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7)화 (7/393)

<던전리셋 7화>

콸콸콸콸!

“으악!”

갑자기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자 정다운은 기겁했다.

땅굴을 파면서 최대한 조심한다고는 했는데도,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여태까지 파 둔 땅굴들이 전부 물에 잠기고, 자신은 수장되어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지난 수십 일 동안 그가 매일매일 주구장창 해 오던 일이 무엇인가.

바로 흙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소, 소지품!”

<소지품>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흙벽돌(99)

……

그동안 해 온 노가다의 결과물이 눈앞에 촤라락 펼쳐졌다.

‘구멍을 막아야 돼!’

정다운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그 안에서 흙벽돌들을 꺼내서, 물을 콸콸콸 뱉어 내고 있는 구멍 안을 틀어막았다.

“으아아아!”

콸콸콸콸!

[택도 없네! 계란으로 바위치기네요!]

그가 하는 꼴을 보곤 뒤에서 토끼가 깔깔거리며 비웃었다.

작은 흙벽돌들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다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쪽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으아아아!”

그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그만 포기하라니까요!]

콸콸콸콸! 쩌적! 쩌적! 콸콸!

“으아아아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막아도 막아도 물줄기가 계속 벽을 갉아 먹고 터져 나온다.

일촉즉발의 다급한 상황!

결국 하나씩 꺼내선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그는 급기야 소지품에 있던 흙별돌들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와르르르!

[뭐가 저렇게 많아!]

토끼가 뒤에서 기겁했다.

정다운의 앞에서 무슨 산사태 같은 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다 그동안 했던 노가다의 결과물들이었다.

정다운은 두 손을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그 흐름을 조율해 나갔다.

‘산처럼 쌓아서 구멍 앞을 막자!’

정다운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물구멍 바로 앞에 흙벽돌들이 쏟아지게끔 방향을 필사적으로 조절했다.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떠밀려 다시 밖으로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러면 그 무너진 쪽으로 방향을 돌려 또다시 그 위에 벽을 쌓았다.

‘점점 요령이 붙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다운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에 따라 구멍이 점점 좁아지며 물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말도 안 돼.]

구멍을 막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토끼는 질린 얼굴로 외쳤다.

[저걸 막았어!?]

정다운은 물이 뚝뚝 흐르는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나 지금 뭔가 깨달은 거 같아.”

[뭘 깨달아요?]

“으음, 요령?”

그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정신없이 소지품에서 흙벽돌들을 꺼내다 보니, 그 과정 속에서 무슨 요령 같은 걸 체득한 것 같았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그의 손이 다시 소지품 창으로 향했다.

흙벽돌(43)

이 와중에도 아직도 흙벽돌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노가다가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흙벽돌(43)’을 손으로 잡고 ‘요령 있게’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척척척척척척!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에 맞춰 흙벽돌들 여러 개가 줄줄이 바닥에 소환되었다.

정확히 일렬로 말이다.

“예쓰! 된다!”

정다운은 크게 기뻐했다.

우연일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난이도가 더 높았다.

위치는 방금 만들어 낸 흙벽돌들 바로 위!

‘신중하게.’

정다운은 정확히 그 위에 올리기 위해서 한쪽 눈까지 감고서 방향을 가늠했다.

그리고 휙, 손을 휘둘렀다.

척척척척척척!

일렬로 쌓인 흙벽돌들 위에 두 번째 줄이 정확히 올라갔다.

“성공이다!”

정다운이 환호성을 지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대체 뭐가 성공이라는 거임? 한 줄로 꺼내지는 게 좀 신기하긴 한데, 그냥 그뿐이잖아요. 이게 뭐 어쨌다고?]

그러자 정다운이 흥분해서 두 단으로 쌓인 흙벽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보고도 모르겠어!? 이제 난 손짓만으로도 순식간에 벽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고!”

[……?]

