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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65)화 (65/393)

<던전리셋 65화>

마을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다운이 꺼낸 건 바로 범독수리 그리피오스의 시체였다.

무려 사람만 한 크기의 독수리 머리와 거대한 날개가 갑자기 혜성처럼 마을에 등장한 것이다!

‘다리는 맛있으니까 나만 먹어야지.’

먹다 남은 닭다리…… 아니, 독수리 다리는 굳이 꺼내지도 않았다.

게다가 소지품에는 여전히 외뿔 멧돼지들과 생선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이 정도쯤은 아깝지도 않았다.

사실 그로서는 요리해 먹기 제일 귀찮은 부위만 꺼낸 셈.

반면에 항상 식량에 목말라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눈이 휙 뒤집힐 만한 스케일의 식량이었다. 

꿀꺽.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누군가 용기 있게 먼저 입을 열었다.

“……범독수리다.”

수군수군.

그러자 그걸 시작으로 곳곳에서 웅성대는 목소리가 점점 사방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버, 범독수리야.”

“범독수리?”

“범독수리라니……!”

그렇다! 범독수리였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에게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식량이다!”

“우, 우와…….”

깜짝?

엉겁결에 오창석도 체면도 잊고 환호성을 지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푸르륵 도리질을 치고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으로 정다운에게 물었다.

“자, 자네…… 버, 범독수리를, 어, 어떻게……?”

근엄은 무슨, 당황해서 더듬거리는 그의 물음에 정다운은 솔직히 대답했다.

애초에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있길래 잡았는데요?”

……?

“자, 잡았다고!?”

잡았대-!

웅성웅성!

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

‘지금 이 자식이 범독수리 그리피오스를 잡았다고 말한 거야? 생산직이라며?’

어찌나 놀랐는지 오창석의 눈알은 부릅뜨다 못해 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반면에 류승우 일행은 크게 감동한 얼굴이었다.

“다운아!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런 엄청난 괴물을 잡다니!”

“와우. 형, 이런 놈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거예요?”

“다운이 너 이 녀석! 어쩐지 그동안 왜 이렇게 통통해졌나 했다!”

조금은 의심해도 될 법한데,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가 잡았다면 잡은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정다운이라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요령껏 잘 잡았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다만 전투 스킬도 없다더니 그 방식이 궁금할 뿐.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오창석이 혼자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정다운의 어깨를 토닥였다.

“허허허, 그렇게 된 건가? 그거였어!”

“……네?”

그가 거의 확신에 찬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자네, 추락해서 다 죽어 가던 놈을 함정으로 잡은 거 아닌가? 사실 우리도 마침 주우러 가던 참이었다네.”

‘음?’

“얼마 전에 이 괴물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우리도 무척 놀랐다네. 사실 먼저 줍는 놈이 임자였지.”

“……?”

그러자 토끼의 감탄하는 소리가 정다운의 귓가로 들려왔다.

[오. 눈치 스킬이 있다더니 이 정도면 제법 잘 맞춘 거 아님? 추락한 것도 맞고, 함정으로 잡은 것도 맞잖아요.]

‘그러게. 묘하게 다르지만 딱히 틀린 말은 하나도 없네.’

정다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모습에 오창석은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그랬군! 허허, 아무튼 잘됐어. 자네 덕분에 자네 동료들이 수고를 덜게 되었다네.”

그는 류승우 일행을 향해 말했다.

“떠날 채비를 풀게나. 찾을 것도 없는데 숲에 들어가서 뭐 하겠나?”

“그럼 골렘 유적지는 어떡합니까?”

류승우가 묻자 오창석은 손을 내저었다.

“됐네, 됐어.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지. 오랜만에 동료를 만났는데 자네들은 어서 들어가서 회포부터 풀게나.”

갑자기 엄청난 식량이 들어오자 오창석은 몹시 너그러워져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정다운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정다운 군? 범독수리의 몸통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그 부위는 혹시 어떻게 했나?”

