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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3)화 (23/393)

<던전리셋 23화>

쿠와앙!

“끼륵!?”

퍼어엉!

“끼이익!”

고릴라의 손에서 흙벽돌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정통으로 맞은 놈들은 그대로 몸이 터졌고, 근처에 있던 놈들은 사방으로 퍼지는 흙더미에 휘말려 산채로 매몰되었다.

한 방에 최소 열 마리씩.

고릴라는 몸으로 기어오르는 쥐들을 폭풍처럼 뿌리치며 놈들의 시체를 밟고 포효했다.

“그오오오!”

‘진짜 쩐다!’

골렘은 걸어 다니는 공성 병기였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탱크가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판국!

심지어 이 탱크는 파손되어도 스스로 복구되는 기종 아닌가!

“잘한다! 계속 던져!”

정다운은 계속해서 고릴라의 손에 흙벽돌을 올려 주었다.

“브오오오!”

옆을 돌아보니 코끼리의 기세도 굉장했다.

팔이 없어서 흙벽돌은 던질 수 없지만, 여섯 개나 되는 다리로 놈들을 마구 밟아 대니 그 자체가 쥐들에겐 재앙이었다.

그 순간 아차, 하고 좋은 생각이 났다.

“아하, 코끼리는 코가 손이지!”

정다운은 코끼리의 바구니 안에 흙벽돌들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너도 던져!”

“브오오옵!”

코끼리는 코를 등 뒤로 뻗어 짐칸에 가득 채워진 흙벽돌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투척!

부우웅!

쿠와앙!

“끼익!”

“끼르륵!”

파괴력은 고릴라와 동등했다.

이로써 탱크가 2마리째!

“브오오옵!”

쿠와앙!

코끼리는 발 구르기를 하면서 계속해서 흙벽돌을 바닥에 내리꽂기 시작했다.

전력이 2배가 되니 괴물 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 갔다.

‘죽음의 산맥이라고 내가 괜히 겁먹었었구나!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점점 전멸해 가는 쥐들을 보며 정다운은 다소 안심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던전 전체에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던전이 리셋됩니다.]

“어? 벌써?”

때마침 게임이 끝났는지, 던전이 리셋된 것이다.

정다운이 최종 보스의 핵으로 고릴라를 만드는 바람에, 이번 참가자들은 별다른 희생 없이 보스 룸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들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드드드드드……!

리셋 알림음과 함께 땅 밑에서 지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 쥐들이 공격을 멈추고 몸을 납작 움츠리는 게 아닌가.

“끼륵!?”

“끼륵 끼륵!”

‘응?’

뜻밖의 상황에 정다운은 잠시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끼륵! 끼르륵!”

“끼이이이!”

괴물 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설마 지진에 겁을 먹은 건가?’

꼬리를 파르륵 떨며 도망치는 모습이 잔뜩 겁에 질린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에서 읽어 본 것 같아.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쥐들이 제일 먼저 알아채고 그 땅에서 도망친다던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어차피 살아남은 놈들은 얼마 없어서,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드드드드드……!

오직 들려오는 건 땅 밑에서 올라오는 미약한 진동음뿐.

“뽀뀨!”

그때 갑자기 땅속에 숨어 있던 뽀뀨가 정다운의 발 앞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몹시 겁먹은 표정이었다.

“뽀뀨! 뽀뀨!”

“왜? 너도 무서워?”

뽀뀨는 정신 사납게 주변을 쫑쫑거리며 돌아다니더니, 정다운의 발을 덥석 끌어안고 낑낑거리며 자꾸 어딘가로 잡아당겼다.

“뀨우웃……! 뀨잇!”

“얘가 왜 이래?”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 정다운이었다.

저번 리셋 때는 이렇게까지 뽀뀨가 겁먹지 않았던 것이다.

“미니맵!”

팔락.

양피지 지도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동안 만들어 둔 전망대들의 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스테이지 안쪽과 바깥쪽이 확연히 구분이 갔다.

스테이지-1 지역의 미니맵들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전망대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반면에 죽음의 산맥 전망대들은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오? 역시 이쪽은 전망대가 리셋 안 되는구나!’

정다운의 예상이 적중했다.