토끼가 의아해하는 찰나, 정다운의 손이 또다시 움직였다.

척척처! 착착착!

[어? 어? 어?]

토끼의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가 한 번씩 손을 휘두를 때마다 흙벽돌들이 쭉쭉 쌓이면서, 담벼락이 눈앞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마법처럼!

[헐. 스킬!?]

“아니, 스킬은 개뿔. 요령이지! 토끼야. 난 아무래도 노가다에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요, 요령? 그딴 거에 깨달음 얻지 마, 이 양반아!]

토끼가 버럭 짜증을 냈다.

*   *   *

다행히 위기는 넘겼다 해도 물난리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1번 땅굴이 완전히 침수되어 버린 것이다.

그동안 계속 1번 땅굴에만 올인하고 있던 정다운 입장에선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대신 성과도 있었다.

바로 식수원이 생겼다는 것!

“앞으로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본거지 한구석에 생긴 작은 연못을 보며 정다운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토끼가 저주를 퍼부었다.

[흥. 그 물에 무슨 독이 퍼져 있을 줄 알고요! 분명 그거 먹으면 설사가 주륵주륵! 배탈로 데굴데굴!]

“정화!”

[뭣!? 무슨 짓이야!]

파아앗!

토끼의 처절한 만류를 뒤로한 채, 정다운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바로 그의 퍼스트 스킬 ‘정화’에 의해, 정체불명의 지하수가 말끔히 정화되었다.

“이제 먹어도 될 듯?”

[…….]

잊고 있었다.

애초에 류승우의 그룹에서 정다운의 임무가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어지간한 독이나 병균 같은 것들은 그의 정화 스킬 한 방이면 깨끗하게 지워지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참 쓸데없는 스킬이 다 있구나 싶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었다.

토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얄미운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얄미운 건, 그가 절대 방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언제 벽이 터질지 모르니까, 바로 보강을 해야겠다.”

[거 진짜, 쓸데없이 신중하네.]

정다운은 토끼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피식 웃어넘기면서 흙 뭉치기 스킬을 사용해 연못의 밑바닥에 깊은 웅덩이를 팠다.

그러자 그 웅덩이를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물이 고였고, 정다운은 그 테두리를 따라서 야트막한 벽돌담을 척척 쌓아 나갔다.

“흐음. 먼저 방향을 잘 가늠하고. 이렇게 손을 휘두르면?”

휙. 척척척척척!

“예쓰. 또 성공!”

정다운은 연못을 보강하면서 자신이 터득한 담쌓기 요령을 계속 손에 익혀 나갔다.

가끔 집중이 흐트러지면 방향이 빗나가거나 삐뚤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에 일곱은 성공이었다.

신이 나서 슬쩍 토끼를 돌아보며 말을 걸어 봤다.

“두 줄로 쌓으면 튼튼하겠지?”

[몰라요! 그딴 거 나한테 의논하지 마요!]

“큭큭.”

버럭하는 토끼의 반응에 정다운은 웃음을 참으며 계속 작업에 착수했다.

오랜만에 말상대가 생겨서 즐거웠다.

그동안 계속 지하에 혼자 있었더니, 두고 보자고 벼르고 있던 토끼조차 반가운 것이다.

*   *   *

“오. 이쁜데? 내가 만든 거지만 솔직히 잘 만들어진 듯? 어때?”

[네네. 참 잘하셨어요. 여기 진짜 쓸데없는 재능 하나 추가요!]

정다운의 자화자찬에 토끼는 겉으론 비아냥대곤 있었지만, 속으로는 솔직히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이랑 노닥거리면서 설렁설렁 만들어 낸 것치고는 의외로 결과물이 제법 괜찮았던 것이다.

연못을 둘러싼 정갈한 벽돌담.

그 안에 넘실거리는 깨끗하고 투명한 물은 경사를 교묘하게 조절해 1번 땅굴로 흘러 내려가는 안정적인 구조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잘 만든 연못이었다.

