최초 업적 보상으로 사람 말귀를 알아듣게 진화된 뽀뀨라면, 그의 의사를 땅다람쥐들에게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머리가 나쁘다는 건 뽀뀨도 마찬가지였다.

“지하 유적지 알아?”

“뀨?”

갸웃?

“지하 유적지? 신전?”

“뀨?”

어리둥절.

말을 이해 못 하고 계속 눈만 말똥말똥 뜨는 뽀뀨.

“……얘한테 지하 유적지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소문만 나겠어요? 이러다 업적도 달성하실 듯.]

정다운은 고심 끝에 표현을 바꿔 봤다.

“음, 땅속에 괴물들이 사는 곳?”

“뽀뀨!”

“옳지!”

이건 먹혔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쫑쫑거리며 좋아하는 뽀뀨는 알아들었다고 신이 난 눈치였다.

“그래! 괴물이야! 친구들한테 그런 데를 찾아오면 맛있는 걸 더 먹을 수 있다고 알려 줘!”

그 말에 뽀뀨와 하얀 땅다람쥐들이 열심히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뽀뀨 뽀뀨 뽀뀨 뽀뀨 뽀뀨……!

[그만해, 이것들아. 괜히 욕먹는 기분이라고.]

토끼가 핀잔을 주었지만, 아무튼 어찌어찌 뜻은 잘 전달된 것 같았다.

뼛조각들로 빵빵해진 볼을 한껏 부풀리며 땅다람쥐들은 의기양양하게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내가 어떻게 쫓아가라고?”

정다운은 당황했다.

그러곤 얼른 골렘들을 불러 녀석들이 사라진 눈밭 위를 포크레인처럼 퍽퍽 퍼냈다.

눈 덮인 설원이라고 해 봤자 어차피 한 꺼풀 벗겨 내면 흙이었다.

갈색의 흙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서부턴 정다운이 본격적으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뽀?”

“……뀨!”

그리고 그는 모든 땅다람쥐들의 영웅이 되었다.

*   *   *

제2 던전 - 지하 유적지.

<마녀의 집>

류승우 일행이 던전 게이트를 넘는 순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둡고 습한 복도였다.

“미궁이라…….”

단단한 석벽을 따라 복잡하게 이어진 미로.

천장에는 태양석이 박혀 있었는데, 크기도 작고 조명들 간격도 멀어서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태양석을 펑펑 써 재껴서 환한 대낮같던 정다운의 지하 신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마녀들이 가난한 게 아니라면, 이 어둠과 지형을 무기 삼아 침입자를 살해하기 안성맞춤인 환경이었다.

“까다로운 곳이네. 공략하기가 쉽지 않겠어.”

류승우는 다른 동료들이 걱정됐다.

이런 곳이야말로 진짜 팀워크가 필요한 장소 아닌가.

윤진수는 바람의 기척을 이용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을 미연에 찾아낼 수 있었고.

치명상만 안 입으면 어떻게든 살아나는 구호열이 맨 앞에서 탱커 역할을 하면 딱 좋을 것이었다.

‘음? 생각해 보니 내가 제일 문제인데?’

류승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동료들과 합류하는 게 급선무.

자신은 닥치고 그냥 다 죽이면서 나가기로 했다.

파치직!

<류승우 : 진수야! 지나가다 뇌전에 바싹 구워진 시체들이 보이면 나인 줄 알아!>

<윤진수 : 그거 왠지 소용없을 것 같은데요?>

<류승우 : 뭐?>

“이런.”

류승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죽인 괴물들이 전부 땅 속으로 썩어서 사라지고 있었다.

부패의 저주.

이제 보니 여기도 바닥이 보라색이었다.

<윤진수 : 지나온 흔적들이 사라지니까 길 찾기가 더 힘들어요.>

<류승우 : ……해골 병사들도 나올 수 있으니까 조심해라.>

<윤진수 : 네. 나 진짜 엄청 천천히 이동하고 있어요.>

류승우는 시체가 아니라 벽에 영역 표시를 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   *   *

“부패의 저주가 있다는데?”

단톡방을 통해 상황을 전달받은 정다운.

[애초에 부패의 저주는 마녀들의 실험으로 탄생된 저주받은 마법이니까요.]

