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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59)화 (59/393)

<던전리셋 59화>

- 보상 : 앞으로 당신의 눈에 ‘과녁’이 보입니다.

묘한 뉘앙스의 보상에 정다운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스킬은 분명 아닌데……. 이게 대체 뭔 보상이지?”

[과녁이 보인다잖아요. 안 보임?]

“안 보이는데?”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려 봤지만 과녁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활 관련된 보상이니까 혹시 활을 들고 있어야 보이려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님, 활은 있음?]

그 말에 정다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없지.”

[에휴. 화살로 범독수리를 잡은 최초의 인물이 정작 수중에 활 하나 없다니, 던전이 헛다리 짚을 때가 다 있네요.]

“이참에 하나 만들지,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지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하는 정다운.

토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런 경우엔 아이템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게 보통 아님? 왜 당연하게 만들 생각부터 하시지?]

“그거 찾아다닐 시간에 만드는 게 더 빠르니까?”

어차피 활 같은 건 원시인들도 만들어 쓰던 무기 아니던가.

탄성 있는 나무로 활대를 만들고 양 끝에 끈만 연결하면 끝이었다.

가지고 있는 재료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활줄은 또 돼지 힘줄임?]

은근슬쩍 아이디어를 내보는 토끼였지만, 비웃음만 샀다.

“활줄을 힘줄로? 그걸론 어림도 없어. 두께가 일정하지도 않고 길이도 짧아. 게다가 시간 지나면 줄이 아니라 그냥 말린 고기잖아. 썩으면 음식물 쓰레기고.”

[…….]

팩트로 얻어맞는 토끼였다.

역시 만드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토끼는 그냥 입 다물고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실제로 저번에 뼈 갑옷 이음새로 썼던 외뿔 멧돼지의 힘줄은 전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건 그나마 튼튼하게 고정시키는 용도라 괜찮았지만, 활줄은 탄성이 유지되어야 했다.

“활줄이야 어차피 저번에 심심해서 꼬아 둔 노끈이 많이 남아 있거든.”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외뿔 멧돼지의 기운을 사용했다.

그리고 소지품에서 꺼낸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구부렸다.

콰직, 우지끈!

몇 개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부러지지 않고 잘 휘어지는 가지가 나왔다.

그걸 나이프로 조금 다듬고는, C자로 구부려 양끝에 노끈을 달았다.

“완성.”

[헐. 빨라!?]

무슨 3분 요리도 아니고, 3분 만에 활 하나가 뚝딱 생겨났다.

당연히 명궁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크모 궁수들이 들고 다니는 대나무 활 수준은 되어 보였다.

정다운은 그걸 들고 화살 발사대로 다가가 화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활에 걸고 시위를 당겨 보았다.

“활 이렇게 쏘는 거 맞나?”

자세가 조금 어설펐다.

아니, 아주 많이 어설퍼서 토끼가 낄낄거렸다.

[자세 엉성한 거 봐. 누가 활을 그렇게 쏴요? 역시 님은 그냥 생산직이 딱임.]

“시끄러. 태어날 때부터 화살 들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딨어? 어? 진짜 과녁이 보이네?”

[오? 보임?]

정다운은 탄성을 터뜨렸다.

활을 겨누는 순간, 눈앞에 레이저 포인터처럼 빨간 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점은 화살촉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하, 이런 식이구나. 총 쏘는 게임하는 것 같네.”

화살이 겨눠지는 지점이 빨간 점으로 표시되는 것 같았다.

마치 저격수의 레이저 조준기 느낌이랄까.

다만 그 빨간 점이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게 달랐다.

“한번 쏴 볼까?”

정다운은 심호흡을 하고 멀리 떨어진 벽을 겨냥하고 활시위를 뒤로 쭈욱 당겼다.

그런데…….

“응? 이거 왜 이래?”

뭔가 이상했다.

빨간 점이 벽에 생기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고장 났나?”

활을 이리저리 움직여 다시 겨냥을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과녁이 자꾸 원하는 곳에 안 생기고 애꿎은 땅바닥이나 천장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안 쏘고 뭐 해요?]

토끼의 재촉에 정다운이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에서 손을 타앗 놓자-

티잉-!

“앗?”

[앗?]

