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화
이질적이야.
이놈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깊게 이해하고 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 아니. 대다수의 생명체와는 달랐다.
하기사.
애초에 성좌급의 신격으로 태어난 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게 있다.
보통 방법으로는 이놈을 죽일 수 없다.
이미 신격, 성좌나 같다.
성좌들은 기본적으로 불멸자이고, 보통의 수단으로는 살해는커녕 죽이는 게 쉽지 않다.
죽여도 시간이 지나면 부활한다.
아예 소멸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도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
[싸울 생각인가?]
“더 대화를 나눠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내공이 내 몸 전체로 흐른다.
이미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렀고, 성좌가 되어 세계를 가르는 검을 지닌 것이 나다.
의지를 세우고, 그것을 검에 담으며 녀석을 향해 선언했다.
“종말은 없다. 내가 너를 여기서 박살 낼 테니까.”
[과연 그럴 수 있는지 네 힘을 보여라. 그렇지 않다면 너에게도 종말을 나누어 주겠노라.]
전투가 시작된다.
* * *
따봉은 만능과 전능의 힘이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인식할 수 없는 것에는 대응할 수 없다.
또한 따봉은 인과를 뒤틀 수 있지만,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는 사용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최후의 전쟁이자 전투.
달이 지구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종말의 마왕]이 지구에 강림하는 것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파식. 파식.
[종말의 마왕]이 나누어 주었다는 종말에 당해 정지된 사람들 중 일부가 산산이 흩어지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게 왜 그런 것인지 [성좌의 직감]이 가르쳐 주고 있다.
저건 [종말]에 먹힌 것이다.
녀석이 주는 그 [행복한 일상의 종말]에서 행복해지고, 그걸로 만족해서 [종말]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사라지는 거다.
내 부활로도 되살릴 수 없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
젠장. 타임 어택까지 하는 치사한 보스 새끼!
무척이가 무사한지 확인. 정지벽, 성광, 별하나, 신주란, 정비가, 아담 브론즈, 베르나데 이트, 다니엘 엔조 그리고 그 외에 내가 아는 친인들.
그들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그들은 아직 무사하다. 정지되어 있지만, 아직은 그대로다. 하지만 언제 [종말]에 먹혀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네놈을 이겨야 한다는 거겠지!!”
의지를 담은 강기가 두 검에 서리고, 그것은 거리를 넘어 [심검]의 힘으로 상대를 가른다!
[심검]으로 펼치는 건곤분단의 절초!
두 개의 검은 엑스자로 교차되면서 천지를 가른다.
여기가 달이기에 하늘과 땅을 갈라버리는 그 힘은 [종말의 마왕]의 몸과 그 아래의 달 표면까지 갈라 버렸다.
콰직!
그러나.
녀석의 몸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고, 그 상처에서는 검은 연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녀석의 공격이 시작됐다.
팔짱을 낀 두 개의 팔이 벌려지고,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들었던 두 개의 팔은 적광의 빛을 낸다.
투콰콰콰콰콰콰!
적광으로 물든 두 개의 팔이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의 붉은 섬광의 화살을 쏟아낸다.
마치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마력탄을 보며 나 역시 속도를 더 내었다.
펑!
음속을 돌파. 안으로 파고들며 두 개의 검을 미친 듯이 휘두른다.
녀석의 마탄 하나하나가 고레벨의 파괴 마법 같은 위력을 가졌다.
하지만 단순해.
이게 네 녀석의 끝은 아닐 텐데!
“합!”
곡예에 가까운 비행. 그리고 바람 같은 속도로 뻗어낸 검.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녀석의 머리 위쪽 가까운 곳까지 도달했다.
여기서 [심검]이다!
카강!
검을 휘둘렀으나.
녀석의 두 손에 들린 쌍검이 내 쌍검을 막았다. 어느샌가 소환된 검은색의 직검은 길쭉하고, 얇다.
면적만 보면 내 검보다 크고 두껍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로 보면 꼬챙이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잔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졌다.
좋아. 너도 검술 좀 한다 이거냐!? 해 보자고!
