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72화>
켈켈켈켈!
끝도 없는 싸움이었다.
수천 마리의 해골 병사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앙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불사신이라는 점이었다.
놈들은 아무리 팔을 박살 내고 다리를 부러뜨려도 아득바득 기어 와 어떻게든 덤벼들었다.
주인 없는 팔이 사람들의 발목을 붙들고, 그 위를 수십 마리가 에워싸 녹슨 칼날을 휘둘렀다.
집요하고도 집착적인 그들의 살기에 참가자들은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수, 숫자가 너무 많아……!”
“스킬을 최대한 아껴! 우리가 먼저 체력이 떨어지면 끝이다!”
“크윽!”
그렇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강력한 스킬을 쓰면 효과가 좋겠지만, 그만큼 체력이 소모된다.
그러다 스킬을 쓰기 힘들 정도까지 체력이 떨어지게 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었다.
차라리 거대한 적 한 마리면 모를까, 이런 식의 난전은 정말 사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영웅이 등장했다.
“전광석화!”
파츠츠츠! 콰앙!
케륵!?
시퍼런 섬광이 휘몰아치며 해골 병사들 수십 마리가 한 방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 선 쌍검의 기사!
“……!”
류승우의 화려한 등장에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전장의 지휘자!
그는 벼락처럼 나타나 양손의 푸른 섬광 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압도였다.
시퍼런 전격으로 이루어진 그의 검기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해골 병사들의 갑옷과 검을 타고 흘러 옆에 있던 모두를 한꺼번에 휘감아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파직! 파지지직!
그 가공할 무위에 사람들은 상황도 잊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누군가 했더니…… 최근에 들어온 신입이잖아?”
“저거 대체 무슨 아이템이지?”
추측이 난무했다.
무기가 좋은 거겠지?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저런 게 있던가?
하지만 곧이어 푸른 스파크가 그의 전신을 휘감자,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벼락이여!”
파츠츠! 콰쾅!
“스킬이었어!?”
“맙소사!”
다시 보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범한 철검에 불과했다. 그 위에 전격을 둘렀을 뿐.
게다가 그의 본 직업은 태권도 사범이었다.
검술뿐만 아니라,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놈들을 향해 그의 화려한 발기술도 펼쳐졌다.
그런데 그 모든 발차기마다 시퍼런 섬광이 휘감겨 있어 놈들의 갑옷이 송판 격파되듯이 퍽퍽 박살 나는 것이다.
“……영웅이다.”
그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의 전격에 휘말릴까 두려워 사방으로 흩어지는 참가자들을 향해 류승우는 진중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이쪽은 저 혼자 맡겠습니다. 다른 곳을 지원해 주세요.”
“……!”
“아, 알겠습니다.”
그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선배로서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힘에 부치면 바로 소리치세요. 그런 스킬은 체력을 빨리 소모할 테니 최대한 아껴 쓰시고요.”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류승우의 스킬 ‘전격’은 강력한 만큼 체력이 실시간으로 소모된다.
하지만 수천의 적들을 앞둔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소리친다고 들리긴 할까?’
류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켈켈켈켈!
키케케케케!
온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는 이 수천의 웃음소리는 지옥의 성가곡처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놈들에게 둘러싸여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저 눈앞에 닥친 위험에 맞서 싸울 뿐.
그러다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망자로 변해 다시 태어나겠지.
‘이미 이곳은 지옥이구나. 아니, 언제는 지옥이 아닌 적이 있던가.’
류승우는 다시 사방에서 덤벼드는 놈들을 노려보며 전신에 전격을 휘감았다.
“오냐, 이놈들. 덤벼라!”
파츠츠! 콰쾅!
그런데 그때,
꿀꺽!
류승우의 손목 위로 황금빛 문자들이 주루룩 떠올랐다.
