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하긴, 다섯 정도를 못 잡겠나.
저 사령관이라는 개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자기가 성좌도 아니고, 이렇게 떼거리로 덤벼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설사 성좌라고 해도, 일전의 [느린 녹음]처럼 영락한 상태의 비실비실한 성좌라면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헌터들은 아주 노련하고 강력하게 다섯의 사이클롭스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이클롭스가 쓰러지고 나자, 결국 하나둘 처리되기 시작했다.
내가 나설 일은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일단 대기.
그리고 결국.
마지막 사이클롭스마저 쓰러졌을 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해냈다!
[축하드리옵니다, 주군!]
그래. 척량이 너도 수고했어.
[정지한으로부터 통신 연결 요청이 왔습니다.]
연결해줘.
-결국 해내셨군요.
“예. 생각보다 잘됐습니다.”
2억 따봉을 썼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정지한이 많은 미래를 보았으나 저 외눈 거인들을 막지 못했다고 했던 것을 내가 막은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이 해낸 일은 확실히 세계의 멸망을 유예시켰으니까요.
“하핫! 칭찬도 다 해주시고. 이거 기분이 좋은걸요?”
-칭찬이 아니라 찬양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그건 나중에 제대로 차원 방벽을 만들고 나서나 해 보죠. 미국 쪽에 전리품이나 기타 등등의 교섭은 맡겨도 되죠?”
-물론입니다.
“좋아요.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
-예.
통화가 끊어졌다.
그사이 전투 뒷정리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여기서…… 내가 할 일은…….
[휴식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자. 그러면 돌아갈까? 무척이 녀석이 기다리겠어.
미국을 뒤로하고 공간을 넘는다.
* * *
[HAHA!]
할리우드 웃음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저런 게 아닐까?
글씨체도 미국 코믹 만화 Sans체일 것 같은 웃음.
그랬다.
티탄 신족의 피를 스킬을 통해 이어받은 타이탄 맨은 최근에 얻은 스킬인 [원시 회귀]의 스킬을 사용한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원시 회귀란 고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며, 아주 잠깐이지만 신화시대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즉.
티탄 신족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쿠쿵!
키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외눈 거인.
대장군 퀴클이 대검을 들어 내리치자 대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쪼개진다.
대지가 쪼개지며 하나하나가 빌딩만큼 거대한 석창이 지면에서 튀어 나왔다.
이 공격 한 번에 수백 명이 다치고, 수십 명이 사망하고 만 흉험한 권능!
그러나 그에 맞서는 타이탄 맨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콰쾅!
그는 [원시 회귀]를 통해 대장군 퀴클만큼 거대해졌으며, 그 몸은 티타늄과 같은 검은색으로 번쩍이고 있다.
몸 전체가 금속화한 것이고, 거대해진 만큼 막대하고 강력한 근력과 체력 그리고 신화적인 마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지면의 석창을 몸으로 맞은 다음 박살 내며, 그가 달려들었다.
타이탄 맨의 공격은 모두가 맨손!
본래부터 압도적인 힘과 방어력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원시 회귀]까지 일으켜 강대해진 상황이기에 당연히 주먹을 들고 곰처럼 덤벼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
스킬 [점점 빨라지는 펀치!]
유치한 이름이지만, 효과는 강력!
때리면 때릴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
본래도 초인적인 육체 능력을 가졌기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주먹질을 해댈 수 있지만, 지금은 가히 기관총과 같은 속도가 되어 간다.
쾅! 쾅! 쾅! 쾅쾅쾅쾅쾅쾅쾅!
쇠와 쇠가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엄청난 주먹의 폭풍! 퀴클의 몸 여기저기가 터져 나가고 살점이 터지며 피가 흘러 내렸다.
천여 명이 넘는 헌터들에게 차륜전을 당하며 지칠 대로 지친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공격이었던 것.
비틀거리며 뒤로 튕겨져 나간 그가 땅에 처박힌다. 와르르르 주변의 건물들이 박살 나 흩어졌다.
[악은 사멸하고 정의는 승리한다!]
분명 죽을 생각은 없다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출전을 안 하겠다고 하던 사람. 그 사람이다.
허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멋진 척을 해대는 타이탄 맨.
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도 거물이라고 할 만한 아담 브라운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서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새끼는 부끄러움이 없나 봐. 그렇지, 알프레드?”
“저는 오즈월드입니다, 도련님. 그리고 그의 인성이 어떻든 실력은 진짜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 봤자 엄지척보다 못하잖아. 그런 걸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이제는 내가 밑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정도야.”
저 멀리.
타이탄 맨이 육박전을 벌이는 사이. 다른 헌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백의 저주와 디버프가 퀴클의 몸을 옭아맨다. 타이탄 맨의 묵직한 펀치가 계속해서 격중한다.
그리고 끝내.
타이탄 맨이 퀴클의 목을 잡고 비틀어 그대로 뽑아냈다.
마치 신화시대 야만 거인이 나타난 것 같다.
“저 미친놈. 쯧쯧. 오즈월드. 챙길 거 제대로 챙겨.”
“예, 도련님.”
“그리고 엄지척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어. 차원 방벽이라…….”
그날.
엄지척이 찾아온 날에 사이클롭스 토벌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 것이 아니었다.
엄지척이 제시한 비전.
차원 방벽을 만들어서 세계를 구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실의 저울이 엄지척의 언행에 대한 진실을 보증한다.
하지만 진실이냐는 것과 차원 방벽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성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1,000조 원.
인류가 전부 힘을 합치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미국의 한 해 국방비 예산이 1,000조 원에 가까우니까.