<설마하니 이 땅 아래에 마녀들의 은신처가 숨겨져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알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랜 옛날 제국은 마녀들을 찾기 위해 추살령을 내렸으나,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이렇게 가까이 숨어 살았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입구를 만들어 두지 않고, 게이트로 공간 이동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다니. 찾을 수 없었던 게 당연합니다.>

“그럼 여기 보스는 혹시 마녀일까? 말도 하나?”

[글쎄요. 가 보면 알겠죠?]

정다운의 호기심에 알파가 바로 제동을 걸었다.

<저는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리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곳에 있는 유적지가 정말로 제가 아는 마녀들의 은신처가 확실하다면, 그곳은 아마 생지옥일 겁니다.>

“생지옥?”

더욱 호기심이 짙어졌지만, 알파는 진지했다.

<마녀들이 괜히 박해를 받던 게 아닙니다. 그들의 연구는 생명과 죽음을 농락하는 금단의 연구였으니까요.>

“나도 지금 농락당하는 기분인 건 마찬가지야.”

[그건 나도 동감이요.]

<…….>

그들은 벌써 몇 번째 허탕을 치고 있었다.

“뀨우!”

열심히 땅굴을 파들어 갔더니만, 자신의 보금자리로 안내해 준 땅다람쥐가 의기양양하게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동면하다 죽은 개구리 괴물의 시체가 있었다.

“……이것도 괴물은 괴물이긴 하지.”

차라리 개구리는 양반이었다.

아까는 웅크리고 자다 얼어 죽은 뱀도 만났고, 거대한 매미 유충도 발견했다.

땅 위가 추워서 그런지 괴물들이 죄다 땅속에 숨어 있었다.

[애초에 요구 사항이 괴물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그래요.]

“나라고 땅속에 이렇게 괴물들이 많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냐고.”

게다가 넒은 동굴 속에 괴물이 사는 곳이라고 말해 봐야, 땅다람쥐들이 보기엔 어디든 다 넓어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뀨뀨!”

“옛다. 수고했다.”

얼른 칭찬해 달라는 하얀 땅다람쥐에게 뼛조각을 대충 던져 주곤, 정다운은 다른 땅다람쥐들을 찾아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길을 잃을 걱정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땅다람쥐들은 저 풍성한 꼬리로 흙바닥을 팡팡 치면서, 그 미세한 땅의 진동으로 서로의 위치를 감지하곤 했다.

그런 방식으로 뽀뀨는 지금 사방에 흩어져서 꼬리를 팡팡 치고 있는 땅다람쥐 친구들이 있는 방향을 정다운에게 안내해 주고 있었다.

푹팍! 푹팍!

“아 놔, 이번엔 쉽게 갈 줄 알았더니, 땅을 겁나 파네.”

[그러게요. 구불구불한 게 개미굴이 따로 없네요.]

그리고 그 말이 씨가 되었다.

갑자기 벽을 파는 순간, 검은 얼굴과 눈이 딱 마주쳐 버린 것이다.

카각 카각!

“……헐?”

[어, 진짜 괴물 개미네요?]

“어우씨! 외뿔멧돼지의 기운!”

하필이면 근처를 지나가던 개미굴을 건드려 버린 것이다!

크기는 거의 사람만 하고 몸 전체가 검은 색의 딱딱한 갑옷으로 이루어진 땅속의 무법자들이 정다운을 발견하고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카각, 카각!

[우와! 이쯤 되면 나 거의 예언자!]

“농담할 때가 아니야! 너 이따나 좀 보자!”

정다운은 손에 잡히는 대로 방패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운이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땅속에 이런 괴물들이 살고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정다운이었다.

하지만 있다면 이렇게 구불구불 땅굴을 파고 다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마주친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카각 카각!

알파는 괴물 개미를 알아봤다.

<이럴 수가. 이건 평범한 개미가 아닙니다.>

“그건 나도 알아! 몹시 큰 개미지!”

<그게 아니라 이것들은 마녀들의 실험체 중 하나입니다! 평범한 개미들을 키메라로 개조한 것입니다!>

“진짜 더 큰 문제가 뭔지 알려 줄까? 그런 무서운 괴물들과 내가 직접 상대해야 한다는 거야!”

땅굴이 워낙 좁아서 골렘들을 꺼내는 게 불가능했다.

토끼가 얼른 뒤로 빠지며 조언했다.

[먼저 구멍을 막아요!]