죽음의 산맥은 리셋의 영향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뭘 잘못 봤나?’

정다운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라져 가는 스테이지-1의 지도 끝에서부터 색깔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건 뭐지?’

지도 전체가 빨간색이라는 건, 설마 괴물들이 그만큼 있다는 뜻일까?

“뽀뀨! 뽀뀨!”

정다운은 뽀뀨를 안아 들고 다급히 가까운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스테이지-1 지역을 지켜보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친. 저게 다 뭐야……!”

두두두두두……!

발밑에서 지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건 던전이 리셋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최종 유적지까지 몰려갔었던 괴물 쥐들이 전부 본거지로 되돌아오고 있는 소리였던 것이다!

끼륵! 끼륵! 끼륵! 끼륵! 끼륵!

맙소사!

그 수가 수천? 수만? 육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온 땅이 괴물 쥐로 덮여 있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와!”

정다운은 다급히 코끼리와 고릴라를 전망대로 불러들였다.

아무리 골렘이 튼튼해도 저 정도로 많은 괴물들한테 뒤덮이면 직접적으로 핵이 뜯어 먹힐 것이다.

그는 전망대 안으로 들어와 입구를 꽉 틀어막으며 골렘들에게 명령했다.

“코끼리는 밑으로 내려가고 고릴라는 위로 올라와!”

“그오오!”

그 말에 고릴라는 전망대 내벽을 성큼성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우글우글 몰려오는 괴물들이 무서울 만도 했지만, 그건 도망칠 곳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은 평소에 레벨을 올리기 힘든 스킬을 성장시키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여차하면 언제든 땅굴로 숨으면 그만 아닌가!

“그오오오!”

고릴라의 험악한 얼굴이 전망대 꼭대기 위에서 불쑥 올라왔다.

정다운은 고릴라의 발밑에 튼튼한 흙 발판을 만들어 상반신까지 올라오게 한 뒤, 옥상 위에 흙벽돌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좋았어! 미사일 포탑 완성!”

똑같은 흙벽돌을 던지더라도 이렇게 높은 데서 던지면 훨씬 멀리 던질 수 있다. 파괴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고릴라! 공격! 아끼지 말고 던져!”

“그어!”

“이쪽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그 말에 고릴라는 전망대 아래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괴물 쥐들을 향해 흙벽돌들을 양손으로 마구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오오오!”

콰쾅! 쿠쾅! 콰쾅!

끼익!? 끼륵끼륵! 끼이약!

하늘에서 흙벽돌이 빗발친다!

마치 운석처럼 내리꽂히는 공격에 괴물 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다운도 가세했다.

“외뿔 멧돼지의 기운!”

2.8배 증폭된 힘으로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의 흙벽돌로 괴물 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외뿔 멧돼지의 기운은 사실상 정다운의 유일한 공격 스킬이었다.

이 스킬이 성장할수록 그는 점점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렙업엔 역시 사냥이 최고지!’

정다운은 재사용 시간 1분이 끝날 때마다 연거푸 스킬을 사용했다.

그 결과,

[<외뿔 멧돼지의 기운> 스킬이 6레벨로 발전했습니다.]

- 신체 능력 3배 증폭

- 지속 시간 1분, 재사용 시간 50초

“좋았어!”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봤더니, 확실히 들 수 있는 무게가 더 늘어났다.

‘나는 더 강해졌다!’

정다운은 전율을 느꼈다.

이 스킬은 힘뿐만 아니라 민첩성과 체력 등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증폭된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자신의 전투 능력으로 환산되는 것이다.

“끼륵! 끼륵 끼륵!”

두두두두두……!

괴물 쥐들의 기세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앞에서 잠시 주춤하더라도 바로 뒤에서 다른 놈들이 계속 밀고 들어왔다.

거기에 밟혀 죽는 놈들도 상당했다.

급기야 놈들은 전망대에 부딪혔고, 관성에 떠밀려 엎치락뒤치락 서로의 머리와 등을 밟고 올라타기 시작했다.

급기야 전망대 벽을 타고 괴물 쥐들로 이루어진 뾰족한 언덕이 만들어졌다.

“으악! 벽 타고 올라온다! 막아! 막아!”

“그오오오!”

끼륵! 끼륵! 끼륵! 끼륵!

