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5화>
“뭐? 연계 보상?”
눈이 휘둥그레져서 곧바로 스킬을 확인해 봤다.
<스킬>
정화 (초급 7레벨)
흙 뭉치기 (MASTER)
외뿔 멧돼지의 기운 (7레벨)
전망대 (1레벨)
온돌 (1레벨) NEW
- 작업 시간 2배 단축
- 작업을 하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 온도 조절 가능.
“진짜 온돌 스킬이 생겼네…….”
이젠 뭐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전망대 스킬이 생기면서 받은 ‘건축업자’ 업적 보상이 계속 적용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내가 짓는 건축물들이 다 스킬이 된다는 건가?’
그렇다고 아무거나 다 될 것 같진 않고, 업적이 될 만한 기념비적인 걸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스킬들을 노리고 일일이 아무 건물이나 막 지어 보기엔 너무 막연하고 비효율적이었다.
정작 ‘온돌’만 해도 그렇다.
스킬로 등록되긴 했지만, 과연 이 스킬을 자신이 얼마나 쓰게 될까?
살면서 온돌을 만들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아무튼 이 ‘온돌’이라는 스킬은 맨 마지막 스킬 설명 한 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스킬이긴 했다.
“와우,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보일러 온도 올리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되지?”
정다운은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소리쳤다.
“좀 더 따뜻하게!”
이러면 되는 걸까?
그러자 스킬의 효과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점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열기가 후끈해졌다.
“오와우! 진짜 되네? 다시 식힐 수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자 곧바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닥의 온도!
“훌륭하다! 멋진 스킬이야!”
정다운은 몹시 감탄했다.
몇 번 더 온도를 올리고 내려 보니, 스킬의 사용법을 더욱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단순히 전체 온도만 올리는 게 아니라 더욱 세밀한 온도 조절도 가능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랫목은 시원하고 윗목만 따뜻하게 만들거나, 가장자리만 따뜻하고 중앙은 온도를 꺼 버리는 식!
특정 자리만 부분적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와, 이거 너무 신기한데?”
전망대 스킬보다 훨씬 더 괴상한 스킬이었지만, 지금 당장 엉덩이 밑에서 올라오는 후끈함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크으, 좋구나! 이 정도면 창문을 좀 뚫어도 되겠는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신이 나서 벽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그러자 따끈한 바닥 위로 흘러 들어오는 바깥 공기가 너무나 상쾌했다.
“좋구나!”
“뽀뀨, 뽀뀨!”
앞으로는 직접 밖에 나가지 않고 미니맵과 창문을 통해 주변 경계와 시야 확보를 하면 될 것 같았다.
‘흐흐. 자취방 하나 얻은 기분이네.’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기분이 우쭐해진 정다운이었다.
마침 사이즈도 10평 남짓. 원룸 오피스텔 사이즈 아닌가.
어쩌다 보니 이동식 온돌방이 되어 버린 코끼리 골렘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완벽한 캠핑카로 변해 갔다.
그리고 정다운은 점점 훌륭한 집돌이가 되어 갔다.
그는 밖에 나가지 않고 모든 걸 코끼리 안에서 해결했다.
아궁이까지 있으니 내부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했다.
고기도 안에서 굽고, 좌식 테이블을 만들어 식사도 안에서 했다.
냄새는 정화 스킬로 제거하면 끝!
씻고 싸는 것조차 안에서 해결했다.
애초에 바깥에서 대소변을 해결한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아예 코끼리 엉덩이 쪽에 벽을 세우고 여닫이문을 달아 화장실을 따로 구분했다.
화장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고 그쪽으로 오물을 흘려보냈더니, 밖에서 볼 땐 코끼리가 직접 배설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심지어 그쪽에서는 온돌에서 배출되는 연기까지 살살 흘러나오기까지 하니, 이래저래 코끼리 골렘만 억울할 따름이었다.
“부오오?”
뭔가 이상한 기분이겠지만, 그런 걸 깊게 생각할 정도로 흙 골렘의 지능이 높진 않았다.
“아, 집 좋다.”
정다운은 몹시 만족스러웠다.
그가 코끼리 밖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특별히 많은 괴물 쥐들과 싸울 때 외에는 전투도 전부 고릴라 골렘들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정다운이 하는 일이라곤 겨우 따뜻한 온돌방에 드러누워 멍하니 미니맵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머리맡에 작은 밥상을 두고, 접시에 숲에서 따 온 과일까지 깎아 두니, 명절 연휴 때 방콕하는 기분이었다.