마저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정다운은 태연히 대꾸했다.

“사자 몸통이요? 그거 너무 질겨서 버렸는데요?”

정확히는 제단 위에 버렸지만 말이다.

“흐음? 정말인가? 질겨서 버렸다고?”

“네. 타이어를 씹는 느낌이더라고요. 먹다가 턱 빠질 뻔했어요.”

‘……사실인 것 같군. 솔직한 녀석이야.’

정다운의 눈치를 살핀 오창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몸통이 제일 양이 많은 부위인데 아쉽게 됐어.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네. 누가 이 친구 좀 막사로 안내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촌장님.”

*   *   *

“여기가 제 집이라고요?”

정다운은 마을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 앞에 도착했다.

“네. 여기가 촌장님 댁을 제외하고 마을에서 가장 좋은 막사입니다. 정말 운 좋으신 겁니다.”

“마을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만 배정되는 곳이지요.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안내인들이 의기양양하게 막사를 자랑하는 모습에 정다운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 말. 멋. 지. 네. 요.”

[멋진 거지 소굴이네요, 낄낄.]

‘……너 내 생각 읽었냐? 대신 말해 줘서 고맙다.’

정말 멋지긴 개뿔. 이런 데서 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싶었다.

누더기도 이런 누더기가 없었다.

심지어 천막을 만들 때 가죽 세탁도 제대로 안 했는지 불쾌한 냄새가 스멀스멀.

이런 데 살다가는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땅굴이 더 낫겠는데?’

문득 류승우 일행들도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나 걱정이 돼서 물었다.

“승우 형. 형네가 사는 집도 이런 식이야?”

“어, 우리도 비슷해. 여기 오자마자 던전에서 공헌을 좀 했거든. 확실히 넓어서 좋지?”

“……넓긴 넓네.”

더 말해 뭐 하랴.

넓이는 코끼리 골렘보다 약간 더 넓은 정도였는데, 마치 군대에서나 볼 법한 야전 막사 느낌이었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그런데…… 흙바닥?

그의 표정을 읽었는지 안내인이 냉큼 대답했다.

“아무래도 주무시려면 침대가 필요할 겁니다. 침대는 주변 생산직들에게 식량 조금 쥐여 주면 금방 만들어 줄 겁니다.”

“아, 그건 괜찮아요. 침대는 그냥 제가 만들게요.”

“그러고 보니 생산직이라고 하셨죠? 알겠습니다. 그럼 편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꾸벅.

확실히 범독수리의 임팩트가 강렬했는지 안내인들의 태도는 내내 깍듯했다.

류승우 일행만 남기고 다들 돌아가자, 구호열이 슬쩍 밖을 살피며 정다운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눈치챘겠지만 여긴 식량이 전부인 곳이야. 범독수리를 절반만 내지 그랬니. 식량을 따로 좀 챙길 필요가 있는데.”

“에이, 괜찮아요. 음식은 나눠먹어야 더 맛있죠.”

“나눠먹지 않을까 봐 그렇지.”

“음?”

정다운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구호열은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여기 촌장은 욕심이 좀 많은 편이거든. 특히 식량에 민감하지.”

“맞아요. 오랜만에 고기가 손에 들어왔는데 퍽이나 나눠먹겠다.”

“그래도 다운이가 모두가 모인 곳에서 식량을 넘겨줬으니, 이번엔 맘대로 독식하지는 못할 거야.”

‘……왜들 이렇게 심각하지?’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식량이었던 정다운은 겨우 고기 몇 점(?)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처음부터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조심히 꺼내 들었다.

“저기,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어디 있어?”

“…….”

“…….”

“…….”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세 명의 표정이 동시에 숙연해졌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옛날부터 눈물이 많았던 구호열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정다운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제 없구나.”

“……그래. 우리 셋이 전부다.”

류승우는 씹어 삼키듯이 간신히 대답했다.

스테이지-1을 깰 때만 해도 9명이나 되던 동료들은 하나둘 그들의 곁을 떠나갔다.

