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8화>
“좋아. 타조다, 타조!”
정다운은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타조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보단 실용성 위주로 형태를 조금 개조하기로 했다.
‘얘도 다리가 두꺼워야 몸통을 지탱하겠지.’
다리가 2개니까 다리가 4개인 켄타우로스보다 무게 중심에 신경을 더 써야 할 터.
그렇다고 켄타우로스처럼 아주 두껍게 만들어 버리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흙을 둥글게 뭉쳐 몸통을 작고 날렵하게 만들고, 그 밑에 외뿔 멧돼지의 뼈를 길게 엮어 심봉을 꽂았다.
그 심봉 표면에 흙을 턱턱 붙여 튼실하고 쭉쭉 뻗은 다리를 만든 후.
‘발가락은 3개쯤?’
발은 안정감 있도록 두툼하고 크게 만들었다.
흙 골렘이 일단 살아나면 그땐 심봉이 부러지든 없어지든 상관없다.
핵에서 나오는 힘으로 스스로 걸어 다닐 테니까.
‘타고 다닐 때 잡을 손잡이도 만들자.’
동그란 몸통 위에 안장을 추가했다.
그 양 사이드에 ㄷ자 손잡이를 만들어 붙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다가,
“에이, 목에도 하나 만들자!”
기다란 타조 목 뒤에 손잡이를 추가했다.
타조 모양에서 좀 벗어나면 어떠랴.
손잡이는 많을수록 안전할 것이다.
‘달릴 때 좌우 균형을 잡으려면 날개도 있어야겠지?’
몸통 좌우에 적당한 크기의 흙 판을 붙이고, 그 위에 깃털 모양을 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은근 재밌는데?’
처음엔 깃털 느낌만 살짝 내려고 했는데 점점 요령이 붙었다.
가죽 벨트을 꺼내 버클에 있는 ㄷ자 부위로 흙을 샥샥 긁어냈더니 깃털들이 균일한 형태와 크기로 조각되는 것이다.
조각칼 대용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하면 할수록 점점 그의 손길이 기계처럼 일정해지며 깃털 조각의 달인이 되어 갔다.
“……헉!?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지?”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고, 타조의 몸통이 전부 풍성한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오랜만에 허리를 폈더니 척추에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자 몹시 뿌듯한 기분!
‘도마뱀 석상처럼 날 수도 있으면 좋겠지만, 흙 골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진 말자.’
그렇게 만들고 나서 보니, 목이 길어서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졌다.
앞뒤로 무게 중심이 안 맞는 것이었다.
‘중심 맞추려면 꼬리도 길게 만들어야겠다.’
타조 꼬리는 원래 짧지만 뭐 어떤가?
타조 목만큼 길게 두 가닥의 꼬리 깃털을 만들어 붙였다.
이건 세워 두기가 어려워서 꼬리 끝을 바닥에 길게 늘어뜨려 두었다.
드디어 완성!
“오! 그럴싸한데!?”
맵시 있는 동그란 몸통에 시원하게 뻗은 긴 다리와 긴 목!
좌우로 펼쳐진 한 쌍의 날개와 날렵한 두 가닥의 꼬리까지!
풍성한 깃털을 지닌 타조 골렘이 완성되었다!
그 퀄리티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
“크으! 죽여준다. 내가 만들었지만 이번 건 진짜 예술이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다른 흙 골렘들보다 훨씬 신경을 쓴 티가 팍팍 났다.
크기가 작은 만큼 퀄리티가 올라갔고, 직접 타고 다닐 거라 더욱 열심히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작업, 타조의 몸에 흙 골렘의 핵을 집어넣었다.
“자, 깨어나라!”
번쩍!
그 순간 타조의 동그란 눈이 반짝 떠졌다.
깃털이 풍성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두 가닥의 꼬리 깃을 하늘 높이 뻗으며, 타조가 소리를 질렀다!
“꼬꼬오오-!”
“……네가 닭이냐?”
“꼬잇?”
그 말에 긴 목이 휘청 움직이더니 정다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잠시 멈칫했지만, 울음소리야 아무렴 어떠랴!
“자! 그럼 한번 시승을 해 보실까!”
정다운은 바로 타조 위에 올라타 손잡이를 붙잡았다.
“꼬오?”
“달려!”
그 순간 타조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긴 다리가 휘영청 들리며 힘차게 땅을 박찬다.
꽝!
“꼬꼬오오-!”
“우어억!?”
순간적으로 고개가 후와악! 뒤로 꺾이며, 거센 바람이 정다운의 얼굴을 덮쳤다.
