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3)화 (33/393)

<던전리셋 33화>

“무릇, 스킬이 생겼으면 바로 사용해 보는 게 인지상정이지.”

정다운은 풍족해진 스킬 창을 보며 뭐부터 사용해 볼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새로 생긴 스킬은 총 3개.

함정 설치와 게이트 설치, 그리고 리셋이었다.

“함정 같은 건 일단 패스하고, 제일 중요한 게이트부터 써 볼까?”

당장 함정을 쓸 일이 없으니, 이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했다.

리셋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뭔가를 되돌릴 것이 없었다.

“게이트 설치!”

앞으로 손을 뻗고 힘차게 소리치자, 황금빛이 손에서 번쩍였다.

하지만,

[설치 실패! 생명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헐, 실패?”

<용의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선 생명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 드디어 제물을 바칠 때가 왔습니다.>

“그렇군. 역시 고기인가.”

<고기인 것입니다.>

정다운은 소지품을 열어 제단 위에 훈제 고기를 수북하게 쌓았다.

식량이 아직 한참 남아 있어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명의 용께 제물을 바칩니다.”

파아앗!

알파가 알려 준 주문(?)을 외우자, 제단 위에서 황금빛이 일렁이며 훈제 고기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꿀꺽!

감쪽같이 사라진 제물들.

“신기하네. 마술 같아. 이제 스킬 쓸 수 있어?”

<충분합니다. 스킬 3번 정도는 쓸 수 있는 생명 에너지가 모였습니다.>

“고작?”

<이 정도도 대단한 겁니다. 제물로 바친 고기들을 다 합쳐 봐야, 겨우 돼지 반 마리 정도 분량 아닙니까.>

“흠. 그렇긴 하네.”

속으로 생명 에너지와 스킬 사용 횟수에 대해 가늠해 보고 있는데, 알파의 첨언이 이어졌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매번 제단 앞까지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응? 왜?”

<신전의 주인은 곧 제사장의 직분과 같습니다. 당신은 어디서든 바로 제물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오, 편한데? 그럴 땐 어떻게 바치는 건데?”

<드시면 됩니다.>

“……응?”

정다운은 귀를 의심했다.

<먹으라고요.>

“뭘 먹으라는 거야, 자꾸?”

<관리자의 몸은 곧 걸어 다니는 신전과 같습니다.>

“……?”

처음엔 알파가 뭔가 종교적인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 보니 결론이 이상했다.

<당신은 이제 무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어? 무한대?”

<네. 앞으로 당신의 배 속으로 들어간 음식들은 전부 생명 에너지로 치환되어 유적지로 흘러 들어갈 겁니다.>

그 말에 정다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헐, 그게 뭐야. 무서워. 무슨 아귀도 아니고……. 그럼 나 이제 아무리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거야?”

<그럴 리가요. 배부를 때까진 평소와 똑같습니다. 포만감 수치가 100%가 되면, 그때부터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은 다 생명 에너지로 변할 겁니다.>

“아, 그래서 상태 창에! 굳이 포만감 수치를 남겨 둔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사실 인간에겐 축복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배부를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무한히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들으니 아귀보단 오히려 식신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다이어트 걱정은 이제 끝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동네에 무슨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소가 풀 씹듯이 하루 종일 우걱우걱 고기만 씹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많은 제물을 언제 다 씹어 먹어? 괜히 턱만 사각턱 되겠네. 가급적이면 그냥 제단을 이용하는 걸로 하자.”

쩝쩝.

말과는 다르게 이미 그의 입은 고기를 씹고 있었다.

*   *   *

“자, 이제 진짜로 해 보자! 게이트 설치!”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번쩍!

그의 앞에 황금빛이 일렁이는 공간의 문이 생성되었다.

정다운은 게이트 앞을 서성이며 알파에게 물었다.

“음, 이게 끝이야? 여기 들어가면 어디로 나오지?”

<아직 아무 데도 못 갑니다. 게이트는 총 2개를 만들어야 서로 왕래가 가능합니다. 여기가 시작점인 겁니다.>

“아하. ……응? 잠깐, 이렇게 되면 결국 내가 직접 설치한 곳끼리만 왕래가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정다운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이럴 거면 게이트가 다 무슨 소용이야? 나 집은 어떻게 가고?”

<겨우 1레벨이라 그렇습니다. 게이트 스킬이 마스터 레벨이 되시면, 원하는 곳 어디라도 전부 갈 수 있을 겁니다.>

“마스터? 어느 세월에?”

<꾸준히 제물만 바친다면, 한 20년쯤 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20년 같은 소리하네!”

듣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때쯤이면, 이미 동료들도 다 찾고, 던전 스테이지도 다 깨고, 집에 돌아가서 김치찌개나 먹고 있겠네.”

흙 뭉치기가 마스터 레벨이 될 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흙을 뭉쳤던가.

시간이든 고생이든, 게이트 스킬에도 최소 그만큼은 투자해야 마스터 레벨이 된다는 뜻이었다.

“일단은…… 알겠어. 스킬부터 마저 사용해 보자. 게이트 설치!”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번쩍!

첫 번째 게이트 옆에 두 번째 게이트가 생겨났다.

그러더니 두 개가 동시에 빛을 뿜어냈다.

[게이트가 연결되었습니다.]

“오호?”

<이제 한쪽으로 들어가시면, 반대쪽으로 나올 겁니다.>

“헐. 어쩌지? 나 지금 좀 설레. 롤러코스터 처음 타는 기분이야. 배 좀 채우고 갈까?”

<자, 진정하시고…….>

“와. 이게 진짜 내가 만든 게이트라는 거지? 공간의 문이라니!”

