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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73)화 (73/393)

<던전리셋 73화>

“이, 이거 뭐야!?”

한창 해골 병사들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던 참가자들은 갑자기 두꺼운 흙벽이 나타나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헐. 뭐지, 이거?”

“스킬인가?”

휙! 처척척!

휙휙! 처처처처처척!

그 옆을 시크하게 흙벽돌을 툭툭 내려놓으며 지나가는 정다운.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대, 대박…….”

정말이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던전의 틈새 지역, 망자의 땅 위에 흙으로 만든 만리장성이 생겨나고 있었다.

두께와 높이가 각각 1미터에, 한 줄로 꼼꼼하게 연결되어 있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는 아주 듬직한 녀석이었다.

밀면 넘어지고 때리면 부서지는 원래 있던 목책과는 차원이 다른 벽이 생긴 것이다!

“켈켈켈!”

가각가각!

“키케케케!”

투둑투둑!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온 해골 병사들이 만리장성에 가로막혀,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 우와?”

“못 넘어 오네!?”

사람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살았다! 못 넘어온다!”

점프를 못 하니 1미터의 벽을 넘어오기가 힘들었다!

아웅다웅 팔을 아무리 뻗어 봐야 그 공격이 안쪽까지 닿지도 않았다.

이제 이 두꺼운 벽을 방패 삼아 이쪽에서만 공격을 날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았어! 계속 공격!”

“다 죽여!”

기세가 오른 사람들은 다시 심기일전해서 스킬을 맹렬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훗, 열심히들 산다요.]

토끼가 코를 쓱 훔치며 전망대 위에서 전투를 구경했다.

그런데 문득 저 멀리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보였다.

장벽을 넘을 수 없게 되자 몇몇 해골 병사들이 누더기 같은 활을 꺼내 든 것이다.

생긴 건 별로였지만 촉이 뾰족한 진짜 화살이었다.

[어? 해골이 활도 쏘네? 님, 화살 조심하셈!]

토끼가 다급히 정다운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흙벽을 넘어 날아오는 화살들!

피융! 슈슈슉!

“으익! 내가 막을게요! 바람 화살!”

그때, 윤진수가 양손에 바람 화살을 생성했다.

이걸 바로 날리면 효과가 없을 터. 하지만 마침 윤진수는 이런 방면의 프로였다.

그는 바람 화살의 가운데를 축으로 빠르게 회전시켜 작은 회오리를 만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돌개바람!”

휘오오!

날아오던 화살들이 그가 만들어 낸 돌개바람에 휘말려 방향을 잃고 튕겨 나갔다.

하지만 놈들이 워낙 많아서 날아오는 화살들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자 다른 전투직들도 가만히 구경만 하지 않고 저마다의 스킬로 화살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앞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근접 공격수들이었는데, 그들이야 워낙 터프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이까짓 화살! 근육으로 버틴다! 크하앗!”

구호열이 호기롭게 몸을 부풀렸다.

“으라쌰!”

부우웅! 콰앙!

화살 따위는 그냥 몸으로 그냥 맞아 주면서, 그 대신 놈들 서넛을 한꺼번에 아작을 내 버리는 근육 괴물! 그게 바로 구호열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앗! 님, 조심해요!]

토끼가 다급히 정다운을 불렀다.

하필이면 하늘 위에서 눈먼 화살 하나가 지나가던 정다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 돌개바람!”

한발 늦게 알아본 윤진수가 뒤늦게 스킬을 펼쳤다.

토끼도 그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슈우욱!

챱!

“어씨, 깜짝이야.”

[……!]

“……?”

모두가 놀랐다.

“어? 잡아 버렸네?”

어쩌다 보니 그가 날아오는 화살을 두 손가락으로 척 잡아 버리고 만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화살이 알아서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다.

정다운은 엉겁결에 잡아 버린 화살을 당당히 들어 보였다.

“짠! 내가 잡았어!”

