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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70화 (270/305)

제270화

그건 용과 뱀을 섞은 듯한 머리였다.

뿔이 자라 있는 거대한 뱀의 머리. 그러나 어깨까지 빠져나오자 그 몸통은 표범인지 호랑이인지 헷갈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건 뭐냐?

문제는.

그게 더럽게 크다는 것.

던전 게이트가 더럽게 크듯이, 그것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놈의 몸 역시 거대하기가 산과 같았다.

아니. 저거… 신장이 km급인 게 정상이냐?

미쳤어?

[음? 저것은…….]

척량. 알아보겠어?

[아서 왕의 전설에 나오는 존재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라의 멸망을 부른다고 했던 퀘스팅 비스트의 인상착의와 흡사하니까요. 아니라면 수메르 쪽의 신화에 나오는 무슈후슈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쪽일지는 나와 봐야 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냥 둘 수는 없지.

이렇게 된 거 선빵 필승인가?

내가 무슨 마법 소녀물에 나온 악당도 아니고 굳이 변신 시간을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나.

“아까처럼 제가 먼저 가고…….”

“저를 소환하신다 이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리블이 싱긋 웃는다.

그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즉시 공간을 넘었다.

남극대륙의 대기권으로 옮기고 내 그림자 주머니에서 물건을 하나둘 꺼냈다.

궤도 폭격용 나선창.

그것들을 수십 개 꺼내 놓고, 전부 마력을 충전한다.

나선창들의 표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생겨나고 그것들에 힘이 서렸다.

그다음 다시 공간을 넘는다.

나는 거대한 던전 게이트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남극대륙의 땅에 내려섰다.

치이이익!

이글거리는 열기가 보통을 넘는다.

일반인이라면 여기서 몇십 분 안에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그대로 죽을지도 모를 정도의 온도.

그러나 내 육신에는 통하지 않았다.

이미 [금강불괴] 상태이기에 이 정도 열기로는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게 열기를 이겨내며 서서 앞을 보았다.

신체가 수 km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이 던전을 빠져나오려고 힘을 쓰고 있는 게 보인다.

녀석의 눈이 나를 보았다.

“척량.”

[예.]

척량이 내 목에서 빠져나가 하늘을 내달린다.

그리고 던전 게이트의 상공 위에 가서 섰다.

[준비됐습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해 볼까?

“떨어져라.”

저 멀리.

대기권에 뿌려둔 궤도 폭격용 나선창 수십 개가 내 명령에 반응한다.

강대한 힘을 담은 채로, 그대로 궤도 낙하를 한다.

그러자 던전 게이트를 빠져나온 뱀의 머리가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향한다.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녀석의 뿔과 눈에서 빛이 흘러넘치기 시작하고, 그대로 하늘에 보랏빛의 장막을 만들어 낸다.

“이 새끼. 어디 한눈을 팔아?”

쌍검의 발검술 자세.

그리고 벤다!

혼원건곤쌍극참!

거기다가 1회 타격이 2회 타격으로 들어가는 권능까지 같이!

번쩍!

카드드드득!

녀석의 거대한 목덜미의 비늘이 잘려나가며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상처가 나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악!

“헐?”

피가 떨어져 내리며 그대로 변형하더니, 곤충과 뱀 형태의 괴물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그 수는 순식간에 수십에서 수백 그리고 수천이 넘어갔다.

km급 괴물의 피니까 단번에 어마어마한 양이 흘러내리고, 그게 괴물로 부풀어 오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 짜증 나는 점은 이놈들이 전부 독기를 띠고 있다는 거다.

치이이익!

녀석들이 지면에 내려서자, 열기와 놈들의 독기가 합쳐져서 독연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와우, 돌았네.

“리블!”

“부르셨나요, 주인님?”

“당신 주인 아닌데 주인이라고 부르지 마시죠?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공간을 넘어, 리블이 나타나 내 곁에 섰다.

그의 몸은 검은 마력으로 물들었고, 그 외견은 초현실적인 무언가가 검은 어둠을 갑옷처럼 두른 모습이었다.

훌륭한 마왕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전투 모드?”

