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6화>
가까이 다가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입구 앞에 세워진 제단 위의 거대한 석상이었다.
무슨 돌을 깎은 건지 검푸른 빛이 반들거리는 재질에다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1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형태는 사람의 형상을 띤 도마뱀이었는데 커다란 날개에 긴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그 기세가 상당히 살벌하다.
터질 듯이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과 그 위에 돋아난 힘줄!
악어처럼 강인한 턱과 그 안에 자글자글한 상어 이빨들!
게다가 얇고 섬세하게 조각된 날개와 전신주처럼 두껍고 강인한 꼬리까지!
‘당장이라도 살아나서 덤벼들 것 같네.’
한데 그 말이 화근이었을까.
……그그극.
돌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석상 앞을 지나가던 정다운은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순간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에, 에이. 아니지?”
그그극.
도마뱀 석상의 고개가 천천히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통째로 씹어 먹을 듯한 살벌한 눈빛으로 정다운과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캬오오오!”
“으헉!?”
도마뱀 석상이 사납게 포효하며 날개를 활짝 펼치자,
부우웅!
날갯짓에 광풍이 불며 정다운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절로 뒷걸음질을 치는 정다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석상이 진짜 살아났어!? 미니맵엔 아무 표시도 안 떴는데!?’
그뿐이 아니었다.
“캬오오오!”
펄럭!
놀랍게도 날개는 장식이 아니었다.
날갯짓과 함께 거대한 도마뱀 석상이 육중한 바위임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 수 있다고!?”
정다운은 경악했다.
돌로 조각된 10미터의 괴물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리고 정다운을 노리고 빠르게 삼지창을 휘둘렀다.
“캬오오!”
“마, 막아!”
정다운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그오!”
“그어어!”
고릴라들이 정다운의 앞을 막아서며 도마뱀 석상의 공격을 막아 냈다.
퍼억!
공격이 어찌나 강한지 삼지창을 막아 낸 고릴라 1호의 팔이 그대로 갈라졌다.
하지만 곧바로 재생하기 시작했고,
“그오오오!”
그 빈틈을 노리고 다른 3기의 고릴라들이 도마뱀 석상을 향해 육탄 돌격을 했다.
“캬오오!”
후와악!
펄쩍 날아올라 공격들을 가뿐히 피해 내는 도마뱀 석상.
그러더니 공중에서 방향을 급격히 틀며 이번엔 고릴라 2호의 머리통을 강인한 뒷발로 거칠게 움켜쥐었다.
푸확!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고릴라 2호는 머리가 재생될 때까지 움직임에 제한이 걸렸다.
‘뭐가 이리 강해!?’
그동안 흙 골렘들의 힘을 믿고 있던 정다운은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공격해!”
그 말에 고릴라 4마리가 동시에 도마뱀 석상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쿵쿵쿵쿵!
“그어어!”
“그오오오오!”
고릴라 골렘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무려 최종 보스 4마리가 동시에 공격하는 셈이니 얼마나 위협적인가!
하지만 도마뱀 석상은 가뿐히 위로 날아올라 그들을 피해 내고 공중 곡예를 하듯 몸을 회전했다.
날카로운 날개가 낫처럼 휘둘러졌고,
서걱!
머리를 재생 중이던 고릴라 2호의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그어어……!”
쿠웅!
“붙잡아!”
“그오오!”
고릴라 2호가 바닥에 쓰러진 틈에, 고릴라 3호가 도마뱀 석상의 뒤에서 등을 덥석 끌어안았다.
“캬오오!”
도마뱀 석상이 신경질적으로 그를 뿌리쳤지만, 다른 고릴라들도 바로 합세해 석상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오!”
“그어어!”
4대1의 힘겨루기였으나, 기본적인 내구력 차이가 있다 보니 불리한 건 고릴라들이었다.
흙으로 된 주먹으로 단단한 도마뱀 석상을 아무리 두드려 봤자 제대로 된 데미지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고릴라들의 주먹만 뭉그러질 뿐.
‘말도 안 돼! 왜 이렇게 강한 거야!’
흙 골렘들의 몸은 마스터 레벨의 흙덩이로 만들어져 바위처럼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돌로 만들어진 도마뱀 석상은 그보다 훨씬 강했다.
저 검푸른 돌 색깔만 봐도 그렇다.
어지간한 암석보다는 훨씬 단단해 보이지 않는가.
위기를 느낀 정다운은 재빨리 코끼리의 안으로 몸을 숨겼다.
“캬오오!”
콰직!
그사이에 도마뱀 석상의 삼지창에 또 한 마리의 다리가 부러져 쓰러졌다.
