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12화>
어느 날이었다.
“뽀뀨?”
자다가 환청을 들었나 싶었다.
“뽀뀨?”
“뭐, 뭐라고!?”
정다운은 벌떡 일어났다.
“휴. 악몽을 꿨네. 누가 나한테 욕을 하는 꿈을 꾼 것 같…….”
“뽀뀨?”
“……!?”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정다운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 발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작고 동그란 눈동자 두 개와 딱 마주쳤다.
그놈이 말했다.
“뽀뀨?”
“……어?”
정다운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기 주먹만큼 작은 동물을 발견하고 눈을 의심했다.
가끔 들르는 토끼를 제외하고 여기서 소리를 내는 존재를 처음 본 것이다.
복슬복슬한 갈색 털에 가운데 흰 줄, 똥글똥글한 검은 눈망울.
“땅다람쥐?”
숲에서 돌아다니던 던전 동물 중에서도 가장 작은 생명체였다.
참가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놈이고, 그만큼 존재감도 없는 아이.
근데 왜 여기에 땅다람쥐가 있는 건지 정다운은 의아했다.
“너…….”
쫑긋?
정다운이 뭐라 입을 열자, 땅다람쥐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후다닥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4번 땅굴 입구 앞에서 고개를 홱 돌려 정다운에게 말했다.
“뽀뀨?”
“야! 자, 잠깐!”
정다운은 본능적으로 녀석을 쫓아 달려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나중에 확인할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땅다람쥐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분명 나무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땅속에서도 사는 놈들이었지!’
“거기 서!”
“뽀뀨!”
녀석이 도망가자, 정다운의 마음이 급해졌다.
살금살금, 하지만 빠른 속도로 녀석을 쫓아 최근에 파들어 가고 있는 4번 땅굴 안으로 진입했다.
‘어디서 내려온 거지!?’
어쩌면 이것이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다람쥐는 땅속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암석층은 뚫을 수 없는 놈들이었다.
‘저 녀석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지상에서 여기로 통하는 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말이야!’
“뽀뀨!”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땅다람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기에 남은 건 조그만 땅굴 하나.
“여긴가? 이쪽인 건가?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정다운은 정신없이 그곳을 파들어 갔다.
하지만 녀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 젠장! 놓쳤다!”
정다운은 아쉬움에 땅을 쳤다.
하지만 그 일대를 닥치는 대로 파다 보니 다행히도 녀석이 만들어 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정다운은 4번 땅굴의 방향을 급선회해서 그쪽에서부터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음 날.
“뽀뀨?”
“헉!? 누가 나한테 배드 핑거를!”
정다운은 또 욕과 비슷한 울음소리에 잠꼬대를 하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 또다시 까만 눈동자 두 개를 발견했다.
“또 왔구나!”
오랜만에 보는 새로운 생명체가 너무 반가워서 정다운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작고 여린 땅다람쥐에게는 다소 위협적이었나 보다.
후다닥!
“아냐. 잠깐!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뽀뀨!”
정다운은 어제보다 조심스럽게 도망치는 땅다람쥐의 뒤를 따라갔다.
역시나 녀석은 어제 그 근처에서 짧은 앞발로 땅을 파바박 후벼 팠다.
“역시 이쪽이었어.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정다운은 가까스로 발견한 희망에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여길 또 온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한번이면 우연히 나타났다 생각하겠지만, 이틀 연속이라니?
이는 땅다람쥐가 원하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땅다람쥐가 좋아하는 먹을 게 나한테 있던가?’
그는 땅굴을 파다 쉬는 동안 자신이 만든 땅굴 시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땅다람쥐가 건드린 흔적을 발견했다.
“……뼈?”
외뿔 멧돼지의 뼈를 잔뜩 모아 둔 방에 땅다람쥐가 뒤적거린 흔적을 발견했다.
바닥에는 녀석이 갉아먹다 남은 잔뼈가 보였다.
“설마 땅다람쥐가 뼈를 먹나?”
던전 동물의 생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정다운은 한번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곳 ‘뼈 창고’는 그동안 도축한 외뿔 멧돼지의 뼈들을 따로 모아 둔 곳이었다.