“나도 알아! 근데 넌 왜 안 싸우냐고!”

[데헷, 죄송!]

토끼는 쓸데없이 당당하고 뻔뻔했다.

정다운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때려줄 여유가 없었다.

‘계속 몰려드니까 흐름부터 끊자!’

먼저 구멍에서 계속 기어 나오는 개미들을 향해 흙뭉치를 던졌다.

퍽퍽! 퍽!

카가각!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과녁까지 봐 가면서 던지는데 빗나갈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손으로 던질 수 있는 무게의 흙뭉치로는 놈들의 방어력을 뚫고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이놈들 진짜 겁나 몰려드네! 흐름을 끊어야 구멍을 막는데!’

코앞까지 다가와 집게 같은 이빨을 딱딱거리는 징그러운 놈들 때문에 구멍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정다운은 놈들을 상대하며 천천히 뒷걸음을 치면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럼 일단 하나씩 해결해 볼까?’

천장이 너무 낮아 흙벽돌로 깔아뭉개는 건 힘들었다.

하나하나 싸우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다간 순식간에 이 땅속이 개미들로 꽉 차 버릴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들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진 않고, 아직은 숫자가 몇 마리 안 된다는 것.

‘좋아, 얼마든지 싸워 주마. 대신 싸울 자리는 내가 꾸며 준다.’

정다운은 바로 소지품을 열었다.

“함정 설치! 함정 설치!”

[함정을 설치합니다.]

[함정을 설치합니다.]

부랴부랴 던전 콩들을 꺼내 바닥에 심었다.

함정 설치 스킬이 2레벨이 되면서 설치 속도가 훨씬 빨라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던전 콩들이 서로 뒤통수를 맞추지 않게 지그재그로 심어 좁은 땅굴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

그리고 묘목들이 자리를 다 잡을 때까지 쇠꼬챙이를 푹푹 찔러 개미들의 접근을 견제했다.

‘그러고 보니 또 쇠꼬챙이를 꺼냈네?’

이제 무기도 많은데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더니 또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좁은 땅굴에서 싸우기엔 검이나 도끼를 휘두르는 것보단 긴 창이 더 적합했다.

‘아깝지도 않고!’

슈욱!

과녁을 조준해 구멍에서 막 등장한 뉴페이스에게 쇠꼬챙이를 던졌다.

퍽!

머리 갑옷도 워낙 단단하고 가로로 맞아서 별 데미지는 없었지만, 애초에 그의 노림수는 그게 아니었다.

카각, 카각?

구멍 한가운데에 쇠창살 하나가 생긴 것이다.

“좋았어!”

비록 임시였지만 구멍이 반으로 갈라지자, 밖으로 나오려던 놈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그 틈에 던전 콩들이 완벽히 자리를 잡고, 대포도 장전되었다.

정다운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빼며 역전의 용사처럼 소리쳤다.

“발사!”

투웅 퉁!

두두두두……!

“……!”

카가각!?

녹색의 대포알들이 괴물 개미들을 향해 자비없는 폭격을 감행했다.

괴물 개미들은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좁은 길에서 피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휴, 한시름 놨네.”

[오, 순발력 좋으시네요. 이번엔 인정. 좀 전투직 같았음. 아얏. 왜 때려요? 칭찬해 줬더니!]

“…….”

저렇게 비아냥대지 않아도 정다운도 잘 알고 있었다.

전투직은 개뿔, 누가 봐도 그냥 콩 심는 노인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이번 참에 스킬 수련 좀 하자.”

[……?]

“지하 유적지를 가는 길에 여기에만 개미굴이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사방에서 몰려오면 던전 콩으로도 한계가 있어.”

정다운은 개미들과 싸우면서 외뿔 멧돼지의 기운을 레벨 업시키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평소에 아령 들고 헬스를 해 봐도 전투만큼 효율 좋은 레벨 업은 없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정다운은 땅굴을 조금 개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멀뚱히 구경하던 토끼는 문득 굴러다니는 콩을 하나 주워 입으로 가져갔다.

[냠냠. 고소하군. 응?]

그러다 문득 발밑을 보니, 새하얀 땅다람쥐 한 마리가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쀼!”

엄청 당당한 녀석이었다.

이놈은 마침 여기가 보금자리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가 보자……. 

[응? 보물 상자네?]

땅속엔 동면 중인 괴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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