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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43)화 (43/393)

<던전리셋 43화>

[진짜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토끼는 괜히 불안했다.

비록 이적하긴 했지만, 여태까지 스테이지-1을 위해서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지금 하는 짓들이 영 양심에 걸리는 것이다.

“이 방이 좋겠네. 마침 천장도 적당히 무너져 있어서 채광도 좋고.”

정다운은 식인 꽃밭을 흙까지 통째로 뜯어 와 용의 신전에서 남아도는 방 하나를 골라 화단을 만들었다.

물론 그 전에 온돌부터 까는 건 기본이었다.

“온돌 설치!”

[온돌을 설치합니다.]

이 ‘온돌 설치’ 스킬은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옵션 덕분에 요즘엔 난방보다 농사에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항시 미열 상태로 온도를 맞춰 놓으면, 기온이 낮은 바위산에서 농사를 짓기엔 최고의 스킬인 것이다.

그렇게 만든 온돌 위에 식인 꽃밭을 올린 후, 둘레를 소담스럽게 벽돌로 빙 둘렀다.

돌이야 절벽 계단을 깨면서 남은 게 워낙 많았다.

“이래야 뽀뀨가 쉽게 넘어오지 못하겠지.”

“꾸우으…….”

뽀뀨는 멀리서 식인 꽃의 이파리만 봐도 달달 떨며 구석으로 쏙 숨었다.

괜히 다가와서 잡아먹힐 걱정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안전이 제일 아닌가.

게다가 보기도 좋은 꿀이 먹기도 단 법.

다 꾸미고 나서 뒤로 나와 보니, 제법 그럴싸해서 삶의 질이 확 올라간 기분이었다.

“아니, 이게 뭐람? 너무 예쁘잖아?”

[하는 짓은 더 예쁘죠. 사람을 한입에 꿀꺽, 꿀꺽.]

<제법 훌륭한 함정을 만드셨군요. 신전의 방어력이 올라갔습니다. 이제야 좀 신전의 주인다워지셨습니다.>

“……?”

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지만, 아무튼 모두가 만족스러운 화단이 탄생했다.

함정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제 진짜 함정으로 만들기로 했다.

“함정 설치!”

[함정을 설치합니다.]

번쩍! 하고 황금빛이 터지며 식인 꽃밭이 신전의 함정으로 등록되었다.

이게 뭐가 좋냐면, 일단 함정이 되면 식인 꽃이 관리자들을 공격하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꽃이 시들어도 얼마든지 계속 처음 상태로 리셋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었다.

즉, 보스 룸의 감자밭도 마찬가지였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리셋을 해서 물엿을 무한 생산할 수 있다는 뜻!

“으하하, 바로 물엿 공장이 되는 거지!”

그 말에 알파가 기겁했다.

<아니, 꽃이 시들지도 않았는데 리셋을 하실 생각인가요? 생명 에너지 낭비입니다!>

“에이, 깐깐하게 너무 그러지 말자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인정. 단것 최고.]

후르릅. 쫍쫍. 짭짭.

정다운과 토끼는 지금 이 순간도 나란히 서서 물엿을 빨아먹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물엿의 노예였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당이 딸렸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단 음식이 몸에 들어오자, 머리도 맑아진 기분이고 기운도 팔팔했다.

엔도르핀이 철철 흘러넘쳤다.

<저는 어차피 못 먹는단 말입니다!>

알파는 괜히 분했다.

“토끼야, 이 물엿 좀 여기다 모으자.”

[왜요?]

“건조시켜서 설탕을 만들 거야.”

[오홍.]

<……여러분?>

다들 바빠 보이자 알파는 조금 슬퍼졌다.

정다운은 넓은 돌판을 잘 닦아서 그 위에 물엿을 받았다.

그렇게 만든 돌판만 스무 개.

그 위에 물을 타서 물엿의 농도를 묽게 만든 다음, 땡볕 아래 잘 펼쳐 두었다.