화살이 줄에서 튕기며 이상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헬리콥터 날개처럼 핑그르르 돌던 화살은 결국 바닥에 있던 빨간 과녁 위로 정확히 꽂혔다.

푹.

토끼가 심각하게 말했다.

[님, 진짜 활 못 쏘네요.]

“……처음이라 그런 거야.”

바닥에 박혀 파르르 떨고 있는 화살을 정다운은 허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래, 애초에 활 실력이 문제였다.

‘과녁’은 처음부터 정다운의 화살이 도착할 지점을 아주 정확히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노리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맞추게 되는 곳을 미리 알려 주는 거였구나….”

[이런 방식이라면 일종의 미래 예측 스킬인 셈이네요. 똑똑하다. 님의 똥손까지 고려해서 예측해 주네.]

“…….”

정다운은 말없이 활에 화살을 하나 더 메기고 토끼를 향해 쏴 버렸다.

띠용-!

[히익!?]

토끼가 기겁하며 몸을 납작 숙였지만, 화살은 이번에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 과녁이 포착하고 있던 천장으로 날아갔다.

핑그르르-

따닥! 툭.

“……백발백중이네.”

이번엔 화살이 꽂히는 것도 아니고, 천장에 부딪히다 바닥에 비실비실 떨어졌다.

아무튼 이번에도 과녁에 명중하긴 했는데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

보다 못한 알파가 그를 위로했다.

<활에 재능은 없지만, 활 만드는 재주는 있으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끄러. 네가 더 미워.”

<……?>

이미 토끼는 바닥을 굴러다니며 배를 잡고 깔깔대고 있었다.

[진짜 소름끼치는 활 솜씨네요. 생산직 인정!]

부들부들.

뭐 이런 반쪽짜리 능력이 다 있단 말인가!

이래서는 과녁에는 명중해도, 정작 원하는 곳은 맞출 수 없었다.

“아 놔. 이런 거 말고 차라리 활 솜씨 같은 걸 보상으로 줄 것이지.”

[님의 활 솜씨에 감탄해서 준 보상인데, 활 솜씨를 왜 또 얹어 주겠어요? 보조 능력을 주는 게 당연하지.]

“젠장.”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앞으론 활 쏘는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애초에 자세도 불량하고 기본기가 없는 게 문제였다.

“하다 보면 되겠지…….”

[파이팅! 님은 잘할 수 있을 거임. 연습도 노가다의 일종이니까요. 낄낄.]

‘……쏴 버릴까?’

오늘 저녁은 토끼 고기가 어떨까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정다운이었다.

토끼는 모를 것이다. 지금 자신의 이마 한가운데에 빨간 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그런데 문득 정다운은 자신이 지금 활을 겨누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놀랐다.

“……어라? 진짜 과녁이 보이잖아?”

활과 화살을 단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과녁이 보인다니? 설마?

그가 갑자기 활을 바닥에 내버리곤 화살만 손에 든 채로 토끼를 다시 쳐다봤다.

그러자 여전히 녀석의 이마에 빨간 점이 찍혀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번엔 노린 곳에 정확히 과녁이 찍혀 있었다!

“이거 굳이 활로 쏘지 않아도 되나 본데?”

[자, 잠깐! 스톱!]

토끼는 갑자기 정다운이 화살을 맨손으로 던질 자세를 취하자 기겁하며 이마를 가렸다.

[설마 지금 그거 던지려는 건 아니죠? 그거 관통력 걸려 있어서 위험하다고요!]

“아, 그러네.”

정다운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뒤 화살을 역수로 쥐고 창 던지는 것처럼 냅다 던졌다.

휘익! 푹!

놀랍게도 화살은 정확히 원하는 지점에 명중했다!

“오? 맞았다!”

[헐, 진짜로요? 굳이 활로 안 쏘더라도 무조건 맞출 수 있는 거임?]

“아니, 무조건은 아니야. 내가 어깨를 들썩이는 반동에 따라 과녁도 계속 움직이거든.”

[그래도 던지는 건 활 쏘기보단 훨씬 쉽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움직이는 대상만 아니라면 이건 진짜 백발백중이겠는데?”

정다운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처음으로 공격 스킬다운 능력이 생긴 것이다!