“중요한 게 빠졌네.”

[또 무슨 짓을 하려고요?]

자꾸만 뭔가를 하려고 하는 정다운의 모습에 토끼는 질색하며 물었다.

정다운은 연못 끝에 있는 벽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수도관을 만들 거야.”

[수도관이요?]

“응. 벽을 저렇게 꽉 막아 놓으면 언젠가 수압 때문에 다시 터질 수도 있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미리 물고를 터놓는 게 더 안전할 거 같아.”

정다운은 연못 안으로 걸어 들어가 함정 바닥에서 회수해 두었던 쇠꼬챙이들 30개를 다 꺼냈다.

“일단 소독부터 하고. 정화!”

파아앗!

그렇게 정화 작업을 한차례 끝낸 후.

정다운은 그것들의 예리한 끝을 잘 겨냥해서 흙벽 안으로 하나하나 밀어 넣기 시작했다.

각도는 위로 경사를 주고, 형태는 둥근 원기둥 모양을 유지했더니 어설프지만 쇠파이프가 급조되었다.

“이제 흙만 파내면 수도관이 완성.”

[혼자 잘도 논다. 진짜…….]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

정다운이 갑자기 흙덩어리 몇 개를 소환했다.

그러곤 지금 만든 수도관 위로 흙을 큼직큼직하게 뭉쳐 붙이더니, 무언가를 척척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형태가 드러나자, 토끼가 얼굴을 갸웃했다.

[사자?]

그 앞에는 흙으로 만든 사자 머리 조각상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뭘 하나 했더니 공원 연못 같은 데서나 볼 수 있을법한 사자 분수상을 만든 것이었다.

투박한 솜씨긴 했지만 사자의 갈기가 화려해서 제법 볼 만한 수준이었다.

[진짜…… 별짓 다 하시네요.]

“그럼 이제 마무리.”

정다운은 사자의 쩍 벌린 입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스킬을 발동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그러자 그의 손을 따라 수도관 안을 막고 있던 흙이 쭈욱 밖으로 딸려 나왔다.

곧이어 사자의 입에서 맑은 물줄기가 꼴꼴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자 머리 분수대가 완성되었다.

“됐다! 완성!”

보람찬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정다운의 뒤에서 토끼는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쓸고퀄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였네요. 쓸데없이 고퀄리티다, 진짜.]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최초 업적 달성!>

“사자 분수대가 있는 연못을 완성하였습니다!”

- 보상 : 당신이 만든 아름다운 연못에 물고기가 살게 됩니다.

“응?”

[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다운이 완성시킨 연못 안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더니, 그 안에서 갑자기 물고기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경악했다.

“우와. 물고기가 생기다니!”

[말도 안 돼! 이게 다 무슨 난리야!]

토끼는 너무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런 업적이 존재한다고!? 뭐? 연못 완성?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업적이라는 거야!]

이건 토끼가 가지고 있던 던전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박살 낸 사건이었다.

‘업적 달성’이란 던전이 참가자들에게 내려 주는 기적과도 같은 것.

보상받을 만한 일을 해야 기꺼이 내려 주는 던전의 축복이었다.

그런 신비로운 이능이 겨우 흙 좀 만지작거린 걸로 보상을 준다고?

토끼는 이게 다 꿈이길 원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일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연못 안에는 손가락만 한 크기의 작은 물고기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끼의 심정 따위는 알 바 없이, 정다운은 그 귀여운 아기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진짜 잘됐다. 이제 굶어 죽을 일은 없겠어. 물도 있고 물고기도 있네.”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던 식수와 식량이 하루아침에 해결된 것이다.

모든 게 순탄했다.

정다운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희망차게 입을 열었다.

“좋아. 하늘은 나를 돕고 있어. 열심히 땅을 파다 보면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거야. 기운 내자.”

[기운 내지 마!]

토끼가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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