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37화>
아작아작!
[……!]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감자튀김의 맛에 토끼는 눈이 뒤집혔다.
[이, 이런 맛이라니!]
냠냠, 짭짭!
이것은 축제였다. 파티였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맛!
바삭한 식감과 함께, 고소하고 담백한 황금빛 폭죽이 입안에서 퐁퐁 터졌다!
“아니, 감자튀김이 그렇게까지 맛있다고? 케첩도 없는데?”
토끼가 너무 맛있게 먹어 주니 정다운은 되레 민망했다.
마침 유적지 함정에 쓰이는 기름이 ‘올리브유’와 비슷한 식물성 기름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험 삼아 한번 튀겨 본 거였다.
그래서 밑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소스도 없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시장이 반찬인 법.
다 죽어 가던 토끼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체력 : 2/100 (%)
포만감 : 5/100 (%)
스치기만 해도 바로 죽을 것 같던 체력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토끼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아, 으아아! 냠냠. 먹을수록 자꾸 감자튀김이 줄어들어요! 아까워, 냠냠. 맛있냠냠짭짭!]
“…….”
<…….>
뭘까, 이 거지는?
대체 어쩌다 이런 꼴이 돼서 나타난 걸까.
눈물까지 흘리며 열심히 감자튀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토끼의 모습에 정다운과 알파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음식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그거 던전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네. 그게 규칙이긴 한데, 어차피 좌천당한 마당에 규칙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냠냠냠. 내 알 바 아니에욤뇸뇸.]
“…….”
토끼는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삐뚤어져 있었다.
“좌천을 당했다고? 왜?”
[왜긴요! 그게 다 님 때문! ……에 감사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냠냠냠. 이거 이름이 감자튀김이라고요? 세상 꿀맛!]
“태세 전환 보소?”
이 상황에 넉살을 부리는 걸 보니, 어디 가도 밥은 잘 얻어먹고 다닐 녀석이었다.
체력 : 10/100 (%)
포만감 : 17/100 (%)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감자튀김을 다 먹고 당장의 고비를 넘긴 토끼였다.
여전히 힘없고 배고프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이다.
“스테이지-1의 도우미가 바뀌었다고?”
[네. 엄청 치사하고 비열한 놈이에요. 자기는 이미 유적지를 2개나 관리하고 있으면서 내 담당 구역까지 결국 빼앗았죠.]
감자튀김을 먹는 동안 대강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정다운이 묻는 말에 토끼가 바분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나를 잡아 오라 시켰다?”
[네. 님을 안 잡아 가면 전 죽어요. 물론 잡아 가도 죽겠지만.]
토끼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탐욕스럽고 잔인한 바분이 자신을 굳이 살려 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도우미를 죽이는 건 처형권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래저래 결국 죽을 운명이라는 거네. 그래서 나 때문이라는 거구나.”
정다운은 토끼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안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건 이놈들이었다.
함정에 빠진 걸 발견 못 한 것도 토끼의 실수였다.
자신이 한 거라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것뿐.
[알아요. 다 살자고 한 짓이죠. 결국 나는 님 탓이고, 님은 내 탓. 그렇게 퉁 치자고요.]
“쿨한 척하고 있네. 어디서 물타기야? 엄밀히 따지면 넌 그냥 네 실수였고, 나는 너희 때문에 이 고생 하고 있는 거거든?”
[쳇. 안 통하네.]
의도가 들통나자 토끼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쯤에서 녀석이 이곳에 온 목적이 궁금해진 정다운이었다.
“그런데 날 잡아 가도 어차피 죽는다면, 왜 여기로 온 거야?”
[왜긴요? 님을 데려가는 게 그나마 살 확률이 있으니까죠.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그렇게 솔직히 말해도 돼? 내가 순순히 따라갈 리도 없는데?”
정다운은 예전만큼 토끼가 두렵지 않았다.
당장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모를까, 생포해서 데려가야 하는 입장이니 더욱 그랬다.
그에 토끼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사실 감자튀김을 먹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정다운을 강제로 데려가 봐야 뭔 이득이 있겠는가.
순간 토끼의 눈빛이 단호하게 변했다.
[저 결정했어요. 지금 딱 정했어요.]
“뭘 정해?”
[님. 그냥 나랑 같이 삽시다!]
“헐?”
여기서 갑자기 고백을 한다고?
토끼는 프로포즈라도 하듯 정다운에게 당당하게 선포했다.
[나 안 돌아갈 거임. 님도 솔직히 혼자 놀면 심심하죠? 늙어 죽을 때까지 나랑 여기서 오순도순 살아 봅시다.]
뭔가 결론이 이상했지만, 토끼는 진심이었다.
종말의 용은 ‘죽여서’ 생명 에너지를 얻는다.
처형권이 없는 지금, 토끼는 아무리 생명체를 죽여도 에너지를 흡수할 수 없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정다운을 따라가는 것!
더군다나 자신이 아는 정다운이라면 절대로 밥을 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저 뒤를 보라!
“오옴!”
정다운의 뒤에 듬직하게 서 있는 흙 골렘들!
저 녀석들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먹을 걸 사냥해 올 수 있지 않겠는가!
[님은 사냥을 하셈. 살림은 내가 할게요. 어떰?]
“호오. 살림을?”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어차피 데려다 쓰려고 했었는데, 본인이 먼저 도맡아 하겠단다.
“살림이라면 설거지도 해 줄 거야?”
[제가 또 설거지 장인임.]
“청소도? 빨래도?”
[제 별명이 또 청소 토끼죠. 이 하얀 털을 보셈. 태어날 땐 검은색이었음.]
“호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알파가 처음으로 말했다.
