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화
던전이 생기기 이전의 과거에는 200개 정도의 국가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던전 출현 이후에는 국가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100여 개 정도가 된 지 오래되었다.
사실 나도 잘 몰랐어. 척량이 알아봐 준 거지.
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던전이 나타났을 때 초동 대처를 잘못해서 그 지역이 초토화가 되면, 지역 자체가 마경화되어 버렸으니까.
이계의 식물이 자라나고, 이계의 짐승들이 생겨나 짝짓기로 그 수를 불리기 시작한다.
지구의 환경이 아닌, 이계의 환경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지역이 마경화되면서 인류의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국가들이 사라지고, 인구가 반토막이 된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줄어든 나라들 중에서도 겨우겨우 국가를 지켜 나가는 작고 약한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많았다.
마경화된 지역의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던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내어 국가를 지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세계는 UN을 통해서 그런 국가들을 돕고는 했었다.
실제로 약소국은 타국의 군사력과 헌터들에게 의지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럴 거면 애초에 다른 국가와 합병하면 되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문화와 경제 그리고 역사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그렇게 유지가 되었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세계 종말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이 시기에, 각국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타국을 도울 형편이 못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받은 약소국들의 수도에 나타난 놈들은 결국 대재앙을 일으키고 말았다.
대피령이 내려져 국민을 즉시 대피시킨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된 대피령도 내리지 못해서 수십만이 보스 몬스터의 대파괴 행각에 휩쓸려 사망하는 국가도 속출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국가들을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리고 지금 이놈이 마지막이다.
“네놈이 마지막이다!!”
거대한 생선 대가리에 인간 형태의 육체를 지닌 어인 비슷한 놈을 수직으로 반토막 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전 세계에 일어난 마지막 관문의 보스 몬스터들을 전부 해치울 수 있었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주군! 놀라운 위업입니다!]
척량이 내 옆에서 거대화한 상태로 축하해 준다.
그래. 그렇겠지.
내가 직접 쓰러트린 보스 몬스터만 100마리가 넘으니까.
덕분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면 폐허와 몬스터들의 시체, 거기에 사람들의 시체와 군사 병기들이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처럼 뒤섞여 있다.
악취까지는 나지 않지만, 비릿한 피 냄새가 자욱하다.
거기에 화약의 텁텁한 냄새에다가 여기저기 불타고 있는 건물들의 연기 냄새까지.
와, 진짜 세상 망하라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싶다.
하긴, 애초에 미래에 인류에게 남은 건 튜토리얼 이후 파멸뿐이었으니, 이것도 많이 봐줬나 싶긴 했다.
“하…….”
여기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
지나가다 이름 정도는 들어봄 직한 나라지만, 국력이 그리 강한 국가는 아니었다.
그런 국가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피해는 거의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준비하고 준비해도.
피해는 전부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군.
내 본진인 한국이야 확실히 막아냈지만…….
물론.
이 피해도 내가 지금 줄일 거다.
“죽음에 대한 권리. 최대 전개.”
죽은 자여, 일어서십시오.
그대들의 가족을 위해서 다시 일어나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여기저기 잔해가 들썩인다.
각성자들. 그리고 민간인들이 하나둘 죽음에서 되돌아온다.
부활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대로 거의 80%는 되살아났다.
“뭐, 뭐야!?”
“아… 아까 죽었는…….”
“살았다! 살았어어어어!”
“부활 스킬이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렇게 되살아난 이들의 감탄과 감격.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따봉 포인트가 되어 나에게 몰려든다.
이게 바로 선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어.
내가 살릴 수 없었던 이들이…… 너무 많았어.
[주군의 탓이 아닙니다. 개의치 마시지요.]
알아. 내 탓이 아닌 거. 그래도 자책감이 살짝 들어.
내가 더 잘했으면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
이게 히어로의 딜레마라는 건가?
히어로 영화 감독이 작품성 챙기다 보면 꼭 한번 언급되는 그거.
“자. 그러면…….”
이제 다 끝나간다.
시스템. 이걸로 끝이지? 제발. 끝이라고 해줘.
정지한하고 리블이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너무너무 불안하지만, 끝이 아닌 것 같지만.
끝이라고 해줘라.
제발.
그렇게 내가 속으로 빌고 있을 때다.
지구를 감싼 차원 방벽이 다시금 재가동됨을 느낄 수 있었다.
“헐, 설마?”
진짜. 이걸로 끝인가?
차원 방벽이 다시 재가동된다는 것은. 게이트가 이제부터는 단 하나도 열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존재하는 재생성형 던전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외에는 없다고 봐도 된다.
해치웠나? 같은 금기의 단어까지 내 뇌리에 떠오를 정도였다.
그때.
[튜토리얼의 마지막 퀘스트가 최종 단계에 들어갑니다.]
[살아남으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아, 젠장…….
안 끝났잖아!
시스템의 메시지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송되었다.
최종 단계?
그럴 줄 알았다.
이게 끝이기를 빌었지만, 역시 그럴 리가 없다 이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를 노려보고 있는 사이.
[성좌의 직감]이 경종을 울려 댔다.
[주군! 적은 위입니다!]
척량의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곳에는 터무니없는 것이 생겨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적은…….
달이었다.
“와, 코스믹 호러네.”
아주 그냥 가지가지 하는구만.