거기서 틈틈이 뼈를 깎아 도구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땅다람쥐는 작은 잔뼈만 골라서 갉아먹은 것 같았다.
‘이걸 주면 친해질 수 있을까?’
땅속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동안 혼자 있었던 정다운은 갑자기 등장한 손님이 너무 반가웠다.
간간이 나타나는 토끼 도우미조차 반가웠으니 말 다했다.
땅다람쥐를 길들여서 애완동물로 삼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좋아. 이제부터 너를 욕쟁이라고 부르겠다.”
그날부터 욕쟁이 땅다람쥐를 길들이기 위한 정다운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욕쟁아. 내가 너를 위한 예쁜 밥그릇을 만들어 주마.”
역시 애완동물, 아니 반려동물을 위한 첫 선물은 밥그릇부터다.
정다운은 찰진 흙을 넓은 판에 손바닥으로 비벼 동글동글 기다란 흙 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둥글고 예쁘게 쌓아 올려 토기를 하나 만들었다.
물을 발라서 표면을 매끈매끈하게 문지르고 그 위에 빗살무늬로 모양도 냈다.
그렇게 하루를 말렸더니 예쁜 빗살무늬 밥그릇이 만들어졌다.
정다운은 그 안에 잔뼈들을 모아서 정갈하게 쌓아 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정화 스킬을 걸었다.
“정화!”
파아앗!
‘이러면 뼈가 조금이나마 맛있어지지 않을까?’
동료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했을 때에 정다운은 독이 걸려 있지 않은 식량에도 굳이 정화 스킬을 걸고는 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정화 스킬을 걸면 음식의 맛이 조금이나마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 봐야 했다.
그렇게 또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욕쟁이’가 나타났다.
“뽀뀨?”
“흐억!?”
후다닥!
정다운이 잠에서 깨자 화들짝 놀라 쏜살같이 도망가는 땅다람쥐의 토실토실한 엉덩이.
그 뒤로 살랑거리는 녀석의 풍성한 꼬리를 쫓아서 한참을 땅을 파고 돌아온 정다운은 가장 먼저 밥그릇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표정이 환해졌다.
“먹었구나!”
야무지게도 먹었다.
뼈 한 톨 남김없이 아주 바닥까지 싹싹 비워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길들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 먹어라. 많이 먹어라.”
정다운은 다시 잔뼈들을 모아서 정화 스킬을 걸고 그릇을 가득 채웠다.
대신 이번엔 밥그릇의 위치를 침대 쪽으로 조금 가까이 이동시켰다.
‘너무 성큼 옮기면 경계할 수도 있으니까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게 하자.’
정다운은 외뿔 멧돼지를 상대할 때보다도 더 신중하게 계획을 짰다.
그렇게 매일매일 땅다람쥐가 정다운의 아지트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항상 밥그릇은 싹싹 비워져 있었다.
* * *
‘욕쟁이’는 요즘 신이 났다.
땅속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아주 맛있는 것을 먹게 된 것이다.
옆에 인간이 하나 살고 있어서 조금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어차피 놈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먹으면 되니 문제없었다.
들키면 재빨리 땅속으로 도망치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욕쟁이는 거기서 충격적인 맛을 경험하고 말았다.
오독.
“뀨웃!?”
뼈를 한입 갉아먹은 순간, 콩알처럼 까만 눈동자가 쫑긋 커졌다.
정화된 외뿔 멧돼지의 뼈는 던전 어디에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친 맛이었던 것이다!
“뽀, 뽀뀨우!?”
그 환상적인 맛을 경험한 순간, 욕쟁이의 머릿속에서는 폭죽이 팡팡 터졌다.
도파민, 엔도르핀, 온갖 환상적인 호르몬들이 녀석의 몸을 지배했다.
그것은 축제였다!
오독오독!
광란의 축제였다!
“……뀨잇?”
깜짝!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눈앞의 밥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 많던 뼈가 코로 들어갔는지 볼로 들어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욕쟁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다운의 아지트를 방문했다.
