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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83)화 (83/393)

<던전리셋 83화>

“모두 전투 준비!”

후다닥!

류승우의 한마디에 구호열과 윤진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꿀 같은 휴식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다시 사방을 가득 메운 저 끔찍한 괴물들과 드잡이질을 해야 했다.

우꺄!

우끼끼!

새하얀 눈밭 위로 점점 괴물들이 와글와글 모여드는 모습에 류승우 일행은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젠장. 또 시작인가.”

“같이 들어온 사람들과 흩어지게 된 것도 다 저놈들 때문이에요.”

“저놈들과 싸우다가 정신 차려 보니까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없더라고.”

틈새 마을에서 떠날 때만 해도 류승우 일행은 마을 사람 10명과 함께 던전을 탐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에 점점 깊숙이 들어갈수록 여름 같았던 날씨는 가을이 되고, 가을은 곧 순백의 겨울로 변해 버렸다.

그러다 도착하게 된 곳이 바로 여기, 그렘린 설원이었다.

우끼!

우꺄아!

토끼가 놈들의 정체를 알아봤다.

[아이스 그렘린들이네요. 눈싸움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들이죠.]

“장난꾸러기? 그런 귀여운 표현이 어울리는 놈들이 아니야.”

토끼의 말에 류승우 일행은 진저리를 치며 밖으로 나가 전투 태세를 갖췄다.

마치 생사의 적을 앞둔 듯한 모습.

하지만 그들의 반응에 정다운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이스 그렘린은 겉보기에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꼭 곰 인형처럼 생겼네. 다크모보다도 작은데?”

작기만 한 게 아니라 올망졸망 모여 있으니 귀여울 정도였다.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털 위로 빨간 눈이 두 개 콕콕 찍혀 있고, 크고 삐죽한 귀는 강아지처럼 쫑긋거렸다.

토실토실한 엉덩이 뒤로 달린 동그란 꼬리는 솜사탕처럼 몽실거렸다.

게다가 저 조막만 한 손에 저마다 들려 있는 건, 동그란 눈덩이 아닌가?

“설마 저걸로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아이스 그렘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끼!

우꺄꺄!

놈들은 코끼리 골렘을 향해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려오며 들고 있던 눈덩이를 열심히 던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눈싸움이 시작되자 정다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헐, 설마 했는데 진짜 눈싸움이라고?”

[눈싸움은 눈싸움이죠. 조금 살벌해서 문제지.]

휙! 휘휙!

녀석들은 짧은 팔로 열심히 눈덩이를 던졌다.

아무리 던져 봐야 이쪽까지 닿지도 않아서, 전부 허무하게 하얀 눈밭 위에 떨어지고 마는 눈덩이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일어난 일들이 정말 놀라웠다.

쑤욱!

파바밧!

“……!”

눈덩이가 떨어진 자리에서 눈으로 이뤄진 기다랗고 뾰족한 가시들이 불쑥불쑥 위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 아래 사람이라도 서 있었으면 몸을 작살처럼 꿰뚫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눈을 조종하는 마법이야. 놈들은 눈덩이를 던져서 마법을 일으켜.”

“저놈들이 힘을 합치니까 눈사태도 일어나더라고.”

<그렘린은 마녀들의 실험으로 탄생된 인조 생명체입니다. 몸에 강제로 마법이 주입되어 본능적으로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요.>

알파도 아는 놈들이었다.

“와. 역시 스테이지-4는 뭐가 다르구나. 겨우 다크모 따위랑 비교한 게 미안해지네.”

다크모는 그냥 원시인 난쟁이에 불과했다.

정다운이 감탄하는 가운데, 평화로웠던 눈밭은 순식간에 뾰족뾰족한 가시밭으로 변해 버렸다.

우꺄!

푸슉! 피육!

겨우 눈으로 만들어진 가시였지만, 너무 예리해서 스쳐도 피가 나왔다.

제대로 찔리면 절명할 것 같은 날카로운 가시들이 발밑에서 튀어나오니까 너무 살벌했다.

“이번엔 다 쓸어버려 주마! 으랴앗!”

구호열의 거대한 도끼가 차가운 공기를 부우웅 가르며 놈들 수십 마리를 쓸어버렸다.

“돌개바람!”

휘오오!

윤진수는 강풍을 날려 눈덩이들이 근처로 떨어지지 않게 견제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왜 항상 이렇게 많이 덤벼드는 거야?”

정다운은 투덜대면서 코끼리 골렘 위로 피신했다.