인류 전체까지 갈 것도 없이, 미국이 전력을 다하기만 해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엄지척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거대한 기득권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마법적인 궤도 폭격이라니! 누가 이런 걸 생각이나 했겠어? 응? 그리고 단순히 몬스터를 잡는 걸로 끝나는 일이 아니잖아? 지금에 와서 인간끼리는 전쟁을 안 하고 있다지만……. 확실히 위협적이지.”
게이트 사태가 터졌을 때. 최초의 던전이 나타나며 세계가 경악했을 때.
인류는 수십억 인구를 몬스터들에게 먹혀야 했다.
몬스터에게 총탄이 안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가 총탄보다 많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때문에 인류 사이의 전쟁은 사라졌다. 몬스터들에게서 인류가 살아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
무수한 희생. 무수한 비극 끝에 겨우겨우 세계는 안정화된 상태일 뿐.
“옳으신 생각이십니다만. 앞으로도 인류간의 전쟁은 없어 보입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문제는 억지력이야. 엄지척이라는……. 핵미사일 저리 가라고 할 만한 대량 파괴 능력을 가진 녀석을 국가에서 용납하느냐는 게 문제겠지. 비록 세계 파멸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할지라도 그런 걸 신경 쓸 놈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거든.”
“골든 호라이즌 같은 곳에서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련님?”
“흠…. 나는 본래 정비가와 손을 잡아서 프레퍼가 될까 했었는데……. 세계 구원 쪽으로 바꿔 볼까 고민 중이야.”
“눈먼 예언가를 부르겠습니다.”
“부탁할게, 알프레드.”
“오즈월드입니다.”
둘의 만담 아닌 만담이 끝날 때쯤.
외눈 거인들의 시체에 사람들이 달라붙고 있었다.
그것은 사냥에 성공한 개미 떼들이 메뚜기를 해체하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 * *
엄지척이 집으로 향하던 그때.
팀원들은 고전하며 싸우고 있었다.
[너너희희같같은은인인간간들들이이남남아아있있을을줄줄이이야야!!놀놀랍랍구구나나!!]
정지벽, 그녀는 그야말로 철의 방벽.
그런 그녀지만, 땀을 흘리며 사납고 강력한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다.
화악!
키는 오 미터 정도 되는 붉은 피부의 거인이 그녀의 앞에 있다.
두 개의 날개.
머리에는 네 개의 뿔이 크게 자라나 있다.
다리는 역관절로 된 산양의 발을 가졌고, 팔은 네 개로 각각의 팔에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있다.
악마!
보통의 몬스터가 아닌, 지성을 가졌으며 인간을 고문하기를 즐기는 사악한 종족이 정지벽 앞에 있는 것이다.
휙휙!
네 개의 팔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연신 칼을 휘두른다.
그 이유는 단지 하나.
정지벽의 뒤쪽에서 날아온 빛의 화살을 막기 위함이다.
캉! 카캉!
빛의 화살이 막힌다. 그때.
쐐에에엑!
펑!
[크아아앗!]
악마의 흉부에 큰 폭발이 일어났다.
흉부가 함몰되고 악마의 피가 흘러내린다.
“내가 저놈을 죽이고 나서 꼭 정지한 그 인간을 조져 버리겠어!”
커다란 대물저격총으로 변신한 엄무척의 고유 무장이 연신 포탄처럼 쏴댔다.
쾅! 쾅!
[저저주주받받아아라라아아아아!]
“위대하신 소의 화신이시여!”
악마가 강력한 저주의 힘을 사용하자, 성광이 빛으로 그 힘을 몰아낸다.
정지벽. 별하나. 엄무척. 성광.
이 네 명이서 아직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던전에 들어온 상태였다.
물론 정지한이 시켜서 온 것!
“흐읍!”
그때였다.
정지벽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그대로 정면으로 뛰었다.
강력한 내공의 힘이 그녀의 전신에 서리자, 마치 전구처럼 그녀의 전신이 빛을 낸다.
악마가 네 개의 팔 중 두 개를 마주 휘둘렀을 때.
그녀가 손바닥을 뻗으며 내밀었다.
건곤파력장이라는 무공 초식!
그녀의 손바닥과 악마의 거대한 철퇴와 대검이 충돌했다.
[이이럴럴수수가가!!]
악마의 무기가 단번에 파괴! 파편이 흩날린다!
“죽어라!”
엄무척의 목소리가 울린다 싶더니, 벼락같은 탄환이 악마의 미간을 꿰뚫었다.
[크크으으으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악마.
그사이 근접한 정지벽의 손바닥이 악마의 명치를 때리자 물이 담긴 가죽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악마의 허리가 꺾이며 피를 토한다.
그 위로.
이번에는 별하나의 화살이 날아들어 그대로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번에는 버티기 어려웠는지 악마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간다.
[악마 궁전]이라고 불리는 던전을 네 명이서 클리어한 것이다!
“으아……. 죽겠네요. 정지벽 누님. 별하나 누님. 좀 쉬었다 가죠!”
무척이가 퍼질러 눕는다. 그 천연덕스러운 행동에 정지벽이 피식 웃고, 별하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별하나가 퍼질러 누운 엄무척 옆으로 와서 앉았고, 정지벽도 곧 다가왔다.
성광은 그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합을 맞춰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별하나가 갓튜브를 튼다.
“지척 씨가 시작했네?”
“저게…… 되긴 되네, 진짜. 형이 미친 소리 하는 줄 알았는데.”
“형제님은 언제나 옳은 말만 하시잖아요.”
“대단하군요. 지척 씨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갓튜브에서는 대기권을 낙하하며 그대로 사이클롭스 진영을 초토화시키는 나선창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