정다운은 상기된 얼굴로 반짝거리는 게이트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그냥 걸어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람에 따라 멀미를 좀 할 수도 있습니다.>

“가, 간닷!”

정다운은 힘차게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자,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반대쪽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헐? 대박.”

정다운은 자신이 들어갔던 첫 번째 게이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와우. 이거 진짜 쩌는데?”

정다운은 그 후로도 한참을 2개의 게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봐도 봐도 계속 신기했다.

그러다 문득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뽀뀨가 정다운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폴짝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실패.

“뽀꿉!”

반투명한 벽에 코를 뽁 부딪치고 발랑 뒤집어지는 뽀뀨.

그러더니 욱신거리는 코를 앞발로 어루만지며 부러운 눈길로 정다운을 쳐다본다.

“뀨우.”

그 모습이 몹시 하찮고 귀여워서 정다운은 녀석을 한 손으로 집어 들고 알파에게 물었다.

“이 게이트, 혹시 나만 통과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당신에게 허가를 받은 존재는 누구든 사용 가능합니다.>

“허가? 아, 나도 당해 봤지, 그거.”

정다운은 바로 납득했다.

자신이 스테이지-1에서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음, 그럼 이러면 되나? 뽀뀨에게 게이트 사용을 허락한다!”

“뽀뀨, 뽀뀨!”

그의 허락이 떨어진 순간부터 뽀뀨는 당당히 게이트를 이용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뽀뀨가 혼자 신이 나서 게이트 두 개를 뽈뽈거리며 들락거리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던 정다운.

그때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럼 혹시 골렘은 어떨까?”

정다운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 있는 타조와 켄타우로스 골렘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흙 골렘들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물론 크기가 좀 커서 마력이 많이 소모되긴 할 겁니다.>

얼쑤, 된단다.

“진짜? 그렇단 말이지?”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이 게이트 스킬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를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켄타우로스 1호, 여기 들어가 봐. 게이트 사용을 허락한다.”

“오옴?”

정다운의 명령에 켄타우로스 하나가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자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었던 게이트가 순간적으로 확 커지면서 녀석을 집어삼켰다.

“오옴 오옴?”

순식간에 공간을 넘어 반대쪽 문으로 이동한 켄타우로스.

정다운이 탄성을 터뜨렸다.

“헐, 진짜 되잖아? 이건 진짜 대박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시는 겁니까?>

알파가 어리둥절 묻는 말에 정다운은 흥분에 차서 소리쳤다.

“모르겠어? 이제 나는 어디서든지 골렘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이건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사실 평소에 이 거대한 놈들 여럿을 주렁주렁 데리고 다니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전투 시야 든든하겠지만, 평소엔 오히려 적들의 시선만 더 집중시키게 되는 꼴이다.

하지만 골렘들을 여기에 항상 대기시켜 놓으면 어떨까?

“평소엔 나 혼자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다가, 위험한 순간이 오면 게이트를 짠! 열고 골렘들을 불러내는 거지!”

<이른바 ‘골렘 소환’이군요. 확실히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당신만 이쪽으로 건너오는 겁니다.>

“그건 그거대로 좋네.”

크게 공감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본인의 안전이니까 말이다.

정다운은 앞으로도 계속 이 게이트 스킬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공간의 문이라는 건 정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인 것 같았다.

*   *   *

정다운은 지난 몇 달간 계속 궁금하던 것이 있었다.

‘죽음의 산맥 너머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결국 그는 기나긴 여정 끝에 이 질문의 답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젠장.”

알파의 안내를 받아 유적지의 뒤로 나와 본 정다운은 극도의 허탈감에 빠졌다.

그 앞에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하얀 구름의 바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뭉글뭉글한 솜덩이들이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절벽이라니…….”

앞은 경사고, 뒤는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이게 바로 죽음의 산맥의 실체였다.

“제기랄. 뭐 이딴 지형이 다 있어?”

<이곳은 천혜의 요새니까요.>

뒤는 어차피 낭떠러지니까 앞에만 강력한 가디언이 지키면 된다는 말이었다.

주인 입장에선 든든하겠지만, 여길 지나가려는 입장에선 욕이 절로 나왔다.

심지어 구름층이 너무 두꺼워서, 눈이 빠져라 쳐다봐도 도저히 산 아래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알파, 이 밑에 뭐가 있는지 혹시 알아?”

<모릅니다. 저는 신전 밖은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요.>

“자랑이다.”

<자랑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신전 밖을 나오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참으로 멋진 경치 아닙니까?>

“어, 그래서 더 열 받아.”

정다운은 똥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크게 사진이라도 찍어 컴퓨터 바탕 화면으로 쓰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절경.

대자연이 만들어 낸 극상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거의 폭력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딜 둘러봐도 시선 강탈이었다.

잠시 멍하니 경치를 구경하던 정다운이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미심장하게 눈을 번뜩였다.

“휴, 보통 사람들은 이런 막막한 상황에 처하면 엄청 당황할 거야? 하지만 난 달라. 전부터 이런 일은 종종 있었거든.”

<안 물어봤습니다.>

“전망대 건설!”

[전망대를 건설합니다.]

처처처처척!

정다운은 유적지 뒤뜰에 전망대 하나를 설치했다.

이미 충분히 높은 곳이라 굳이 높게 쌓을 필요도 없었다.

“부디 미니맵이 구름 정도는 뚫고 봐주길 바란다.”

순식간에 전망대를 완성하고 미니맵을 열어 보니, 유적지를 중심으로 동심원 지도가 펼쳐졌다.

“오! 나이쓰!”

다행히 구름에 가려져 있던 지형이 지도에 드러났다.

지도를 확인한 정다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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