그렇게 하루쯤 내버려 두자, 물엿이 하얗게 굳었다.

“좋았어. 이걸 이제 곱게 갈기만 하면 바로 설탕이 만들어지는 거지”

[오, 그렇군! 어서 갈아 봐요.]

“응?”

[네?]

“……?”

[……?]

정다운이 토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흔들림 없는 눈빛에 토끼의 표정이 점점 슬퍼졌다.

[……아, 제가 하는 거군요.]

토끼는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돌판을 받아 들며, 자신이 뭔가 큰 실수를 한 게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생각해 보니 이 인간은 지독한 노가다 중독자였다.

이 인간을 따라다닌다는 건 결국 앞으로 모든 노가다도 같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망했네.]

늦었다 싶을 땐, 진짜 늦은 게 세상 이치였다.

*   *   *

결국 토끼는 정다운이 절벽에 내려가 계단을 깎는 동안, 그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설탕을 갈았다.

먼지 날리니까 따라오지 말래도 심심하다며 자꾸 따라다녔다.

물론 입도 심심했다.

할짝?

[음? 달군. 호오, 달구나.]

그래도 작업하면서 날름날름 핥아 먹는 설탕은 정말 꿀맛이었다.

할짝? 할짝, 할짝?

보다 못한 정다운이 결국 화를 냈다.

“아따, 이 돼지가! 그만 좀 먹어! 그러다 다 없어지겠네!”

[헐. 나처럼 예쁜 토끼에게 돼지라니? 그 말 취소해요! 돼지 스킬도 있는 양반이 누가 누구보고 돼지래!?]

“오호라. 이래도? 이래도 돼지가 아닐까?”

정다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 온 새참을 꺼냈다.

그건 바로 삶은 감자!

정화된 뼛가루를 먹고 더욱 옹골차고 맛깔나게 자란 알감자가 넓은 나무 이파리로 만든 접시 위에 예쁘게 올라와 있었다.

토끼가 코웃음을 쳤다.

[흥, 또 감자임?]

“감자라고 다 같은 감자가 아니지.”

[어?]

토끼는 감자의 때깔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이것은!? 처음 보는 메뉴가 아닌가!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운 감자 위에 은은하게 코팅된 황금빛 물엿!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자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이게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전설의 휴게소 허니 버터 알감자!”

[헐. 뭔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물론 버터가 없어 기름만 둘렀지만, 물엿 코팅 하나로도 엄청나게 자극적인 비주얼이었다.

토끼는 결국 공손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앞으로 저는 돼지입니다. 돼끼라고 불러주세요.]

“먹고 하자.”

[히히.]

토끼는 날름 달려와 뜨끈한 감자를 젓가락으로 푹 찔렀다.

그리고 모락모락 나는 김을 호오 불곤, 입을 크게 벌려 호쾌하게 한입 베어 물었다.

[하으으, 뜨거……!]

뜨, 뜨겁다! 하지만 아무리 뜨거워도 결코 다시 뱉을 수는 없었다. 뜨거워도 어떻게든 먹을 것이다!

감자 위로 얇게 코팅된 물엿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고소한 감자와 함께 씹히자, 그 풍미가 평소의 2배! 3배! 4배!

맛이라는 게 입안에서 폭발했다!

[흐우아!?]

토끼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 차올랐다.

아니,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와, 감자도 이렇게 먹으니까 또 색다르네요! 이거 진짜 맛있다!]

“죽이지? 근데 약간 심심한 게 아쉽단 말이야. 역시 소금이 있어야 되는데.”

정다운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사실 소금이야말로 모든 음식의 중심 재료 아니겠는가.

토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해요? 난 지금도 충분히 맛있는데요?]

“간식은 역시 단짠이 진리지. 여기에 짭짤하게 소금을 살짝 뿌리면 2배는 더 맛있어지거든.”

[헐, 여기서 2배나? 말도 안 돼. 무슨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다 있음?]

토끼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맛있다니?