깜짝 놀라 몸을 앞으로 납작 엎드리고 타조 목 손잡이를 붙잡았다.
‘와악! 뭐, 뭐가 이렇게 빨라!?’
“꼬꼬오오-!”
실로 엄청난 속도!
타조의 긴 다리가 성큼성큼 땅을 박찰 때마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귓가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쐑쐑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만들어 낸 거야?’
너무 기뻐서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몸이 부웅 떴다.
“꼬꼬오오!”
“어억!?”
날았다!?
아니다! 점프였다!
한 번의 도약으로 거의 3미터 이상을 뛰어오른 것이다.
“꼬꼬오오!”
두다다다!
정다운을 태운 타조 골렘은 바람을 가르며 바위산을 내달렸다.
그 속도는 무려 코끼리 골렘의 3배!
이건 무슨 타조가 아니라 치타를 타고 질주하는 느낌이었다.
‘우하하하! 진짜 짱이다! 근데…… 오줌 마려워!’
“야. 좀 살살!”
“꼬꼬오오!”
두다다다다다다!
‘으아아아……!’
어쨌든 타조 골렘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그럼 시작하기 전에 한 방 먹이고 갈까?”
정다운은 흙 골렘들을 모두 데리고 유적지 앞에 도착했다.
저 멀리 제단 위에 서 있는 도마뱀 석상의 모습이 보이자, 정다운은 이동을 잠시 멈췄다.
아직 이쪽을 인식하지 못한 듯 석상은 미동도 없었다.
‘먼저 확인할 게 있지.’
분류하자면 저 도마뱀 석상은 돌로 된 골렘이라 할 수 있기에, 흙 골렘들처럼 어딘가에 핵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었다.
핵은 곧 골렘의 약점. 거기만 찾아내서 공격한다면 싸움은 싱겁게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하기에는 차라리 핵이 없는 게 더 좋아. 핵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저 크고 단단한 놈을 핵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때려 부수는 건 사양이었다.
게다가 핵이 따로 있다는 건 흙 골렘들처럼 부셔져도 저절로 재생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건 진짜 최악이지. 일단 재생이 되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그는 주변에 보이는 바윗덩이들을 가리켰다.
“이 바위들을 하나씩 들어!”
“오옴!”
그 말에 켄타우로스들이 주먹 도끼를 내려놓고, 묵직한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오옴!”
“오오옴!”
힘도 좋다!
정다운은 흡족하게 웃으며 대군을 호령하는 장군처럼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모두 일발 장전!”
“오오옴!”
켄타우로스들이 일제히 투포환 선수처럼 바위를 등 뒤로 젖힌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수도 없이 연습시킨 동작이다.
흙 골렘들은 창의적인 활동엔 약하지만, 반복적으로 시킨 행동은 정확하게 일을 수행했다.
그 훈련의 성과를 이제 확인할 때가 된 것이다.
정다운은 팔을 천천히 내리며 멀리 보이는 도마뱀 석상을 가리켰다.
“발사!”
“오오옴!”
켄타우로스들이 바윗덩이를 힘차게 던졌다.
부우웅!
콰앙! 쾅!
‘나이스! 맞았다!’
4개 중 2개의 바윗덩이가 석상의 몸에 직격했다.
놈의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실금이 가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석상의 눈을 뜨게 하는 데는 그 정도 충격으로도 충분했다.
그그극!
돌로 된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캬오오오!”
“오오옴!”
후우웅! 바람이 거칠게 나부낀다.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는 도마뱀 석상!
그 앞을 4기의 켄타우로스들이 막아섰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쾅! 쿵쿵! 쾅쾅!
“캬오오!”
“오오오옴!”
거대한 괴물들의 대격돌에, 바위산이 쩌렁쩌렁 흔들리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평범한 산이었다면 산사태를 걱정했을 만큼 거칠고 격렬했다.
그 치열한 공방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다운이 눈을 빛냈다.
‘재생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도 바위에 직격당한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설마 핵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승산이 있지!’
가장 우려하던 일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돌격뿐이었다.
‘핵이 따로 없다면 약점은 심장, 아니면 머리겠지!’
혹시라도 핵이 있더라도 머리를 날려 버리면 앞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0미터나 되는 높이에 있는 머리통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일단 다리부터 공격한다!’
날개도 좋지만 등에 달린 날개를 공격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높으니, 다리부터 부수기로 했다.
어차피 다리 한쪽만 없어져도 무게 중심이 무너져서 제대로 날기는 힘들 터.
“다리를 집중 공격해! 중심을 무너뜨려!”
