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63화>
류승우 일행이 틈새 마을에 들어온 건 겨우 2주 전의 일이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스테이지-4의 던전 하나를 공략한 상태였고, 잠시 쉴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던전을 헤매던 이들에게 ‘마을’이라는 공간은 정말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괴물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고 밤에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 이때까지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가죽을 덧대 만든 천막은 또 어찌나 안락하고 편안한지!
게다가 이곳에선 끼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마을에 있는 동안에는 모두가 같이 사냥을 하고 그 식량들을 공평하게 나눠 먹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들어올 때 가지고 있던 식량의 대부분을 마을에 상납하는 게 의무 사항이었다.
약간 공산주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큰 부작용은 없었다.
어차피 참가자들에게 이곳은 던전 공략 전에 잠시 거쳐 가는 쉼터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을의 촌장인 ‘오창석’은 그 중심에서 균형을 아주 잘 잡아 주는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눈치껏 잘 조율해서 마을의 안녕을 꾀했다.
그러다 보니 오창석은 마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잡고 있었다.
애초에 이 마을을 만든 사람도 그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까진 알 수 없는 일.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그 절대적인 권력자 오창석이 류승우 일행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러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 명령에 가까웠다.
“네? 우리더러 범독수리의 시체를 찾아오라고요? 우리가 왜요?”
때아닌 오창석의 명령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대꾸를 하는 키 작은 소년의 이름은 윤진수였다.
그를 흘낏 내려다보는 오창석의 눈에 잠깐이지만 차가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시건방진 꼬맹이! 감히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드는 건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한번 날 잡아서 크게 한 소리 해 주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하필 이 소년에겐 오밤중에 뒤통수 맞기 딱 좋은 원거리 스킬이 있었다.
철모르고 날뛰는 놈 훈계 한번 잘못했다가 죽어 나가는 꼰대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이번만 특별히 봐준다.’
오창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윤진수를 살살 달랬다.
“왜긴? 식량 때문이지. 진수 너도 분명 며칠 전에 저쪽 숲에서 범독수리가 추락하는 모습을 봤지?”
“보기야 했죠.”
“그래. 그런 눈 먼 식량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얼른 주워 와야 하지 않겠니? 너도 고기 좋아하지? 마을 사람들과 다 같이 밤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꼴깍.
젠장, 고기라는 말에 침샘이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뼈다귀들이 넘쳐나는 이 망자의 땅에서 고기는 언제나 귀했다.
윤진수는 애써 아닌 척 딴청을 피우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런데 거기 위험하다면서요? 이미 탐색조가 갔다가 반죽음이 돼서 돌아왔던데요.”
그 말에 옆에 있던 근육질의 거구가 말을 보탰다.
“저도 들었습니다. 골렘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을 발견했다던데, 맞습니까?”
“사실이네. 호열 군.”
오창석이 인정하자, 구호열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요즘 들어 계속 저희들만 번거롭고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것 같습니다만. 제 기분 탓입니까?”
“흠흠, 기분 탓이 아니라네. 내가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뜻이요? 무슨 뜻입니까?”
덩치가 거의 2배 이상 차이 나는 거구가 인상까지 험악해지자 진짜로 살벌했다.
하지만 오창석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태연히 말을 늘어놓았다.
“자네들은 어차피 마을에 잔류하지 않고 던전 공략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나. 그러려면 위험한 곳을 찾아다녀야 업적을 쌓기 좋지 않을까?”
“……그렇긴 합니다만.”
“마을의 신입들에게 궂은일을 몰아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그래야 뒤쳐진 이들이 최대한 빨리 성장할 테니까.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지.”
궤변이 섞인 말이었지만, 오창석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사람을 설득하는 울림이 담긴 목소리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청렴결백한 표정.
“아, 물론 아직 신입들이라 겁이 나는 건 충분히 이해하네. 하지만 목적은 어디까지나 범독수리의 시체야. 골렘들을 다 잡기 힘들면 언제든 도망치게. 물론 힘이 닿는다면 동굴의 정체까지 파악할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진솔함과 배려가 섞여 있지만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는 말이 길게 이어졌다.
구호열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역시 이런 단순무식한 놈은 다루기가 쉽단 말이지.’
오창석은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멤버의 의사를 확인했다.
“류승우 군, 자네도 물론…….”
흠칫.
아까부터 말이 없던 류승우를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친 오창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흠. 어떡할까…….”
움찔.
류승우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오창석은 속으로 움찔움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류승우를 상대하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제길, 겨우 신입 주제에 이런 위압감이라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자신의 ‘예감’은 이 류승우라는 인간이 괴물보다 훨씬 더 무서운 놈이라고 소리를 빽빽 질러 대고 있었다.