“그렇답니다. 이 육신은 제가 아바타로 만든 것이지만 그리 훌륭한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엄지 군처럼 무공을 익혀 진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이렇게 잘 감싸 줘야 한답니다.”

“그렇군요. 일을 해 주세요.”

“후후후후. 사독룡(邪毒龍)의 독충과 독사들이네요? 사독룡도 잡아 드릴까요?”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나는 시간을 가늠했다.

하늘에 만들어지는 녹색 장막 너머로 내가 쏟아낸 궤도 폭격이 오고 있다.

척량. 시작해.

[예. 주군. 공간이여! 무량하게 늘어나 한없이 이어져라!]

진법에도 공간 계열이 있더라고.

그리고 공간 마법에도 그런 게 있고. 내 장점이 뭐다? 스킬을 잡다하게 쓸 수 있다!

진법의 힘과 공간 마법의 힘이 합쳐져서 괴물이 만든 녹색의 장막 상공에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다.

위우우우우우웅.

곧이어 내 정면에도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대기권 밖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파멸의 창은 척량이 만든 공간의 균열로 빨려 들어간다.

괴물의 눈에 당혹감이 서리는 게 보였다.

늦었어, 새꺄.

콰 – 아 – 아 – 아 – 아!!

하늘에 만들어진 건 내 앞의 것과 이어져 있다.

그대로 수직 낙하했던 궤도 폭격용 나선창은 그 에너지를 조금도 잃지 않은 채로 내 앞에 펼쳐진 공간의 균열에서 튀어나왔다.

수직으로 떨어지던 것이 수평으로 쏟아지지만, 그 힘은 조금도 약해짐이 없다.

그대로 나선창이 괴물의 머리통에 꽂히고, 사슴인지 말인지 모를 발굽을 찢어 버렸다.

동시에 던전의 검은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므으으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괴물의 대갈통이 반이 날아갔다. 뼈가 드러나고, 피와 비늘이 흩어진다.

그 상태로도 죽지 않고 뱀 대가리 괴물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지상에 떨어져 내리는 독충과 독사들의 수가 늘어나지만, 그것들도 나선창의 폭격에 휘말려 찢겨 나갔다.

그리고 폭격이 끝났을 때.

괴물의 몸이 던전 안쪽으로 쓰러지며 그대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은 소수의 독충과 독사 괴물뿐.

“이야~. 제가 올 필요 없었던 거 아닐까요?”

“아니. 리블도 필요해요.”

손가락을 들어 던전을 가리켰다.

“저걸 박살 내야 하니까요.”

“아항. 우리 둘이요?”

“우리 둘이요.”

“후후후훗. 좋습니다! 그러면, 가 볼까요?”

리블이 하늘로 둥실 떠오른다.

나 역시 허공으로 떠오르고 쌍검을 허리에 찬 다음 두 손을 품 안으로 당겼다가 내뻗었다.

퍼퍼퍼펑!

손에서 뻗어나간 권기가 살아남은 것들의 몸통을 터트려 폭사시켰다.

척량. AB나 정지한한테 연락해서 이 독기 좀 어떻게 하라고 해.

이거 내버려 두면 계속 퍼져서 세계 전체로 뻗어나갈 수도 있으니까.

[바로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좋아. 밖을 부탁할게.

외부에서 무슨 일이 있게 되면, 나 대신 척량 네가 액션을 취해야 하니까.

[맡겨 주십시오.]

그럼. 간다.

나는 즉시 던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리블이 내 뒤를 따르고, 우리 둘은 거대한 던전의 문을 넘어 그 안쪽 아차원의 세계에 진입했다.

화아아악!

어마어마한 열기가 들이닥친다.

밖의 열기는 애들 장난일 정도로 뜨겁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 들어오자 산 채로 몸이 익어버려서 죽을 정도!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용암과 화염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암석밖에 없다.

그리고 용암의 한쪽에 거체의 여기저기가 박살 나서 꿈틀거리고 있는 뱀 대가리 괴물이 쓰러져 있다.

저거 아직 안 죽었나? 그나저나 이 환경, 이거…….

