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아비규환이다.
피가 흐르고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아… 아파……. 아파…….”
“컥. 커억…….”
“으악!”
총탄을 쏘는 굉음. 피 흘리는 사람. 비명과 고통에 찬 신음.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를지언정 흩어져 도망가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총을 꺼내 들고, 총이 없는 이들은 최대한 물건을 쓸어 담으며 나가려고 했다.
주차장으로 겨우 나온 이들은 짐칸에 짐을 싣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무시하고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콰쾅!
뒤쪽에서 기어코 자동차끼리의 충돌음이 들려온다.
‘으악!’ 하고 누군가가 죽는 소리가 들리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광기에 빠져든 것처럼 혼란에 빠져들었다.
치안이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난리도 아니네…….”
필리핀에서 베르나데 이트와 함께 비행과 시간 가속 주문을 이용해서 여기저기에 [수호대장군]을 설치하고 다니는 사이.
여기저기에 난리가 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폭동이 일어난 도시가 여럿이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 사재기가 극성이라고 한다.
그나마 멀쩡한 국가는 한국. 그리고 중국.
중국은 억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를 이용해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고, 한국은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인지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성좌시여. 왜 그러십니까?”
베르나데 이트가 내 옆에서 질문해 온다.
여기는 필리핀의 산들 중 하나의 꼭대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미리미리 이런 데다가 [수호대장군]을 설치해 주면 주변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선제 타격해서 줄일 수 있다.
“지금 세계 전체가 난리더라고요. 여기 필리핀도 그렇고.”
필리핀은 타마 그룹의 노력으로 상당한 지역이 정상화가 되고 있었다.
허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선진 강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치안은 과거에 비해서는 백 배 이상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한국만큼 좋은 건 아닌 상태.
여전히 민가에는 총기가 돌아다니는 그런 곳이라서 그런지, 필리핀 내의 도시들에도 소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갓튜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일단 설치는 절반 이상 했으니까,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도록 하죠. 우리는 상황실로 돌아갑시다.”
“예.”
베르나에 이트가 나와 그녀에게 주문을 걸었다. 시간 가속의 주문.
그것도 배율은 10배나 된다.
본래도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나와 그녀지만, 시간 가속에 의해서 마하 10에 달하는 속도로 상황실로 되돌아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들 난리가 난 상태였다.
마카우는 보이지 않았고, 다니엘 엔조도 없었다. 대신 타마 그룹의 한 명인 벨리다라는 여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 역시 내 권속이 되었기에, 그녀가 누군지는 안다.
타마 그룹 중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사람이다. 대신, 광역 버프를 주는 능력을 가진 [축복의 무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성좌시여,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헌터들까지…….”
“헌터들까지요?”
“예. 해당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상황실의 가장 큰 화면을 그녀가 가리켰다.
화면에는 헌터들이 서로 스킬을 써서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얼음으로 된 화살이 수십 발 날아가고, 어떤 놈은 녹색 안개로 상대 헌터를 녹여 버리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물자를 자기 차에다가 욱여넣고 있는 모습들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대형 쇼핑센터로 보이는 곳 앞에는 자동차가 불타서 굴러다니고, 사람들도 이미 몇몇은 사망해서 쓰러져 있다.
아주 막 나가네?
“가동시키세요.”
“예?”
“[수호대장군] 가동시키세요.”
그리고 그 쇼핑센터가 있는 장소 근거리에는 이미 [수호대장군]이 몇 개 설치되어 있었다.
“계엄령을 발동하고, 치안 확보에 주력하세요.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텔레파시로 척량을 불렀다.
[예. 주군. 한국은 소요가 없습니다.]
그건 나도 확인했어. 이쪽 필리핀 쪽 일 좀 도와줘. 그다음은 미국으로 갈 거야. 헌터들까지 가세해서 아비규환이더라고.
[예. 주군. 한국 쪽 일은 잠시 중단하고 그쪽으로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여기. 제 권속이 올 겁니다. 같이 일을 처리해 주세요.”
팟!
빛과 함께 척량이 나타났다. 여우가 아닌 인간 형태의 척량!
검은 양복 슈트를 입은 미남자인 척량은 안경을 쓴 채로 나타나 벨리다에게 다가간다.
“그럼 척량, 뒤를 부탁해. 나는 일단 움직일 테니까. 이트 씨도 자체적으로 행동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헤르메스의 발걸음]으로 공간을 넘었다.
* * *
공간을 넘어 도착하자마자 좌측에서 검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창 같은 것이 내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우측에서는 화염으로 된 망치 비슷한 것이 내 어깨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두 명의 헌터가 싸우는 사이에 끼어든 상태.
왼손과 오른손을 뻗어 두 개의 스킬을 부드럽게 잡는다.
위우우우웅!
무형의 에너지를 잡는다는 게 이상한 말 같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지.
나 역시 기운을 쓰면 되니까.
그렇게 잡은 두 공격을 그대로 하늘을 향해 방향을 틀고, 그 공격을 한 주인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핑!
탄지공.
내가진기를 콩알탄만 하게 뭉친 다음 쏘아내는 것. 속도는 총알보다 빠르고, 위력도 총탄보다 강력하다.