<대충 서로의 뜻이 맞은 것 같으니, 이쯤에서 제가 끼어도 되겠습니까?>
[헉?]
토끼는 정다운의 손 위에서 반짝이는 황금빛 글자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생명의 용!?]
* * *
[유적지라니!?]
정다운을 따라온 토끼는 용의 신전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맙소사! 설마 죽음의 산맥 꼭대기에 유적지가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 생명의 용이라니!
생명의 용이라면 오래전 종말의 용에게 패하고 죽었다 알려진 존재 아니던가!
토끼는 사색이 되어 몸을 달달 떨었다.
죽었는데도 살아 돌아다니는 좀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런 불길한 걸 바로 옆에 두고도 몰랐었다니!]
<불길?>
[네? 불길? 누가 그랬지? 지금 내 주둥이가 무슨 망발을? 혼나야겠네, 요놈, 요놈!]
떼찌, 떼찌!
알파의 한 마디에 토끼는 가차 없이 자신의 주둥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이미 감자튀김까지 받아먹은 주둥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
정다운이 준 감자튀김으로 생명을 구한 순간.
이곳에 생명의 용 신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토끼가 취할 행동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납작!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이런 훌륭한 유적지에는 저 같은 경험 많은 뛰어난 인재가 필요할 겁니다.]
정다운의 앞에 납작 엎드린 토끼의 표정에는 야심이 가득했다.
‘이건 기회야!’
어차피 자신은 종말의 용 진영에서 좌천당한 몸. 죽는 게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로 이직(?)하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종말의 용 쪽에서 자신은 말단 도우미에 불과했지만, 여기라면 단번에 2인자, 아니, 3인자로 올라설 수 있지 않겠는가.
‘용의 꼬리로 죽을 것이냐, 닭의 머리로 살아남을 것이냐. 당연히 후자지!’
<그럼 일단 제단으로 갑시다.>
움찔?
알파의 말에 토끼는 사색이 되었다.
[서, 설마 저를 제물로 바치시려는 건?]
<토끼 한 마리를 누구 코에 붙입니까? 관리자 등록부터 해야죠.>
[아하, 그렇겠죠? 헤헤.]
토끼는 정다운의 뒤를 쭈뼛쭈뼛 따라갔다.
그리고 총 세 번이나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이 유적지가 진짜 폭삭 망한 곳이라는 것.
‘……나 여기 들어와도 진짜 괜찮을까?’
오래되고 썩어 문드러진 함정들과 낡아 빠진 건물.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니지. 여기 원래 망한 곳이었지, 참.’
두 번째 놀란 건, 보스 룸에서 잠들어 있는 거대한 에르테아의 유골을 봤을 때였다.
[헐? 이런 곳에 짱박혀 있었…… 아니, 주무시고 계셨다니? 왜 종말의 용은 여길 아직까지 남겨 둔 걸까요?]
“그러게?”
<그러게요.>
“……응?”
[응?]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정다운은 혼자 생각했다.
‘역시 에르테아는 그냥 죽은 게 아닐까? 확실히 죽였으니까 신경 끈 게 분명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끼가 경악한 세 번째 광경.
[헐. 미친?]
<내가 아무리 말려 봤지만…….>
알파는 수치심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렇게 불경스러울 수가! 이렇게 몰상식할 수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대편 진영이었던 토끼마저 황당함에 주먹을 불끈 쥘 정도였다.
다름 아닌 깔끔한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야 할 보스 룸의 바닥이 온통 흙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바닥이 왜 이따위예요!?]
“왜, 뭐? 따뜻하지 않아?”
정다운은 뻔뻔했다.
그런데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이 조금 더 따뜻해지자 토끼는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방만 왜 따뜻하지? 무슨 온도 마법이라도 걸려 있음?]
“온돌이야.”
[온돌?]
그랬다. 정다운의 만행은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 전에 너무 춥다는 이유로 보스 룸 바닥 전체에 온돌 스킬을 써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 위에 전체적으로 흙을 두껍게 한층 덮었다.
“뀨우우!”
그때, 구석에서 뽀뀨의 간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연두색의 줄기에 칭칭 감겨,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바둥거리고 있었다.
요 며칠째 벌써 몇 번이나 일어난 소소한 사고였다.
[어? 저건 설마?]
토끼는 뽀뀨를 감고 있는 줄기의 정체를 깨닫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제 보니 에르테아가 누워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땅에 연두색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님, 설마 신성한 보스 룸에 감자밭을 만든 거예요?]
“응. 딱 좋지 않아? 여기라면 천장이 뚫려서 채광도 좋고, 땅은 온돌로 적정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아니, 무슨 보스 룸이 비닐하우스임!?]
<이 모습을 다른 관리자에게 들키다니…… 너무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네요.>
하지만 정다운은 여전히 뻔뻔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뭐. 여기서 수확한 감자를 제물로 바치면, 얼마나 생산적이고 에르테아가 기뻐하겠어?”
[퍽이나 기뻐하겠다!]
<퍽이나 기뻐하겠다!>
공통의 적 앞에서 알파와 토끼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상식 있는 신입이 들어와 줘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네요. 몸이 없어서 눈물은 못 흘리지만.>
[아휴, 아닙니다. 그럼 이 제단 위로 올라가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원래부터 도우미였던 토끼에게 자격시험 같은 건 전혀 필요 없었다.
토끼는 시키는 대로 쭈뼛쭈뼛 제단 위로 올라갔다.
<신전의 주인이시여. 제단에 손을 올려 보시지요.>
“이렇게?”
정다운이 손을 올리자, 손에서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와 제단에 스며들었다.
파아앗!
[<관리자 임명> 스킬을 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