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0화
3일 후 달은 지구로 낙하한다.
몬스터와 싸우고 어쩌고 할 레벨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을 강력하게 설득했다.
-하루 만에 적어도 백만 명을 태울 수 있는 우주 함선을 만들라고? 너 미쳤니?
-엄지척이 미쳤어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계산에 따르면 앞으로 65시간 후 인류의 파멸은 확정적이다.
-그건 나도 이미 계산했어. 65시간 후에는 달을 다시 정상 궤도로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3일은 72시간인데…….
문제는 달이 일정 이하로 가까워지는 순간 달과 지구가 끌어당기는 인력 때문에 더 이상 막을 방도가 없다.
즉.
65시간만 지나면 파멸 확정. 그리고 72시간 뒤에는 지구와 달이 문나잇 키스를 나누게 되고, 인류는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 전원이 사망할 것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성좌는 좋아하겠군.
하데스 같은 성좌들 말이야.
그런데 하데스의 세계는 지하에 있는 거 아닌가?
지구가 박살 나도 괜찮은 거야?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내 앞에 떠 있는 두 개의 화면을 보았다.
하나는 정비가, 다른 하나는 아담 브론즈다. 제작계는 저 둘이 최고로 알고 있다.
다른 제작계의 고수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인맥은 여기가 한계.
[실제로도 저 두 명이 제작 계열에서는 최고입니다, 주군. 특히 우주 함선을 만들어야 한다면요.]
그랬어?
[예. 강력한 마법을 담은 무구를 제작하는 방면과는 분류가 다릅니다. 마도 공학에서는 저 두 명이 최고입니다.]
그러면 정말 다행이로구먼.
-이봐. 내 스카이 워로드가 본래는 방주의 역할을 하려고 한 건 사실이지만, 100만 명까지 태울 수는 없어.
-하루 만에 100만 명을 태울 우주 함선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아뇨.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최근에 손에 넣은 [곤륜산]을 깜박하신 건 아닌지?”
내 말에 둘 다 깨달은 얼굴이 된다.
“[곤륜산]은 지금도 100만 명 정도 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막 기능을 활성화하면 우주 공간의 유영도 가능하죠.”
-그러면 그냥 그걸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정비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는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전 세계의 헌터를 전부 긁어모으면 3,000만 명쯤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에서도 강한 이들 100만 명을 추려서 [곤륜산]에 태우고 달의 [종말의 마왕]과 한판 뜬다고 해 보자.
당연히 [곤륜산]이 수송선의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요새가 되어야 하고, 파괴 병기가 되어야 한다 이거다.
“최악의 경우 달을 파괴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인류의 생존에 더 필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달과 함께 [종말의 마왕]이라는 놈을 날려 버린다는 건가?
아담 브론즈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 된다. 이 사람은 늘 보면……. 스페이스 오페라 덕후인 듯하단 말이지.
-그랬다가는 지구 전체에 대지진과 대해일이 일어날 수 있을 텐데? 이상 기후는 덤이고.
막대 사탕을 문 채로 정비가 사장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도 단번에 지구가 쪼개져서 우주의 쓰레기 조각으로 흩어지는 것 보다는 낫겠죠.”
내 말에 두 명은 잠시 침묵했다.
그랬다.
어쨌든 지구가 비스킷처럼 조각나서 우주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것 보다는 나았다.
“아시다시피 지구가 무사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인류는 백 명도 채 안 될 겁니다. 스카이 워로드의 방주 능력을 생각하면 몇만 명쯤 살아남을 거고, 곤륜산을 방주 형태로 개조한다면 백만 명까지는 더 생존할 수 있을 테죠. 정비가 사장님도 뭔가 숨겨 놓은 모양이시고, 각기 좀 숨겨 놓은 생존 수단까지 생각하면 대충 200만 명쯤 살아남으려나요?”
-정답이다, 연금술사. 칭찬해 주지.
아담 브론즈 이 인간은 어디서 배워온 듯한 드립을 치네.
-그래서 달을 박살 내자?
