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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72화 (272/305)
  • 제272화

    그렇게 녀석이 너스레를 떠는 사이.

    던전이 소멸했다는 알람이 떴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론가 빨려나가는 느낌이 들자마자…….

    현실의 남극대륙으로 되돌아 올 수가 있었다.

    쏴아아아!

    던전이 소멸한다. 던전이 있던 자리에 전리품이 쏟아져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고, 남극대륙 전체를 뒤덮었던 열기 역시 사라지며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후후후. 최후의 순간……. 보셨죠? 제 능력.”

    “그래요. 참 대단하십니다그려.”

    “최후의 순간에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영혼까지 붙잡혀서 영겁토록 고문 받으며 지옥 같은 영원 속에 헤매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구요.”

    리블은 섬뜩한 소리를 하면서, 몹시도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간극이 기괴했지만, 나는 그에게 뭐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사실은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절망]이 보여준 미래에서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며 죽음을 구걸한다.

    올바른 죽음만이 오로지 구원이 될 수 있는 세계가 온다면…….

    리블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주군!]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척량이 하늘을 달려 다가왔다.

    어쨌든 한 가지 일은 처리된 셈.

    묵은 한숨이 나왔다.

    * * *

    -X발. 리블이라는 인간, 저거 뭐냐, 대체? 네크로맨서가 저게 가능하다고?

    -엄지는 어디서 저런 애들을 주워 온대?

    -아니……. 산만 한 괴물이 걸어다니는 거 실화냐?

    -심검 뭔데? 무적 치트키 스킬이네.

    -乃 엄지야아아!! 사랑해에에에에! 검지가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乃乃乃乃

    -엄지님은 신이시며,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비추나니. 아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엄지님은 신이시며,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비추나니. 아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엄지님은 신이시며,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비추나니. 아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아니;;; 요새 미친놈들이 왜케 많아?

    ↳엄지가 그만큼 대단하자너. 이미 낫닌겡 아님?

    ↳던전 규모가 사상 최초 6성급이라는데.

    ↳그걸 단둘이 소멸시키고 있으면 뭐……. 이미 탈인간이지.

    -ㅋㅋㅋㅋㅋ. 엄지 미만 잡인 듯?

    -UMGI. HERO!

    -다른 무공 사용자는 심검은 고사하고 강기도 제대로 못 씀. 엄지가 짱인 듯?

    -근데 저거 내버려 뒀으면 지구 멸망이었을 수도 있다며?

    ↳내 친구가 기후학자인데, 멸망까지는 아니고 그냥 인류의 30%가 물에 쓸려서 사망했을 듯.

    ↳X바. 그게 그거 아니냐?

    ↳노노. 인구 70%는 살잖아. 뭐, 그 이후에 여러 가지 혼란이 잔뜩 일어나겠지만…….

    -UN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한다는데?

    ↳엄지가 UN을 움직인 거야? 가슴이 웅장해진다.

    집에 돌아왔다.

    늘어져서 쉬는 사이 척량이 던전의 공략 영상을 적당히 편집해서 올려 두자, 미친 듯이 따봉이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영상의 리플들을 읽어 보면, 다들 이번 일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외국인도 끼어 있었고, 조회 수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갓튜브의 다른 곳을 둘러보면, 알고리즘 때문인지 국뽕영상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다른 종류의 영상도 많지만 나에 대한 것도 여럿 있다.

    격세지감이다, 진짜…….

    옛날이었으면 부러워하고 ‘나도 잘살고 싶은데~’라고 말하고 있었을 텐데.

    [수고하셨습니다, 주군.]

    “고마워.”

    [별말씀을요. 오늘은 푹 쉬시지요. 대외적인 업무 처리는 제가 해 두겠습니다.]

    “일이 있어? 아, 아니지. 일이 없을 리가 없지.”

    남극의 일을 해결했다. 쓰나미가 나는 것도 얼추 막았다.

    사실 완전히 막은 건 아니라서, 일부 지역에는 쓰나미가 밀려들어가 사람들이 제법 죽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남극과 가까운 지역들은 거의 다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

    벌떡.

    침대에서 일어섰다. 쉬고 싶지만, 아직은 쉴 시간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육체는 쌩쌩하다.

    지금의 피로감은 정신에 새겨진 것일 뿐.

    “연결해줘.”

    [알겠습니다.]

    척량이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연결된 첫 번째 사람은…….

    -엄지척 이사. 아주 엄청난데? 정말 거물이 되어 버렸네?

    정비가 사장님이다. 우리 사장님이 싱글벙글 웃고 계신다.

    화상 통화 화면 너머의 그 웃음 띤 표정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야. 이분이 이렇게도 웃으시는 분이었구나? 놀라워라.

    -남극 쪽의 일이 처리된 것을 확인하고 연락한 거야. 그쪽으로 진출해서 차원 방벽 생성기를 건설해야 하잖아?

    업무적인 이유. 좋다.

    “그건 바로 해야죠. 자금은 어떤가요?”

    -네가 북극에서 기적을 일으켜 준 덕분에 제법 남았어. 그리고 이제는 각국에서도 정당하게 자원을 뜯을 수 있잖아? 자금이 모자랄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바로 시작할게.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겠어. 힘내라고. 지구의 구원자님.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화상 통화를 종료했다.

    [그녀도 ‘희망’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거 다행이네.”

    희망이라는 게 없다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보통 그 끝에 있는 것은 자살이다.

    결국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견딜 수 있는 법.

    아니, 사실 드라마틱한 개선 같은 게 아니어도 된다.