유일하게 그가 밖으로 나올 때는 며칠에 한 번 미니맵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새로운 전망대를 지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겨우 20분이면 끝!
흙벽돌의 크기가 전보다 더 커졌기 때문에 건축 속도가 더 빨라졌다.
괴물 쥐들에 의해 파손될까 봐 훨씬 두껍게 지었는데도 10분이나 더 단축된 것이다.
“심심하네.”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보니, 정다운은 코끼리 안에서 점점 소일거리를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원룸엔 역시 붙박이장이 있어야겠지?’
생각난 김에 바로 한쪽 벽을 통째로 붙박이장으로 만들었다.
나무문도 달았다.
요즘 문짝 만드는 데 부쩍 재미가 붙어서 기술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흠, 붙박이장에 뭘 넣지? 이불이나 만들어서 접어 둘까?’
어째 점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기분이었지만, 이불은 정말 중요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잘 때 배가 차가우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고!’
농담이 아니라 약국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 설사병이라도 걸리면 진짜로 목숨이 위태로웠다.
아마도 그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죽음일 것이다…….
“뼈바늘을 만들어 두길 잘했네.”
착!
이불을 만들기 위해 뼈 갑옷을 만들면서 사용했던 뼈바늘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실은 어쩔까? 돼지 힘줄은 좀 별로던데.’
힘줄은 시간이 흐르면 바짝 말라 버린다.
신축성을 잃는 것이다.
투박한 갑옷 정도야 어찌어찌 그걸로 해결했지만, 낭창거리는 이불을 그런 걸로 꿰매기는 애매했다.
‘이럴 땐 역시 선조의 지혜지!’
이번엔 한번 노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극 드라마 같은 데서 머슴들이 지푸라기로 새끼를 꼬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지푸라기 비슷한 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는 소지품에 챙겨 둔 나무장작들을 꺼내 딱딱한 갈색 껍질을 손으로 벗겨 냈다.
그러자 그 안에 드러난 새하얀 속껍질!
“오, 될 것도 같은데?”
나무 속껍질을 쭉쭉 벗겨 내 보니, 섬유질이 풍부해서 질기고 연했다.
그걸 최대한 길고 가늘게 찢어 손으로 비벼서 더욱 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기 머리를 땋듯이 세 가닥을 모아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은근 재밌네.”
워낙 할 게 없다 보니 별게 다 재밌었다.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새끼를 꼬고 있으니 진짜 조선 시대 머슴이 된 기분이라 낄낄 웃음이 나왔다.
점점 요령이 붙는지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뽀뀨가 문득 옆에 놔둔 뼈바늘에 관심을 보였다.
“뽀뀨우?”
“안 돼. 그건 먹는 거 아니야. 정화도 안 걸렸잖아.”
“뀨?”
“에헤이! 내려놔. 너 들라고 만든 칼 아니야. 바늘이야.”
뽀무룩.
그러는 사이 어설프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노끈 한 줄이 완성됐다.
뽀뀨에게서 뼈바늘을 뺏어서 노끈을 연결.
외뿔 멧돼지의 털가죽 두 장을 네모나게 잘라, 한데 겹쳐 한 땀 한 땀 꿰매기 시작했다.
“짠! 이불 완성!”
조금 어설펐지만 첫 작품이라 그런지 몹시도 뿌듯했다!
한번 해 봤으니 다시 만들라면 훨씬 더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자, 그럼 눕자.”
“뀨우!”
원래는 붙박이장에 넣어 두고 잘 때만 꺼내 덮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는 인생이었다.
붙박이장은 그냥 장식일 뿐.
그렇게 정다운은 열심히(?) 바위산을 올랐다.
그리고 점점 생활의 달인이 되어 갔다.
* * *
두 달이 흘렀다.
[캬아악! 그 인간, 또 왔다 갔어! 이게 대체 몇 번째냐고-!]
토끼의 목소리가 던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보스 룸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흙무덤.
요즘 들어 스테이지-1의 생존자들 숫자가 확연하게 늘어났다.
“여긴 괴물이 없네요.”
“휴게소 같은 곳인가?”