‘안 되겠다. 일단 후퇴하자!’
이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 차이라면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유적지에 들어가기는커녕 입구에서부터 이 정도라면 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정다운은 고릴라들에게 명령했다.
“후퇴다! 4호만 남아 시간을 끌고 모두 후퇴한다!”
“그오오!”
덥석!
비교적 멀쩡한 고릴라 4호가 도마뱀 석상을 두 팔로 단단히 붙들었다.
크기 차이가 있다 보니 키 작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매달린 모양새였다.
“캬오오!”
다른 고릴라들이 몸을 회복하며 코끼리 곁으로 다가가니, 도마뱀 석상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정다운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가시 흙덩이를 코끼리에게 던지게 했다.
“부오오!”
퍼어억!
“캬악!”
가시 흙덩이가 적중하자 도마뱀 석상의 몸이 휘청였다.
큰 데미지는 주지 못했지만, 그 틈에 고릴라 4호가 더욱 단단히 놈을 옭아맬 수 있었다.
정다운은 4호를 남겨 둔 채 유적지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사납게 포효하는 도마뱀 석상.
“캬오오!”
놈은 끈질기게 들러붙는 고릴라 4호를 뿌리치며 삼지창을 역수로 쥐고 뒤로 찔렀다.
푸욱!
“그억……!”
순간 고릴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삼지창의 끝이 흙 골렘의 핵을 관통하고 만 것이다.
후두둑, 흙더미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고릴라 4호.
도마뱀 석상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그 흙더미를 몇 번이고 발로 짓이기더니, 정다운이 도망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도마뱀은 무심한 눈길로 다시 제단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 * *
“휴, 살았다.”
정다운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동안 믿고 있던 흙 골렘들이 아무 힘도 못 쓰고 패한 것이다.
이쪽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고릴라 한 마리를 잃고 말았지만, 저렇게 무서운 괴물을 만났는데 이 정도 피해에서 그쳤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대체 저 유적지는 뭐지?”
스테이지-1의 최종 보스가 4마리나 달려들어도 상대가 안 되는 괴물이라니?
그런 괴물이 겨우 문지기에 불과한 유적지라니?
심지어 미니맵에는 여전히 그 석상이 빨간 점으로 표시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괴물이 아니라 석상 자체가 어떤 함정 같은 개념일 수도 있었다.
‘설마 저긴 무슨 최종 스테이지라도 되는 걸까? 아니지. 여긴 스테이지밖이니까 그럴 리는 없어.’
하여튼 뭔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냥 다른 길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괴물 쥐들을 피해 안전한 길을 찾다 보니 여기로 흘러들어온 것 아니던가.
어딜 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 보니 쥐들이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그 유적지 때문이었구나. 뭔가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해.’
정다운은 그 유적지를 어떻게든 탐험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도마뱀 석상을 잡으려면 흙 골렘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겠어. 무기라도 만들어 줄까?’
흙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다.
하지만 바위로 된 무기를 들려 주면 어떨까?
바위라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정다운은 바위산을 한 바퀴 돌며 그중 가장 단단해 보이는 바위를 찾아냈다.
색깔도 마침 검푸른 색이다.
아마도 도마뱀 석상과 비슷한 재질의 암석인 것 같았다.
이걸로 공격한다면 그놈에게도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이 바위로 무기를 만들면 되겠어.’
정다운은 주먹 도끼를 만들기로 했다.
흙 골렘들에게 그럴싸한 무기는 의미 없었다.
양손에 날카롭게 벼려진 바위만 들려 줘도 충분할 터.
하지만 말이 주먹 도끼지, 흙 골렘의 손에 들려 주기 위해선 크기가 1미터 이상은 되는 돌을 날카롭게 갈아야 했다.
“아니다. 가는 것보다 깨는 게 편하겠다.”
워낙 바위가 단단하니 숫돌로 갈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숫돌이 금방 닳아 버릴 것이다.
가는 것보단 차라리 깨뜨리면, 그 깨진 단면도 날카로울 테고 훨씬 쉬울 거라 생각했다.
“외뿔 멧돼지의 기운! 으랏챠!”
정다운은 자신의 몸통만 한 바위를 번쩍 들어 돌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쿠웅! 쩍!
깨지긴 깨졌다.
아주 조금, 모서리만.
“……쉽지 않겠는데?”
몇 번이나 바위를 바닥에 내리친 끝에, 결국 이 방식으론 원하는 형태로 깨뜨리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돌끼리 부딪히는 거라서 흠집만 살짝 나든가, 아니면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정과 망치로 돌을 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소지품.”
정다운은 소지품에서 쇠꼬챙이를 꺼내 그 끝을 바위에 갖다 댔다.