[헐, 묘기 보소? 지금 어떻게 한 거임?]

“과녁이 보였어.”

[과녁? 과녁? ……헐, 설마 그 과녁!?]

토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런가 봐. 어디로 날아올지가 눈에 뻔히 보이더라고.”

[……!]

이럴 수가! 전에 그가 달성한 업적이 무엇이던가!

<최초 업적 달성!>

“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잡다!”

당신의 화살이 하늘의 무법자 그리피오스를 추락시켰습니다!

당신의 소름 끼치는 활 솜씨에 던전이 경악합니다.

- 보상 : 앞으로 당신의 눈에 ‘과녁’이 보입니다.

[설마 그게 남들이 쏘는 과녁도 보여 주는 거였다고요!?]

“그런 거 같은데? 이거 진짜 대박이다. 지금도 날아오는 화살들이 전부 어디로 도착할지가 다 보여.”

정다운은 감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미친 최초 업적! 진짜 코에 걸면 코걸이네.]

토끼는 어안이 벙벙했다.

원래 무술의 달인은 총구의 방향만 보고도 총알이 어디로 날아올지 알고 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다운이 누구인가.

던전이 인정한 소름 끼치는 활 솜씨(?)의 소유자 아니던가.

무려 화살로 그리피오스를 잡은 최초의 존재였다!

‘원거리 공격이 어디로 날아올지가 다 예측되는 능력이라니! 이건 너무 사기잖아!’

심지어 지금은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날이 어둑해져 있는 상황.

그런데도 ‘과녁’은 레이저 포인터처럼 선명하게 빨간 점으로 정다운의 눈에 보인 것이다.

[아 놔. 그래도 그게 보였으면 옆으로 피했어야죠! 혹시라도 잡는 데 실패했으면 바로 골로 갈 뻔했잖아요!]

“아냐. 딱 보니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마침 빗맞은 배드민턴공처럼 비실비실 날아오더라고.”

[아니, 그래도! 이 인간은 진짜 겁도 없이!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정다운의 태평한 모습에 토끼는 바닥을 발로 팡팡 밟으며 답답해했다.

그러다 퍼뜩 깨달음이 왔다.

[……잠깐, 이거 설마?]

문득 그가 받은 또 하나의 업적이 떠올랐다.

<업적 달성!>

“범독수리 사냥꾼!”

하늘의 무법자 그리피오스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뛰어난 기개와 용맹스런 무용담에 던전이 승리의 나팔을 붑니다.

- 보상 : 범독수리처럼 용맹해집니다.

[범독수리의 용맹. 범독수리처럼?]

아무래도 그 보상 때문에 이 인간의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게다가 범독수리 그리피오스가 어떤 놈들이던가.

높은 상공을 날다가 까마득히 먼 곳에 점처럼 보이는 사냥감을 포착하고 낚아채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그깟 화살쯤이야……!

“에이씨. 빨리 지나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더 쌓아야겠다.”

정다운은 자꾸 화살들이 날아오자 결국 멈춰 서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곤 흙벽 위에 또 한 줄을 쌓아 올렸다.

“한 단 추가요-!”

휙! 처처처처처척!

벽 높이는 어느새 2미터가 되었다.

이러면 화살이고 해골이고 절대 못 넘어올 것이다.

제 키보다 높은 벽을 어떻게 기어오르겠는가.

대신 이쪽에서는 밖을 공격할 수 있게끔, 벽 안쪽에 한 줄을 더 추가해 밟고 올라갈 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오오오!”

“이러면 완전 껌이지!”

“신입 만세다!”

사람들은 신이 나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고마움의 표시로 정다운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벽 아래로 아웅다웅 모여 있는 해골들 머리통을 향해 온갖 스킬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화살도 대부분 그 벽에 막혔고, 높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오는 것들만 막아 내면 그만이었다.

“3줄씩 쌓으려면 좀 바쁘겠는데? 서둘러야겠다.”