“컥!”
“크악!”
두 놈은 탄지공에 처맞고는 그대로 쓰러진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개판 오브 개판인 상태였다.
하늘을 날면서 번개를 뿌리는 새끼.
땅에서 촉수를 꺼내는 놈.
사람 시체를 강령술 스킬로 언데드로 일으켜 세우는 쓰레기까지.
게다가 필리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국 놈들도 있다. 서양계에서 동아시아계까지 아주 다양하게 난동 중이다.
소환수로 물건이 가득 담긴 자루 같은 걸 끌고 가는 놈도 보이는 걸 보니……. 미친놈들이 많네.
“모두 그만!”
내공을 담아 사자후를 내질렀다.
쩌렁쩌렁하게 울린 소리에 다들 나를 본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봤다.
“엄지척?”
한국인이네?
“세계가 바로 망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내일 당장 망할 것처럼 굴고 있어요? 다들 그만하세요.”
“네가 뭔……. 크악!”
쾅!
내 앞으로 걸어오면서 뭐라고 소리치던 양놈을 염혼염동의 염동력으로 그대로 뒤집어서 땅에 쑤셔 박았다.
양놈의 몸이 부들부들거리는 게 보인다.
“계속하면 재미없을 겁니다.”
살기를 퍼트리자, 다들 그대로 멈추었다.
하늘을 날던 놈도 내려왔고, 다들 쭈뼛거리며 선다.
[주군. 설치된 수호대장군을 가동하고, 각종 CCTV와 전산망을 통제하여 소요를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몇 시간 후면 완전히 소요는 끝날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는?
[각국에서도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군대까지 동원하며 치안을 확보하려고 하는 중입니다만, 폭동을 일으킨 자들 중에 헌터들도 끼어 있어서 소요는 더 오래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알아서들 하겠지.
“다들 이리 오세요. 도망가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고요. 다들 문화 시민답게 경찰서로 갑시다.”
내 말에 헌터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기감을 넓게 퍼트린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찾아냈다.
그사이에 죽은 이들의 시체만 수십이 넘었다.
“당신. 강령술 해지 안 해?”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키던 이를 노려보자, 그가 허겁지겁 스킬을 해제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을 염혼염동으로 내 앞으로 모두 모았다.
그제야, 폭동에 휘말린 평범한 시민들이 움직였다.
시신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달려와 눈물을 흘린다.
참……. 이러려고 얻은 건 아니었는데.
손을 들었다. 할 일이 많으니, 빨리 처리하고 다른 데도 가야 한다.
“죽음에 대한 권리.”
[죽음에 대한 권리 – 1000,000,000(500,000,000)따봉]
등급 : 이터너티
아무런 제한 없이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다.
단, 죽은 이의 영혼이 손상당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손상률 51% 이상은 부활시킬 수 없으며, 육체는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복구된다.
[부유한 죽음의 지배자]에게서 구입한 스킬. 죽은 이를 되살리고, 그 육체를 복원하는 절대적인 권능이 내 손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 안에서 따봉 포인트가 사라지는 것도 느꼈다. 한 명의 시신을 생자로 부활시키는 데 들어가는 따봉 포인트는 체감상 10만 따봉이나 되었다.
사람 한 명당 목숨이 10만 따봉이라.
싼 건가… 비싼 건가…….
그래도 무리 없이 수십 명을 되살릴 수는 있었다.
“기… 기적이야!”
“오오……. 성자시여!”
죽은 이가 눈을 뜨고, 상처가 아문다. 아까까지 난동 피우던 헌터들도 그걸 보고는 눈이 뒤집어졌다.
“당신들 모두 여기서 가만히 있다가 경찰서 가라고. 알았어?”
으름장을 한번 놓아 주고, [헤르메스의 발걸음]으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 * *
“후…….”
하루 종일 뛰어다닌 결과. 필리핀에서는 일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성좌임에도 지쳐서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오니, 척량이 나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척량이가 있으니까 정말 도움이 되네.”
“주군을 보좌하는 것이 제 임무니까요. 약간의 따봉으로 요리 스킬을 구입했습니다. 그것으로 만든 요리이니 입에 맞으실 겁니다.”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 쌀밥, 김치, 전분 소시지, 콩자반, 그리고 잘 구운 김.
평범하다면 평범한 식단.
그러나.
자주 먹지는 못하는 음식들.
“이야. 감동인데. 제대로 가정식이야.”
“주군께서 좋아할 만한 음식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다음에는 더 호화로운 요리를 준비하지요.”
“에이. 안 그래도 돼.”
숟가락을 들어 막 식사를 하려는 참에, 무척이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무척이가 집에 도착했다.
“어? 형 있었네?”
“일 끝내고 왔지. 너는 던전 다녀온 거야? 밥은 먹었어?”
“던전은 아니고……. 애들 좀 가르치고 왔지. 우리 뒤에 팀들이 줄줄이 생겼잖아. 형이 만드는 영약도 먹이고 있고. 밥은 안 먹었어. 나도 먹을래.”
“척량.”
“예, 주군.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