하지만 달달한 게 들어가서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는지, 토끼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예전에 누가 소금 같은 걸 찾아냈다는 말을 들어 본 것 같은데요?]

“뭐! 어디서? 누가?”

정다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토끼는 약간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그게 저도 확실치가 않아요. 시작의 숲에서 금방 죽어 버린 참가자라서 눈여겨보지 않았었거든요. 근데 분명 설탕처럼 하얀 가루였고 짠맛이 난다고 했어요.]

“하얗고 짜면 소금이 맞잖아? 그런데 시작의 숲이라고?”

정다운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숲에서 소금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기껏해야 짭짤한 맛이 나는 나무 열매 정도가 최선일 텐데?

“혹시 소환되기 전에 들고 있던 거 아냐? 마트에서 시장 보는 중이었다든가.”

[그건 아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야 가끔 있죠. 마침 요리하는 중이었다든가. 아, 차라리 그런 참가자들을 찾아내면 어때요?]

토끼가 나름 현명한 방법을 제시했다.

101명의 참가자들 중에는 분명 소금을 들고 소환된 사람도 한둘 쯤 섞여 있었다.

[골렘을 앞세우면 소금이야 금방 뺏겠네.]

“그야 그런데, 그건 너무 양아치잖아.”

정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시작의 숲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살인까지 일어나는 곳이었다.

먹는 거 하나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지고 꼴사나워지는지를 경험해 본 그는, 이제 와서 그 악다구니 속에 다시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해서 마트표 소금 한 통을 얻어 봐야, 언젠간 또 떨어지지 않겠는가.

결국 그때마다 다시 참가자들을 찾아다니며 소금 달라고 협박하는 것도 너무 진상이었다.

“흐음, 시작의 숲이라고? 한번 가 볼까.”

정다운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 소금이다!

소금만 있다면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설탕도 찾았겠다, 여기서 소금까지 있다면 진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인생 아니겠는가!

그래, 가 보자!

*   *   *

[던전이 리셋됩니다.]

다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었다.

요즘 바분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결국 저번 판에서 집 나간 최종 보스를 끝까지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생존자가 30명 가까이 나오는 참극이 일어났다.

물론 다음 스테이지도 어차피 자신이 관리하기에 거기서 빡세게 굴리면 될 문제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존심의 문제였다.

생존자가 30명이라니? 자신이 그렇게 조롱했던 토끼보다도 훨씬 형편없는 실적 아닌가!

[두고 보자. 이번 놈들은 빡세게 굴려 주마.]

화풀이는 언제나 참가자들에게!

살기에 가득 찬 바분의 모습에 새로운 참가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벌벌 떨어야 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그 말을 시작으로 언제나처럼 참가자들은 두려움 가득한 모습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 100명의 군상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패턴은 늘 존재하기 마련.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그룹을 만드는 이들도 있었고, 그 안에서 서열을 매기며 대장 놀이를 하려는 자도 보였다.

그 텃세를 못 이기고 떨어져 나와 홀로 움직이는 이들도 생겨났다.

바분은 개미를 구경하듯이 그 모습들을 하늘 위에서 느긋하게 감상했다.

[한 달 안에 최종 유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굳이 그가 북쪽을 가리키지 않아도, 참가자들에겐 어차피 선택권이 없었다.

남쪽과 서쪽은 쳐다만 봐도 숨 막혀 죽어 버릴 것 같은 폭염의 사막.

동쪽 끝엔 병풍처럼 펼쳐진 죽음의 산맥.

결국 그들의 발걸음은 자연히 최종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날이 어두워지자 참가자들 사이로 슬그머니 섞여 들어온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 사실을 바분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분명 게임 시작과 동시에 처형권으로 한 명을 죽였는데도, 참가자들의 숫자가 다시 101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각기 다른 얼굴과 복색을 하고 있는 101명의 사람들.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그 표정이 미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표정이 다른 단 한 명.

아까부터 계속 무얼 찾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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