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90화 (290/305)
  • 제290화

    “계속 변하니까. 계속해서 변하는 미래는 결국 고정되지 않은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요?”

    그녀와 나의 문답은.

    그녀가 내 과거를 읽어내고, 미래를 읽어내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런 과거의 관측이 가능한 모양이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듯하다.

    내 능력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면 나를 관측하는 여러 성좌들의 힘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할 질문도 예측하지 못한다.

    본래라면 내 질문도 예측하고, 답변하는 미래까지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는 미소 짓고 있다.

    그녀가 왜 미소 짓고 있는지도 [성좌의 직감]이 가르쳐 준다.

    그녀가 모르는 미래를 만났기에,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대본대로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의 삶에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시간이 그녀의 앞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네요. 제가 잘못된 질문을 했군요.”

    “그래요. 하지만 제가 봤던 것들을 말해 줄 수는 있겠죠. 미래가 계속 변화한다고 해도……. 반복해서 나오는 것들은 거의 대다수 미래에 나타나게 되니까.”

    확률의 문제로군.

    “어이어이. 둘만 아는 이야기는 그만해 주지 않을래? 물론 내가 이해 못 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담 브론즈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소리는 그만하라고들. 어차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그나마 확정적인 것을 이야기하려고 모인 거잖아?”

    “A/B의 말이 맞아요. 그러기 위해서 여기 모인 거죠. 자, 엄지척. 저에게 질문하세요. 저는 당신에게 대가를 받고 3가지 답을 해 드릴 수 있어요.”

    “규칙이군요.”

    “예. 규칙이에요. 오래된 규칙.”

    “그리고 대가는?”

    “당신이 먼저 줘야 해요. 그것도…….”

    “역시 규칙이라는 거죠?”

    “예. 오래된 규칙이에요.”

    그녀와의 문답으로, 그녀를 가호하는 성좌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좌의 직감]이 발동했다고 할까?

    [물레를 돌리는 세 자매]

    운명의 삼 여신.

    물레를 돌리는 자들.

    삼위일체의 여신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운명의 신!

    북유럽 신화에도 등장하며,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나오는 이 여신들은 운명을 주관하고 운명을 비틀 수 있는 기회도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현대에서도 수많은 매체에서 등장한다.

    트리키아.

    그녀들에게는 세 번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적절한 공물을 바쳐야만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몹시 강력한 신격이기도 했다.

    자. 그러면.

    따봉 상점에서 [공물]이라고 검색했다. 그리고 운명의 세 자매가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냈다.

    그것을 구입하고 꺼내어 손에 들었다.

    천도복숭아로 빚은 감주 그리고 용의 고기로 만든 안주, 거기에 하나 더. 신성함의 정수.

    “이것을 바치겠어.”

    스테파니가 손을 뻗는다.

    그러자, 내가 꺼낸 것들이 빛의 입자가 되어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훌륭한걸?”

    “센스가 있어.”

    “어린데도 예의가 바르구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스테파니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어투 역시 다르다.

    처음 목소리는 중학생 정도의 소녀. 그다음 나온 목소리는 성인 여성의 것. 그다음은 할머니의 고요한 목소리였다.

    소름이 돋는다. 운명을 움직이는 강대한 신격이 내 앞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림한 건가?

    아니면 단지 스테파니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을 뿐인가?

    “자. 질문하렴.”

    “질문은 신중히.”

    “세 가지 질문이란다.”

    그녀들의 목소리에 나는 답했다.

    “최후의 관문이 무엇인지 알려 줘.”

    가장 중요한 것은 최후의 관문에 대한 정보.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만 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그건 좋은 질문인 걸, 자기?”

    “후후후. 어린 성좌는 기세가 좋아.”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지.”

    그녀들이 나를 평가한다. 그리고 이내 내 질문의 답을 내놓았다.

    “모든 것이 단번에 밀려들어 올 거란다.”

    “최후의 관문은 일시적인 개방이야.”

    “모든 것이 열리지.”

    이번에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 그다음으로 노파의 목소리. 그리고 소녀의 목소리가 순서대로 답변했다.

    밀려들어 온다고? 일시적으로 개방된다?

    헐, 씁?

    설마. 설마가 설마냐?

    나는 입을 열어 확정적이냐고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저들의 말은 진실임을 [성좌의 직감]이 말해 준다.

    사실 [성좌의 직감]이 아니더라도 저들이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저들은 그런 존재이므로.

    대신 은유적으로 말하는 게 문제일 뿐…….

    하지만 이번에는 제법 직관적으로 알려준 거다.

    저 말은 내가 기껏 구축한 차원 방벽이 일시적으로 무력화되고, 전 세계에 몬스터가 대량 출현할 거라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미친 성좌 새끼들.

    아니. 시스템이 문제인가?

    진짜 X 같네.

    “자. 두 번째야.”

    “신중하라고. 후후후.”

    “신중함을 가지는 건 중요하단다, 아이야.”

    세 명의 목소리. 세 명의 여신. 그녀들이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나는 다음 질문을 했다.

    “시스템이 출현하고 튜토리얼이 시작된 이유가 이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이기 때문이라는 정보를 얻었는데. 이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인 이유가 무엇이지?”

    미래만이 정보가 될 수는 없다. 과거 역시 중요하다. 내가 모르는 과거라면 더더욱.

