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화
“홍수 났네. 홍수 났어.”
“그나마 자기들끼리 싸워 대서 다행이긴 하네요.”
성광은 본래 파주시에 남으려고 했다.
그의 보육원이 그곳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엄지척이 성광에게 다른 곳을 방어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지척이야 혼자서도 몬스터들을 학살해대는 존재이니, 성광은 그 부탁을 듣고 고양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엄지척의 동생.
엄무척이 있었다.
그리고 엄무척은 절대로, 이 세계에서 만들 수 있을 리 없는 것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면 우리도 시작할까?”
“예. 형제님.”
그것은 좌우 너비가 15미터는 되어 보이는 금속의 병기였다.
날개가 있지는 않다.
아래로는 호버 크래프트 같은 대출력의 엔진이 두 개 장착되어 있고, 중간의 탑승석 좌측으로는 몸체만큼 거대하고 길다란 포신이 1개, 그리고 우측에는 개틀링 건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탑승석의 위로는 육각형의 금속 상자 같은 파츠 6개가 연달아 붙어 지붕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역삼각형의 건축물 같아 보이는 그것의 중심부에 엄지척이 탑승한 상태였다.
그의 몸도 인간이라기보다는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도 성광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외견은 저렇지만, 실제 능력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점에서 엄무척의 전투 능력은 이제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에 이르렀으니까.
[기록사]라는 직업을 가진 엄무척의 진짜 능력은 저 형태의 모습과 결합되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
기이잉.
육각의 금속 상자 파츠의 정중앙으로, 손잡이와 발을 고정하는 장치가 나타났다. 성광이 발을 굴러 그 위로 뛰어오른다.
철컥. 철컥.
신발이 고정되고, 성광은 한 손으로 지팡이를, 다른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는다.
“간다.”
부오오오오!
두 개의 엔진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마력을 내뿜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양시 저편의 파주시에서는 정령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결코 세계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령들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하늘에서도 던전 게이트가 열리며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라라라라!”
“키아악!”
곤충, 익룡, 괴조, 유령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까지.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의 괴물들이 튀어나오며 사방에서 서로 물고 뜯기 시작한다.
물론 몬스터들끼리만 싸우는 게 아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한다!
유령들의 와류가 그대로 엄무척과 성광에게 쏟아져 온다.
마치 폭포처럼 악령들로 이루어진 그 격류는 생기를 먹어치우고, 물리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성스러운 빛이 하늘에 태양처럼 출현했다.
번쩍!
“위대하신 그분의 지상의 대리인으로서 명하노니. 성스러움이여, 사악함을 불태우라!”
성자이자 사도인 성광의 외침으로 나타난 직경 수십 미터 크기의 성스러운 태양이 주변을 불태운다.
악령은 단번에 재가 되고, 그 외에 사악함에 근원을 둔 몬스터들도 몸에 불이 일어나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키에엑!”
머리가 두 개인 괴조가 날아든다.
입에는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이 번개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괴물!
곧이어 엄무척이 움직였다.
육각형의 파츠 장갑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총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
수천 발의 마탄(魔彈)이 하늘을 갈랐다.
괴조와 거대한 파리 그리고 식인 풍뎅이 같은 것들의 몸통에 순식간에 구멍이 나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그 사이로, 엄청난 속도로 덤벼드는 것들도 있었다.
쐐에에엑!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통만 한 말벌이 초고속 비행으로 서커스하듯 총탄의 화망을 피하며 달려들었다.
“기록 권능 강제! 속도 저하!”
그러나.
엄무척의 이 과한 무장은 애초에 그의 본래 능력이 아니다.
기록사가 본래의 직업 능력이기에 그 권능이 발휘되며 초고속으로 날아들던 말벌들의 속도가 순식간에 10분의 1로 줄어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들을 향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콰콰콰콰!
말벌까지 걸레짝이 나며 전부 하늘에서 추락한다.
동시에 지상에서부터 [수호대장군]의 번개가 뻗어 올라와 다른 것들까지 하나둘 제거해 나갔다.
그러나.
끝이 없다.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지상과 하늘을 메운다.
“형 말대로 끝도 없잖아! 젠장!”
“괜찮습니다, 형제님! 저희는 이겨 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지!”
엄무척은 이를 악물었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비한 추가적인 무장을 꺼내기 위해서 기록사의 능력을 사용했다.
“공간 초래! 무장 출납!”
허공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팔이 여럿 나타나고, 드론으로 보이는 것 수십 개가 출현한다.
성광이 지팡이를 높이 들고 성가를 부르자, 하늘이 열리며 신의 권속들이 출현했다.
지상에서도 헌터들이 그들의 능력으로 몬스터를 쓰러트린다.
[수호대장군] 외에도 헌터들 개개인 혹은 건물의 주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헌터들의 힘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몬스터를 찢어발겼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몬스터들의 피와 체액이 지상에 강을 만드는 듯했다.
그야말로 대전투 그 자체.
그러나 아직까지 헌터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헌터 하나가 죽으면, 몬스터는 천 마리가 넘게 죽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엄무척과 성광을 보던 엄지척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 * *
쿠구구궁!
