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81화>
벌떡!
[아니, 그래도 이건 역시 이상하잖아!]
얌전히 밥을 먹던 토끼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키케케케!
켈켈켈켈!
현실을 자각한 것이다.
[이렇게 사방이 적인데! 태평히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요?]
“어차피 안전하잖아?”
정다운은 태연히 대꾸했다.
알파도 당연히 태연했다.
<신전의 방어는 완벽합니다. 해골 병사들은 더 이상 이 벽을 넘어오지 못할 겁니다.>
그뿐이랴?
이젠 벽이 무너질 걱정도 없었다.
던전 감자들의 뿌리가 안에서부터 흙벽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괴물들 수천 마리를 구경하면서 밥이라니? 먹다 체하겠네!]
실제로 지금 다른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힐끔힐끔 마을 밖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여유로웠다.
- 범독수리처럼 용맹해집니다.
백수의 왕 사자가 밀림의 진정한 강자라 불리는 이유.
그건 사냥을 잘해서가 아니라, 적들이 가득한 초원 한가운데서도 배를 까뒤집고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사자도 그럴진대, 하늘의 제왕인 범독수리는 어떻겠는가.
[이 사람…… 실제로 범독수리처럼 강해진 것도 아니면서 겁대가리만 상실했어!]
토끼는 정다운의 상태를 깨달았다.
그렇다고 정다운이 안전 불감증에 걸린 건 아니었다.
저 해골 병사들이 자신을 절대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지레 겁을 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밥을 다 먹었을 때쯤, 그럴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업적 달성!>
“해골 파괴자!”
혼자의 힘으로 해골 병사 1천 명을 파괴했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던전이 경의를 표합니다.
- 보상 : 뼈를 2배로 더 잘 부수게 됩니다.
밥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업적을 달성해 버렸다.
정다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나 한 마리도 안 잡았는데?”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함정으로 잡은 것도 카운트되는 거 잊었음? 저번에 골렘들이 잡은 것까지 합쳐졌나 보네요.]
“아하.”
정다운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두두두……!
키켁! 콰직! 콰직!
지금 이 순간도 밖에서는 던전 콩의 미사일에 해골 병사들이 무참히 박살 나고 있었다.
카운트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보상을 확인한 정다운이 눈을 반짝였다.
“이번에도 스킬은 아니구나. 그런데 뼈를 더 잘 부수게 된다는데? 2배나?”
“정다운 씨도 해골 파괴자 업적을 달성하셨군요.”
오창석 촌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감탄한 표정을 보니, 이 업적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정다운이 뭔가를 깨닫고 무릎을 탁 쳤다.
“혹시 촌장님도 이 업적을 달성하셨어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다 보니…….”
“아하, 어쩐지! 촌장님 손에 걸리면 해골 병사들이 성냥개비처럼 똑똑 부러지더라니!”
망자의 땅에 가장 오래 있었던 그가 이 업적을 달성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그 말은 이제 정다운도 그처럼 해골 병사들을 상대로 전투력이 2배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확인해 보자! 누가 가서 해골 병사 하나만 잡아다 주실래요?”
“제가 가겠습니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밥을 3공기나 먹은 덩치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장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함정 중지!”
정다운은 괜히 그가 눈먼 미사일에 맞을까 봐 잠시 던전 콩을 멈추게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가 해골 병사 한 놈을 잡아서 정다운 앞에 대령했다.
“무기는 뺏었지만, 그래도 조심하시길.”
“네네.”
사내는 혹여나 정다운이 다칠까 봐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여태까지 놀라운 모습들만 보여 준 정다운이지만, 단 한 번도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불안했던 것이다.
“키케케!”
해골 병사는 본능에 따라 바로 앞에 있는 정다운에게 덤벼들었다.
겁도 없었다.
“잠깐 움직이지 좀 말아 봐. 정화.”
파앗!
투둑.
“키엑?”
새하얀 빛을 머금은 정다운의 손이 놈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자, 놈의 팔 하나가 떨어졌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하, 정화 스킬 사용자셨구나. 그렇다면 걱정 없지.”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에 걱정이 사라졌다.
근육도 없는 해골 병사들의 몸을 서로 연결해 주는 건 바로 저주의 힘이었다.
그 힘을 정화해 버리면, 관절들이 서로 분리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십 마리에 둘러싸이지 않는 한 정다운이 위험할 일은 없었다.
“정화, 정화, 정화.”
투둑, 툭, 툭.
“키케…….”
해골 병사는 어느새 팔다리가 전부 떨어져 몸만 남아 입만 다그닥거리고 있었다.
정다운은 그 앞에서 두꺼운 정강이뼈를 하나 집어 들고 한번 힘을 줘 봤다.
그러자 뚜둑! 하고 쉽게 부러지는 게 아닌가!
“와우, 나무 젓가락인 줄!? 어디, 한 번 더?”
뚜둑! 뚜두둑!
신이 나서 계속 부러뜨려 봤다.
잘도 부러진다.
“키키…….”
그걸 보며 해골 병사는 처량하게 입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해골아, 힘내……. 내가 편하게 해 줄게.]
괜히 미안해진 토끼는 녀석의 몸을 질질 끌고 나가 던전 감자들에게 비료로 넘겨 버렸다.
하지만 정다운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아, 혹시 무기로 싸워도 적용되려나?”
대답은 오창석 촌장에게서 나왔다.
“적용됩니다.”
“오, 그럼 이는요?”
“이요?”
뭔 말인가 싶어 정다운을 쳐다보자, 그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설마?
정다운은 소지품에서 외뿔멧돼지의 뼈 하나를 꺼내 호쾌하게 물어뜯었다.
와그작! 와작 와작!