“오옴! 오오옴!”
콰쾅! 쾅!
켄타우로스들은 그의 명령대로 도마뱀 석상의 다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캬오오!”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오르는 도마뱀 석상!
광풍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그 광풍을 뚫고 놈을 바짝 추격하는 켄타우로스들!
고릴라 골렘 때보다 확연하게 빨라진 속도였다.
“오오옴!”
주먹 도끼를 사납게 휘두른다.
콰쾅! 쾅!
근접 공격은 피해도 극심했다.
콰직! 쾅! 퍼어억!
석상의 삼지창에 켄타우로스들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거대한 꼬리에 짓뭉개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흙 골렘의 핵을 말 하체 쪽에 둬서 저번처럼 완전히 파괴되는 일은 없었다.
정다운은 타조를 타고 전장을 누비며 켄타우로스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컨트롤했다.
“1호, 4호 뒤로 빠지고! 나머지는 계속 공격!”
“오옴!”
심하게 파손된 1호와 4호 켄타우로스가 잠시 몸을 재생하는 동안, 나머지 골렘들이 더욱 치열하게 덤벼들었다.
그러는 사이 몸을 재생한 2마리가 다시 대열에 합류!
이런 식으로 순번을 끊임없이 교대하며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정다운도 직접 가세했다.
“돌 깨기! 돌 깨기!”
따당! 땅! 땅!
타조를 타고 재빨리 치고 빠지며, 놈의 발목에 쇠꼬챙이를 박아 넣고 메탈 해머를 휘둘렀다.
크기 차이가 워낙 심하다 보니 모기가 앵앵대는 수준이었지만, 그 한 방 한 방은 착실하게 놈의 몸을 깎아 나갔다.
“캬오오!”
위기를 느낀 석상이 분노하며 발을 치켜들었다.
놈의 거대한 발이 정다운이 있는 곳으로 무섭게 내리꽂히자, 그를 태운 타조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기를 몇 차례.
정다운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옛다, 선물!’
자신이 있던 자리에 10레벨 흙벽돌을 툭 떨군 것이다.
쿠웅!
‘두 개 더! 수직으로!’
쿵! 쿵!
놈의 발밑에 순간적으로 3미터 높이의 흙기둥이 쭉쭉 올라갔다.
석상은 그 위에서 발을 헛디디고, 순간적으로 중심이 흐트러졌다.
기우뚱!
“캬악?!”
“이때다! 잡아!”
“오오옴!”
켄타우로스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놈의 다리를 붙잡고 바닥으로 강제로 끌어내렸다.
쿠웅!
큰 진동과 함께 도마뱀 석상이 바닥에 넘어졌다.
“캬오오!”
“오옴!”
팽팽한 힘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도마뱀 석상을 켄타우로스들이 양팔과 다리를 각각 붙잡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도마뱀 석상.
‘이때다!’
그 틈에 타조를 탄 정다운은 흙기둥을 밟고 더욱 높이 뛰어올랐다.
팟! 팟!
그리고 大자로 누워 발버둥치는 도마뱀 석상을 내려다보며, 소지품을 대방출했다.
“자고로! 생매장엔 장사 없다!”
콰르르르!
흙벽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캬아악!?”
쿠르르르르!
거대한 흙더미가 놈의 몸을 짓눌렀다.
몸부림이 둔해져 간다.
그 위로 정다운이 뛰어내렸다.
“이거나 먹어라!”
“캬우웁!? 캬웁! 캬웁!”
목을 사납게 뒤틀며 자신을 씹어 삼키려는 석상의 입을 흙으로 꽉 틀어막았다.
그러곤 놈의 목 줄기에 착 달라붙어 메탈 해머를 미친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따당! 땅! 땅! 땅땅땅땅!
“캬악! 캬아악!”
땅땅땅땅!
땅땅땅땅땅땅땅!
두꺼운 목에 금이 쩍쩍 벌어졌다.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는 도마뱀 석상!
그럴 때마다 묵직한 흙더미가 들썩거렸고, 켄타우로스들은 필사적으로 놈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정다운은 사력을 다해 메탈 해머를 두드렸다.
“돌 깨기! 돌 깨기! 돌 깨기……!”
숨 가쁜 시간이 흐르고.
쩌적!
“캬악……!”
결국 목이 갈라졌다.
도마뱀 석상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우뚝 멈췄다.
[<돌 깨기> 스킬이 2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돌 깨기> 스킬이 3레벨로 발전했습니다.]
[<돌 깨기> 스킬이 4레벨로 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