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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68)화 (68/393)

<던전리셋 68화>

마을은 좁다.

소문은 순식간에 오창석 촌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신입이 소금을 나눠 주고 있다고?”

그는 놀란 표정으로 한달음에 정다운의 막사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 앞은 소금을 얻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끌시끌!

“저부터 좀 주세요! 고기 굽다 와서 빨리 가 봐야 된단 말이에요.”

“혹시 이건 안 될까요? 손잡이 떨어진 방패인데……. 대신 2강이에요.”

“어이, 거기! 소금 너무 많이 퍼 가는 거 아냐? 욕심내다 손모가지 날아가 버리는 수가 있어?”

‘아주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구나…….’

오창석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연실색했다.

대체 누가 여길 던전 한복판이라 여기겠는가.

아무리 여기가 틈새 지역이라 해도, 이런 북새통 시장 같은 분위기라니…….

그러다 저 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소금을 확인하고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저게 다 소금이라고?’

던전에서 소금이란 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금 따위는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 귀한 소금을 강화 무기를 받고 판다니!

‘2강 무기부터는 조금 고민되겠지만, 1강쯤이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지. 나도 다 없어지기 전에 좀 사 둬야겠…….’

흠칫?

저도 모르게 줄에 합류한 오창석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소금을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바다라도 다녀온 건가?”

“설마 숨겨진 보물이라도 발견했나?”

“업적 보상일 수도 있지!”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소금을 나눠 주고 있는 정다운에 대한 찬양일색뿐이었다.

‘이건 좋지 않군…….’

오창석은 기분이 찜찜했다.

이날 이때까지 틈새 마을은 온전히 촌장인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참가자라도 이 마을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통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뭔가?

이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촌장인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러는 사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촌장님, 안녕하세요. 소금 사시려고요?”

정다운의 미소가 참으로 밝고 명랑했다.

“허허. 나도 소금 좀 주시게.”

“얼마나 드릴까요?”

처음에 모래성처럼 쌓여 있던 소금은 어느덧 절반이나 팔린 상태.

내내 고심하던 그는 결국 큰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흠. 여기 있는 소금을 전부 나에게 넘겨주는 건 어떤가?”

“네? 이걸 다요?”

그 말에 정다운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모여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웅성웅성!

“전부 사시겠대!”

“설마 촌장님이 소금을 사재기하시려는 건가?”

그러자 오창석은 허허 웃으며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 말게. 소금도 식량이니, 마을 차원에서 공평하게 나눠 줄 생각이라네.”

‘굳이 왜? 그냥 우리가 사도 되는데?’

모두의 머릿속에 동시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창석은 이런 찝찝한 상황은 가급적 깔끔하게 해결해 버리고 싶었다.

‘눈치 스킬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란 말이지. 신경 쓰이는 상황이 생기면 계속 머릿속에 경고음을 보내니…….’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경시할 수 없었다.

이 소금을 시작으로 대체 무슨 일이 자신을 곤란하게 할지 알 수 없으니, 전부 사들이는 게 속 편한 것이다.

정다운이 조심히 물었다.

“저…… 이거 공짜가 아닌데, 괜찮으신가요?”

“허허. 강화 무기쯤이야 얼마든지 있다네. 얼마나 주면 되겠나? 10개? 20개?”

그는 여유로웠다.

던전 짬밥이 얼마인데, 1강짜리 무기들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이런 귀한 소금은 마을에서 관리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네. 필요한 사람들에겐 내가 알아서 나눠 주면 되지 않겠나.”

물론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선심 쓰면서 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때마다 보상처럼 나눠 주면 딱이지 않겠는가.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더욱 환하게 웃고 있었다.

‘촌장님 정말 좋은 분이시구나!’

대호갱…… 아니, 대고객이 납셨다!

“그럼 촌장님?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소금이 조금 더 있는데, 전부 사시겠습니까?”

“더 있다고? 허허, 알겠네. 마을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내가 다 사들이겠네.”

오창석은 화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화 무기야 많았다.

하지만…… 정다운의 소금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게 문제였다.

“이겁니다.”

쿠웅!

“……!”

“……!?”

갑자기 그들 앞에 돌소금으로 된 ‘제주도 돌하르방’이 나타났다!

크기가 거의 사람만 한!

그걸 본 오창석은 경악한 표정으로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그 자세 그대로 시간이 정지해 버렸다.

“아, 이거 소금 맞아요. 스킬 좀 연습할 겸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깎다 보니…….”

“…….”

정다운이 머쓱한 표정으로 얘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오창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이게 진짜 소금이란 말인가?”

“네. 한번 핥아 보실래요?”

그 말에 오창석은 주저 없이 돌하르방의 코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 입에 대 봤다.

“……짜군.”

“네. 소금이니까요. 전부 사실 건가요? 아니면 줄도 긴데 뒤로 빠지시고요.”

“…….”

쫄리면 빠지시든가!

정다운은 가차 없었다.

전혀 아쉬울 것 없는 그 모습에 오창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흘낏 주변을 쳐다봤다.

꿀꺽.

그러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큭, 제길.’

이렇게 되면 체면상 물러서기도 뭐 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감 넘침? 누가 보면 보스랑 싸우기 직전인 줄 알겠네.]

‘그러게.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시간이나 끌고 있네.’

토끼의 어처구니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정다운은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오창석을 자극하고 말았다.

