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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69화 (269/305)
  • 제269화

    그렇게 내가 허락하자 그의 어둠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언데드가 계속 튀어나왔다.

    어둠은 더욱 넓어지고.

    아예 이 지역 전체가 어둠에 휩싸인다.

    튀어나온 언데드들을 향해 붉은 장막 속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소환하거나, 스킬을 사용하며 저항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묵묵히 지켜봤다.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순식간에 수만을 넘어서 수십만에 달하는 언데드가 그대로 붉은 장막을 파괴하고 그 내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압도적인 물량. 그리고 압도적인 힘.

    * * *

    “지……. 지옥이 열린 건가!”

    [호수의 여명회]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이자, 요정의 혈통을 타고난 대마법사 코번트리 백작.

    그는 경악했다.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구름은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묘한 에너지 파동을 내뿜으면서 순식간에 주변 일대를 뒤덮어 버렸다.

    태양을 가리고, 어둠이 [호수의 여명회]가 만든 의식진을 뒤덮자.

    그 검은 구름에서부터 수를 세기 어려운 [죽은 시체]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은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광경임에 분명했다.

    지옥이 열렸다는 그의 표현은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니다.

    수를 세기 어려운 무지막지한 숫자의 [죽은 시체]는 의식진의 보호막에 달라붙어 광기와 저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실재하는 공포이기도 했지만, 정신을 침식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끄아아아악!”

    “속… 속삭이지 마! 시끄러어어어!”

    “앞이 안 보여! 뭐야! 앞이! 앞이!”

    의식진 안쪽에서 일을 벌이던 이들이 순식간에 광기에 침몰당해 미쳐버렸다.

    광인의 행동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사이에서 누군가 로브를 입은 코번트리 백작의 어깨를 잡았다.

    “정신 차리시오, 코번트리 백작!”

    꽈악!

    강력한 악력!

    그리고 이어지는 정명한 정신을 만들어 주는 기묘한 힘!

    코번트리 백작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잡은 이를 바라보았다.

    “으으음. 칼라일 공. 의식은 끝났소?”

    그곳에는 얼굴에 둥근 계란 같은 투구를 쓴 이가 있었다.

    계란 같은 그 투구는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고, 그 얼굴 표면에는 [세피로트 조하르]가 신성시 여기는 [세피로트의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세피로트 조하르]에서 파견 나온 최고 간부 일곱 명 중 하나.

    네 번째 날개 칼라일.

    성별과 나이를 알 수 없는 모습을 한 그는 기괴한 투구에 역시 로브를 입고 한 손에 지팡이를 들었다.

    “아직이오! 성좌께서 공물을 받길 가납하시었지만, 공물을 거두어 가시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오. 저것들을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불가능하오. 저 수를 보시오. 하나하나가 적어도 상급의 힘을 지닌 마물들이 아닌가? 그런 것들이 수십만이니 막을 수 없을 거요.”

    “사악하도다. 어떤 이가 저런 힘을 사역한단 말인가.”

    인간의 시체로 탑을 쌓고, 그 시체로 거대한 의식진을 그린 이들이 언데드들을 보며 사악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못해서, 역겹기 짝이 없었다.

    “어쩔 수 없겠군. 그대들의 조력에 감사하오. 나는 여왕님을 위하여 이곳을 지킬 것이오.”

    코번트리 백작의 말에 칼라일은 작게 신음했다.

    “으음……. 그런가. 그렇다면 이 몸은 귀환하리다. 무운을 빌겠소.”

    칼라일이라는 자의 가면이 빛을 발했다. 그러자, 그의 몸은 빛이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코번트리 백작은 품에서 검집에 들어가 있는 검 한 자루를 꺼내었다.

    검집은 금색의 줄이 휘감겨 있었는데, 손잡이에 화려한 보석 일곱 개가 붙어 있는 검이었다.

    “Espee as Estranges Renges! 나에게 힘을 빌려 다오! 이것은 [아발론의 여왕]께서 나에게 주신 명제에 의한 것이니. 그대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노라!”