괴물에게 먹히고, 함정에 당하고, 때론 같은 참가자들끼리 분쟁이 일어나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 차려 보니 셋이 되었다.

“스테이지-2로 넘어가자마자 동료의 절반을 잃었다. 스테이지-1이 지옥이었다면, 거긴 전쟁터였어.”

‘바분의 스테이지다.’

정다운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에 토끼가 조용히 속삭였다.

[처음으로 다른 기수 참가자들과 만나게 되는 곳이라 그래요. 강화 무기를 든 선배들이 식량을 노리고 신입들을 초반에 공격하면 답이 없거든요.]

뿌득!

정다운이 무의식중에 이를 갈자, 그의 조용한 분노에 막사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 변화를 제일 먼저 눈치챈 건 바로 윤진수였다.

‘음? 정다운 형이 뭔가 변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의 기질이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마치…… 보스급 괴물이라도 마주한 것 같은 느낌.

갑자기 아까 봤던 범독수리의 머리가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그런데 그때였다.

“뽀뀨?”

“어?”

갑자기 정다운의 품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뽀뀨의 모습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뭐야? 땅다람쥐잖아!?”

“우와, 이거 뭐야? 키우는 거야?”

“헐, 어떻게 길들인 거지?”

삽시간에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뽀뀨는 뀨뀨 웃었다.

그 바람에 막사를 감돌던 무거운 분위기는 눈 녹듯이 사라졌고, 정다운도 결국 표정을 풀며 말했다.

“휴, 아무튼 오늘은 밤새 지난 얘기나 나누자고요. 그런데 여기도 저녁이 되니까 날이 좀 쌀쌀해지는데?”

그 말에 구호열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아, 맞다. 너 침대부터 만들어야 돼. 새벽 되면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와서 좀 추울 거야. 피곤하면 일단 오늘은 우리 막사에 와서 자고, 내일…….”

“온돌 설치.”

[온돌을 설치합니다.]

“……!?”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눈앞에서 정다운이 갑자기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는 다짜고짜 막사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땅을 거침없이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푸바바박-!

처처처처척!

“뭐, 뭐야!?”

“형, 뭐 하는 거야?”

“……스킬?”

류승우를 비롯한 세 명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정다운의 행동을 바라만 봐야 했다.

“거기, 길 막지 말고 좀 비켜 줄래?”

“어? 어어?”

푸바바박-!

그들이 어버버 하는 동안 막사 전체에 온돌 바닥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천막 한 귀퉁이에 화로를 만들어 불씨를 지폈다.

그러곤 손가락을 따악-! 튕기며.

“화력 온.”

화르륵!

“와……!”

이번에도 윤진수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온기로 바뀐 것이다!

“헐, 이거 뭐야? 보일러 스킬이야?”

“맙소사. 이런 스킬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따뜻해!”

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정다운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손짓 한 번에 흙벽돌이 주루룩 나타나더니, 짠! 하고 퀸 사이즈 침대가 하나 생겼다.

그 위에 납작한 돌판을 얹어 온돌을 거기까지 쭉 연결시켰더니…….

“헉? 이거 온돌 침대야!”

“따뜻해!”

“아니, 침대 만드는 스킬이라고?”

침대를 만져 보자 뜨끈뜨끈!

“아, 소파도 몇 개 있어야 분위기가 살려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사 한가운데에 흙 소파 4개가 뚝딱 완성됐다.

그 위에 복슬복슬한 범독수리의 갈기털을 덮고, 온돌을 또 연결시켰다.

또 뜨끈뜨끈!

“온돌 소파다!”

“따뜻해!”

“소파를 만드는 스킬이라니!”

류승우들은 바보같이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정다운은 아예 이 막사를 자기 입맛대로 싹 뜯어고치기로 결심했다.

“흙 뭉치기!”

“……!”

그 순간 류승우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의 손이 닿는 모든 땅이 마법처럼 쭉쭉 딸려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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