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세계의 이면.
평범한 이들은 알 수 없는 세계.
기득권들 중에서도 최상위의 부류만이 알고 있는 뒷세계에는 비밀결사들이 아주 많았다.
얼마나 많으냐면, 오늘 하루 비밀결사가 생겼다가 다음 달 사라지기도 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별게 없다.
성좌들의 간섭 때문!
성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개중에는 심심해서 인간들을 데리고 놀아 보려는 이들도 있다.
전체 성좌들 기준으로 보면 그리 많지 않다고 하지만, 백만 명 중의 1%만 해도 1만 명은 되는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많은 성좌들이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성좌들은 세계의 마력 농도가 짙어질수록 [튜토리얼]의 제한이 해제됨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튜토리얼]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필멸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금기였으나, 우회하여 방법을 가르쳐 주고는 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이용해서 추종자로 만드는 것이다.
너희 세계는 파멸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른다면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렇게 성좌 추종자, 성좌 숭배자들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에게 조금 과한 힘을 주거나 대전사(챔피언)나 사도로 삼으면 더욱더 교세가 넓어진다.
성좌들에게 그것은 재미난 놀이요, 그 자신의 성세를 늘리는 것이니 어찌 기껍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비밀결사들은 때로는 협력하지만,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이 숭앙하는 성좌가 다르니 당연한 일.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합종연횡이 빈번하고, 2차 세계대전 때의 광기처럼 뒤통수에 뒤통수를 치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비밀결사가 한국에도 제법 많았다.
세계에서도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반대로 무법지대인 마경림을 끼고 있는 한국.
마경림이 생기기 이전에 국가를 유지하던 북한의 비밀 시설들을 점거한 비밀결사들은 그곳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제거되었고 남은 것은 이제 3개의 단체뿐이었다.
구 북한의 마경림에 자리 잡은 비밀결사의 수가 많기 때문에 그들도 서로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3개의 단체만은 다들 알고 있었다.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본단을 두고, 마경림에는 지부를 설립한 비밀 결사 [쵸르노이 료트].
그리고 [쵸르노이 료트]와 같이 중국에 본단을 두고 마경림에 지부를 만든 [모산파].
한국에서 제일 큰 비밀결사의 본단인 [수박도].
이들 세 단체는 아직 살아 있다.
비밀결사를 사냥하던 누군가도 이들을 건드리기에는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들 세 단체가 은밀하게 모였다.
이제는 멸망한 북한의 수도인 평양. 그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극비 벙커에 이들이 모였다.
“그래. 알아냈다고?”
러시아 출신의 근육질 백인 남자. 세르게이 아르노프가 두꺼운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질문을 던진다.
“그래.”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
[수박도]의 주인으로서 도주라고 불리는 사내가 세르게이의 질문에 긍정한다.
“누군가?”
중국의 도사들이 입는 검은색의 도복을 입은 노인.
모산파의 흑령진인(黑靈眞人)이 간결하게 질문을 던졌다.
“정지한. 정하 그룹의 막내 손자다.”
“정만득의 막내 손자라면 최근에 유명한 엄지척이라는 놈의 후원자로군.”
“엄지척… 그 아해는 강력한 성좌의 비호를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놈이 배후인가.”
“진실성은?”
“정지한의 이복형제인 정수기가 알려왔다. 그 녀석이 몇 개의 정보를 넘겨주었는데, 앞뒤가 맞아. 제대로 된 증거는 없지만……. 우리가 언제 증거 찾고 움직였던가?”
그랬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비밀결사. 그것도 악이라고 칭해야 할 존재들!
어차피 세계가 멸망할 것을 알고, 세계의 자원을 약탈해 그들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쓰레기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테러를 해야겠군.”
“정부에도 손을 써야 할 게야.”
“자금을 조금 써야 되겠군. 그리되면 이 마경림을 통해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워지겠지.”