“아, 그럼 혹시 돌을 던져도 되나?”

문득 든 생각에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과녁이 보인다?

“헐, 이것도 되네?”

휘익, 딱!

돌을 정확히 과녁에 명중시켰다. 역시나 오차는 없었다.

“그럼 쇠꼬챙이는?”

전투 시에 제일 많이 쓰는 쇠꼬챙이도 꺼내 들었더니, 이것 역시 과녁이 보였다!

무게가 묵직하면서도 길어서 그런지, 돌이나 화살보다도 훨씬 던지기가 편했다.

“이거다! 이게 딱이네!”

[결국 또 그 쇠꼬챙이임? 이러다 쇠꼬챙이 스킬이라도 생길 기세네. 촌스럽게.]

“그럼 토끼를 던지는 건 어떨까? 아닛? 이것도 과녁이 보이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내려 주셈.]

토끼를 바닥에 메다꽂으려다 다시 내려 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아무거나 던져도 과녁을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활 연습을 좀 해 놔야겠어. 그냥 던지는 것보단 활을 이용하는 게 사정거리가 훨씬 기니까.”

이번 그리피오스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항상 날개 달린 놈들과 싸우는 게 문제였다.

이 과녁 능력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원거리 공격으로 놈들을 격추시키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전리품을 확인해 보실까!?”

전리품이라고 해 봤자, 어차피 그리피오스의 시체가 전부였다.

알파가 기다렸다는 듯이 감정가를 매겼다.

<몹시 훌륭한 제물입니다. 이 정도면 이번 전투에서 손실된 생명 에너지를 다  충당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정다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은 치킨인가?”

[치킨?]

“치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이 꼴깍 삼켜지는 마법의 단어, 치킨!

범독수리의 몸에서 새처럼 생긴 부위는 날개와 머리, 그리고 앞발이었다.

그 말은 즉!

“다리와 날개는 먹을 수 있다는 거지!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들이야.”

그 말에 토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님, 진짜 이걸 먹겠다고요? 그리피오스를?]

“어, 너도 먹을 거지?”

[히익? 나도요?]

토끼는 거대한 그리피오스의 시체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두근! 토끼가 범독수리를 먹는다니?

[도, 도전!]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가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다운이 갑자기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차, 밀가루가 없어서 튀김옷을 못 만들겠구나…….”

그뿐이랴, 전분 가루도 우유도, 계란도 없었다. 여긴 진짜 없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하지만 그는 범독수리처럼 용맹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훈제 치킨으로 간다! 토끼야, 털 다 뽑아! 오늘은 파티다! 내가 사이다 푼다!”

[아싸아! 내가 또 털 뽑기의 달인이죠! 사이다는 싫지만!]

토끼도 용맹하게 그리피오스의 위로 올라가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정다운은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바로 그리피오스의 둥지!

그리피오스가 나무 기둥을 통째로 뽑아 와 만든 거대한 둥지에는 신기한 암석들이 모여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횃불 없이도 이 동굴 안이 밝은 이유가 다 이 암석들 덕분이었다.

그가 둥지 위로 올라가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뭘까? 돌에서 왜 빛이 나지?”

알파가 대답했다.

<태양석이라고 합니다.>

“태양석? 그게 뭔데?”

<말 그대로 태양의 기운을 품고 있는 돌입니다. 예전엔 주로 지하 신전을 밝힐 때 쓰곤 했지요.>

“아하, 횃불 대신 썼다는 거구나. 형광등 같은 거네.”

<태양석은 영원히 빛을 내기 때문에 옛부터 아주 진귀한 보물로 취급되었습니다.>

“흐음. 보물이라…….”

이 밝고 따스한 빛을 보고 있으니, 진귀한 보물이었다는 말이 충분히 공감됐다.

“그런데 그 귀한 게 왜 이런 데 널려 있어? 가짜 아냐? 알고 보니 사실 그리피오스의 알이라든가, 똥이라든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피오스는 원래 빛나는 물건을 좋아해서 둥지에 모아 두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물어 왔나 봅니다.>

“덩치만 크지, 까마귀 같은 놈이었구나. 아무튼 잘됐다.”

거대한 둥지 안에 쌓여 있는 태양석 무더기를 보며 정다운은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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