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18)화 (18/393)

<던전리셋 18화>

다섯 번째 전망대가 완성되어 간다.

“보기 좋군.”

정다운은 흡족했다.

자신이 만든 거지만 이번 전망대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역시 퀄리티는 디테일에서 나오는 법이지!”

무슨 일이든 계속 반복하면 요령과 실력이 붙기 마련.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의 전망대는 점점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었다.

이젠 구멍을 뚫어도 좀 더 예쁘고 견고한 구멍을 뚫었고, 계단을 만들어도 그 높이가 일정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벽돌의 엇갈리는 모양도 보기 좋게 신경 썼으며 내친김에 옥상에 옥탑방도 만들었다.

‘침대도 하나 만들어 둘까? 아지트에서 점점 멀어지니까 밤마다 왕복하기도 귀찮네.’

침대 정도는 마음먹으면 금방 만든다.

옥탑방 구석자리에 흙벽돌을 쌓아 큼직하게 퀸 사이즈 침대를 만들었다.

그 위에 햇볕에 말린 외뿔 멧돼지 털가죽을 몇 겹 겹쳐서 매트리스 겸 침대보도 추가했더니, 푹신한 쿠션감이 제법이었다.

“훗, 이거야 원. 너무 잘 만들어 버렸나.”

정다운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자신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누가 보면 무슨 건축계의 유명한 거장인 줄 알겠네.]

때마침 토끼가 스르륵 나타나 딴지를 걸었다.

“오, 왔어? 토끼야 이거 봐. 옥탑방이야! 크으, 대박이지?”

[흥. 소꿉놀이는 혼자 즐기셈. 이건 또 뭐야? 전망대에 침대는 또 왜 있어?]

토끼는 옥탑방 구석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잘 꾸며진 침대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심결에 침대를 만져 보니, 의외로 감촉이 제법 괜찮았다.

비누와 정화 스킬로 깨끗하게 세탁된 털가죽이 보송보송하고 푹신푹신한 게…….

[……핫!? 내가 왜 누워 있지?]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토끼는 자기도 모르게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정다운이 흡족한 표정으로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제법이지? 털가죽을 다섯 겹 정도 겹치니까 딱 좋더라고.”

[……흥.]

분하지만 던전에서 쉽게 접해 볼 수 없는 포근함이었다.

내려오기 싫을 정도로.

*   *   *

파아아앗!

다섯 번째 전망대가 어느 정도 완성되자, 전망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휴. 또 업적이야…….]

못마땅하지만 토끼도 이제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업적이라는 게 원래 아무나 해내기 힘든 일을 이뤄 내는 것 아니던가.

던전 한복판에 혼자서 이만한 건물을 건설한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같은 업적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 인간도 사실 류승우 같은 부류였다는 건가? 분명 참가자들과 섞여 있을 때는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도우미로서 수많은 참가자들을 접하다 보면 가끔 류승우처럼 특별한 인간들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자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던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미션들을 클리어하고,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며 빠르게 강해지는 존재들.

하지만 정다운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류승우의 그늘에 보호받으며 묻어가는 평범한 생산직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에서 열외되고 나서야 그는 뒤늦게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었다.

파앗!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응?]

“응?”

뜬금없이 며칠 전에 완성했던 네 번째 전망대에서도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긴 또 왜 저래!?]

파앗!

파아앗!

저 멀리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지금까지 정다운이 지은 모든 전망대들도 줄줄이 사탕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이번엔 뭐가 좀 다른데?”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하는 찰나,

번쩍!

새로운 업적이 떴다.

<최초 업적 달성!>

“건축업자!”

당신의 숙련된 기술 덕분에 파괴만이 가득하던 이 땅이 한층 풍요로워졌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창조성에 던전이 크게 감격합니다.

- 보상 : 건축물이 스킬로 등록됩니다.

[그만 좀 해! 이 미친 던전아!]

토끼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인간이 또 해괴한 업적을 달성해 버리고 만 것이다.

업적 내용을 확인한 정다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 이건 또 뭔 말이야? 건축업자? 스킬 확인!”

스킬 창부터 확인했다.

<스킬>

정화 (초급 7레벨)

흙 뭉치기 (8레벨)

외뿔 멧돼지의 기운 (4레벨)

전망대 (1레벨) NEW

- 건축 시간 2배 단축

- 탑을 쌓으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을 지도로 확인할 수 있다.

스킬 창에 ‘전망대’라는 스킬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었다.

뭔가 특이한 스킬이었다.

“건축 시간 2배 단축?”

스킬이 생겼으면 일단 써 보는 게 최고였다.

정다운은 바로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늦은 밤이라 멀리 나가는 건 위험하니까, 쌍둥이 빌딩을 한번 지어 볼까?”

다섯 번째 전망대 바로 옆에서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전망대!”

[전망대를 건설합니다.]

그 순간 정다운의 몸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 오오?”

파바바박!

척척척척척척!

흙벽돌을 쌓는 정다운의 손과 발이 2배속으로 움직였다.

특별한 이펙트도 없고 화려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속도를 넘어선 건축 속도 자체가 경이로웠다.

[손이 눈보다 빨라!?]

토끼는 터무니없이 쌓여지는 전망대를 보며 경악했다.

이런 스킬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다운은 신바람이 나서 전망대를 완성시켰다.

말이 2배속이지,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그 2배란, 조금도 쉬지 않고 짓는 속도의 2배를 뜻했다.

