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작전은 딱 10시간 후에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란 말이죠.
이마를 톡톡 건드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폰을 꺼내서, 척량이 넘겨준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골든 호라이즌의 CEO.
호퍼 넬슨.
이 양반하고 면담을 해 보면 좋겠지.
“어디 보자…….”
따봉 상점에서 가면 하나를 구입했다.
[알아보지 못하는 자의 가면]
등급 : B
타인에게서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알아보지 못하는 자]가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는 가면.
A등급 이상의 간파 계열 아이템 혹은 에픽 등급 이상의 간파 계열 스킬이 아니라면 정체를 간파할 수 없다.
그걸 얼굴에 쓰고, 몸에 걸치고 있던 장비를 전부 벗어 그림자에 집어넣는다.
촤악.
그리고 그림자를 갑옷처럼 몸에 두른다.
이걸로 내 정체를 알아차릴 일은 없다.
그다음.
나는 공간을 넘었다.
* * *
호퍼 넬슨의 저택 정문.
사람은 없고, 문은 크고 담장은 높다.
내가 나타나자 정문의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다.
이야……. 아주 엄청나게 커다란 호화 저택이구먼. 정보로는 무장 병력이 호위로서 자리 잡고 있다죠?
하지만 사실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
레벨 100이 넘으면 초인 수준으로, 던전 다니는 게 돈을 더 벌지 어디 가서 호위나 할 레벨은 아니다.
즉. 레벨 100짜리 전투계 헌터를 호위로 쓰려면 던전 도는 놈들만큼 돈을 줘야 한다는 건데…….
이게 얼마나 엄청난 금액이겠나?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는 거다.
연봉 수백억짜리 호위병을 쓸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레벨 100대의 헌터들 수십이 모여야 막을까 말까 한 수준이니까.
레벨 120대 이상.
최상위 랭커들이라면… 대충 열 명 정도면 나를 막을 수 있을지도?
자, 그러면…….
후욱.
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내가진기가 순식간에 나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고 수백 미터를 넘어 수 킬로미터 전체를 아우른다.
그 안의 움직임을 나는 전부 인지하고, 감지할 수 있다.
기감(氣感).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운용하는 경지가 적어도 일류가 되면 터득할 수 있는 능력.
성좌가 되고 심검까지 쓰게 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수 킬로미터 범위 전체에 기감을 펼칠 수 있다.
어디 보자…….
음. 좋아.
몰래 들어가지 말자.
정면으로 간다.
저벅. 저벅.
앞으로 걷는다. 그리고 그림자를 조작, 주먹을 크게 키운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모습이지만…….
이건 무공이다.
혼원권.
호흡과 함께 내달린 진기가 주먹에 모이고, 그것은 그림자의 힘과 합쳐지며 마력과도 합쳐졌다.
그리하여 뻗어진 일권은 그대로 커다란 금속 문을 박살 내 버렸다.
콰쾅!
파직! 파지지직!
마력의 힘이 여기저기에서 폭발한다.
역시.
이 정문, 여러 가지 스킬을 덕지덕지 발라서 만든 아이템이었던 건가 보네.
어차피 의미는 없지만.
“습격이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다!”
“쏴라!”
통찰의 눈을 쓸 것도 없이, 군인들이 쓸 법한 방어 장비를 걸치고 나와 총을 갈겨 대는 이들이 [총기] 계열 능력을 각성한 헌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총탄에 담긴 마력은 강력했고, 스킬의 힘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팅! 티티팅! 캉!
그 총탄은 내 그림자 갑옷에 튕겨 나간다.
단순히 그림자의 마력만 있는 게 아니거든, 이거.
호신강기(護身剛氣).
몸을 보호하는 강기를 그림자 갑옷과 같이 사용한다.
내공의 소모가 큰 무공이지만, 동등한 위력의 강기가 아니라면 이걸 뚫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익스플로전!”
호위병 중 하나가 무언가를 나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수류탄이네?
콰쾅!
오……. 수류탄에 스킬을 걸어서 폭발시키는 건가?