언덕이 점점 높아져 간다.

이러다간 전망대가 통째로 점령당할 위기!

전망대가 무너질까 봐 건물 가까이엔 흙벽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흐름을 끊어야 해! 렙업 딱 한 번만 더 하고 튀자고!’

정다운은 소지품에서 흙벽돌이 아니라 훈제 고기를 왕창 꺼냈다.

그리고 멀리 집어 던지며 외쳤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끼륵!?

그 순간 가장 선두에서 벽을 기어오르던 쥐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 고개가 돌아갔다.

끼륵! 끼륵! 끼륵! 끼륵!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쥐들이 고기를 따라서 뒤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쥐 언덕이 기우뚱 넘어지며, 뒤따라오던 놈들 위로 우르르 무너졌다.

‘좋았어!’

정다운은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고릴라야. 내가 좋은 거 만들어 줄게!”

“그어?”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정다운은 재빨리 흙벽돌 8개를 쌓아 정육각형 모양으로 크게 합쳤다.

그리고 흙 뭉치기 스킬로 그 표면에 뾰족한 뿔을 잔뜩 만들었다.

순식간에 흉흉하게 생긴 가시 흙덩이가 완성되었다.

“대포알 강화 완료!”

“그어!”

“던져!”

그 말에 고릴라가 두 손으로 가시 흙덩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

“그오오오!”

힘차게 던졌다.

쿠와아앙ㅡ!

“……!”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위력!

뭉쳐 있던 쥐들이 흙덩이의 단단한 가시들에 무참히 피떡이 되었다!

‘나이쓰으!’

정다운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환호성을 질렀다.

산사태라도 난 듯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이 한 방에 무려 50마리가 넘는 괴물 쥐들이 죽은 것이다.

게다가 흙덩이가 사방으로 터지면서 다른 쥐들의 이동을 방해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번쩍!

[<흙 뭉치기> 스킬을 마스터했습니다.]

‘오, 스킬 마스터? 10레벨이 끝인가 했더니 마지막 단계가 있었구나!’

“흙 뭉치기!”

꽈악!

스킬을 써 봤더니 흙벽돌의 크기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가로, 세로, 높이가 1미터씩이 되었고, 그 단단함은…… 직접 확인해 보자.

정다운은 순식간에 가시 흙덩이를 하나 더 만들고 외쳤다.

“던져!”

“그오오오!”

콰아앙!

끼이이잇!?

치열한 수성전이 계속되었고.

얼마 후 정다운은 결국 원하던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외뿔 멧돼지의 기운> 스킬이 7레벨로 발전했습니다.]

- 신체 능력 3.2배 증폭

- 지속 시간 1분, 재사용 시간 40초

“예쓰! 이제 튀자!”

“그어!”

원하던 바를 얻었으니 곧바로 3.2배 빠른 몸놀림으로 전망대 밑으로 피신하는 정다운이었다.

더없이 아늑하고 안전한 땅굴 아지트로.

두두두두……!

*   *   *

한참 후 지진이 잠잠해졌다.

‘……다 지나갔나?’

미니맵을 확인하자, 근처에 빨간 점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는 게 보였다.

무리 지어 동굴 같은 데 숨은 것이다.

그런 곳이 총 세 군데나 있었다.

놈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미니맵의 시야 밖에 이러한 소굴들이 잔뜩 있을 터였다.

‘역시 지상은 위험해. 앞으로도 계속 땅굴로 이동해야겠다.’

전망대 위에서 방어만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동하면서 싸운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다.

아무리 흙 골렘이 튼튼하다 해도, 쥐들에게 뒤덮여 버리면 핵이 직접 공격당할 위험도 있었다.

“자, 그럼 또 땅이나 파 보실까?”

“뽀뀨 뽀뀨!”

정다운이 두 팔을 걷어붙이며 파이팅을 외치자, 뽀뀨도 돕겠다는 듯 발톱을 세웠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둘은 힘차게 땅굴을 파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툭.

갑자기 스킬이 먹히지 않았다.

“……어?”

“뀨?”

정다운이 인상을 구겼다.

“젠장. 암석층이다.”

여기서부턴 바위산이었다.

앞으로 가기 위해선 별수 없이 지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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