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0)화 (20/393)

<던전리셋 20화>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으로 참가자들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다.

[자, 얼렁얼렁! 꺼져 버리라고요!]

보랏빛 게이트가 참가자들을 반기며 넘실거렸다.

현실을 납득하든 납득 못 하든 참가자들은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자. 여기 있어 봤자 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럽시다.”

사람들이 주춤주춤 움직였다.

정다운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파앗!

마법처럼 게이트에 발을 들인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창을 든 사내가 정다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튼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겁니다.”

“뭘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했다.

창 든 사내가 먼저 게이트를 통과하고, 정다운은 마지막으로 토끼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 이제 간다! 안녕!”

[흥. 아직도 안 갔어요?]

씨익 웃으며 정다운이 게이트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

[오류!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 앞으로 메시지 한 줄이 나타났다.

“……어?”

[으잉?]

정다운은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몸으로 부딪혀 봐도 게이트는 정다운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뭐, 뭐야? 왜 못 들어가?”

[어? 오류?]

정다운은 당황해서 토끼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 봐!”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요!]

“왜 안 들어가지는 거야!”

[님이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던전 시스템이 님을 거부하는 거임.]

“나, 날 거부한다고?”

토끼가 한숨을 쉬었다.

[아, 이 인간을 진짜 어떡하냐…….]

정다운은 한참을 던전 게이트와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게이트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정다운은 망연자실했다.

“이게 뭐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내가 할 말임.]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난 여기서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

*   *   *

던전이 리셋된 지 일주일 후.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정다운은 지하 아지트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뽀뀨?”

구석에서 뼈를 물고 있던 뽀뀨가 귀를 쫑긋거리며 정다운을 쳐다봤다.

일주일간 폐인처럼 먹고 자기만 하던 그의 눈이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평생 이러고 살 순 없어!”

물론 처음과 달리 여기가 영 살지 못할 곳은 아니었다.

식량과 식수도 풍부했고, 시설도 정비했다.

하지만 현대 문물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 한번 생각을 해 보자.”

“뽀뀨?”

뽀뀨와 눈이 마주쳤다.

저 땅다람쥐는 리셋에서 벗어나 여전히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연못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땅속에서 이뤄 놓은 모든 것들은 리셋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허무하게도 지상에 열심히 만들어 두었던 전망대들은 리셋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함정이 막혀 버렸듯이 말이다.

‘대체 왜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상만 리셋이 되고, 땅속은 리셋이 안 된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여기 땅속은 던전이 아닌 걸까? 이 세상 전체가 던전이 아니다? 왜 굳이 이렇게 애매하게 만들었지?’

그때 불현듯 어떤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구나! 던전 시스템을 만든 놈이 이 세계를 창조한 게 아니야. 원래부터 멀쩡히 존재하던 세상 위에 스테이지만 꾸며 놓은 거지!’

즉, 게이트를 통하지 않아도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다운은 바닥에 스테이지-1의 지형을 대략적으로 그려 봤다.

‘흠. 남쪽과 서쪽은 사막이었고. 유적지가 있는 북쪽은 가파른 협곡. 동쪽은 괴물 쥐떼가 서식하는 죽음의 산맥이지.’

이건 시스템적으로 참가자들이 스테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은 게 아니라, 애당초 고립된 지형에 스테이지-1을 꾸며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 사막이나 협곡, 산맥을 자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면?’

그럼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아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사막은 무리야. 일단 너무 덥고, 식량과 식수를 구하기 힘들어.’

그럼 협곡은 어떨까?

‘협곡이 너무 가파르고 깊어. 그랜드 캐니언급이잖아.’

그럼 결국 죽음의 산맥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정다운은 생각에 잠겼다.

‘흐음. 땅굴로 이동한다면 쥐떼를 잘 피해서 죽음의 산맥을 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괴물 쥐들은 땅다람쥐처럼 땅속을 헤치고 다니는 능력은 없으니, 아주 가능성 없는 얘긴 아니었다.