    그냥 내일 반찬이 맛있을 거라든가, 내일은 날씨가 좋을 거라든가, 그냥 그 정도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희망은 별거 없어 보여도 강력한 것이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주군. 다음 연락은 AB입니다.]

    “연결해줘.”

    [예.]

    * * *

    “어찌……. 어찌 이럴 수가.”

    [호수의 여명회]를 이끄는 자이며, 영국에서도 유서 깊은 공작 가문의 적법한 상속인.

    그레이엄 레이크 공작.

    그는 순은으로 만들고, 룬 문자를 양각한 거대한 수조를 들여다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수경(水鏡)의 마술은 게이트가 열리기 이전의 시대에서도 사용되던 비술 중 하나.

    비밀결사들 중에서도 실제로 신이한 힘을 사역하여 사용할 수 있는 존재들은 극소수였고, 레이크 공작 가문은 바로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다.

    지금에 와서는 던전 게이트가 열린 이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비술과 마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래 전부터 레이크 공작 가문이 숭배하던 존재들과의 교신까지 이루어 내었다.

    그 힘을 기반으로 영국을 장악하고, 세계로 힘을 행사하던 중.

    고대로부터의 라이벌들과 격돌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

    [세피로트 조하르]와 [곤륜산]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으며, [원탁의 기사들] 역시 그런 존재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자들과 세계의 이면에서 기득권을 조종하며 세력을 키워온 그도 ‘저런 것’은 본 적이 없다.

    단신으로 성좌와 같은 힘을 사역하는 존재가 있다니?

    “이럴 수는 없다. 저런 힘이 어떻게 한낱 필멸자에게 허락된단 말이냐!”

    “필멸자가 아니기에 허락된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뭐라?”

    레이크 공작이 고개를 돌린다.

    이 신비한 지하 석실은 의식을 위해서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장소.

    세계가 대격변을 맞이한 이후에는 이 장소 전체에 성좌의 힘이 서려 허락되지 않은 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외부인이 들어와 레이크 공작에게 말을 건넨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는…… 한국의 정지한이구나. 엄지척의 조력자.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느냐?”

    “대마법사 니뮤에의 마도가 서린 지하 석실. 니뮤에가 ‘멀린’을 봉인하고자 만든 공간. 그런 곳에 내가 멀쩡히 들어온 것이 신기한가?”

    “어찌 그것까지 아는 게냐? 네놈은 대체!?”

    “못 가르쳐 줄 것도 없지. 이게 있기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검은 정장 슈트를 입은 단정한 얼굴의 남자.

    정지한.

    그가 손바닥만 한 열쇠를 하나 꺼내어 보여준다.

    강력한 마력이 그 열쇠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레이크 공작은 경악했다.

    “그건…….”

    “판도라의 열쇠. 전설에 의하면 천공신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상자를 주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당부했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

    “그 상자에는 열쇠가 있었다. 상자 역시 귀한 봉인 능력을 가진 절대적인 성물이지만, 이 열쇠 역시 그러하다.”

    정지한은 열쇠를 다시 품 안에 넣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어떤 것도 이 판도라의 열쇠 앞에서는 열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설사 성좌가 설치한 결계와 봉인이라고 할지라도.”

    “말도 안 된다! 어찌 그런 물건이 있을 수 있느냐! 천공신 제우스가 비록 강대한 성좌라지만, [호수의 여인]께서도 위대하신 분이실진대!”

    노호하는 레이크 공작.

    그러나 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그를 비웃었다.

    “단순히 제우스의 힘만 있다고 한다면 이토록 강대한 이적을 부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을 ‘겹치게’ 하는 힘이 있다.”

    “뭣이?”

    “그리고 레이크 공작, 네 녀석이 나에게 질문을 하며 시간을 끄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헛수고다.”

    정지한은 계속 걷는다. 그리하여 레이크 공작의 정면에 도달했다.

    “내가 너를 몇 번이나 죽였는지 알고 있나?”

    그 순간 레이크 공작이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네놈의 무도함을 징죄하노라!”

    그의 등 뒤에 있던 은의 수조가 마력과 함께 폭발한다.

    그 안에서부터 아름답고 고귀한 마력을 발산하는 수룡(水龍)이 나타났다.

    소름 끼칠 정도의 힘이 수룡에게서 물결처럼 흘러넘친다. 그리고 동시에 수룡이 고개를 들어 그대로 돌진해 온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뚝.

    수룡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춘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멈추어 서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마력의 움직임조차도 그대로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건.”

    “크로노스의 물시계. 시간을 조작하는 물건이지.”

    그리고 어느샌가.

    정지한의 손에는 기묘한 모양의 물시계가 들려 있었다.

    물시계 장식 용의 꼬리에서 솟구쳐 오른 물이 입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손바닥 크기만 한 물건이 강대한 마력을 발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놈들이 일으키는 대재앙을 이렇게 막아낸 것은 처음이지만……. 네 녀석의 마술과 술수 따위는 이미 너무 많이 보았다.”

    “너는… 너는 시간을 제어하는 건가! 대체 어떻게! 그것은……. 그것은…….”

    크로노스.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존재이며,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크로노스가 제우스와 하데스를 비롯한 이들을 전부 집어삼켰다가, 이후에 죽음에 이르는 신화로 이어져 그리스 신화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신의 물시계라니!

    당연히 강대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너 역시 시간 앞에서 무력하리라.”

    정지한이 어느샌가 레이크 공작의 옆에 서 있었다.

    그의 한 손이 비현실적인 검은 어둠으로 물들어서는 단두대처럼 떨어져 내렸다.

    “크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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