“최후의 수단이지만요. 게다가 달을 박살 낸다고 쳐도, 그게 운석처럼 떨어지면 어쨌든 대재앙이 오긴 할 겁니다. 이야기가 한 바퀴 돌았지만, 그럼에도 지구가 바삭한 쿠키에 망치질한 것마냥 박살 나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 대안으로 우주 함선을 건조한다는 거로군?
“아뇨. 정확히는…… 하루 만에 [곤륜산]과 스카이 워로드를 결합해서, 달을 파괴할 수 있는 결전 병기로 만들자는 거죠.”
-그거군? 킬링 스타.
철자가 어딘가 좀 다른 것 같지만,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유명한 그것과 비슷한 물건인 건 맞다.
“그래서, 하실 겁니까?”
-좋아. 해 보자고.
-동의하지.
두 명이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 * *
[곤륜산]은 느리기에, 스카이 워로드가 움직였다.
대규모 시간 가속까지 써서, 불과 3시간 만에 [곤륜산]까지 왔다.
[곤륜산]은 중국의 상공에서 벗어나 북한 지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우주로 올라간 두 거대한 기체의 주변으로, 스카이 워로드의 텔레포트 기능을 이용해 각종 자재와 물건들을 끌어 올렸다.
스카이 워로드는 곤륜산에 착륙.
그리고 곤륜산의 위쪽 우주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정사각형의 건축물 안으로 우리는 들어섰다.
“이걸 결국 만드셨네요.”
“남극의 차원 방벽 만들고 나니까, 제작 가능해지더라. 남들이 싸울 때 나는 이거 만들고 있었지. 필요할 거 같더라고.”
“잘하셨습니다.”
정비가는 히죽 웃었다.
“어때? 미국의 재벌 도련님?”
“훌륭한걸.”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겠어?”
“알지. 나는 분석하는 능력이 없지만, 내 직원은 분석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어이, 마크! 안 그래?”
“물론이죠, 보스.”
아담 브론즈의 뒤쪽으로 연구원의 복장을 한 이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정사각형의 건축물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내부는 마치 테트리스를 쌓아 만든 듯이, 벽면에 무수히 많은 회로가 있다.
그리고 중심부에는 그저 큰 원이 하나 있을 뿐.
“자. 다들 시작하자고.”
아담 브론즈가 그 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안으로 들어갔고, 모두가 그 안에 섰다.
“대규모 광역 제작 공작 기계 가동. 사용자의 스킬 연동 개시!”
정비가 사장의 목소리와 함께 원이 빛난다. 그리고 그녀가 아담 브론즈를 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휘광이 생겨난다.
그 휘광에서 뻗어진 빛이 그의 직원들과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스킬을 사용하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건축물 외부의 우주 공간에서 아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들어온 이것은 정사각형의 상자처럼 생겼다.
한 면이 40미터인 정육면체.
잠시 후 빛과 함께 그 몸체 전체에서 아주 길고 가느다란 금속 재질의 로봇 팔이 튀어나왔다.
굵기는 10센티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길이가 계속해서 길어지더니, 이윽고 수백 미터나 되는 길이로 자라났다.
그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수백이나 되는 그것들이 곤륜산과 스카이 워로드에 가 닿는다.
그러자, 곤륜산의 흙과 스카이 워로드의 금속 장갑판이 변형하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흙은 점점 녹아내려 금속으로 변하고, 스카이 워로드에 달라붙는다. 거대한 이것들이 전체적으로 녹아내리며 하나로 들러붙어 가는 것이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내 차례다.
“따봉을 사용한다.”
나는 그들에게 따봉 포인트를 투자했다.
따봉 포인트는 전능이자 만능의 힘.
그들의 스킬 효과가 뻥튀기되고, 순식간에 거대한 스카이 워로드와 곤륜산 전체에 아주 빠른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곤륜산은 거대한 산처럼 생겼지만, 그 본체는 중앙의 보패 핵이다. 그것이 산을 유지하는 원천.