“그래, 한번 가 볼까?”

*   *   *

[어디 가게요?]

정다운을 보러 토끼가 놀러 왔다.

한동안 풀죽어 있던 정다운이 뭔가 분주해 보였다.

“죽음의 산맥에 한번 가 보려고.”

[……왓더?]

정다운의 말에 토끼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거, 거긴 왜요? 죽으려고 작정했어요? 자살하고 싶으면 여기서 얌전하게 죽든가 해요!]

‘어라?’

토끼의 반응에 정다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죽음의 산맥’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려 준 게 바로 이놈이었다.

마치 위험하니까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암시하듯이 말이다.

“역시, 그 너머에 뭔가 있구나!”

[이, 있긴 뭐가 있어요? 쥐돌이들만 득실거리지!]

“흠. 그러고 보니 쥐돌이, 아니 괴물 쥐들이 거기서부터 우리를 여기로 내모는 것도 이상해. 마치 참가자들을 그쪽에서 최대한 멀어지게 하려는 것 같잖아.”

[의심병 돋네! 보스 깨라고 방향 잡아 둔 거임!]

“아, 몰라. 아무튼 가 볼 거야. 여기서 땅 파먹고 살 것도 아닌데, 뭐.”

정다운은 토끼를 무시하고 짐을 챙겼다.

토끼는 안절부절못했다.

‘아, 땅속에서 안전하게 처박혀 있더니 갑자기 이 인간이 왜 이러는 거야?’

“뽀뀨 뽀뀨!”

정다운이 떠나려는 모습에 뽀뀨도 주섬주섬 뼛조각들을 볼 안에 한가득 챙겨 넣었다.

*   *   *

동쪽 숲.

외뿔 멧돼지의 기운 (5레벨)

- 전신에서 외뿔 멧돼지의 기운이 솟구친다.

-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2.8배 증폭된다.

- 지속 시간 50초, 재사용 시간 1분

푸확!

“깨갱!”

괴물 늑대가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신체 능력 증폭 수치가 높아진 만큼 정다운도 강해졌다.

벌써 네 마리째.

그가 쇠꼬챙이로 후려 팬 늑대들의 숫자다.

“크르렁!”

또 다른 늑대가 정다운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목을 찢어발기려는 듯 그 기세가 살벌했다.

“소지품.”

정다운의 손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러자 늑대의 머리 위에서 흙벽돌 하나가 나타났다.

흙 뭉치기 스킬 10레벨.

이번에 폭업하면서 한 번에 뭉칠 수 있게 된 크기는 가로 80, 세로 80, 높이 80센티미터.

당연히 무게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쿠웅!

“케륵!”

수직 낙하된 흙벽돌이 늑대의 머리를 깔아뭉갰다.

제대로 맞았는지 목이 부러졌다.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몸에 힘을 쫙 빼는 놈의 심장에, 확인 사살을 위해 쇠꼬챙이를 박아 넣었다.

푹!

“이걸로 다섯 마리.”

정다운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게 실화냐? 나 혼자서 괴물 늑대 5마리를 잡다니!’

실로 엄청난 성장 아닌가!

자신이 원래 생산직이었다면 어느 누가 믿어 주겠냐는 말이다!

“크르륵! 크르렁!”

어느새 더 많은 늑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때마침 외뿔 멧돼지의 기운도 끝나 버려서 더 상대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방법은 많았다.

정다운은 손바닥을 발밑으로 향하고 그 자리에서 점프했다.

그리고 발밑으로 흙벽돌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 위로 착지!

다시 점프하며 흙벽돌 하나를 더 쌓고 착지!

“한 번 더!”

총 3장을 쌓으니 도합 240센티미터 높이의 흙벽돌 위에 올라선 상태가 되었다.

“크르릉! 컹컹!”

“크르렁!”

괴물 늑대들이 흙벽돌 기둥을 앞발로 긁으며 올라오려 애썼다.