정화된 뼈 맛을 한번 경험한 이상, 이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어떤 음식도 욕쟁이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정화된 뼈. 그것은 마약이었다.
던전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다.
그 황홀한 마약의 힘은 녀석으로 하여금 밥그릇의 위치가 조금씩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당황하고 말았다.
“뽀뀨?”
오늘의 밥그릇은, 잠들어 있는 정다운의 배 위에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욕쟁이는 오늘 자신이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뼈가 맛있어도, 인간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괜한 호기심에 다가갔다가 인간들에게 잡아먹힌 동족들이 한둘이던가?
이성이 말했다. 이건 아니라고.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뽀뀨뽀뀨!”
이미 자신은 먹고 있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그리고 그걸 조심히 지켜보는 불안한 눈빛이 있었으니…….
‘성공이다!’
정다운은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저 조그만 손님이 드디어 자신의 배 위에까지 올라와 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배 위로 느껴지는 고사리 같은 발바닥,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뱃살의 촉감이 너무나 귀여워서 숨 쉬는 것까지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녀석을 깜짝 놀라게 해서 이 순간을 망칠 수는 없었다.
오독오독!
욕쟁이는 어찌나 뼈를 맛있게 먹는지,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다 못해 그 안으로 빠져 버릴 것 같았다.
그 반동으로 저 토실토실 작은 엉덩이가 들썩들썩 뒷다리가 바동거렸다.
그러다 결국 몸이 발라당 뒤집어지고 말았다.
앞 구르기!
“뀨익?”
‘아이구!’
정다운이 더 놀랬다.
그러다 그 순간 딱, 둘의 눈이 마주쳤다.
‘흡.’
긴장되는 순간.
하지만 이미 마약 뼈에 취해 있던 욕쟁이는 갸웃 고개를 까딱이더니 다시 뼛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오독오독!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뿌듯한 미소가 입에 걸렸다.
* * *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일도 아니었다.
그 뒤로 욕쟁이는 정다운이 깨어 있어도 도망가지 않고 정화된 뼈에 심취했다.
정다운은 급기야 밥그릇 밑바닥을 개조해서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걸 본 욕쟁이는 한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쪼르륵 정다운의 몸 위를 휘감아 올라 그의 어깨 위에서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다운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성공이었다. 녀석이 가만히 그의 손을 받아들였다.
‘크으. 귀엽다, 귀여워.’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의 몸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뽀뀨!”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
<최초 업적 달성!>
“땅다람쥐의 친구!”
숲속의 작은 겁쟁이 땅다람쥐를 길들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친화력에 던전이 감탄합니다.
- 보상 : 길들인 땅다람쥐가 당신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어? 업적?”
뜻밖의 상황에 정다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업적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자주 달성되는 거였나 싶었지만, 동료들과 있었을 때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서 보상도 연못에 물고기가 생겨났을 때처럼 별거 아니었지만…….
지금 이순간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샌가 욕쟁이가 정다운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은 듯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크윽. 오냐! 내가 너의 주인이다!” 우리 평생 가자!”
“뽀뀨?”
“……부디 욕은 하지 말아다오.”
그의 정중한 부탁에 욕쟁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뽀뀨, 뽀뀨.”
“…….”
어쨌든 업적 보상대로 욕쟁이는 정다운의 말을 알아듣는 듯 보였다.
‘이참에 제대로 된 이름이나 지어 줄까? 욕쟁이는 좀 그렇고. 음…….’
그는 진지한 눈으로 욕쟁이를 지그시 스캔했다.
“그냥 뽀뀨라고 하자.”
“뽀뀨!”
“오냐. 네가 뽀뀨다.”
정다운은 땅속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가 마냥 귀엽고 좋아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서 갑자기 번개가 쳤다.
좋은 생각이 난 것이다.
“아! 뽀뀨야! 혹시 나한테 왔던 길 좀 안내해 줄 수 있어?”
“뀨잉?”
“밖으로 나가는 길 말이야.”
“뽀뀨.”
끄덕.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욕쟁이, 아니 뽀뀨는 쪼르르 바닥으로 내려와 정다운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