그리고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야, 이것도 되네! 멋지다! 앞으론 생선뼈도 마구 씹어 먹을 수 있겠네.”
“…….”
[…….]
조금 전보다 훨씬 기뻐하는 모습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왜요? 뭐? 내가 해골 병사들이랑 싸울 일이 얼마나 있다고요. 하지만 밥은 하루 세 끼 먹는다고.”
정다운은 당당했다.
그러다 문득 오창석 촌장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촌장님, 혹시 해골 병사 1천 명 잡는 업적이 이 정도면, 여기서 더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제가 지금까지 대충 2천 마리는 넘게 잡은 것 같은데 별다른 건 없습니다만.”
“흐음?”
그때, 타이밍 좋게 알파가 말을 걸었다.
<함정 설치 스킬을 2레벨로 올리시겠습니까? 현재 모인 생명 에너지라면 충분히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런 데선 에너지 안 아까워하네?”
<신전 관리 스킬을 올리는 일이 바로 신전을 위하는 일입니다.>
“그래? 그럼 게이트 스킬을 올리자.”
<게이트 스킬을 올리기엔 아직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쳇.”
별수 없이 함정 스킬만 올리기로 했다.
번쩍!
<함정 설치 스킬이 2레벨로 발전합니다.>
“뭐가 달라진 거야?”
<리셋되는 속도가 빨라지며, 함정을 더욱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아하.”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당장 던전 콩들의 성능이 강화된 게 체감되었다.
일단 사정거리가 더욱 길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움직이는 대상들을 무작위로 공격했다면, 이제는 더욱 정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진 것이다.
“어, 음. 왼쪽 아래.”
기익?
정다운의 말에 던전 콩의 대포 역할을 하는 까투리가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오른쪽?”
기이익?
그가 말하는 대로 까투리를 움직이는 던전 콩.
이제 콩을 날리는 방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원래는 여기까지가 한계였겠지만, 정다운에겐 좀 더 디테일한 명령이 가능했다.
그에겐 던전 콩이 노리고 있는 ‘과녁’이 정확하게 보였던 것이다.
아니, 여기 있는 모든 던전 콩들의 과녁이 다 보였다.
씨익.
“이거…… 진짜 멋진데?”
정다운의 입가에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든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굳이 입으로 명령할 것 없이, 숙달이 되시면 머릿속으로도 조작이 될 겁니다.>
“좋았어. 자, 다들 움직여 보자!”
정다운이 눈을 빛내며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모든 던전 콩들의 과녁을 일일이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기익? 기익기익?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던전 콩들!
“으, 두통이야.”
안 쓰던 머리를 핑핑 돌렸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숫자를 점점 줄였더니 두통이 줄어들었다.
20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았다.
그 20개의 과녁들이 그가 시키는 대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러곤…….
“발사!”
투둥! 투두두두! 두다다다다!
콰직! 퍼벅!
키케켁!
“……!”
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격 필살!
헤드 샷!
모든 대포알들이 정확하게 해골 병사들의 머리에 명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하하하! 이거 진짜 재밌잖아?”
정다운은 신이 나서 계속 던전 콩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공격 스킬 못지않은데?”
[어지간한?]
그 말에 토끼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어지간한 원거리 딜러 20명 못지않네요. 이건 사기야.]
야구공 20개를 풀 파워로 던지는 전투직인 셈이었다.
* * *
한편, 류승우는 던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빠각! 뽀각!
“와, 승우 형. 이젠 전격도 안 쓰고 힘으로만 괴물들을 쓰러뜨리네요?”
윤진수는 류승우의 발아래 쌓인 괴물들의 시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전부 목뼈가 부러져 잔인하게 죽어있었는데, 이 정도 광경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10살짜리 소년이었다.
“아아, 이번에 마을에서 새로 얻은 힘을 수련 중이야.”
“응? 이번이라면 해골 병사들이랑 우르르 싸웠을 때요? 스킬이라도 얻었어요?”
“스킬까진 아니고. 해골 파괴자라는 업적인데, 뼈를 2배로 잘 부수게 해 주는 버프 효과를 주더라고.”
“어어?”
그 말에 윤진수는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비로소 괴물들의 상태가 왜 이 모양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목뼈라든가 무릎, 어깨 등 근육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관절들이 무참히 박살 나 있던 것이다.
“뼈를요? 와, 그거 너무 사기 아닌가? 뼈 없는 괴물이 어딨다고!”
“그러게. 관절기 위주로 싸워 보니까 확실히 효과가 있더라고.”
류승우는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훔치며 씨익 웃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괴물, 아니 생명체라면 누구나 뼈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뼈를 2배로 잘 부순다는 말은, 잘만 활용하면 전투력이 2배로 늘어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젠 스킬로도 2배 효과가 적용되나 확인해 보려고.”
파지직!
그의 몸에 푸른 스파크가 휘감겼다.
* * *
정다운도 놀라고 있었다.
“어, 음……. 이거 아무래도 함정에도 적용되나 본데?”
[이 사기꾼아…….]
어쩐지 던전 콩들이 너무 해골 병사들을 잘 부순다 싶었다.
사정거리가 2배로 길어지면서 공격력도 올라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던전 콩들이 뼈를 너무 잘 부수잖아?”
던전 감자도 마찬가지였다.
휘리릭! 우지끈!
녹색 줄기들에 휘감긴 해골 병사들의 뼈도 사정없이 부러지고 있었다.
정다운은 근심이 생겼다.
“아씨, 어쩌지? 뼈 젓가락이 자꾸 부러져…….”
힘 조절을 위해 스킬 수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해골 병사들은 계속 카운트되고 있었다.
투두두두!
키케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