<토끼 : 이야! 역시 화끈하시네! 옛날엔 정전기 수준이더니 많이 컸네요!>
<정다운 : 우와, 블랑카다! 블랑카!>
<토끼 : 블랑카가 뭐임?>
<정다운 : 게임 캐릭턴데, 길에서 싸우는 초록 망나니라고 있어.>
<토끼 : 웅엥? 초록색 아닌데요?>
빠직.
이 바쁜 상황에도 너무나 태평한 수다에 류승우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류승우 : 왜 하필이면 블랑카야! 질럿도 있고 아콘도 있고 많은데!>
<정다운 : 그래? 그럼 피카츄로 퉁칩시다.>
<토끼 : 그건 또 뭐임?>
<정다운 : 전기 뿜는 노랑 쥐라고 있어.>
<토끼 : 노랑 쥐요? 던전에 그런 괴물이 있던가?>
<윤진수 : 이익! 자꾸 노닥거릴 거예요? 누군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목책 뒤에서 열심히 바람 화살을 날리고 있던 윤진수가 결국 발끈하며 답장을 보내왔다.
류승우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류승우 : 진수야! 그쪽은 좀 어때? 호열 형님은?>
<윤진수 : 나야 목책 뒤에서 싸워서 괜찮죠! 호열 아저씨도 아직까진 쌩쌩해요! 아니다, 배고프다고 전해 달래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묘하다.
전투 중에 짬짬이 황금빛 문자들을 보는 류승우의 마음이 괜히 든든했다.
‘비록 서로 흩어져 싸우고는 있지만, 이렇게 연락을 주고받으니 계속 함께 있는 기분이구나.’
던전에선 무엇보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뜻하지 않게 마을에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얻은 것도 컸다.
다만, 유일하게 단톡에 제외된 구호열이 마음 쓰였다.
지금 그는 윤진수의 근처에서 방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고?’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체력을 소모해 상처를 ‘재생’하는 구호열에게 배가 고프다는 건 아주 큰 문제였다.
<정다운 : 아! 그러고 보니 우리만 저녁 안 먹고 나왔네! 잠시만! 지금 토끼한테 간식 보낼 테니까 먹으면서 싸워!>
“……!”
잠시 후 토끼가 스르륵 류승우의 곁에 나타나 무언가를 건넸다.
[새참 왔어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굶지 맙시당.]
거의 새댁이었다.
“와, 역시 정다운! 이거 진짜 오랜만인데?”
토끼가 건넨 건 바로 외뿔 멧돼지의 훈제 고기였다.
더군다나 전투 중에 한입에 쏙쏙 먹기 편하라고, 친절하게도 건빵 크기로 잘라져 있었다.
물론 무슨 게임 포션처럼 고기를 먹는다고 곧바로 체력이 회복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도 아주 큰 도움이었다.
“그런데 다운이는 지금 뭐 하고 있어? 다른 생산직들과 같이 목책 만들고 있나?”
류승우의 물음에 토끼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음, 목책 비슷한 걸 만들고 있긴 하죠.]
“비슷한 거?”
[이를테면…… 저런 거?]
토끼의 귀가 까딱이며 어딘가를 가리키자 류승우의 시선이 따라갔다.
그리고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거 뭐지? 언제부터 있었지?”
마을 한가운데에 높고 네모난 흙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 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정다운!? 쟤 저기서 뭐 하……!”
그 순간 꿀꺽! 하고 귓말이 도착했다.
<정다운 : 승우 형!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대각선 왼쪽으로 출동! 그쪽 진영이 무너지고 있어!>
“어?”
<정다운 : 빨리! 저러다 사람 죽겠다!>
“……오, 오케이!”
파츠츠! 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류승우의 몸이 벼락처럼 그쪽으로 날아갔다.
그 후로도 정다운의 지령은 계속 날아왔다.
류승우는 그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전장을 지배했다.
정다운이 보내 준 훈제 고기를 팝콘처럼 입에 쏙쏙 넣고 씹으며.
‘역시 높은 곳에서 전투 상황을 보고 알려 주니까 확실히 편하구나! 역시 정다운! ……이 안보이네!?’