“너희 둘. 한국은 우리의 것이다. 영향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려고 든다면 놔둘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수박도]의 도주(圖主)인 로브 사내의 말에 다른 둘이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코딱지만 한 국가 하나조차 제대로 좌지우지 못 하면서…….”
세르게이의 말에 흑령진인이 말을 받는다.
“허허헛.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하겠다고 하면 너희 수박도 따위가 어쩌겠다는 겐가?”
“여기서 너희 둘을 죽이고, 이 마경림에서 너희 세력을 축출해 주지.”
“해볼 거냐?”
“허허헛. 그런 도발이야 얼마든지 받아주지.”
세 명이 서로 마력을 내뿜는다.
쿠그그그-
폐쇄된 벙커가 뒤흔들린다. 그리고 그때 도주가 뒤로 급히 물러섰다.
“네놈들! 감히 함정을 파다니!”
“이놈이 무슨 헛소……. 이건 뭐야!?”
“헛! 급급여울령! 보패여, 나를 보호하라!”
세 명 모두가 갑작스러운 어떤 힘의 여파를 느끼고 다급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힘의 사용에 들어갔다.
흑령진인의 몸 주변으로 방패처럼 생긴 것이 생겨나 보호막을 생성하고, 수박도주(手搏圖主)의 몸 주변으로는 태극이 생겨났으며, 세르게이의 몸은 어느샌가 강철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파국이 다가왔다.
벽이 단번에 붕괴하며, 거대하고 강력한 압력이 그들의 몸을 휴지통 안의 벌레처럼 짓이기고 뒤흔들었던 것.
곧이어 끔찍하고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녹여 버렸고, 그 압력과 열기 그리고 폭발적인 힘에 그들 세 명 전부가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파멸이 강림했다.
* * *
“제대로 된 운석 하나만 떨어져도 인류 멸망이라더니. 정말인가 봐.”
[사실 주군께서는 이미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그러게. 내 능력이 몬스터도 쓸어버릴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이걸 때려 박아도 [절망]이 보여준 그놈들은 잘 안 죽을 것 같단 말이지…….”
차가운 현실.
산이 가까워질수록 그 높이를 실감한다 하지 않았나.
지금 딱 그 꼴이다.
놈들은 뭔가 평범한 몬스터와는 다르다.
게임으로 치면 마치 심판 같은 존재들. 방송에서 벌칙게임을 수행하는 스태프 같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 같았다.
[차원 방벽의 건설이 만약 불가능할 경우, 생존을 위해서 그것들을 사냥할 방법을 따로 찾아놔야 할 겁니다.]
“플랜 B는 싫은데…….”
[교토삼굴이라고 하였으니, 별도의 계획을 준비해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만약의 순간에는 주군께서 영약을 대량 양산하시고, 생존을 위하여 사람들을 전원 무장시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척량과 나누면서, 대기권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본다.
북한 지역, 마경림.
그 전체가 불타오르고 있었고, 산은 평지가 되었다.
이계에서 날아와 번식하던 식물들은 나선창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특별한 화염]에 불살라지는 중이다.
북한 지역의 마경림 전체가 불타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나선창 MK2 +3]
엄지척이 만든 궤도폭격용 나선창.
텅스텐과 각종 마법적인 합금으로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 스킬이 부여되어 있다.
강화의 힘에 의해서 3배 강화된 위력을 가지고 있다.
내 만능 제작 기계에서 만들어낸 나선창이다.
전과 달라진 건 딱 두 개.
+3 강화되었다는 것과 충돌 시 [크투가의 탐염]을 만들어 낸다는 것.
[크투가의 탐염]은 탐욕스러운 불꽃으로, 주변에 생명체가 있다면 계속해서 번져 나간다.
보통 화염이라면 이계의 식물들이 충분히 꺼버릴 수 있지만, 이 탐염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꺼지지 않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 지역에는 비밀결사도 제법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만…….]