“음? 좀 아슬아슬한가? 한 층 더.”

정다운은 발밑에 흙벽돌 한 층을 더 쌓았다.

도합 320센티미터.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발밑을 보니, 늑대들이 올라오고 싶어서 종종거리는 게 귀여워 보였다.

“내가 선물을 주마.”

정다운이 손을 내밀어 흙벽돌 하나를 아래로 투척했다.

이젠 너무 무거워서 던지기도 힘든 무게다.

쿠우웅!

늑대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워낙 몰려 있어서 흙벽돌 한 장에 2마리나 피해를 입었다.

다리가 부러져 비틀거리는 놈들에게 쇠꼬챙이를 던져 마무리했다.

슈욱! 슉!

깨갱! 깽!

늑대 2마리의 가슴에 쇠꼬챙이가 박혀 피를 뿜었다.

투창 던지는 실력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서 어지간하면 빗나가지 않았다.

정다운은 계속해서 위에서 흙벽돌과 투창으로 늑대들을 죽여 나갔다.

몸으로 부딪혀 흙벽돌 기둥을 무너뜨리려고 하면 새로운 기둥을 만들어서 옮겨 다니며 싸웠다.

외뿔 멧돼지의 기운의 대기 시간이 돌아오자 쇠꼬챙이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슈욱! 퍼벅!

깨갱!

캬륵!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들판에 죽어 있는 늑대들의 숫자는 20마리가 넘었고, 나머지는 전부 도망가 버렸다.

“뽀뀨! 뽀뀨!”

정다운의 머리 위에서 뽀뀨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땅다람쥐의 천적인 늑대를 학살하는 주인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헐. 겁나 강해졌잖아!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전투를 지켜보던 토끼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다운이 토끼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 멋있어?”

[꺼져요!]

“어, 그래. 나도 그래서 꺼지려고 가잖니.”

그의 말에 토끼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에헤이. 꺼지긴 어디로 꺼져요? 여기가 님의 고향인데!?]

“고향은 무슨?”

[죽었다 다시 태어났으니까 여기가 고향이지! 제2의 고향이네! 환영해요! 웰컴 투 던전!]

토끼가 두 귀로 하트를 그리며 활짝 웃었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정다운도 활짝 웃어 주었다.

“굳바이, 던전.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에헤이! 왜 안 봐? 계속 봐요? 응? 안 돼! 못 가! 나 심심해애-! 님 없으면 나 고독사로 죽어 버릴 거임!]

“응, 죽어. 그리고 리셋하렴.”

[여기에 님이 열심히 만든 아지트들이 아깝지도 않아요? 이걸 다 두고 가겠다고?]

“또 만들면 되지, 뭐. 더 잘 만들 수 있음.”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산맥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턴 진짜 위험한 지역이었다.

산맥 초입인데도 언뜻언뜻 괴물 쥐의 흔적들이 보였다.

미니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망대를 지어야겠다.”

정다운은 적당한 곳을 골라 10레벨 흙벽돌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젠 너무 무거워져서 외뿔 멧돼지의 기운을 써도 던지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드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소지품에서 곧바로 땅 위에 투척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즉, 건물 짓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씀!

“전망대!”

[전망대를 건설합니다.]

척! 척! 척! 척! 척!

아니, 오히려 흙벽돌 크기가 커진 만큼 건축 효율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건축에 필요한 흙벽돌의 숫자가 대폭 적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흙벽돌이 전보다 더 단단해진 만큼 건물의 내구성도 높아졌다.

외부에 대한 방어력이 올라간 셈이다.

의외의 곳에서 ‘흙 뭉치기’ 스킬과 ‘전망대’의 스킬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척! 척! 척! 척! 척!

순식간에 전망대의 높이가 쭉쭉 올라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망대 하나가 겨우 30분 만에 완성되어 버렸다.

“우와, 완성이다!”

죽음의 산맥 개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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