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엄마! 엄마아아아!]
[경찰은 없나요? 헌터라도! 누가 좀 살려주세요!]
다른 영상이 몇 개 더 나온다.
다른 갓튜버들이 찍은 영상 3개.
그 3개의 영상도 비슷했다.
괴물이 사람들을 습격해 죽이고, 그 시체에서 다시금 괴물이 나타난다. 시체는 보랏빛 불꽃에 휩싸인 채로 사라진다.
[주군. 저것은 공양 의식입니다!]
“공양이라고? 저게?”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시지요!]
위성에서 찍은 것 같은 영상이 나온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불경한 마법진으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보랏빛 불꽃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다.
‘와아, 돌았네.’
이가 갈린다.
누구는 여기서 뭐 빠지게 개고생하면서 지구를 구하겠다고 난리 치고 있는데, 저기서는 도시 전체의 사람들을 성좌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어!?
이게 바로 팀플의 개 같은 점이에요.
백날 굴러 봐야 한 놈이 트롤이면 이렇게 되는 거지.
“어디야, 저기?”
조별 과제 팀장의 분노를 담아 물었다.
[스페인 말라가입니다. 항구도시이고, 수출입으로 번성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뭔지 모를 괴물에게 죽임당해 사라진다.
불길한 불길이 불경한 마력을 뿜어내고, 이제는 시체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괴물들이 계속해서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새끼지? 어떤 미친 새끼가 저런 짓을 한 거냐? 그렇게 혼자 잘 먹고 잘살고 싶었어?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해도 되는 어딘가의 비밀결사겠지요.]
……다급해진 거겠지.
진짜로 튜토리얼을 미루고 지구가 살아나면 자신들은 다음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니까.
“바로 간다.”
그래… 비밀 결사. 성좌 추종자. 자기들만 살겠다고 지구를 버리겠다는 새끼들.
졸지에 친일파 보는 독립군의 마음을 깨달았다.
엿 같다는 뜻이다.
[일단 지구에 있는 인류들, 그 생명을 착취하여 다음 세계로 넘어가고자 하는 의식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래 보인다.
이를 갈고. 공간을 넘었다.
* * *
“오……. 오오오오오……. 승천……. 승천의 길이 멀지 않았도다…….”
그는 이계에서 살아가는 뱀 종족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멀리서 본다면, 마치 퍼리 퍼레이드나 퍼리 컨벤션 같은 곳에 오는 이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퍼리 코스튬플레이는 동물의 인형 탈을 쓰는 것을 뜻하니, 딱히 틀리지 않은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이자가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뱀의 형상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취미 활동은 아니었다.
“위대하신 ‘세계를 삼키는 뱀’이시여! 당신을 위하여 만찬을 준비했나이다! 저들을 모두 집어삼키시고 저에게 승천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스페인의 항구도시 말라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그는 열세 명의 로브를 입은 자들이 만든 마법진의 중앙에서 불길한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마법진은 보랏빛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열세 개의 꼭짓점에 선 로브를 입은 자들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우며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이 빌딩을 중심으로, 말라가 시 전체에 거대한 마법진이 연동되어 있다.
이 안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은 보랏빛 불꽃에 의해서 제물로 바쳐진다.
바로 [세계를 삼키는 뱀]이라는 성좌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육신과 영혼까지 모두!
그러자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뱀가죽이 그의 몸에 달라붙고, 그의 몸은 인간의 것에서 뱀의 것으로 변화한다.
다리가 들러붙어 꼬리로 변하고, 몸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윽고 신화에나 나올 법한 나가의 모습이 된다.
하체는 뱀이요, 상체는 인간의 형태라.
전신에 비늘이 돋은 이 반인반사(半人半蛇)의 존재를 나가라 부르리.
단순한 변신 주문이 아니었다. 스스로 인간의 형태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종족으로 변화한 것이다.
“하하하하하! 승천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이대로 나가라자가 되면 영생불사의 길이 열리리라!”
나가라자!
반인반사의 종족인 나가의 왕인 나가라자는 신적인 힘을 지녔다는 전설이 있다.
[세계를 삼키는 뱀]이라는 성좌의 힘을 빌어, 이자는 승천하여 나가라자가 되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자는 말라가 시민들을 제물로 바쳐 그 자신만이 승천하려고 하고 있는 사악한 자!
그렇게 그가 승리를 기뻐하며 웃을 때였다.
번쩍!
나가로 변이한 대마법사이자 [세계를 삼키는 뱀]의 사도라는 직업을 가진 그의 보호 마법을 무참하게 파괴하며 무언가가 내리꽂혔다.
초음속으로 날아든 그것은 그를 관통.
그대로 그가 올라선 빌딩마저 파괴하며 지면까지 뚫고 들어갔다.
콰쾅!
우르르르릉!
빌딩 하나가 그대로 무너진다.
무시무시한 파괴 현장이지만, 이미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컥…….”
그리고 그 잔해에서 나가가 된 자.
스페인의 재벌 총수이자 강력한 대마법사이며, [세계를 삼키는 뱀]의 사도인 호세 멘도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꼬리는 잘려 나갔고, 팔 하나가 없다.
눈 한쪽도 파열된 듯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고통과 분노에 찬 얼굴이 된 채였다.
“이야~ 그걸 사네.”
“샤아아악! 감히 의식을 방해하다니 누……. 엄지척!”