콰가가강!
검과 검이 충돌한다.
그 와중에 내가 미처 막지 못한 공격이 옆구리를 때렸다.
퍽!
큭!
아프잖아! 녀석의 다른 두 손이 마법을 쓰며 나를 압박한다. 하지만!
[주군. 저도 가세하겠습니다!]
척량이 목에서 벗어나 허공을 질주한다. 그리고 마법 주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왕 놈의 두 팔을 봉쇄.
이제야 균형이 맞…….
[종말하라.]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내 몸이 우뚝하고 멈춘다. 아니, 이게 갑자…….
쾅!
놈의 검이 내 어깨를 내리찍었다.
그 검의 크기가 내 몸통만 하니, 사실상 머리통이 깨질 뻔한 각도였다.
“크악!”
아픔. 고통이 느껴진다. 동시에 몸이 지면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주군!]
괜찮아! 이 정도로 안 죽어!
“흡!”
지면에서 다시 튀어 올랐다.
이 새끼, 역시 강해. 심플하게 강하다.
예전에 [느린 녹음]을 상대한 적이 있고, 그 이후에도 곤륜산의 [사도를 걸어 선이 된 자들]과 싸웠지만 그들과 달랐다.
하지만…… 저 ‘종말하라’는 말 때문에 내가 멈춘 건 무슨 이유지?
뭐하는 권능이야?
[왜 발버둥 치는 거냐? 종말은 필연이다.]
“개소리하지 마시고요. 종말이 필연인 건 나도 알아.”
[그렇다면 왜냐?]
“네 말은 어차피 뒤질 건데 밥은 왜 먹느냐는 소리와 동급이니까. 네 말마따나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 그게 종말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죽기 전까지는 다들 죽기 살기로 아득바득 살아가는 거라고!”
그게 사람이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게 나다!
염혼염동, 강기, 심검, 크투가의 걸음, 혼원건곤신공 그리고 그 외의 공격 스킬들을 전부 의지를 이용해 검에 불어넣었다.
본래라면 불가능하지만.
나는 성좌!
게다가.
따봉이 나와 함께한다.
[발버둥 치는 건가. 그렇다면 나 역시……. 전력으로 너에게 종말을 선사하겠다.]
녀석이 두 손에 든 쌍검을 교차한다.
그것은 나선으로 꼬아지며 하나로 합쳐지고, 양손으로 그 검을 잡은 놈이 나를 보았다.
[종말하라!]
“갈라져라!”
[심검]의 상위. 무신이 터득하라 말했던 것.
[심원검계].
그것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따봉으로 [심원검계]에 가 닿는다.
그러니까 갈라져라!
쩌억!
공간이 갈라지고, 시간이 잘리는 기분이 들었다.
차원이 베어지고, 그 너머 공허가 베어진다. 무엇이든 반으로 갈라 버리는 듯한 참격은 달까지도 베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얕아!
역시 진짜 [심원검계]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녀석이 행했던 ‘무언가’의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상쇄된 것인가.
그때.
[멸망의 중력이여, 여기에 떨어지리라!]
척량이 하늘에서 9클래스의 파괴 마법을 완성했다. 9클래스의 마법은 하나하나가 성좌의 권능에 버금갈 정도의 공격.
하늘에서 생겨난 보랏빛 빛이 떨어져 내려 [종말의 마왕]에 가 닿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 보랏빛 구체로 빨려 들어가며 압착되어 간다.
[종말하라.]
그러나.
놈이 종말을 선언하자.
구체가 사라지고. 다소 부상을 입은 [종말의 마왕]이 건재한 모습으로 섰다.
녀석의 어깨 부분이 부서지고, 팔 하나는 날아갔다. 그럼에도 고통스럽거나 힘이 쇠한 것 같지 않다.
[과연……. 종말을 미룰 정도의 힘이다. 그러나 대적자여, 너는 이제부터 나를 이길 수 없다.]
“뭔 개소리를…….”
[보아라. 네 앞에 다가온 종말을!]