자신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누가 죽기라도 하면 엄청 미안하지 않겠는가.

정다운은 결국 타조 골렘을 소환해 등 위에 올라타고 빠르게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처처처처처척!

“……!”

마을 여기저기서 기쁨의 함성 소리가 파도타기하듯 울려 퍼졌다.

2미터의 장벽이 ㅁ형태로 마을을 전부 둘러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정다운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 아무리 그래도 끝이 없구만.”

그나마 장벽이 있어서 한숨 돌릴 시간이 생긴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직도 장벽 너머엔 개미 떼처럼 모여든 해골들이 즐비했다.

“애초에 이쪽이 수적으로 너무 열세야.”

[그래도 이 정도면 어찌어찌 막아 내겠는데요.]

“아니야.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 결국엔 어떻게든 기어 올라올걸?”

죽음의 산맥을 넘어온 정다운은 괴물 쥐들 상대로 이미 이런 상황을 수차례 겪었다.

숫자가 이렇게 많이 몰리면 서로의 몸을 밟고 또 밟아 거대한 언덕이 생긴다.

밑에 있는 동족들이 밟혀 죽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자, 일차적인 방어는 해결됐으니까, 이제 2단계로 넘어가자.”

정다운은 서둘러 움직였다.

“촌장님! 이제 됐으니까, 모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

해골들의 언덕 위에서 숨 가쁘게 땀을 닦던 오창석 촌장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류승우나 구호열처럼 화끈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철저하게 해골들의 팔과 다리를 박살 내는 중이었다.

“갑자기 들어오라니 그게 무슨 소리……!?”

아니, 바빠 죽겠는데 누가 감히 촌장인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인가!

……하고 순간 기분이 상할 뻔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뜬금없이 거기에 만리장성이 생겨 있었다.

“뭐, 뭐야, 저건……?”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만리장성 위에서 발랄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정다운을 찾아냈다.

“……!”

어째서인지 그가 엄청나게 커 보였다.

처음 범독수리의 고기를 꺼냈을 때보다 더욱 큰 존재감!

던전에 건물주가 있다면 저럴까?

왠지는 모르겠는데, 마치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저 손에 여기 땅문서라도 들려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오창석 촌장은 순순히 정다운의 말을 듣기로 했다.

“모, 모두들 빨리 마을로 복귀하게! 서둘러! 전투 중지!”

그는 해골 병사들을 헤치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주변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정다운의 말을 전달했다.

어쨌든 저런 장벽이 생겼다면 안에 숨어서 수성전을 펼치는 게 이득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끝도 없는 전투에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는 차였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질수록 발밑에서 기어 나오는 해골 병사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눈치 빠른 양반이네. 말 잘 들어서 좋네요.]

토끼는 낄낄대며 다른 곳에 나가있는 류승우에게도 돌아오라고 귓말을 전달했다.

파츠츠! 번쩍!

“알았다! 그건 내가 맡지!”

단톡방을 확인한 류승우는 호기롭게 모든 전력을 끌어 올려 전신에 휘감았다.

번쩍 번쩍!

그는 무슨 네온사인처럼 화려하게 빛나며 이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류승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 해산한다!”

“……!”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류승우의 말이 떨어진 순간, 일대에 있던 모든 참가자들이 바로 싸움을 중단하고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저마다의 방식으로 2미터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마을로 돌아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마치 이 마을의 리더가 바뀐 듯한 분위기에 오창석 촌장은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오늘 전투의 MVP는 누가 뭐래도 류승우였다.

쌍검에서 전격을 줄기줄기 뻗어 내는 발군의 전투 능력과 그러면서도 위험에 빠진 이가 보이면 바로 달려와 도와주는 의협심까지.

이 한 번의 전투로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리더 따위 누가 되든 알게 뭐냐……. 

“크워어어!”

“오옴! 오옴!”

골렘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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