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64화>
정다운의 목소리가 류승우 일행에게 닿자,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류승우는 순간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기억 속에 영원히 묻어 두기로 한 그리운 얼굴이 멀리서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승우 형! 호열 아저씨! 진수야!”
“저, 저 사람…… 누구 좀 닮지 않았어요?”
윤진수가 더듬더듬 입을 열자, 구호열도 퍼뜩 정신이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다.
“그, 그러게. 어째 생김새가 친숙…….”
휙.
그때 갑자기 류승우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말릴 새도 없이 다짜고짜 튀어 나가 정다운을 덥석 끌어안았다.
“다운아!”
“형……!”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윤진수와 구호열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뭣! 정다운이라고!?”
“다운이 형이 왜 저기서 나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죽어도 한참 전에 죽은 사람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승우 형, 위험해요! 뭔가 환상을 보여 주는 함정일 수도 있……!”
다급히 경고하던 윤진수는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리가?
류승우에겐 ‘불굴의 투지’라는 스킬이 있었다.
스킬 덕에 단단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어 어지간한 정신계 마법으로는 절대로 그를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그럼 진짜로!? 진짜로 다운이 형이라고?’
류승우는 정다운을 와락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렸다.
“너, 너 왜 여깄어? 아니, 왜 안 죽고 살아 있, 아니, 아니! ……너 괜찮냐?”
횡설수설 끝에 간신히 안부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에 정다운은 환하게 웃었다.
“어, 나 괜찮아. 완전히 멀쩡해.”
정다운의 눈에서도 울컥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한 템포 늦긴 했지만 구호열과 윤진수도 달려와 정다운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다운아! 너 진짜 우리가 아는 정다운 맞아? 아니, 뭘 먹고 살이 이렇게 쪘어!?”
“형! 흐어어엉……!”
이 상황에 긴말이 필요할까.
그들은 던전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난 동료들이었다.
가장 무섭고 두려울 때, 서로를 의지하고 독려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던 첫 스테이지.
그 짧지만 강렬했던 한 달 동안, 그들이 나누었던 뜨거운 우정과 전우애는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속에 전부 담겨 있었다.
[킁, 왜 갑자기 콧물이 나지……. 감기인가?]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토끼는 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쓱 훔쳤다.
그동안 참가자들이 죽거나 서로 반목해서 이별하는 건 수도 없이 봤지만, 이렇게 다시 재회하는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 훌쩍.]
* * *
정다운은 모두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너무 간단해서 탈이었다.
“뭐? 산을 넘어왔다고? 저 바위산을?”
“어. 좀 오래 걸리더라고.”
“아니,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진짜 괜찮은 거지?”
류승우는 걱정스런 눈으로 정다운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함정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왔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생존자 전체 회복’은 완전히 잘려 나갔던 자신의 팔도 다시 만들어 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생산직이었던 정다운이 혼자서 던전을 넘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떠올리자, 류승우는 또 한 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 싸울 줄도 모르는 여린 녀석이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분명 혈혈단신으로 무서운 괴물들을 피해 숨고 도망치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피를 흘렸겠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아득바득 여기까지 찾아와 준 정다운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고생이 정말 많았겠구나.”
“고생?”
그 말에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그동안 자신이 해 온 무수한 고생들이 떠올랐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
그러네. 이건 고생이 확실했다. 말 그대로 노가다 아닌가.
“어어, 나 진짜 고생 많았네.”
……주륵, 주륵, 주르륵.
그 대답에 류승우와 구호열, 윤진수의 눈에서는 또다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니, 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저리 담담하게 대답을 한단 말인가!
그들은 다시 정다운을 뜨겁게 끌어안으며 엉엉 울었다.
“크흐흑! 그래, 고생 많았다.”
“잘 왔어, 잘 왔어!”
“흐어엉. 형,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어? 아니, 고생은 피차 많았을 것 같은데…….”
이미 한차례 눈물을 쏟아 낸 정다운은 조금 침착해져 있었다.
그간 일행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눈물을 훔치며 윤진수가 그에게 물었다.
“다운이 형,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에요? 혹시 그사이에 전투 스킬이라도 생긴 거예요?”
“전투 스킬? 음…….”
뭐가 있더라. 외뿔 멧돼지의 기운?
‘……은 그냥 힘만 세지는 거고. 과녁? ……도 그냥 보이는 거고. 게이트도 그냥 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건 없었다.
정다운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투 스킬 같은 건 아무것도 없…….”
와락!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료들이 또 그를 뜨겁게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맙소사! 전투 스킬도 없이……! 크흐흑!”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거야!”
“…….”
아니, 이제 슬슬 그만 좀 해 줬으면 좋겠다고 정다운은 생각했다.
그때, 류승우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일단 마을로 들어가자! 너는 지금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해!”
“맞아요. 일단 마을로!”
어버버 하는 사이에 정다운은 그렇게 틈새 마을로 끌려 들어갔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오창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마을 밖에서 들려온 소란을 듣고 마을 사람들도 같이 나와 모여 있었다.
