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61화>
[<돌 깨기> 스킬이 9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돌 깨기> 스킬이 10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돌 깨기> 스킬을 마스터했습니다.]
“헐.”
[히익?]
뜬금없는 레벨 업이었다.
[괴물을 잡은 것도 아닌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폭업이라니!?]
“음. 업적 창은 안 떴지만 업적으로 인정은 해 준 건가?”
그 말도 맞아서, 토끼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산 하나를 깬 셈인데 돌 깨기 마스터일 수 있지. 이 이상 뭘 더 깨겠어요…….]
“돌 깨기! 돌 깨기!”
[아닛? 고새를 못 참고 또 뭘 깨고 있는 거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다운은 바위산에 굴을 파고 있었다.
그는 더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야! 이젠 건드리기만 해도 돌이 튀어나오는데?”
마스터 레벨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망치로 살짝 두드렸는데도 바위벽이 원하는 대로 쩍쩍 갈라지는 것이다!
“스킬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도 해 볼 겸 여기에 아지트나 하나 만들어 두자!”
경험상 참가자들이 죽는 대부분의 이유는 ‘방심’이었다.
이곳에 또 얼마나 무서운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안전지대부터 만들어 두는 게 당연했다.
게이트도 좀 안전한 곳에 설치해 놔야 편하게 왕래하지 않겠는가.
“금방 만드니까 토끼 넌 그동안 골렘들 데리고 주변 분위기 좀 살피고 와.”
[오키요. 가자, 흙돌이들아.]
토끼는 고릴라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골렘들을 전부 끌고 숲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정다운은 고릴라에게 보초를 서게 하고, 굴 파는 개미처럼 거침없이 바위 동굴을 파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속도가 엄청났다.
“돌 깨기! 돌 깨기!”
퍽! 팍! 쩍! 쩌저적!
이쯤 되면 거의 흙 뭉치기 스킬로 땅굴을 파던 속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
정다운은 신이 나서 동굴의 크기를 쭉쭉 넓혔다.
흙 계단을 밟고 올라가 천장도 높이 깎고, 튼튼하게 기둥도 세웠다.
돌이 깨지는 결을 거의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게 돼서 엄한 곳이 무너지는 일이 없었다.
“조명도 좀 달아 볼까?”
화악!
벽 곳곳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태양석을 박아 넣자, 횃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굴 안이 밝아졌다.
“캬, 진짜 형광등이네. 동굴 밖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감탄을 연발하며 태양석을 중심으로 벽을 예쁘게 척척 조각을 하자, 인테리어가 거의 고급 호텔에 온 기분이 물씬 났다.
“크으! 아라비안나이트 비밀 동굴 같네.”
<신전을 이렇게 열심히 꾸미시면 좋으련만…….>
아까부터 알파가 뭐라 구시렁거리고 있었지만, 정다운의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이러고 있으니 자신이 마치 바위산에 숨겨진 비밀 공간을 만드는 전설의 은거기인이 된 기분이었다.
인테리어 뽕에 취해서 내부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이던 정다운의 욕망은 결국 동굴 외부까지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동굴 위치가 어딘지 못 찾으면 안 되니까, 밖에도 뭔가 표시를 하는 편이 좋겠지?”
<굳이 그럴 필요가? 그럼 더 이상 비밀 동굴도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나갈 땐 문을 바위로 막아 두면 되지, 뭐. 음, 어떻게 꾸며야 잘 꾸몄다고 소문이 날까? 벽화라도 그릴까? 석상을 조각할까?”
<…….>
아니, 그냥 동굴일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뜬금없이 장인의 혼을 불태우는 정다운을 보며 알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정찰을 나갔던 토끼가 몹시 당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님, 큰일 났어요!]
“응?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저 앞에서 한 무리의 참가자들을 발견했거든요.]
“헐, 사람들을 만났다고!?”
그 말에 정다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럴 수가! 참가자들이라니!
죽음의 산맥을 넘어오자마자 사람들을 찾다니, 그동안의 모든 고생들이 보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토끼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건 왜일까?
녀석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네, 만나긴 만났는데……. 골렘들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공격을 해 오더라고요.]
“……!”
흠칫 놀라는 정다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숲에서 스테이지-1의 최종 보스들을 마주쳤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것도 다섯 마리나!
애초에 말이 통하는 상대도 아니라서 다짜고짜 모든 스킬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스테이지-1에서 최종 보스를 한번 쓰러뜨리고 올라온 실력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잠깐, 골렘들은 다 어디 두고 너 혼자 돌아온 거야?”
그러고 보니 데리고 나갔던 골렘들이 한 기도 돌아오지 않은 게 몹시 불안했다.
[지금 거의 전멸 직전이에요.]
“골렘들이!?”
[아뇨. 참가자들이요.]
“……응?”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긁적.
토끼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금 그 참가자들, 5대5로 정정당당하게 궤멸 중임.]
“아 놔! 제일 먼저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어디야, 당장 앞장서!”
사태가 더 애매해졌다.
간신히 찾아낸 참가자들을 이런 식으로 잃을 순 없었다.
* * *
참가자들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핵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오오옴!”
“으악! 시, 실드!”
쿠웅-!
스킬로 만들어 낸 투명한 방패 위로 육중한 주먹이 내리꽂혔다.
방패가 어찌나 단단한지 흙으로 된 주먹이 허공에서 짓뭉개졌다.
