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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61화 (261/305)

제261화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

보통 사람이라면 지칠 만도 하다. 그리고 나도 조금 피곤하고.

문제가 하나 있다면, 성좌가 되어서 내 정신적 허용량이 크고 넓어졌다는 거려나.

[주군의 조금 지쳤다는 감각은 일반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니까요.]

펜트하우스의 옥상은 삭막한 그런 느낌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생겼다. 그리고 내 머리 위로는 세계수의 가지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런 옥상에 선베드를 가져다 두고 누워 있는 나에게 척량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

[예. 주군의 정신 피로를 일반인에게 준다면 번아웃 같은 것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늘어질 겁니다. 혹은 피로 누적에 의한 과로사가 일어날지도…….]

“끔직한 소리 하네.”

하지만 사실이긴 하지… 쉬는 시간도 알뜰살뜰 아끼고, 매일매일 [무신의 수련 공간]에 들어가서 무공 수련을 했으니까.

결국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화신체 스킬까지 만들고 말았잖아?

그렇게 화신 돌려서 던전도 털고… 나 스스로도 여기저기 던전 공략하러 다니고.

그러고 보니까 북극에서 정리했던 던전은 5성급이긴 했던 거 같은데 조금 이상했지?

[아마도 4성 +급 던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급하게 던전을 열어야 했으니까요.]

“하긴, 몬스터들도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으니까. 보스는 강했지만……. 그것도 조금 애매했고.”

[예. 숫자는 많았습니다만, 대응이 가능했으니까요. 5성 던전급이 터졌다면 미국의 뉴저지에 나타났던 외눈거인 같은 존재들이 튀어나왔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이건 내 [직감]인데. 남극에는 아마 5성급 던전이 열릴 거야.”

[최후의 발악이겠군요.]

“혹은 최후의 결전 같은 걸지도. 그나저나…… 얘들은 거의 다 왔어?”

[예. 주군. 팀원들 전원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 명이 막 도착했군요.]

“그러게. 이 녀석이 젤 먼저 올 줄은 몰랐는데…….”

내 감각에 걸려든 녀석.

그것은 정지한의 권유로 나와 계약한…….

“저예요! 제가 일등!”

악마 같은 성좌의 화신. 리블이었다.

“요! 요요! 요요요! 아주 좋군요오!”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저런 행동을 배워 오는 걸까? 설마…… 본성이 저런 건 아니겠지?

성좌씩이나 돼서 저런다고? 언데드를 다루는 놈이? 설마?

[주군. 이런 말씀 드리면 조금 그렇습니다만……. 격이 높은 존재라고 해도 철딱서니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으으음. 그럴려나. 하긴 나도 근엄한 성격은 아니니까.

“뭐가 그렇게 좋다는 겁니까?”

“우리 엄지 쿤이 어엿한 성좌가 되었잖아요! 이 아빠는 감개무량해요.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나다니.”

“누가 아빠야! 누가! 그리고 댁이 나를 기른 적도 없잖아!”

“어라라~ 마력체 같은 것도 가르쳤고, 이래저래 도움을 주었잖아요?”

“그게 육아랑 무슨 상관이야!”

이 악마가 증말…….

“아. 됐고요. 리블. 정체가 대체 뭐예요?”

“그건 왜요?”

“지금도 당신의 모습이 제대로 안 보이니까.”

성좌가 되고, 통찰의 눈은 보통의 힘을 뛰어넘었다. 스킬 [사소한 직감]도 [성좌의 직감]으로 바뀌었고.

그런 지금.

리블을 보자 왜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과거에도 정체불명이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리블이라는 이름의 저 육체 안쪽에 있다.

내 직감이 말하기를……. 저건 위험했다. 이 지구를 단번에 멸망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저 안에 있다고 속삭인다.

“흐응… 여기까지 성장할 줄이야. 과연 즐거운 오산이군요.”

“그래서. 대답은?”

“비밀~입니다.”

“니가 옛날 애니메이션 캐릭터냐!”

“아하핫!”

녀석이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제는 한물간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즐거운 듯 한참 낄낄거렸다.

“그거 재미있었단 말이죠. 이제 인간들은 잊어버렸지만.”

그 모습을 보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과 계약했으니까요. 그 옛날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랬다고 하잖아요?”

그러더니. 이 녀석이 흠흠하고 자세를 잡고 오페라의 연극 배우 같은 톤으로 말했다.

“내 이제 지상에서 당신을 섬기겠소. 당신이 손짓하여 나를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며, 당신에게 지상 모든 부귀와 향락을 드리리다. 그러나 지옥에서 우리가 다신 만난다면 당신이 영혼을 다하여 나를 섬겨야 하오.”

“그러면 나는 파우스트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외치면 지옥으로 끌려가고?”

“오……. 잘 아시네요? 괴테의 파우스트를 본 이가 많지 않은 세상인데.”

“어쩌다 봤었어.”

그래. 어쩌다 보긴 했다.

“물론 엄지 군과 저의 계약은 그런 게 아니지만요.”

“그래. 그랬지. 너는 내 소원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너는 이 세상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손에 넣는 거였으니까.”

“반쯤은 억지 계약이었다구요? 제가 손해를 엄청 보는 사기 계약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들어요.”

그러고는 다시금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녀석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연극 톤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튜토리얼 이후의 세계가 오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죽지 않게 해 줘.”

계약 때 내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우리 같은 족속들은 기억력이 좋으니까요. 그래서 찾아다니는 거죠.”

“대체 네가 찾는다는 게 뭐야?”

“후후훗. 그건 나중에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토닥거린다.

“그러니 잘 성장해 주세요. 아직 어린 성좌님?”