실질적으로는 거의 3, 4배의 효과를 보이는 놀라운 스킬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치지 않아!’

- 탑을 쌓으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정다운은 몸으로 깨달았다.

*   *   *

4시간 뒤, 전망대가 완성되었다.

쌍둥이 빌딩처럼 나란히 서 있는 두 채의 전망대.

평소 약 10시간 정도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빨라진 것이다.

토끼가 묘한 표정으로 쌍둥이 전망대와 그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님도 참…… 어지간하네요. 또 전투랑 전혀 상관없는 스킬이 생겨 버렸네요.]

“지금 나한테 꼭 필요한 스킬이야. 안 그래도 시간이 빠듯했는데.”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요즘 그는 매일같이 날짜를 셈하고 있었다.

왜냐면 이제 슬슬 4주차가 되기 때문이었다.

처음 1주차와 함께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죽는 기간이 바로 4주차였다.

‘4주차부터 놈들이 나타나니까.’

스테이지-1의 지역은 고립된 오지나 다름없다.

서쪽과 남쪽은 고열의 사막. 발을 디뎠다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말라 죽을 것 같은 곳이었다.

동쪽은 시커멓고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누구도 그 산맥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아니, 발을 디딘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북쪽이 바로 최종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 유적지였다.

‘즉, 나는 북쪽 유적지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해서 동쪽 인근까지 빠져나온 거지.’

그리고 동쪽 숲에서 전망대를 지으며 최종 유적지를 향해 다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쨌든, 그중 동쪽의 거대한 산맥에는 정말 무섭고 끔찍한 괴물들이 서식한다.

놈들은 바로 거대한 쥐.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강인한 발톱과 이빨, 그리고 흉포성을 지닌 맹수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수백, 수천만 마리가 몰려오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4주차부터 동쪽 산맥에서 슬금슬금 내려오는 놈들은 동쪽 지역부터 시작해서, 남쪽, 중앙, 서쪽 지역을 모조리 잠식해 버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당연히 아직까지 북쪽에 이르지 못한 낙오된 참가자들은 놈들의 먹이가 되어 뼈도 안 남는다.

놈들은 마지막에 북쪽으로 향하는데, 자연히 4주차까지 살아 있는 참가자들은 전부 놈들을 피해서 최종 보스가 있는 유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구조였다.

‘슬슬 4주차니까 이제 놈들이 몰려올 거야. 더 튼튼한 건물을 지어서 방비하든가, 아예 땅속으로 숨든가 해야 해.’

아니면, 참가자들과 함께 최종 유적지에서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 이런.”

때마침 미니맵 밑에서 빨간 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괴물 쥐떼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며 토끼가 낄낄댔다.

[대청소가 시작됐네요! 이제 다 죽는 거임!]

정다운의 눈이 빠르게 미니맵을 훑었다.

여전히 미니맵에는 참가자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전망대들이 이렇게 일렬로 연결되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다 죽었거나, 아니면 이미 유적지에 도착했거나.’

정다운은 더 고민할 것 없이 경로를 결정했다.

‘일단 유적지에 도착하는 게 먼저다.’

사실 더 빨리 유적지에 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유적지 함정 밑에서부터 흙기둥을 만들어 올라가는 방법.

하지만 그 위에 득실대는 괴물들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혹시나 지나가던 참가자들이 함정에서 기어 올라오는 자신을 보면 뭐라 생각할까? 괴물로 오해하고 공격하지 않을까?

‘……역시 조금 돌아가더라도 참가자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는 게 안전해.’

모처럼 전망대 스킬 덕분에 이동 속도도 붙었겠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다운은 얼마 후 최종 유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스테이지-1 최종 유적지>

쿠르릉! 콰쾅!

보스 룸의 거대한 홀이 거칠게 진동했다.

참가자들은 거의 전멸 직전이었다.

“씨발. 이걸 어떻게 이겨!”

창을 든 사내가 울부짖었다.

그때, 눈앞에 있던 거대한 존재가 사람 몸집만 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막아! 방패 들어!”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요!”

방패를 든 청년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탄식했다.

최종 보스 앞에선 그토록 자랑하던 스킬들이 다 쓸모없었다.

애초에 규격 외였다.

크기도, 파괴력도.

그것은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형이었다.

흙 골렘.

흙으로 빚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공포스러운 저 존재의 이름이었다.

콰아아앙!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유적지가 진동했다.

“으악!”

청년은 방패를 내팽개치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다행히 무사했지만 방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와 함께 실낱같던 전투 의지도 박살이 났다.

“사, 살려 줘…….”

청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치, 침착해……!”

창을 든 사내가 말했지만 그 본인도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놈을 어떻게 잡아…….”

“스, 스킬이 먹히지 않아.”

스테이지-1의 보스 룸.

클리어의 마지막 고비 앞에서 참가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   *   *

역시나 유적지엔 참가자들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전투가 이미 끝난 곳엔 괴물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역시 먼저 지나갔구나. 설마 벌써 스테이지를 깬 건 아니겠지?’

정다운의 마음이 조급해졌을 무렵이었다.

콰쾅!

“응?”

정다운은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음에 고개를 돌렸다.

쿵! 쿵!

익숙한 소리였다.

자신이 함정에서 죽어 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들리던 굉음과 비슷했다.

‘싸우고 있는 소리다!’

굉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보아 자신이 빠졌던 그 함정 근처였다.

그는 분명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함정에 빠져 낙오됐었다.

“마지막 전투일 거야!”

정다운은 급한 마음에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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