헉?
언제부터인가 전망대 위에 정다운이 보이지 않자 류승우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대체 어디서 보고 있는지 지령은 계속 내려왔다.
<정다운 : 오른쪽!>
“오, 오케이!”
<정다운 : 왼쪽!>
“예압!”
<정다운 : 앞으로 굴러!는 뻥이고, 거기서 계속 싸워!>
“……!”
진짜 구를 뻔 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우, 징글징글하네. 숫자가 줄어들지를 않아.”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해골 병사들이 땅속에서 쑥쑥 기어나오고 있었다.
정다운은 미니맵에 빨간 점들이 바퀴벌레처럼 스멀스멀 다가오는 걸 보며 질색했다.
중간중간 보이는 파란 점은 동료들.
흰 점은 일반 참가자들을 의미해서, 전투 상황이 한눈에 보였다.
역시 시야 확보부터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토끼가 도착했다.
[간식들 다 나눠 주고 왔어요.]
“너도 좀 나가서 싸우라고.”
[히익!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말씀을? 저는 이제 생명의 용을 섬기는 정결한 신분이라 살생은 무서워요.]
<좋은 말이지만, 신전을 위협하는 언데드들을 무찌르는 건 더 좋은 일입니다.>
[후후. 그럴 줄 알고 오는 길에 몇 놈을 손봐주고 왔습죠.]
알파의 말에 언제 강 건너 불구경했느냐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치는 토끼였다.
[그런데 내가 괜히 나댔다가, 갑자기 이쪽 도우미라도 나타나서 들키면 서로 좋을 게 없어요. 님이 직접 상대하는 건 어때요? 언데드한테는 정화 스킬도 제법 데미지가 들어가요.]
“어휴, 나 혼자 저 많은 놈들을 어느 세월에 다 잡아?”
[그럼 골렘들을 부르시든가요.]
“나도 그러고 싶다!”
생각 같아선 골렘들을 전부 불러들여 난동을 피우고 싶었지만, 상황이 좀 애매했다.
갑작스러운 골렘의 등장에 참가자들이 깜짝 놀라 맹공격을 펼치면 어쩌냔 말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일일이 붙잡고 적이 아니라고 해명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게다가 워낙 혼잡하게 뒤섞인 난전이라서 괜히 사람들이 밟혀 죽을 위험도 있었다.
[에이, 언제부터 친했다고. 한두 명 밟혀 죽으면 뭐 어떰? 대를 위해 소를 짓밟으셈.]
“야 이 잔인한 놈아!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사람 아닌데요?]
“그러네, 젠장?”
한가롭게 토끼와 수다를 계속 떨고 있지만, 정다운은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단계를 위해 계속 이동 중이었다.
“일단 골렘을 꺼내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고. 지금은 방어가 먼저야.”
그는 마을의 경계를 지키는 최후 방어선에 도착했다.
마침 목책 뒤에서 해골 병사들을 요격하고 있던 윤진수가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다운이 형! 여긴 위험하게 왜 왔어요? 저 안쪽에 다른 생산직들이 목책 만들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요!”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그런지, 그는 정다운이 어제부터 흙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진수야. 내가 계속 지켜보니까, 해골 병사들이 위로는 점프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맞아?”
“으응? 아, 몸이 가벼워서 재빠르긴 한데…….”
“맞아! 점프는 불가능해! 대신 앞으로 덤벼드는 속도는 빠르니까 방심하면 안 돼!”
멀리서 구호열이 정다운을 알아보고 마저 대답했다.
그 말에 정다운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호오? 그럼 딱 한 줄이면 충분하겠는데?”
덕분에 일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마침 그의 소지품 안에는 지하 신전을 파면서 모아 둔 마스터 레벨 흙벽돌들이 넘쳐났다.
처처처처척!
“……!”
높이 1미터.
해골 병사들의 진입을 막기엔 딱 적당한 높이의 담벼락이 그의 손짓을 따라 줄줄이 사탕처럼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