하지만 상대는 흙 골렘!
순식간에 주먹이 원상태로 재생되는 걸 보며 참가자들은 울상을 지었다.
“아니, 왜 여기에 골렘들이 돌아다니는 거냐고! 여기 분명 쉬운 사냥터였잖아!”
“으악! 또 온다!”
쿵쾅쿵쾅!
“크워어!”
“오옴! 오오옴!”
골렘들은 극도로 분노해 있었다.
아무리 정다운의 손에서 재창조된 골렘들이라도 그 본성은 괴물.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적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머리가 나빠 말귀도 안 통하는 놈들이라, 토끼가 일찌감치 정다운부터 부르러 간 것은 몹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간신히 이곳에 도착한 정다운은 참가자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아직 살아 있구나!”
역시 스테이지-4 참가자들은 다르다 해야 할까?
고전을 면치 못하곤 있지만, 골렘들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버텼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거의 죽음이 그들 코앞까지 다가온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정다운은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어, 음. 여기서 쟤네들이 사실 내 골렘이었다고 하면 화내려나?”
[네. 아마 님도 적으로 인식하고 같이 공격할 듯요.]
“…….”
이걸 어쩌나.
해프닝이었다고 웃고 넘어가자 하기엔 사람들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판인데, 일단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멈……!”
정다운이 골렘들에게 멈추라고 소리를 치려는 찰나였다.
“저기 또 한 마리 있다!”
“헉!?”
참가자들이 먼저 정다운과 함께 온 고릴라 골렘을 발견하고 경악을 했다.
그리고 마침 그 곁에 서 있던 정다운도 발견하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람도 쫓기고 있어!”
“조심해요! 뒤에 골렘이 노리고 있습니다!”
“……응?”
[쟤들 지금 뭐라는 거임?]
얼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전투 상황에 등장한 또 한 기의 골렘.
그리고 놈에게 쫓기는(?) 정다운을 발견하자, 참가자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라고요!”
“거기! 골렘이! 있다고!”
“이 답답……!”
너무들 절박해서 순간적으로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음, 이럴 땐…….
“에라, 모르겠다! 튀자!”
[어? 왜 튐?]
정다운이 갑자기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하자, 토끼도 모습을 감추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용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골렘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크워?”
“오옴?”
영문은 모르겠지만, ‘튀자’는 말이 도망치자는 뜻인 건 잘 알고 있었다.
골렘들은 그 즉시 몸을 돌려 정다운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크워어!”
“오옴! 오오옴!”
쿵쾅, 쿵쾅!
……그 모습이 몹시 살벌했다. 적어도 참가자들이 보기엔.
“왜…… 골렘들이 저 사람을 따라가는 거지?”
“서, 설마 우리를 구하기 위해 유인하는 거야?”
인간의 순간 기억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조작력도 있어서 말도 안 되는 디테일이 붙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방금 뭔가 손동작을 한 것 같아!”
“괴물을 유인하는 스킬인가!?”
이 얼마나 숭고한 스킬이란 말인가!
정다운이 골렘들을 전부 데리고 멀어지자, 지금까지 지옥 같던 순간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변이 고요해졌다.
참가자들은 완전히 진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지만, 자신들을 구해 준 그가 너무 걱정됐다.
“그 사람, 괜찮을까?”
“도망칠 자신이 있으니 유인한 거 아니겠어?”
그런데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쓰러져 있던 막내 팀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 왜 이런 데 혼자 돌아다니고 있던 걸까요?”
“그러게. 설마…….”
“다른 팀에서 떨어져 나온 게 틀림없어요.”
낙오자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나쁜 짓을 했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팀에서 쫓겨났든가.
혹은 반대로 팀원이 모두 전멸했든가.
“설마 지금처럼 유인 능력으로 팀을 위해 희생하고 나온 건 아닐까요?”
“…….”
그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정다운이 모르는 사이에 그는 점점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구하러 갈까?”
다들 눈치를 보았다.
간신히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는데, 6기나 되는 골렘들에게서 그를 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구해 준 인물을 이대로 모른 척하는 것도 마음 쓰이는 일이었다.
“일단 뒤쫓아가 보자. 최소한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야 구하든 포기하든 할 거 아냐.”
끄덕.
그 말엔 모두가 동의했다.
다행히 골렘들이 지나간 길은 풀이고 나무고 엉망이 되어 있어 추적이 쉬워 보였다.
그들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그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정다운이 만든 동굴 아지트를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헉.”
“설마 유적지!?”
딱 봐도 평범한 동굴이 아니었다!
입구를 중심으로 조각되어 있는 저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너무나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정다운이 신나게 꾸며 놓은 저 인테리어들이 모르는 사람이 볼 땐 굉장히 공포스럽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크워어…….
오오오옴…….
꾸왁, 꾸왁.
심지어 동굴 어둠속에서는 수많은 골렘들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스테이지-1의 최종 보스가 여기선 잡몹들처럼 많나 보다.”
대체 저 안에 몇 마리나 있는 걸까. 10마리? 100마리?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우리만으로는 절대 무리야. 돌아가자.”
“그, 그래요.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마을’에 알리는 게 급선무예요.”
그들은 잠시 떠나기 전에 주변을 살폈으나, 정다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안타까움을 뒤로 남긴 채 결국 등을 돌리는 그들이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들의 그림자 뒤로 따라오는 자그마한 땅다람쥐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