“그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외눈거인들도 버티지 못했던 공격입니다. 비밀결사들이 과연 버틸 수 있겠습니까?]
“버텨도 상관없지. 어차피 숲은 전부 다 태워 버릴 거니까. 숨을 데도 없을 거야.”
[그건 그렇습니다.]
“사실 비밀결사 놈들 죽으라고 한 건 아니지만, 죽으면 자기네 팔자지, 뭐.”
지금 세계가 망한다 만다 하는데, ‘나 혼자 탈출 버튼~!’ 외치는 놈들이다.
이 비밀결사가 평화롭게 조용히 나가면 좋겠는데 태반이 평범한 사람들 죽이고 자원들 착취해서 나갈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합법적이었으면 정비가처럼 회사 차렸지, 이런 곳에서 밀수, 밀매하며 살겠나.
“그나저나……. 따봉 엄청난데?”
당연하지만 지금의 궤도 폭격도 방송 중이다.
다만 지금은 방송 멘트를 안 해도 되는 게, 화면 포커스를 저 아래로 잡고 있는 중이기 때문.
척량이 그럴싸한 음악도 같이 틀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따봉이 무시무시하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 강화 관련 스킬을 다 얻고 S까지 찍는 데 든 5억 따봉이 전부 보상되고도 남을 정도.
현재 누적 따봉만 무려 20억 따봉이다! 무섭다, 따봉이 느는 속도!
1,000억 따봉도 꿈이 아닐지도.
하지만 따봉보다 돈이 더 모인다.
돈의 문제는… 시간이 소모된다는 거지만.
“나머지는 정지한 대표님에게 맡기자고.”
[이제 어떤 일을 먼저 진행하시겠습니까?]
“일단 그 전에 체크할 게 있는데……. 차원 방벽 생성기 초소형하고 소형의 생산량이 아직 모자라지?”
[예. 주군의 기계 장치는 계산상 하루 100만 개의 물량을 제작할 수 있으나, 재료가 수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루 10만 개가 생산되어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각종 포션 제작 판매와는 별도의 건입니다.]
그건 조금 곤란하네. 좀 더 생산량을 늘려야…….
띠리리리.
내 주머니의 폰이 울린다.
폰을 들어 보니, 정지한이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화끈하게 해 주셨더군요.
“빨리빨리 처리해야죠. 시간도 얼마 없는데.”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필리핀에 가서 [엄지척의 만능 공작 생산 기계 MK4 +8]을 다수 제작하고 와 주십시오. 그쪽에서도 생산한다면 더 빨리, 많이 팔 수 있을 겁니다. 겸사겸사 필리핀의 주요 도시에도 차원 방벽 생성기들을 두른다면 효과적이겠죠.
오오… 역시 정지한이야. 맞는 말이네.
[확실히 우수한 인간이군요.]
“바로 갈게요.”
-타마 그룹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전화가 끊긴다. 그나저나 요새 리블은 어디서 뭐 하나 몰라.
[알아볼까요?]
아니, 내버려 둬. 그 성좌라면 알아서 뭔가 하고 있겠지.
자, 그러면 위치 특정하고.
가자.
* * *
“저게 저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쾌하군.”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끔찍하게 생긴 변이체였다.
예전에 엄지척이 토벌했던 구울 덩어리 거인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추악하고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헬기에 탄 채로 지상을 내려다보는 정지한에게는 그 끔찍함이 더 자세히 보였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체가 반쯤 녹은 채로 뒤엉킨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감이네요. 실패해 버린 스튜 요리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은 게 아주 취향이군요~”
그리고 그런 정지한 옆에는 리블이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저건 말이죠~ 각종 저주가 서로를 얽어매서 생긴 겁니다요. 이야아아. 적어도 열이 넘는 성좌의 힘과 저주가 뒤섞인 모양인데요?”
“드문 일인가 보군.”
“그럼요~. 아주 드물죠. 아주 희귀하고요.”
리블은 아주 좋아라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