    검집에서 검이 빠져 나오며 황금빛 성광이 작은 별빛처럼 폭발했다.

    사방에서 덤벼들던 언데드가 일순 소멸하여 사라지며 주변이 텅 비어 버리는 위력을 보여 주었다.

    그가 검을 성화처럼 들고 서서,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쥐고 [호수의 여명회]에 전해지는 마법을 영창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앞에.

    이글거리는 분노를 가진 채로, 흑백의 쌍검을 든 자가 내려섰다.

    분노가 여기에 강림했다.

    * * *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 선현의 말씀이 기억났다.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뭐랄까. 어떻게 해야 둘을 분리시켜서 따로국밥으로 미워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평범한 중생은 뭐 그런 거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을 찢어 죽이고 싶으니까.

    “사악한 자야! 내 여기서 생을 바쳐 이 의식을 수호하겠노라!”

    그리고 더욱 사람이 미워졌다.

    사악? 생을 바쳐서 의식을 수호해?

    “아저씨. 미쳤어요?”

    “뭣?”

    “이 주변을 봐. 저 시체들을 보라고. 너희가 해 놓은 꼴이 있는데 지금 나한테 사악이 어쩌고 해?”

    시체. 시체. 시체.

    그것들로 만든 탑은 아직 의식의 힘 때문인지 언데드들이 달라붙어 부수려고 하는데도 유지되고 있다.

    의식을 진행하던 자들 대다수가 리블의 수십만 언데드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아직 강력한 힘을 지닌 소수는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눈앞의 이 인간이 든 성광으로 번쩍거리는 검 덕분에 언데드 수천이 일시에 소멸되자, 살아있던 이들 몇몇은 서로 모여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그게 아주…… 꼴 보기가 싫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너희가 하면 로맨스고, 내가 하면 불륜이냐?”

    명언이고 나발이고 한국식 유행어부터 먼저 튀어나온다.

    심지어 나는 불륜도 안 했다!

    “네놈… 엄지척! 저들의 희생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동의는 받으셨어요? 세상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저 사람들이 자진해서 생명을 바치기라도 했냐고.”

    내 말에 중년 아저씨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간단하게 답했다.

    “나는 판관이 아니지만 당신들은 선을 너무 심하게 넘었어.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지.

    쌍검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마음이 검과 함께 움직였다.

    심검의 쌍검은 그대로 상대를 베어낸다.

    거기에 스킬의 조합에 의해서 추가로 생겨난 심검이 같이 허공을 갈랐다.

    총 4개의 심검이 만들어내는 참격인 것이다.

    콰드득! 콰가각!

    “허…….”

    그런데.

    놀랍게도 중년 아저씨는 죽지 않았다.

    대신 그 검에서 일어나는 황금빛 성광이 흐려질 뿐.

    뭐냐. 저 짜증 나는 검은.

    [이상한 띠의 검(Espee as Estranges Renges)]

    등급 : SS

    다윗의 검이자, 검의 주인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는 최고로 알려진 성검.

    본래 아서 왕의 기사 중 한 명인 갤러해드의 검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 : 신성 보호막 전개

    기능 : 신성력 자동 충전

    기능 : 신성의 광휘 - 주변에 신성한 힘을 행사한다.

    기능 : 사용자의 체력은 소모되지 않는다.

    아하. 신성 보호막을 상시 펼쳐내는 그런 물건이구나?

    “후… 네놈이 이 의식진이 있는 곳에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성검의 힘이 있는 이상 너의 사악한 군대와 힘은 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검의 빛은 약해졌다. 내 심검 사연격을 막았지만, 대신 약해지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여명의 힘이여, 여기에서 나를 위하여 별의 징벌을 내…….”

    녀석이 무어라 주문을 외우는 것을 무시하고, 쌍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근육이 폭발하고, 내가진기가 휘몰아친다.