허공에 엄지척이 부유하고 있다.
목에는 여우를 감고 있으면서, 양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다.
그 방만한 자세로 엄지척이 말했다.
“나를 아시나 보네.”
“네놈!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거냐!”
분노를 토하며, 호세 멘도사는 잔해 속에 떨어진 팔을 염동력으로 끌어당겨 잘린 자리에 붙인다.
마력이 들끓으며 그 팔의 세포가 부글거리더니 철썩 달라붙었다. 그러나 꼬리의 잔해는 찾을 수 없는지 그대로 재생을 시작했다.
적어도 1분 안에 꼬리가 다시 자라날 듯싶다.
“왜 방해하냐고?”
엄지척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개빡쳤다는 얼굴이 된다.
“네 맘대로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놓고 뭐? 왜 방해하냐고?”
“하!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이곳은 내 땅이다! 내 땅의 일에 네……. 컥!”
카가가가각! 스컥!
말을 하던 호세 멘도사의 목울대가 잘려 나갔다.
피가 흘러넘치며, 그의 얼굴에 고통이 새겨졌다.
“단단하네.”
“그륵. 어……떻게…….”
“심검. 그걸 네가 알까 싶지만.”
엄지척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동시에, 사방에서 강력한 공격이 수십 개나 날아들었다.
소환된 [세계를 삼키는 뱀]의 권속들이 쏟아낸 공격이었다.
대다수가 화염으로 이루어진 화살 혹은 거창 형태의 공격으로, 하늘이 온통 화염으로 뒤덮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엄지척의 두 손이 쌍검을 뽑아들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두르자, 그곳에서 뻗어져 나온 검기가 화염을 갈라내고 그대로 꺼트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카가가가강!
다급히 보호막을 만들어낸 호세 멘도사!
그 보호막 표면에 검격에 의한 불꽃이 피어올라 터져 나갔다.
파캉!
보호막이 깨어지고,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검이 수십 차례나 날아와 그 몸을 난도질했다.
“크악!”
두 팔이 잘리고 온몸이 피 칠갑으로 물든다. 보통은 즉사해야 할 모습이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나가로 변이한 탓에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
그가 두 눈을 번쩍이며 마안(魔眼)의 광선을 쏘아댔지만, 그것 역시 검에 의해서 갈라지며 소멸했다.
“헉… 허억…….”
그리고 헐떡이는 그의 앞에 엄지척이 다가와 섰다.
“네… 네놈……. 저주……. 저주받으…….”
스걱!
그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일검에 목이 잘리며 더 이상의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잘린 머리를 향해 엄지척이 손을 뻗었다.
화르륵!
머리통이 통째로 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쩌억-
방금 목이 잘린 호세 멘도사의 몸.
내장이 드러날 정도로 갈라진 복부가 우물거리며 변하더니, 거대한 뱀의 입처럼 변했다.
성좌의 강림이다!
[어린 성좌가 내 일에 끼어드는구나.]
“세계를 삼키는 뱀……입니까?”
[그렇다.]
엄지척은 여전히 분노한 얼굴로 대꾸했다.
“네놈 새끼의 일에 끼어들어서 뭐가 어쨌다고 지랄이냐?”
화끈한 말투!
“잘 들어. 나는 이 지구의 인류를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야. 그런 내가 네놈들이 개지랄 떠는 걸 내버려 둘 것 같으냐?”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의 시체를 보는 순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졸도할 끔찍한 광경 속에서 엄지척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우습구나. 네놈은 인간종을 위한 성좌도 아니지 않느냐?]
“내가 인간이니까 그런 거다. 왜?”
[크크크크큭. 인간 출신이기에 인간을 수호하려 하느냐? 과연……. 만 년 후에도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만 년의 시간을 거론하는 [세계를 삼키는 뱀]의 모습에도 엄지척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남이사. 내가 만 년 후에도 그러든지 말든지.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그런가. 좋다……. 내 너를 지켜보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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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미친 뱀 새끼는 왜 구독하고 난리야?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고 옆을 돌아봤다.
스페인의 도시가 불타고 있다.
그 보랏빛 불꽃은 사라지고, 의식에 맞춰 소환되던 뱀 괴물도 없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일어난 건물 붕괴, 가스 폭발, 화재 등으로 도시 전체가 엉망인 채로 여기저기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훌륭하셨습니다, 주군. 잘못했으면 도시의 사람들 전원이 제물이 되었을 테니까요.]
“그래. 나름대로 잘하긴 했지. 하지만 이건 좀 생각해 봐야겠어.”
[차원 방벽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저런 놈들이 던전을 열거나 의식을 치를지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야.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라고, 이거.”
세계에는 자기 혼자 잘 살겠다고 수십만, 수백만을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쓰레기가 생각보다 많단 말이지…….
그런 놈들만 골라내서 전부 죽여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네.
“그러면 돌아가자.”
[스페인 정부에 알리시지는 않을 생각이십니까?]
“알려서 생색낼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정지한 대표 통해서, 범인이 누군지만 알려 주자고. 뒤처리는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돌아가려던 때였다.
“살려줘……. 살려줘……. 누구…… 없…….”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척량. 생각을 바꿨어. 방송하자. 그리고 스페인 정부에도 알리고. 돌아가기 전에 사람들부터 구해야 해.”
이 도시에는 아직 생존자들이 있다.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것도 생각하지 못하다니…….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바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