* * *
우주와 차원은 너무나도 멀고, 그리고 무한하게 증가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많았다.
그 심연과도 같은 깊이의 세계들을 신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무량삼천대천세계(無量三千大天世界).
때문에 수없이 많은 차원들에 영향을 끼치는 대신격 혹은 대성좌라고 불리우는 존재들조차도, 세계의 넓음을 전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어떤 성좌는 사라지고, 새로운 성좌가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의 차원이 몰락하면, 또 다른 차원이 생겨나고는 했다.
그것이 거대하고 거대한 대차원의 의지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차원에 속해 있는 지성체들이 그 대차원의 의지에 반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멸종하고, 외차원의 다른 존재들이 들어와 새로운 주인이 되어야 했을 세계.
그들은 기어코 차원 방벽을 완성하고 자신들의 삶을 지켜 냈다.
세계의 주인으로서, 그들은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생존하려는 이들은 이 지구의 주중족인 인간뿐만이 아니다.
이미 파괴되어 흩어진 차원의 생존자들.
혹은 자신들의 차원이 포화 상태이기에 다른 차원을 침략하려는 자들.
차원 규모의 대죄를 저지른 종족들. 차원 간의 전쟁에서 지고 떠돌아다니는 존재들.
그런 모든 것들이.
이 지구의 주인이 되려고 몰려왔다.
그것이 튜토리얼 마지막 퀘스트. 그리고 일차적으로 그것이 막힌 순간.
차원벽 너머로 그것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구를 넘은 곳. 그러나, 지구에 가장 가까운 곳.
그곳의 지상으로, 지하로, 그리고 그 대기 위의 공간으로 게이트가 무수히 생겨난다.
그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달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들이 대다수였다.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숨을 쉬어야 하는 생명들에게 공기가 없는 달의 환경은 그저 죽기 위한 장소일 뿐이다.
그러나.
성좌들이 개입했다.
어떤 종족은 성좌가 직접 창조한 존재들이었고, 어떤 종족은 자신들의 미래를 한 성좌에게 위탁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달은 변화한다. 순식간에 공기가 생겨나고, 물이 생겨났다.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불모의 행성이 아니다.
비록 중력은 여전히 지구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적지만, 그럼에도 대기가 생겨나고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신화적인 광경 속에서.
서로 다른 종족들은 하나의 명령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성좌들이 힘을 합해.
하나의 존재를 탄생케 했으니.
바로 저들 침략자들을 통솔하여 지구의 인류를 학살할 존재였다.
그것은 마왕이라고 불러도 좋을 존재.
이미 성좌나 다름없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여 스스로 자신을 칭했다.
[종말의 마왕]
그것이 그 존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언어였다.
그리고. 지상에 강림한 창조된 성좌 [종말의 마왕]은 지구에 있는 자신의 대적자를 직시했다.
* * *
오싹.
[성좌의 직감]이 적의 어린 무언가가 나를 보는 것을 느낀다.
[천리안] 스킬로 달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측했다.
던전 게이트는 이미 사라졌지만, 달 표면에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만의 마법과 스킬을 이용해서 제단 같은 것을 달 여기저기에 만들어 내고 있다.
물과 공기가 생겼다는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식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짐승이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저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존이 허락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저들이 제단을 세우는 것은 필시…….
[지구로 건너오려고 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겠지.
나는 동유럽의 어느 국가의 수도 폐허에 서서, 달을 노려보며 척량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릴까?
[저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우선 본진으로 이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세계수?
[예. 주군.]
척량의 말에, 달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되살아나 잔해를 치우고, 몬스터들의 시체를 치운다.
그리고 내가 살리지 못한 시신들을 모으는 게 보였다.
그들 중 몇 명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발을 굴렀다.
공간을 넘어.
나는 내 집 옥상에 올라섰다.
화아아악!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거대한 기운을 가진 네 명의 존재들.
정령왕!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수없이 많은 정령의 군세가 사방을 내달리고 있다.
세계수 근처에는 여전히 정령의 군세가 진을 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저 세계수와 정령의 군세 덕분에 파주에서는 희생자가 없었을 정도!
이러려고 세계수 심은 건 아닌데, 제대로 우주 디펜스를 해 버린 상황이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성좌의 직감]이 불길함을 느끼고 나에게 속삭인다.
달이 떨어진다.
휙!
하늘을 봤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달이 지구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진짜 미친 새끼들이네……. 하! 달을 떨구시겠다고요!?”
그래. 몬스터들끼리 드잡이질하는 거보다.
달 떨어트리면 지구가 한 번에 폭삭 망하지. 그럼그럼.
대해일. 대지진. 그리고 유독한 가스가 대기를 가득 채우고.
살아남을 사람은 몇 명이나 있으려나?
달에 있는 몬스터 놈들도 전부 뒤지겠지만.
저 새끼 저거.
달에서 총괄하는 놈은 쥐뿔도 신경 안 쓰겠지.
[주군. 계산상 달의 낙하까지 앞으로 3일입니다.]
좋아. 아주 좋구먼.
지구 종말까지 앞으로 3일!
그렇다면 그 전에 달로 뛰어들어서 저놈을 조져야 한다 이거지?
“당장 정비가 사장하고, 아담 브론즈 연결해.”
이것이 진짜.
최후의 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