그러곤 소지품에서 던전 콩 묘목을 꺼내 코끼리 등에 척척 심었다.

“함정 설치!”

[함정을 설치합니다.]

대포 설치 완료!

“가까이 못 오게 해!”

두두두두……!

사방으로 콩알들이 날아가며 가까이 오는 아이스 그렘린들의 몸을 퍽퍽 날려 버렸다.

역시 방어전엔 던전 콩만 한 게 없었다.

[쯧쯧. 얘는 점점 괴상하게 변하네……. 다리는 여섯 개에 몸에 창문도 숭숭 뚫려 있고, 이젠 대포까지?]

토끼가 코끼리 골렘을 보며 혀를 찼다.

이쯤 되면 계속 코끼리라고 부르기에도 좀 미안할 지경이었다.

아무렴 어떠랴, 이동이 가능한 코끼리 등에 대포까지 달리니까 더욱 능동적인 방어가 가능했다.

심지어 디테일한 저격도 가능했다.

“저기!”

투웅-!

아예 직접 컨트롤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눈덩이를 공중에서 요격시켜 버린 정다운.

요즘 점점 과녁을 활용하는 실력이 늘고 있었다.

“좋았어! 계속 지원 사격 가자!”

“부오오!”

두두두두……!

“골렘들 전부 나와!”

정다운은 게이트를 열어 골렘들을 모두 불러냈다.

“다 밟아 버려!”

“크워어어!”

“오오옴!”

대 전쟁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골렘들과 수백 마리의 아이스 그렘린들의 전투는 흡사 거인과 개미들이 싸우는 느낌이었다.

무력의 차이는 엄청나지만, 개미들이 너무 작아서 일일이 밟기가 힘든 게 문제였다.

게다가 여차하면 아이스 그렘린들은 눈 밑으로 파 들어가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꺄꺄!”

골렘들이 워낙 덩치가 커서 상대가 안 되자, 아이스 그렘린들은 힘을 합쳐 더욱 거대한 가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푸욱!

“크워?”

2미터가 넘는 가시들이 골렘들의 몸을 발밑에서부터 꿰뚫고 올라왔다.

무릎이 꺾여 자리에 넘어지는 골렘도 있었다.

이쯤 되니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저러다 운 나쁘게 가시에 핵이라도 맞으면 큰일이겠는데?”

어떡할까?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지극히 단순한 방법이었다.

‘눈이니까 녹이면 되지! 온돌을 작동시키자!’

예전에 추운 소금 사막을 찾아 헤매느라, 골렘들 몸에는 온돌이 만들어져 있었다.

정다운은 바로 골렘들의 화로에 불을 붙였다.

“온돌 온! 가장 뜨겁게!”

활활!

온도를 높이기 위해 특별히 장작 안에 태양석도 한 덩이씩 던져 넣었다.

화르륵!

그러자 온돌의 화력이 엄청나게 뜨거워졌고, 추위에 굳어 있던 골렘들의 몸도 엄청나게 뜨거워졌다.

“크워어!”

“자, 이러면 어쩔 것이냐! 파이어 골렘 출동!”

[아, 그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파이어 골렘은 불로 이루어진 골렘이라고요. 얘넨 그냥 뜨끈 골렘임!]

이름이야 어찌 됐든, 효과는 괜찮았다.

골렘들의 열기에 서 있는 자리에 쌓여 있던 눈이 전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끽!?

발밑에 눈이 사라지자, 그렘린들은 골렘들을 공격하기가 어려워져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류승우가 재빨리 모두에게 지시했다.

“모두 골렘 위로 올라가!”

“오케이!”

“와, 여기만 따뜻한 거 봐.”

졸지에 따뜻한 온돌 위에서 신세 좋게 싸우게 된 일행들이었다.

그들 중 근접 공격 기술이 별로 없는 구호열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대궁까지 꺼내 들었다.

“화살 아까워서 활은 잘 안 쓰지만, 아끼다 똥 되니까 써 주마!”

직접적으로 가시를 찌를 수 없게 되자, 아이스 그렘린들은 빨간 눈을 번뜩이며 전부 눈 밑으로 숨어 버렸다.

그런데 그건 숨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마법이었다.

쿠구구……!

새하얀 땅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산사태인가!?”

아니었다!

거의 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아이스 그렘린들이 한 곳에 모여들더니, 주변의 눈을 전부 끌어모아 거인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끼이-! 우꺄꺄!

와글와글!

쿠구구!

일행은 눈을 의심했다.

“눈으로 골렘을 만들어 냈어!?”