보스 룸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최종 보스였던 흙무덤 위에 잠시 걸터앉아 한시름 돌리곤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나 볼 법한 그 평화로운 모습에 토끼는 앞발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아아, 으아아아, 이건 좋지 않아……. 이러다 위에서 말이라도 나오면 난 끝장이야.]
오늘도 상부의 눈치를 보며 바들바들 떠는 던전 공무원, 토끼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휴, 완성!”
정다운은 뿌듯한 표정으로 위풍당당한 자신의 부하들을 올려다봤다.
코끼리 1마리, 고릴라 4마리.
어느덧 정다운의 흙 골렘은 총 5기로 늘어나 있었다.
만들면 만들수록 그 솜씨도 점점 늘어나서 지금에 와서는 그 정교함과 퀄리티가 매우 훌륭했다.
그동안 소일거리 삼아 도자기나 식기 세트를 만들던 실력이 의외로 골렘을 만들 때도 빛을 발한 것이다.
이거나 그거나 어차피 흙으로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연습이 된 셈이다.
‘와, 진짜 혼자 보기 아깝네. 이럴 땐 토끼라도 있어야 자랑을 할 텐데.’
토끼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길길이 날뛸 모습을 혼자 상상해 보며 피식 웃고 마는 정다운이었다.
조심조심 이동하다 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드디어 그는 죽음의 산맥 정상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알게 된 이상한 현상이 하나 있었다.
‘이상하다? 높이 올라올수록 괴물 쥐들이 안 나타나네?’
바위산 초입에선 수시로 쥐떼의 습격을 받아서 코끼리 위에서 농성을 벌여야 했다.
넉넉하게 가져온 흙벽돌로 방어벽을 치며 필사적으로 막지 않았더라면 진짜 위험할 뻔했다.
그런데 산 중턱에 다다르자 따라오는 괴물 쥐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쪽으론 접근하지 않지?’
의문이 들긴 했으나, 온통 바위뿐이라 식량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괴물 쥐들이 없으니 오르긴 훨씬 편했다.
‘이대로라면 골렘을 더 늘리지 않아도 바로 올라갈 수 있겠는데?’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오나 싶어서 정다운은 순조롭게 바위산을 올랐다.
얼마 후, 탁 트인 평탄한 장소가 나왔다.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빙 둘러보니, 여기보다 더 높은 곳은 없었다.
“장관이네.”
문득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 상황에 안 맞게 괜히 콧잔등이 시큰했다.
등산을 이런 맛에 하는 걸까?
엄청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자신은 죽음의 산맥 정상에 도착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저 앞에 굉장히 익숙한 건축물이 보였다.
“응? 저건 또 뭐야?”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몹시 낯익은 모습이었다.
“최종 유적지가 왜 여기 있지?”
스테이지-1의 최종 유적지와 몹시 비슷한 건축물이 바위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화려한 지붕과 기둥들.
하지만 세월의 풍파에 여기저기가 파손되고 낡아 있었다.
항상 말끔하던 스테이지-1 유적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여긴 스테이지 밖인데 왜 유적지가 있지?’
이상했다.
여긴 스테이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스테이지 보스가 있는 유적지가 여기에도 보이는 걸까?
‘설마 여기도 보스 괴물이 지키고 있나?’
그럴 리는 없었다.
이곳은 리셋이 되지 않는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난 지역이라는 뜻이다.
굳이 이런 곳에 골렘 같은 보스 괴물을 놓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왜 유적지라고 부르는 거지?’
유적지란 원래 ‘과거에 살던 사람이 남긴 역사적인 건물이나 자취’를 뜻한다.
가장 처음에 유적지라는 단어를 언급한 건 바로 토끼 도우미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들 별 생각 없이 보스가 있는 곳을 최종 유적지라 불렀다.
‘혹시 이 유적지들은 던전 게임 전부터 원래 이 세계에 존재하던 건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 괴물들만 채워 놓은 거고?’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의 유적지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 유적지를 조사해 보면 던전에 대한 비밀 같은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미니맵.”
미니맵을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건물 안은 확인되지 않았다.
전망대 위에서 볼 수 있는 괴물들만 표시되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들어가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골렘이 5기나 있는데 괜찮지 않을까?’
스테이지-1의 최종 보스가 5마리인 셈인데 무서울 게 없었다.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