그것이 스카이 워로드의 내부로 이동한다. 그리고, 스카이 워로드의 동력원과 하나가 되는 게 느껴졌다.
‘파칭!’ 하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공할 힘이 그 안에서 생겨나는 것도 느껴졌다.
동시에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일어났다.
스카이 워로드 역시 우주 함선이라고 할 만큼 거대했지만,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곤륜산과 하나가 되니 길이가 10km가 넘어가는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우주 모선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윽고 모든 것이 변해서 하나가 된 그것은 마치 한 자루의 거대한 검처럼 생겼다.
하루는 각오했는데…….
불과 3시간 만에 완성할 줄이야.
[따봉의 권능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소모된 따봉만 적어도 32억.
엄청난 권능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따봉 포인트가 여기 쓰였다.
만약 내 따봉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일 년은 꼬박 들이부어야 했을 수도 있을 정도니까.
자. 그러면……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할 일은?
[헌터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강제로 말이지요.]
그렇겠지. 이번 격전은 목숨을 내던지는 수준일 테니까.
가기 싫어하는 헌터들이 속출하겠지만, 그들 모두를 강제로라도 싸우게 만들어야 해.
시간이 일주일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주군.]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선 방송부터 해 볼까? 최후의 방송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 * *
“안녕하세요! 엄지검지! 엄지척입니다!”
나는 방송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화려한 게임 캐릭터 같은 콘셉트의 복장을 한 채다.
일단 머리에는 빛나는 서클릿을 쓰고, 목 아래는 크롭티 느낌으로 다 드러나지만, 양팔은 천으로 감싸인 민망한 상의를 입고 있다.
하지만 등에는 빛의 날개가 펼쳐져 있고, 한 손에는 딱 봐도 [용사의 검]이나 [성검]으로 보일 만한 것을 들었다.
하반신에는 보석을 조각해서 만든 것 같은 하반신 갑옷을 입었는데, 게임에서 튀어나온 성천사 캐릭터 같은 모습이다.
‘음, 토끼공듀 룩을 입으니 묘하게 세상만사가 덧없어지는군.’
그랬다. 하루 20시간씩 게임 처하면서 콘텐츠가 없다고 불평하는 선택된 자들의 룩을 현실에서 입고 있다.
지구 멸망을 앞뒀지만.
나는 언제나 초심이고 진심이다.
아니나 다를까 ‘와, 저질렀다.’, ‘미친 새끼 기어이 저걸 입었어.’라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다.
-님 저게 산독기 룩이라는 거죠?
-나는 오늘도 독기 품고 산다. 주요 부위만 가리고 지구 구하러 간다…….
“오늘은 아주 화려하죠!? 이게 다아 이유가 있습니다.”
경악 속에서도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지금 내 방송은 갓튜브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척량이 해킹해서, 각종 공중파 방송에서도 다른 방송을 밀어내고 내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으니까 이런 극단적 조치까지 하고 있는 거다!
“지구 멸망까지 이제 앞으로 2일 남았다는 거. 아직 모르셨죠?”
지구 멸망을 이렇게 코스프레 모습으로 선언하는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괜찮아!
그런 건 상관없어!
“저 달이!”
손을 뻗어 달을 가리켰다. 화면도 달을 비춘다.
“2일 후 지구에 떨어져 내릴 겁니다! 그걸 막으려면 직접 달을 향해 가야 하죠. 물론 그러기 위한 준비는 끝냈습니다. 친애하는 ABM사의 CEO이신 아담 브론즈 씨와 국내 최대의 중공업 기업인 ㈜정비 중공업의 CEO이신 정비가 씨께서 협력하여 만든 결전 병기가 있습니다!”
-엄지 독한 새끼 저걸 산독기 룩을 입고 하고 있어.
-토끼공듀 룩 아닌가요?
-지구를 저렇게 구해도 되는 거임? 좀 이상하지 않음?
화면은 새롭게 만들어진 우주 모선을 비춘다.
이름은 모두의 만장일치로 이렇게 정했지.
“보시죠. [문 블레이드]입니다!”
여차하면 달을 조각내 버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