“네가 깜짝 놀랄 만큼 빠르게 자라줄게.”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러더니 뒤로 물러나 그림자에서 뭔가를 꺼낸다.

이 녀석의 그림자는 내가 가진 그림자와는 다르다.

네크로맨서의 아차원 같은 거니까.

그곳에서 녀석도 선베드를 꺼내더니 내 옆에 놓고는 드러눕는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내가 뭘 어쩌겠냐.

[역시 위험한 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리고 주군. 팀원들이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래? 슬슬 준비해야겠는걸.

* * *

집의 거실에서 나는 동생 무척이를 맞이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형. 형은 이거보다 더한 것도 하면서 뭘 그래?”

“나보다 너희가 더 심한 것 같은데…….”

며칠 만에 본 팀원들은 레벨이 미친 듯이 성장해 있었다.

무척이만 해도 레벨이 145.

이 정도면 최상위 랭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전 세계 탑 50위권 안에는 들어갈 거 같은데, 이거…….

“정지한 대표가 그랬거든. 곧 최후의 결전이 있을 거라고.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하고 싶으면 강해지라고 하더라.”

“정 대표한테 내가 뭐라고 해둬야겠는걸…….”

“하지 마. 나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그러냐…….”

다 큰 동생 놈이라 형한테 반항을 해 댄다. 그렇다고 내가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죽지만 마.”

‘팔다리가 날아가도 고쳐 주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런데 내가 제일 먼저 온 거야?”

“아니. 그 녀석이 먼저야.”

옥상의 선베드에 누워서 아예 잠들어 버린–그게 진짜 잠든 건지 모르겠지만- 리블을 가리키기 위해서 천장을 손가락질했다.

“옥상에 있어?”

“퍼질러 자는 중이야.”

“그건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던전에도 같이 안 가던데.”

“나도 모르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 통제는 되고 있으니까.”

내 말에 녀석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쉰다.

그래. 그 마음 나도 안다, 동생아.

“형이 그렇다면야……. 그래서, 무슨 일로 불렀어? 한 삼 일 쉬고 다시 던전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들 오면 이야기해 줄게. 어차피 다 같이 해야 하니까. 그리고 거의 다 왔어.”

“팀원들이 거의 온 것은 또 어떻게 알았데?”

“여러 가지 스킬이 있으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벨 소리가 울렸다.

무척이가 빨리 왔을 뿐, 다른 이들은 전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듯하다.

“오랜만!”

“오랜만에 뵙니다.”

“형제님, 오랜만이에요.”

셋 다 멘트가 비슷하네?

하긴 나야 며칠이지만, 이 사람들은 일 년에서 이 년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까.

이게 맞는 거야, 지금?

[매일 24시간씩 무신의 수련 공간에서 무공을 연마하시는 주군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거랑 이거랑 같아?

나는 그냥 1+1일 뿐이고. 이쪽은 하루가 일 년이야.

이거 뭐 100번 던전 들어갔다 나오면 100년이 지나잖아!

“저는 며칠밖에 안 지났지만… 모두 오랜만입니다. 자자. 다들 앉으시죠.”

내 말에 거실의 롱 테이블에 다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쉬다 와서 그런지 다들 사복 차림이지만, 성광이만 신관복을 입고 있다.

“제가 성좌가 되었던 것은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사실 막 성좌가 되어서 뭐가 뭔지 저도 몰랐는데, 최근에 좋은 걸 알아내서 여러분들께 오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내 말에 다들 조용히 내가 말하는 걸 기다린다.

음, 조금 민망하군.

“일단 저도 성좌니까 사도를 임명할 수 있거든요. 지금 제 여력이면 최대 다섯 명 가능합니다.”

“이야! 그러네요! 성좌니까 사도 임명도 가능하네!”

별하나가 감탄한 표정이 돼서는 눈이 반짝반짝거린다.

“오. 그러면 우리를 사도로 임명하고 스킬 같은 거 주려고 부르신 거예요?”

“정확합니다.”

내 말에 다들 ‘오…….’ 또는 ‘와…….’ 같은 소리를 내었다.

“잠깐. 그러면 성광이는 어떻게 됩니까?”

정지벽의 질문. 성광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성광이는 이미 성직자. 그러니 사도로 삼을 수는 없죠. 다만, 우회해서 제가 스킬을 줄 수 있습니다.”

“형. 그러면 우리도 사도가 안 되어도 되는 거 아냐?”

“그러면 효율이 나빠져. 사도에게 스킬을 [하사]하는 거에 비하면 그냥 [하사]하는 건 적어도 세 배의 힘이 들어가거든. 성광이 하나라면 모를까, 팀원 전부에게 그렇게 하다가는 곤란해.”

내가 따봉이 아무리 샘솟고 있다지만 단번에 차원 방벽을 세울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다.

아껴야 잘살지.

“자. 그래서 여러분들을 제 사도로 삼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해야죠!”

별하나가 벌떡 일어선다! 역시 화끈한 별하나 양이다.

“다른 분들은?”

“저희가 오히려 부탁드려야 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엄지척 헌터.”

정지벽이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해 왔다. 무척이야 뭐, 당연히 내가 시키는데 해야지.

그런데 성광이 손을 들었다.

“그런데 형제님. 이분들도 각각 성좌의 선택을 받으셨을 텐데……. 사도로 삼아도 되나요?”

“괜찮아. 성직자 같은 특수직이면 모르겠지만, 일반직은 내가 찜해도 돼. 종종 그런 일이 있거든.”

소설 같은 데서도 보면 주인공에게 갑자기 여러 성좌가 와서는 ‘내 사도가 되어라! 그러면 뭐뭐를 주겠다!’ 이러는 거랑 똑같다.

성좌 갈아타기는 국룰이죠. 그리고 지금은 내가 더 잘해줄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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