“큭. 사, 사겠네! 강화 무기 몇 개면 되겠나?”

옳거니! 정다운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얼마나 가지고 계시는데요?”

*   *   *

<잘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신전의 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셨군요.>

알파는 수북하게 쌓여 있는 강화 무기들을 보며 아주 흡족해했다.

특히 막판에 촌장에게 받은 한 무더기의 장비들이 상당히 쏠쏠했다.

<이렇게나 많은 제물을 모으시다니! 소금 사막을 발견하게 도와준 오동민 군에게 감사해야겠군요. 그럼 어서 제물을!>

“잠깐. 그 전에.”

정다운은 테이블 위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

낡고 고장 난 잡동사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쓸모가 많았다.

“오, 이건 아직 쓸 만한데? 내구도가 아직 괜찮아. 이것도 쓸 만하고.”

그는 하나하나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며 살림살이(?)를 주워 담았다.

동료들도 거들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이게 다 몇 개야? 형 이 방패는 꼭 챙겨요. 희귀한 옵션이 붙어 있어요.”

“다운아, 이 장갑은 어때? 화염 내성이 있어서 뜨거운 것도 잘 만질 수 있을 거야.”

“오? 어디 줘 봐요.”

류승우가 건네주는 장갑의 정보를 확인해 본 정다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불귀신의 장갑 +2]

- 내구도 : 7/100(%)

- 옵션 : 화(火)속성 (2레벨)

“불귀신의 장갑?”

“스테이지-2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야. 주로 뜨거운 함정을 해체할 때 사용하곤 해.”

“오, 좋은데? 불판 갈 때 쓰면 딱이겠다.”

“이것도 있다. 다운아.”

구호열이 또 하나를 찾아냈다.

[깃털 장화 +2]

- 내구도 : 6/100(%)

- 옵션 1 : 가벼움 (1레벨)

- 옵션 2 : 방수(防水) (1레벨)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설마 물 위를 걷는 신발은 아니죠?”

“그 정도까진 아니야. 주로 상대를 교란하거나 늪지대에서 전투직들이 신는 건데…… 내구도가 좀 아쉽네.”

“그렇겠죠.”

마을 사람들이 소금 대신 주고 간 아이템들은 다 이런 식이었다.

좀 쓸 만하다 싶으면 내구도가 바닥이고, 내구도가 멀쩡하면 실제론 거의 쓰지 않는 잡템들뿐이었던 것이다.

윤진수가 투덜댔다.

“나쁜 사람들. 아무거나 달라 했다고 진짜 잡동사니만 버리고 갔나 봐요.”

“그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어. 소금이 아무리 귀해도 자기 목숨을 지켜 줄 중요한 장비들을 넘겨줄 리는 없으니까.”

정다운은 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알파의 말에 정다운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확 집중되었다.

“설마 내구도를 올릴 방법이 있어?”

<그냥 제물로 바치시면 됩니다.>

“……끝?”

그들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하지만 알파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옵션이 신전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기록된 힘은 다른 물건을 강화할 때 덧입힐 수 있습니다.>

“그럼 이 화염 내성 옵션을 다른 무기로 옮겨 달 수 있다는 말이지.”

“……!”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설명을 보태자,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렇습니다. 원래 이건 정다운 님이 마법사였다면,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을 무기에 인챈트하는 기능이지만…… 이젠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흠흠.”

<마법사가 아니니 이렇게라도 마법 수식들을 주워 모을 수밖에요.>

만약을 생각해 봐야 씁쓸할 뿐이었다.

하지만 류승우들에겐 그 정도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다운이가 마법사였으면 세계 정복도 가능했겠는데…….”

아무튼 대충 필요한 물건들을 다 추려 내고도 테이블 위에는 절반 이상의 잡템들이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그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지?”

[없음. 다들 돌아가서 고기 굽고 있어요.]

토끼가 주변을 확인해 주자,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제물을 바칩니다.”

번쩍!

그 순간 ‘테이블’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꿀꺽!

사실 이 거대한 테이블의 정체는 바로 신전에서 뜯어 온 생명의 제단이었다.

사람들이 ‘직접’ 바친 제물들이 제단으로 전부 흡수되는 걸 보며 알파가 말했다.

<이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제단과 제물, 그리고 제단에 손수 제물을 바치며 기뻐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신전의 주인이 여기 있으니.”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제 이곳에 두 번째 생명의 신전을 지을 수 있겠군요.>

“그러게.”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목적.

잡동사니야 아무래도 좋았다.

<신전이 둘이 되면 용의 사도도 더 늘릴 수 있을 겁니다.>

“어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지만.”

[에헤이! 배꼽이라니요?]

그때 갑자기 토끼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타났다.

[빌어먹을 종말의 용이 지배하는 이 땅에 에르테아 님의 영광을 가득 채우는 일인데 얼마나 숭고한가요!]

<호오, 흐뭇한 말씀이군요.>

토끼가 갑자기 에르테아의 충실한 종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신나는지 파닥파닥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히히. 유적지가 2개가 되는 거라고요! 그걸 관리하는 저도 격이 올라가는 거임!]

<…….>

충실한 종이긴 한데 아주 당당한 속물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승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 신전이라는 거 어디에 짓게? 서로 반대 진영이라면서. 이쪽 도우미에게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러니 몰래 지어야지.”

“……?”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엄지로 아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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