신입 참가자니까 경험상 자신보다 분명 무력이 약할 텐데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 긴장감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갈 것만 같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건 대체 왜일까.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승우는 잠시 생각하던 끝에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골렘 유적지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장비를 좀 지원해 주시겠습니까?”
“아, 알겠네.”
오창석은 이 깍듯한 예의 바름조차 거슬렸다.
* * *
[사실 이 마을엔 슬픈 전설이 있죠.]
토끼는 지그시 눈을 감고 언젠가 다른 관리자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정다운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옛날 어느 던전에 ‘오창석’이라는 이름의 약해 빠진 겁쟁이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에겐 사실 독특한 스킬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것이었다.
눈치 (MASTER)
- 눈치를 잘 챈다.
처음 이 스킬이 생겼을 때만 해도 오창석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형편없는 스킬이라며 낙담을 했었다.
하지만 레벨이 점점 올라갈수록 눈치 스킬은 서서히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에게 위험이 다가오는 순간을 잘 알아차리게 된 것!
그리고 그 능력은 도처에 위험이 깔려 있는 던전에서 굉장히 유용한 생존 스킬이 되어 주었다.
전투할 때 상대의 어느 부분이 가장 취약점인지, 또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 것인지.
하물며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까지도 그는 눈치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창석은 스테이지-4에 올라오게 되었고, 동료들과 힘을 합쳐 최종 유적지 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눈치’채고야 말았다.
그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절대적인 운명을.
‘들어가면 죽는다!’
압도적인 공포!
절대적인 죽음!
‘반드시 죽는다! 난 분명 죽을 거야!’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오창석은 잔뜩 겁에 질려 그만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던전 밖으로 탈주해 ‘틈새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비겁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말이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정다운이 깜짝 놀라 물었다.
“3년이나!? 그쯤 되면 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오류 아니냐?”
[노노. 님이랑은 완전 다르거든요? 그는 던전의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이론적으로 가능한 케이스예요. 잔류 페널티라고 아셈?]
“잔류 페널티?”
[보통 스테이지를 제때 공략하지 못하게 되면 잔류 페널티가 따라오게 되요. 스테이지-1 같은 경우엔 그게 ‘괴물 쥐떼의 습격’이었어요.]
하지만 이곳 스테이지-4는 전혀 다른 방식의 페널티가 존재했다.
[바로 식량난이죠.]
스테이지-4의 잔류 페널티는 바로 식량의 고갈이었다.
던전이 리셋되지 않는 이상, 시간이 갈수록 점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오창석이 터를 잡은 ‘망자의 땅’은 그중에서도 가장 먹을 게 부족한 지역이었다.
아니, 아예 아무것도 없었다.
괴물이라고는 먹지도 못하는 해골 병사들만 나타나고, 농사라도 지으려 하면 농작물이 전부 썩어 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석’이 밤낮 가리지 않고 나타나기 때문에 자다가 갑자기 해골 병사들에게 습격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창석의 눈치 스킬은 언제 어디서 비석이 올라올지가 예측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비석이 나오지 않는 안전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 위에 마을을 건설했다.
[……그게 바로 ‘틈새 마을’의 시작이었죠.]
“아하.”
토끼가 말을 마치자 정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다 좋은데 말이지. 왜 저렇게 못 만든 거야?”
[……네?]
뜻밖의 지적에 토끼가 어안이 벙벙했다.
정다운의 혹평은 계속되었다.
“마을 꼴이 저게 뭐야? 3년 동안 지었다면서 그동안 대체 뭐 한 거지?”
마을의 상태는 허름해도 너무 허름했다.
괴물의 습격을 막기엔 턱없이 부실한 목책들이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가죽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천막들은 바람이라도 훅 불면 날아갈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어설퍼 보였다.
한마디로,
[거지 같다고요?]
“어. 딱 그거. 혹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허접하게 만든 걸까?”
[저 정도면 나름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요? 애초에 여긴 건축 자재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는 곳이라고요.]
“일손은 많을 거 아냐?”
[똥손들인가 보죠.]
그런 대화들을 나누면서 정다운은 점점 마을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는 참가자들 2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그들의 단단한 갑옷을 보니 새삼 이곳이 스테이지-4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정다운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미 모습을 감춘 토끼를 향해 중얼거렸다.
“어…… 나 좀 설레. 이게 뭐라고 설레지? 사람들이 나 공격하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요? 그땐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심드렁한 토끼의 반응에 정다운이 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 놔. 죽이긴 뭘 죽여? 동료들 행방을 물어봐야 된다고.”
[그럼 물어보셈. 응? 안 물어봐도 되겠는데요?]
“어?”
시간을 너무 끌었더니, 마을 쪽에서 먼저 몇 명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상당히 낯이 익었다.
정다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얼굴까지 벌게졌다.
“어어? 저, 저 사람들!?”
그리운 얼굴들이 그곳에 있었다.
“승우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