“이거. 리블에게 불리한 거 아니에요?”

“불리하죠! 언데드와 화염계 원소 차원은 상성상 좋지 않거든요~. 뭐, 그래도 잇몸이 없으면 이빨로 하면 되죠!”

그거 반대 아니야?

“후후후. 그리고 저를 평범한 사령술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엄지군의 격이 올라서……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요?”

그의 몸에서 어둠이 뭉게뭉게 뿜어져 나왔다.

그 어둠은 순식간에 지면으로 향하고 용암과 바위들을 뒤덮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힘이 역류하여 하늘에 모여든다.

암월(暗月).

검은 달이 하늘에 생겨나고, 지면의 용암은 차갑게 식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은 단지 일정 부분만이 그런 게 아니다.

어둠은 빠르게 뻗어나가면서 모든 것을 회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너무 기괴하고 강대한 이적이라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음차원계는 말 그대로 상당히 많은 것들이 없는 세계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세계에서 태어났거든요.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와 음차원계를 연결하면…… 이렇게 에너지가 전부 빨려 들어가 버리죠. 우주 공간에 맨몸으로 나가면 얼어붙는 거와 같은 거죠.”

“그럼 저 검은 달은요?”

“에너지를 음차원계 너머로 보내버릴 수도 있지만. 써먹을 데가 있을까 봐 모아두는 저장고랍니다~ 저걸 펑 터트리면 이 던전이라는 아차원 자체를 박살 낼 수도 있죠. 재미있죠?”

입이 떠억 벌어졌다.

언데드를 수십만이나 부리는 그런 능력도 대단했지만, 이건… 이건 진짜 코스믹 호러 같은 권능이다.

역시 성좌라는 건가.

“그나저나, 손님들이 오고 있네요.”

리블이 저 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용암과 바위로 가득한 열사의 세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것들은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하나하나가 독충이거나 독사인 존재들. 저 뱀 머리의 괴물과 비슷하거나 조금 다른 것들이다.

기괴하다.

다른 던전은 그래도 전부 생태계 같은 게 존재했었는데…….

여기는 대체 왜 환경과 몬스터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거지?

“이상하죠?”

“예?”

“환경과 몬스터가 서로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귀신같네요.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요?”

“물론이죠. 이곳은 성좌가 둘 이상 모여서 만들어서 그래요. 아주 확실하게 인류를 엿 먹이려고 계획한 던전이죠.”

그러고는 그가 연주회의 지휘자처럼 팔을 흔든다.

“인류를 사멸시키자! 아아! 잘 만든 곳이에요. 자, 보세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열기를 건너오는 독충, 독사들의 몸에서 흘러내린 독이 용암에 떨어져 그대로 기화되어 치솟는다.

저거…… 밖에서도 저랬잖아. 설마?

“죽어버린 세계. 영어로 하면 데스 월드나 데드 월드 정도 되려나요? 살아 있는 대다수의 생명체들은 산소가 필요하잖아요? 그 산소를 전부 독기로 가득 채우려는 거죠. 그렇게 죽은 것들은 다시금 썩어서 부패 가스를 내뿜죠. 반복하고. 반복하고.”

“…….”

그는 작게 키득이며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는 데스 월드 완성! 참고로 음차원계하고도 다르다구요. 그렇게 죽은 것들은 전부 일을 획책한 성좌들이 후루룩 먹어 버릴 테니까요.”

음험하게 웃는 리블이.

입을 쩝쩝거리며 먹는 시늉까지 하는 걸 보니 피꺼솟하는 기분이 든다.

“이 개새끼들이 진짜…….”

“성좌 대다수는 인간을 맛있는 점심 식사거리 정도로나 보니까요. 우주의 법칙이랄까?”

우주의 법칙.

그게 뭔가 중요한 거 같지만 지금 당장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독충과 독사류의 몬스터들은 딱 봐도 위험하고 강력해 보인다.

하나하나가 적어도 최상위 랭커들이 붙어야 겨우 이길 수 있어 보일 정도.

하지만 고무적인 거라면.

리블이 만들어 내는 회색 지대가 아주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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