    수없이 많은 던전이 나타나고, 시스템이 출현하여 인류에게 힘을 주는 튜토리얼이 진행된다.

    멸망을 앞둔 세계가 그렇게 된다는 정보는 옛날에 얻었었지. 그런데 어째서 세계가 멸망을 앞두고 있었느냐 하는 거다.

    왜? 이 지구, 멀쩡하던데?

    내가 성좌가 되어 보고 나서도 알겠더라고. 세계는 그냥저냥 멀쩡해.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 세계가 멸망한다고 그러는 거야?

    “오……. 깊이 있는 질문인걸?”

    “현명해.”

    “어린데도 지혜롭구나.”

    자. 답은?

    “대우주의 의지란다.”

    “차원의 벽이 얇아지고 찢겨지기 때문에 이 세계의 생명체들이 멸종하는 거야.”

    “이 세계 토착 생명체들의 운명의 시간이 다했을 뿐.”

    “그냥? 이유도 없어?”

    아니, X팔 그 무슨 개 같은…….

    “하하하하하! 아직 어리네?”

    “누구나 언제든지 이유 없이 죽을 수 있지 않니?”

    “번개를 맞고 죽은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사망했다더냐?”

    “물을 마시다 숨이 막혀 사람은 어때?”

    “계단에서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죽은 사람은 왜 죽었을 것 같아?”

    “모두가 죽는단다. 그것이 운명이야.”

    “그리고 이번에는 지구의 생명체들의 운명이 끝날 시간이 왔지.”

    “그것이 운명.”

    “우리 세 자매조차도 손댈 수 없는 대우주와 대차원의 의지.”

    허…….

    아니,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그냥 지구에 허락된 시간이 끝났다, 이거냐? 아무 이유 없이?

    성좌들이 개입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잠시 화가 나는 것을 삭여야 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죽어나갈 텐데.

    그런데 그게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자. 화가 난 우리 어린 성좌 친구. 세 번째 질문을 해봐.”

    “즐거운걸?”

    “세 번째도 역시 신중히 질문하렴.”

    그녀들의 말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성좌가 되어 육신을 잃어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나는 아직 인간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들에게 질문했다.

    “온건한 방법으로 성좌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

    그리고 그녀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 * *

    “뭐야?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거야?”

    놀랍게도.

    아담 브론즈는 우리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것은 성좌 [물레를 돌리는 세 자매]의 계약자이자, 화신체이기도 한 스테파니도 마찬가지.

    그녀는 자신의 입을 빌려 말한 세 여신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이례적이에요. 그분들께서 제 몸을 빌려 말씀하시다니…….”

    “본래는 다릅니까?”

    “예.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서 답하는 건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보는 미래의 단편들을 이용해서…….”

    “아하.”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하구먼.

    “일단 알아낸 사실을 말씀드리죠.”

    내 말에 두 명이 나를 본다.

    “우선, 최후의 관문은 전 세계적인 타워 디펜스입니다.”

    “타워 디펜스? 진짜야?”

    “예. 차원 방벽이 일시적으로 해제되고, 전 세계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제 추측이지만. 이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인간이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튜토리얼은 종료. 인류 종말의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거…… 세계 종말과 다른 게 뭐야?”

    “본래라면 몬스터가 끝도 없이 계속 나오겠지만. 이건 최후의 관문이므로 일정 숫자 이후에는 몬스터가 더 이상 안 나올 거라는 점이 다르죠.”

    “빌어먹을 정도로 다행인 일이로군.”

    “그렇습니다.”

    “질문은 그것 하나뿐만이 아니었지 않나요?”

    스테파니가 나에게 질문한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세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느냐에 대해서였습니다. 딱히 소득은 없었네요.”

    “이유가 뭐라고 했는데?”

    A/B의 말에 그녀들에게 들었던 답을 들려주었다.

    그의 얼굴도 무참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아니……. 그거. 진짜? 진짜야?”

    “그럼요. 어이없겠지만, 진짜입니다. 물 마시다가 죽는 것처럼. 이 지구 인류의 운명도 그냥 갑자기 끝나 버린 거죠.”

    “미친…….”

    그러나 의외로 스테파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스테파니는 괜찮으신가 보네요.”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운명?

    “그분들이 하신 말씀처럼.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 죽음은 찾아옵니다. 갓난아이도 어느 날 병으로 사망할 수 있고, 부자도 비행기의 추락으로 죽을 수 있죠. 운명이란 그런 것. 그것이 우리 인류 전체에 일어났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니까요.”

    원래 점치면서 사시던 분이라서 그런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초탈하시다.

    “저와 A/B는 그렇게 초탈하지 못해서요. 일단 화가 나고 짜증도 나고 그러더라고요.”

    “이해해요. 당신들……. 눈먼 자들은 알 수 없는 일이겠죠.”

    눈먼 예언가라는 그녀가 우리보고 눈먼 자들이라고 부르는 아이러니.

    “그래서, 세 번째 질문은 뭐였지?”

    “그건 비밀스러운 저만의 정보이니 침묵하겠습니다.”

    “흠…….”

    온건한 방법으로 성좌가 될 수 있는 정보.

    문제는…… 이게 악용을 하려면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잘 쓰면 온건하지만, 악하게 쓰면 수십만 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것.

    때문에 그에게는 가르쳐 줄 수 없었다.

    그와는 사업적인 파트너지만, 그를 믿을 수 있을지는 별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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