    혼원건곤검법.

    혼원분단사십구검.

    펑!

    극쾌의 속도로 한 호흡만에 사십구 번의 칼질이 뻗어져 나갔다.

    하나하나에 심검이 서리고, 거기에 강기까지 덤으로 먹인다.

    눈 한 번 깜박할 그 순간에 쏟아진 검격은 그대로 중년인을 보호하는 성광을 깎아나갔다.

    콰직!

    “뭣…….”

    마법을 사용하던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콰창!

    이상한 띠의 검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져 나갔다.

    “말도 안…….”

    주륵.

    그리고 그의 몸도 조각나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리블!”

    “와우! 멋져요! 그런데 왜요?”

    “이 인간을 그대로 죽게 하지 말고, 정보를 캐내 주세요. 반드시…… 놈들에 대해서 알아내야 해요.”

    “물론이죠. 저의 마스터. 하지만 그 전에…… 저것부터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은데요?”

    리블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리블이 불러낸 암운의 위쪽으로, 진짜 검은 구름이 잔뜩 모여들어 일그러진 채로 회오리치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짜증 나네…….

    “그래. 공물을 받아 처먹었다 이거지?”

    “물론이죠. 이미 의식은 완성되었다구요? 공물을 가져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어쨌든 이제 공물을 가져가려고 할걸요?”

    “대책은 있나요?”

    “저 성좌가 가져가는 걸 방해하는 거죠. 아마도…… 엄지 군 당신의 그 ‘심검’이라면 될 거예요. 하지만 제법 힘들 거랍니다?”

    “그렇다면. 해 보죠.”

    나는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힘을 모아서, 의지를 가진 채로 눈을 떴다.

    뒤틀린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도마뱀의 손 하나가 뻗어져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세계를 불태우는 삼두룡].

    그리고 그 손의 주인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개의 검을 허리춤에 다시 넣는다.

    그리고 쌍검의 손잡이에 각각의 손을 올려 두고, 힘을 모았다.

    손이 점점 내려온다.

    그리고 그것이 리블의 암운을 뚫고 내 머리 위에 도착한 그 순간.

    쌍검을 빼어들었다.

    발검술.

    혼원건곤쌍극참!

    심검으로 이루어진 검초가 번쩍이며 세계를 벤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칼을 통해 느껴져 왔다.

    베었다!

    콰칭!

    화르르르륵!

    의식진의 시체들이 스스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시체에 서렸던 혼백들도 저승으로 건너가는 것이 느껴진다.

    거대한 파충류의 손은 상처 입은 채로 다시금 하늘로 되돌아간다.

    녀석의 의지는 읽을 수 없지만, 분노와 짜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놈을 향해 중지를 뻗어 들어 올려 주었다.

    -[세계를 불태우는 삼두룡]이 분노합니다.

    엿이나 먹어.

    그리고 시선을 돌려 지상을 본다.

    언데드가 다시금 리블의 어둠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남은 것은 불타고 있는 시신들이다.

    더 주변을 둘러보니, 미국의 소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어라라. 던전이 움직이는 모양인데요?”

    화를 낼 시간도 없는 건가?

    “던전이요?”

    “예. 그쪽에 정찰용 망령을 몇 개 두었거든요. 음~ 던전에서 길쭉한 사슴? 말? 같은 발굽 두 개가 빠져나오고 있는걸요?”

    젠장할. 척량!

    [예. 주군. 영상 송신하겠습니다.]

    나와 리블의 앞으로 영상이 하나 나타났다.

    남극대륙을 감시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정찰용 골렘이 촬영한 영상이다.

    거대한 그 던전의 문에서 리블 말마따나 길쭉한 발굽이 튀어나와 던전 게이트의 양옆에 걸치고 있었다.

    빠져나오기 위해서, 그 경계선을 잡고서 힘을 주고 있는 모양새.

    그리고 어두운 차원의 일렁거림 사이에서 머리가 쑥 하고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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