빌딩에서 주택 그리고 빌라까지 전부 달라붙어 거대한 골렘으로 변해 있다.
이미 사람들은 전부 대피했기에, 비어 있는 건물들이 달라붙어 무형의 괴물이 되었다 한들 방해할 자들은 없다.
이 거대한 골렘의 크기는 무려 100여 미터가 넘었고, 지상의 중대형 몬스터들을 짓밟으며 죽이고 있다.
게다가.
이 골렘의 몸 여기저기에는 [수호대장군]이 달라붙어 있어서, 전신으로 수천 개의 번개를 쏘아대니 근방의 몬스터는 전부 죽어나가는 중이다.
그런 거대한 골렘의 머리 위에서는 궁사가 별빛을 담은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여신인가 싶을 정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의 수는 그야말로 장마철 폭우와도 같았다.
키가 4미터가 넘는 근육질의 오거의 두개골이 단번에 뚫렸고, 하늘을 나는 마수 그리폰의 몸통에 구멍이 났다.
놀랍게도 유성들은 헌터들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이 치열한 격전 때문에, 이미 도심지는 파괴되어 잔해만 남았다. 사람들이 대피한 상황이라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정지벽과 별하나.
두 사람과 다른 헌터들의 활약으로 몬스터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차례 몬스터를 쏟아낸 던전 게이트가 이내 스스로 닫히고 있다는 것.
물론 닫힌 이후에 또 다른 게이트가 열리고는 했지만, 끝이 없는 건 아니라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었다.
“아아, 제발…….”
버틴다.
버티면 산다.
평화로운 시기가 올 것이다.
엄지척의 말대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싸운다.
그리고 엄지척의 시선은 다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
스카이 워로드 안에서 몬스터들을 격멸시키고 있는 아담 브론즈를 확인한다.
저 멀리.
필리핀에서 몬스터들을 격살하는 백탄의 마카우를 본다.
저 멀리.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을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도살하는 정비가의 드론과 로봇들이 보였다.
다들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우 문제가 있었다.
아니.
다른 국가 대다수에 문제가 있었다.
서울에 나타났던 보라 해파리 같은 것들이 각국의 수도에 하나씩 나타나 있었는데, 그것들 자체의 강함도 문제지만 그것들이 또 다른 문젯거리를 만들고 있음을 엄지척은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싸우기 바쁜 몬스터들을 직접 지배하고, 몬스터들이 인간만을 노리도록 만들고 있었으니까.
* * *
“시스템은 인류가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망할 차원이니까, 그냥 망해 버려라. 그건가? 아니면 뭐 하러 와서 이 지랄을 하는 건지, 원…….”
혀를 차며 천리안 스킬을 해제했다.
미국은 과연 미국인지, 피해가 크긴 해도 어떻게든 대응해서 싸우고 있다.
미국에 나타난 놈은 끓어오르는 살덩어리 같은 놈이었는데, 계속해서 자가 증식해서 부피가 커지는 괴물이다.
이놈은 지성은 없어 보였는데, 주변의 무기물과 유기물을 안 가리고 집어먹어 그대로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다른 몬스터들도 정신 지배해서 인간만 공격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미국에는 대피령이 안 내려졌나? 민간인 사망자가 많네…….”
[자유의 국가니까요.]
“미치겠네, 정말…….”
미국이 자유의 나라이자 국가의 통제를 싫어하는 나라라고는 들었지만, 이런 때에도 그런 거 지키지 말란 말이야…….
[피해가 있겠지만, 그래도 미국은 괜찮을 겁니다. 어쨌든 세계 최강 대국이고, 그들이 만든 [아이언 실드] 역시 만만치 않은 방어 전술 무기니까요.]
“그렇겠지. 그러면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국내는 우리 팀도 그렇고, 한국의 헌터들이 잘 싸우고 있는데…….”
나는 천리안으로 본 피해를 떠올렸다.
‘어디 보자.’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용을 닮은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도시를 갈아버리고 있다.
중국의 헌터들은 제대로 된 대응이 안 되고 피해가 확산 중.
그나마 대피는 제대로 했는지 민간인 사망자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쿄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일본식의 도깨비라고 할 수 있는 오니가 튀어나와서는 도쿄 타워를 부러트리고, 주변을 파괴하는 중이다.
‘영국은 미국만큼 잘하고 있는 상황인가.’
그곳은 수없이 많은 뱀이 덩어리진 채로 움직이는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데, 기사 같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비밀결사인 [원탁의 기사들]인가 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수도사 복장을 한 이들이 화염을 두른 악마와 싸우는 중.
그나마 버티는 게 미국하고 영국 그리고 프랑스인 것이다.
나머지는 죄다…… 상태가 안 좋다.
“미국부터 가겠어.”
[내버려 두어도 해결할 것 같습니다만?]
“내가 먼저 개입해서 저쪽 보스를 빠르게 제거하면, 그 이후에 미국이 주변의 캐나다와 남미 국가들을 지원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