화아아악!
놈의 부서진 팔이 순식간에 재생. 그리고 놈의 몸이 더욱 커진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몇 배로 불어났다.
아니. 이게 무슨…….
[종말의 때가 다가왔다. 저들이 종말을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더욱 강해지노라.]
뭣!?
녀석이 가리킨 것. 그것은 하나둘 사라져 가는 헌터들이었다.
[종말]을 나누어 받고, [종말]에 먹혀들어가고 있다!
이 새끼……. 내 앞에서 헌터들을 죽이고 레벨 업을 하고 있는 거였어!?
“합!”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때문에 나 역시 필살의 의지로 검을 내뻗었다.
[종말하라.]
녀석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 동시에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 그거잖아!
게다가 아까는 잠깐 멈춘 거지만 지금은…….
펑!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움직이게 된 내가 검을 내뻗는다. 하지만 그사이 녀석은 빛을 내며 제법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놈…….
[종말이란 결과의 끝을 의미한다. 네가 성좌이기에 네 녀석에게 종말을 내릴 수는 없지만, 잠시 동안 종말을 강요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것이 네 녀석을 멈추게 하는 이유. 그리고 이제 나는 더욱 강해졌다.]
녀석이 손을 뻗는다.
[종말하라!]
그 순간, 내 팔이 사라졌다. 한쪽 팔이 문자 그대로 사라지고, 내 어깨 부분의 잘려진 듯한 단면은 검은 어둠으로 변했다.
고통은 없다. 하지만 팔의 감각이 없다.
“큭! 이놈…….”
[종말이 네게 왔다, 갓튜브 소셜 슈퍼스타. 자. 종말을 받아들여라.]
이를 악문다.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짓을 해야 저놈을 이길 수 있지?
[자아. 종말이다.]
놈이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파칭!
그때였다.
[종말의 마왕] 머리 바로 위. 그곳의 차원이 박살 나며 차원의 파편이 유리 조각처럼 흩날린다.
그 차원의 균열에서부터, 누군가가 튀어나와 대검을 힘차게 휘두른다.
대검은 길이가 2미터가 넘고, 두툼한 철판 여러 개를 붙인 듯 보이는 물건이었다.
“대가리 딱 대, 새끼야!”
구수한 한국식 말투를 쓰면서, 그의 대검이 정확하게 종말의 마왕의 팔 한쪽을 잘라냈다.
[종말하라!]
“응. 안 통하죠?”
[종말의 마왕]이 종말의 권능을 쓰지만, 대검으로 몸을 가리자 대검이 새파란 빛을 냈고.
그 위로 검은 에너지가 폭발하며 흩어진다.
아니.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저기서 튀어나와?
“아일!?”
통칭 그 인간. 내가 나타나기 전에, 자타공인 전 세계 헌터 랭킹 1위인 인간!
한국인이라고는 알려졌지만,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헌터.
아니. 갑자기?
“염병할! 놀라는 건 나중에 하고 도우라고! 내가 [공략안]을 가지고 있다지만, 혼자서는 이놈 못 죽여!”
아일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쌍검을 쥐었다.
그래.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떻게 나타난 건지, 어째서 [종말]의 권능이 안 통하는지는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금 다시 한번…….
파칭!
그때.
달 표면의 바닥이 깨져나갔다. 그 규모는 아일이 튀어나온 것보다 거대하고 컸다.
km 단위의 차원 균열.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온다.
“냐하하하하! 늦지 않았죠? 엄지 군?”
망령들로 이루어진 수백 미터나 되는 날개를 펼치고, 그 몸 역시 수를 세기 어려운 망령으로 휘감은 존재가 하늘에 떠오른다.
균열에서는 창백한 불사자(不死子)가 기어 나와 [종말의 마왕]의 발밑으로 달려간다.
“리블!”
“마지막 관문은 빡셀 거라서. 저도 작은 준비를 했답니다~ 자! 마지막입니다!”
아일을 데려온 것은 리블인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네.
“리블 나이스! 나도 한다!!”
아까는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