“아니, 자네들. 왜 다시 들어오는 건가? 골렘 유적지는 어쩌고?”
“헤어진 동료를 다시 만났습니다.”
“호오, 동료라고? 그거참 축하할 일이군. 정말 잘됐네.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기쁜 일도 생기는군.”
류승우의 대답에 오창석은 표정을 숨기고 기꺼이 정다운을 반겨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시선은 재빨리 정다운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마스터 경지에 오른 눈치 스킬이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오창석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대체 이놈 뭐지?’
그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동안 그의 눈치 스킬은 사람의 첫인상을 거의 0.1초 만에 파악해 주곤 했었다.
예를 들어, 구호열은 생긴 건 무섭지만 의외로 섬세한 인간.
윤진수는 그냥 시건방진 애송이.
그리고 류승우는 예의는 바르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혼쭐 날 것 같은 위험한 인간이었다.
이 모든 이미지는 오창석의 안위와 관련되어 있어서, 평소에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냥 딱 잘라 말해-
위험한가, 안 위험한가.
-를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 기준에 놓고 정다운을 파악하려 했더니,
‘애매한데!?’
애매했다!
그는 어딘가 위험한 느낌이 들면서도, 반면에 엄청나게 만만해 보였다.
‘와씨……. 너무 애매한데? 뭐지, 이 녀석!?’
분명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또 만만하게 보기엔 굉장히 찝찝한 이 기분은 대체 뭘까?
항상 자신에게 확실한 답을 알려 주던 눈치 스킬이 지금은 고장 난 저울처럼 이랬다저랬다 몹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정다운에게 악수를 건넸다.
“어, 음……. 환영하네. 흠흠. 나는 이 마을의 촌장 오창석이라고 하네. 여기까지 혼자 찾아왔을 정도라면 전투력은 안 봐도 대단하겠어.”
“아, 안녕하세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윤진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다운 형은 생산직이에요. 전투 스킬은 없어요.”
‘뭣! 생산직이라고!?’
그 말에 오창석이 날카로운 눈썰미로 정다운의 행색을 다시 훑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모든 장비들이 핸드메이드였다!
심지어 갑옷조차 괴물들의 뼈와 가죽을 이용해 한 땀, 한 땀 만들어 낸 수작업의 냄새가 풀풀 났다.
그의 시선이 짜게 식었다.
‘이제 보니 뭐 하나 제대로 된 아이템을 획득한 흔적이 없구나! 진짜 생산직이었어. 응? 아니, 그런데 살이 왜 이렇게 통통하지?’
흠칫!
눈치 스킬을 풀파워로 발휘하고 나서야, 그는 결국 눈치채고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저 토실토실한 살과 탱탱하고 때깔 좋은 피부를 보라!
‘대체 식량이 얼마나 많은 거지?’
오싹!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아왔는지, 그에게서 물씬 느껴지는 부르주아의 기운에 오창석은 그만 소름이 돋아 버렸다.
여기가 만약 현대였으면 최소 건물주! 혹은 갑부!
입고 있는 옷들은 죄다 헐값이었지만, 그 내용물이 알짜배기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생산직이고 전투직이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저 대단한 류승우만 해도 그동안 먹을 거 못 먹고 고생만 죽어라 해서 볼살이 쪽 빠져 있지 않은가!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다운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았다.
“정말 진심으로 환영하네. 그동안 고생도 많았을 테니, 자네에겐 마을에서 가장 크고 편안한 막사를 내주겠네.”
“……!”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갑자기 나타난 신입에게는 너무나 큰 특혜였던 것이다.
“아니, 촌장님……!”
그를 보좌하고 있던 청년 한 명이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끊으며 오창석이 근엄하게 말했다.
“이보게들. 자네들도 던전에서 잃어버린 동료와 재회한다는 게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알지 않은가. 나는 지금 너무나 기쁘네.”
“…….”
그 말에 마을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숙연해졌다.
그리고 하나둘씩 정다운에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오창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자신의 본래 의도를 꺼냈다.
“그런데 말일세. 정다운 군. 우리 마을엔 규칙이 한 가지 있다네.”
“네? 규칙이라니요?”
“마을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기 위해선 먼저 가지고 있는 식량을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네.”
“식량을요?”
오창석은 새로 온 신입들에게 이 말을 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러웠다.
던전에서 가진 식량을 바치라는 건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정다운에게 오창석이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태연히 말했다.
“그렇다네. 우리는 모두 공동 운명체니까. 흠흠, 물론 그렇다고 가진 전부를 낼 필요는 없네.”
“네. 얼마나 드리면 되나요?”
‘음? 이렇게 순순히!?’
전혀 거리낌 없는 정다운의 말투에 오창석이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던전의 부르주아가 주섬주섬 동전 지갑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쿵, 하고 식량이 나타났다.
“이 정도면 될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