그리고 반대쪽을 납작한 돌로 망치처럼 톡톡 두드렸다.
“오, 된다!”
찔끔찔끔이지만 그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돌이 깨져 나갔다.
그 모습에서 정다운은 익숙한 노가다의 향기를 느꼈다.
땅파기에 이어 이번엔 돌 깨기가 시작된 것이다.
토기 시대에서 석기 시대로 넘어온 원시인이 된 기분…….
이런 식으로 어느 세월에 골렘들에게 무기를 쥐여 줄 수 있을까. 심지어 두 개씩이나.
“구경만 말고 너희도 거들어, 이놈들아.”
“그어?”
“그오오?”
그 말에 고릴라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정다운의 곁으로 둥글게 모여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그 손에는 쇠꼬챙이와 돌이 하나씩 들려졌고,
톡톡. 톡톡톡.
“그어?”
“옳지, 잘한다.”
톡톡. 톡톡.
정다운을 흉내 내며 나란히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돌을 쪼는 고릴라들.
“그렇지. 그렇게 수달이 조개 깨듯 따박, 따박.”
꾸직.
힘 조절이 되지 않아 쇠꼬챙이가 구부러졌다.
갸우뚱?
“그어?”
“……됐고. 그냥 돌이나 잡고 있어라.”
결국 노가다는 정다운의 몫이었다.
* * *
땅, 땅, 땅!
죽음의 산맥 중턱.
모든 것이 바위로 이루어진 산에는 돌 깨는 장인이 살고 있었다.
땅, 땅, 땅, 땅!
“…….”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까끌한 턱수염.
눈앞의 돌을 멍하니 바라보는 무심한 눈동자.
입에는 습관처럼 훈제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땅, 땅, 땅, 땅!
무념무상으로 돌을 깨고 있는 돌 깨기 장인, 정다운 선생이었다.
“…….”
땅, 땅, 땅.
몇날 며칠을 이러고 있으니 머리는 그저 장식 같았다.
심심해서 딴생각을 하면 오히려 실수가 생긴다.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기계처럼 돌을 깨던 끝에,
“이게 아냐-!”
정다운이 갑작스레 벌떡 일어났다.
실수로 결을 건드려서 주먹 도끼의 날에 이가 나가 버렸다.
“뽀뀨?”
오랜만에 주인이 입을 열자 뽀뀨가 눈을 반짝였다.
쪼르르 다리를 타고 어깨 위로 올라오는 뽀뀨를 쓰다듬으며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말랑한 뱃살, 복슬복슬한 등살.
잘 먹어서 토실해진 궁둥살.
“뀨잇?”
손길이 간지러운지 바둥거리는 뽀뀨를 보니 조금 괜찮아졌다.
“쓰읍! 후우……. 열 받지 말자. 열 받으면 지는 거야.”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심기일전해서 다시 주저앉는 정다운.
그의 뒤엔 5개의 완성된 주먹 도끼가 있었으나, 앞으로 갈 길은 멀었다.
주먹 도끼를 만드는 동안 흙 골렘의 숫자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릴라 4마리에 코끼리 1마리.
어느덧 고릴라 한 마리가 추가되면서 다시 4마리가 된 것.
즉, 벌써 한 달 동안이나 돌을 깨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돌만 깬 건 아니었다.
혹시나 도마뱀 석상이 찾아올까 봐 바위산 구석에 은신처도 만들고, 괴물 쥐들이 올라올까 봐 그쪽 길목에는 흙벽으로 방어벽도 쳐 놨다.
그렇게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하고 나니, 그다음에 필요한 건 최소한의 복지 시설.
급기야 그는 바위산 근처에 흐르는 계곡 물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거기서 물을 길어 와 목욕물과 식수 공급까지 해결했다.
비록 임시로 머무는 곳이지만, 사람답게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
정다운은 새로운 돌을 가져와 쇠꼬챙이를 들이댔다.
그래도 이젠 구석기 원시인처럼 돌로 두드리지 않았다.
흙 골렘을 추가하러 가는 길에 스테이지-1 참가자들의 시체를 발견하여, 거기 떨어져 있던 무기들 중 ‘메탈 해머’를 주워 온 것이다.
메탈 해머는 긴 창 자루 끝에 도끼처럼 묵직한 쇠망치가 달려 있는 무기였다.
따앙!
그런데,
메탈 해머가 쇠꼬챙이 끝을 두드린 순간이었다.
번쩍!
“응?”
갑자기 황금빛이 그의 전신을 감싸며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최초 업적 달성!>
"돌 깨기의 달인!"
- 보상 : <돌 깨기> 스킬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