[오! 눈사람이다! 눈사람!]

거인에는 거인으로!

크기에서 불리하다 생각하자 아이스 그렘린들은 본능적으로 몸집을 부풀린 것이다!

상대보다 더욱 크게!

오오오!

크워어!

정다운의 흙 거인들과 그보다 훨씬 큰 눈 거인이 격돌했다.

힘과 힘의 격돌!

그런데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눈 거인 쪽이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게다가 눈으로 된 몸에서는 수시로 뾰족한 가시들이 튀어나와 흙 골렘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와우, 저걸 지금 안에서 직접 조종하고 있는 거야? 무슨 변신 합체 로봇도 아니고.”

정다운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백 마리쯤 되는 눈사람 안에 들어가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 오히려 쉬워지지.”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곧바로 흙벽돌을 꺼내 둥글게 뭉치기 시작했다.

크고 무겁게, 하지만 잘 굴러가게 반들반들!

그리고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피해!”

“……!?”

[공 굴러가유!]

그 말에 열심히 싸우고 있던 일행들이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곤 질겁했다.

“헉.”

뒤에서 골렘들이 쇠똥구리처럼 거대한 볼링공들을 이쪽으로 굴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쿠구구구……!

“워우씨! 미리 좀 말해 주지!”

그들이 피하기도 전에 그들을 태운 골렘들이 알아서 볼링공을 피해 좌우로 비켜섰다.

그러자 그 건너편에 있던 거대한 눈사람의 하복부에 볼링공이 직격했다.

콰앙-!

우끼끼! 우꺄!

쿠르르르……!

어림잡아도 3톤은 넘어 보이는 흙구슬의 무게에 그대로 짓눌려 무너져 버리는 눈사람! 아니, 아이스 그렘린들!

“나이스! 일타백피다!”

[눈싸움에 돌 굴리기 있음? 치사하시네!]

하늘에선 토끼가 깔깔대며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엄청난 한 방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 상황에 류승우만이 눈을 번뜩이며 하늘로 힘껏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신의 힘을 집중했다.

“천뢰!”

쿠르릉!

마침 한곳에 뭉쳐 있는 놈들의 머리 위로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콰쾅!

[<온돌> 스킬이 2레벨로 발전하였습니다.]

“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레벨 업은 정다운이 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아 놔, 온돌을 올려서 뭐 해? 외뿔 멧돼지의 기운으로 싸울 걸 그랬네.”

오르라는 전투 스킬은 안 오르고 애먼 것만 레벨 업 하고 있었다.

*   *   *

아이스 그렘린들을 어느 정도 물리쳤을 땐 어느덧 날이 저물어 있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다운이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게. 엊그제도 이번처럼 몰려왔었는데, 진짜 아슬아슬했거든.”

한층 더 포근해진 온돌 바닥에 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일행들.

괴물들도 조용하고 엉덩이는 노곤노곤하니, 피자치즈처럼 바닥에 녹아 늘러 붙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유적지를 찾는 건 지금부터였다.

“……어우, 졸리네.”

“따뜻해서 눈이 자꾸 감겨요.”

“우리 돌아가면서 잘까? 한 명만 불침번 세우고 석판 지켜보게 하면 되잖아.”

“좋은 생각이다. 그럼 연장자부터 잘까?”

“성장기 어린이부터는 어때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하자.”

드르렁.

“……?”

“……!”

“…….”

순서를 정하는 옆에는 이미 정다운이 당당하게 퍼질러 자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깨울 생각을 못 했다.

여기 집주인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어? 찾은 것 같은데요?”

“……!?”

윤진수가 깜짝 놀라며 석판을 들어보였다.

키 스톤의 신비한 문양에서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모두들 잠이 확 깼다.

“옳거니! 찾았구나!”

“어디지? 어디야?”

“여기구나!”

마침 코끼리 골렘이 지나가는 근처에 눈에 파묻힌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석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찾았구나! 잘됐다!”

정다운도 어느새 눈을 비비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럼 발동시켜 보자. 비밀의 문이라도 열리려나?”

두근대는 마음으로 류승우가 두 개의 키 스톤을 서로 마주 대자, 서로 빛을 뿜어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순간.

[제2 유적지로 이동합니다.]

파아앗!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오, 이건?]

토끼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좋았어! 유적지다! 성공이야!”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발밑에 나타난 게이트가 모두를 집어삼키는 순간.

[오류!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정다운만 한숨을 내쉬었다.

“어우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

조용히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토끼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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