마정석 가루가 들어간 건 아닌 것 같고, 순수한 스킬의 힘이로구나.
하지만.
척.
나는 폭발의 연기를 뚫고 앞으로 걷는다.
총탄이 빗발치지만, 어차피 타격을 주지 못하기에 그냥 걸었다.
물론 그냥 가면 안 되니까.
“수면의 시간.”
옛날에 암살자를 잠재우려고 구입한 스킬을 사용한다. 총을 난사하던 이들이 픽픽 쓰러지면서 잠이 든다.
몇 명은 잠이 들지 않았으나 경악해서 동료를 보다가 나를 본다.
그런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다가가 그대로 점혈을 사용했다.
무공의 신비, 점혈!
혈관의 일부를 눌러서 기절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기술!
“컥!”
물론 죽인 건 아니고, 기절시킨 것뿐이다. 이들이 악당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니까.
“후…….”
전부 쓰러트리고 주변을 본다. 정문에서 저 멀리 저택까지 거리가 수백 미터가 넘고 주변에는 잔디가 잘 깔려 있다.
이게 바로 호화 주택이로구먼. 집 안까지 수백 미터나 되다니.
주변에는 이제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기감에 의하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다.
이 저택을 지키는 이들의 수만 해도 이백여 명이 넘는다.
지금 제압한 이들이 서른둘.
그러면 남자는 직진이다!
다리에 힘을 주고, 그대로 뛴다.
펑!
혼원건곤보법. 단번에 수십 미터를 뛰어넘고, 다섯 걸음 만에 저택에 도달한다.
그사이 도착한 각성자 하나가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캉!
내 목을 찌르려던 단검. 그걸 손등으로 튕겨 냈다. 그러자 녀석이 튕겨 나가면서 소리쳤다.
“이걸막아?어떻게막아냈지?”
말이 엄청나게 빠르다. 그리고 그 움직임도 보통의 속도를 뛰어넘었다.
정지한과 같은 시간계 능력자인가?
아마도… 시간 가속인 것 같은데. 제법 빠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 봤자지.
“이것도막아봐라!”
녀석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내 주변을 빙빙 도는데, 나는 간단하게 대응했다.
위웅!
“으악!”
내 주변을 염혼염동의 염동력으로 뒤집어엎은 것이다.
바둥바둥.
놈이 하늘로 강제로 끌어올려진 채로 버둥거린다. 지가 아무리 재빨라도 비행 능력이 없으니 이리 잡힐 수밖에.
“이런강력한염동력을어떠…….”
픽.
시끄러운 녀석을 점혈로 기절시키고 옆으로 내던졌다.
무심코 녀석의 능력치를 보니 레벨은 87.
레벨 100을 넘겼느냐 아니냐가 몸값을 가르는 기준선이니 엄청 비싼 녀석은 아니긴 하다.
어쨌든 나는 안으로 향한다.
기이하게도 내 감지 범위 안에 있는 놈들 중에 도주하는 놈들이 없다.
이상하네.
호퍼 넬슨이 여기 있는 걸 확인하고 여기 온 거란 말이야.
그런데 이놈이 도망을 안 가?
이러면 둘 중 하나지.
가짜거나 혹은 나를 상대할 자신이 있거나.
골든 호라이즌의 CEO 호퍼 넬슨.
CEO씩이나 되는 놈인데 설마 바지사장은 아니겠거니 했지만, 확실히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긴 하다.
그러면 바로 가 보실까!
쾅!
문을 발로 후려 차며 안으로 들어간다.
호퍼 넬슨과의 거리는 이제 1.2km 정도.
이 정도면 저택이 아니고 무슨 요새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테러리스트를 사살해라!”
“스피드 맨이 당했으니 조심해!”
“위대하신 고통이시여! 저자에게 고통을 내리소서!”
-고통의 저주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스킬에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둔화의 저주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스킬에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어둠의 저주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스킬에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불가능하다! 내 저주는 120레벨에게도 통하는 것인데 어떻게!”
“전위! 돌격하라!”
통로에 있던 이들은 총 열둘.
앞에 선 이들이 아홉이고, 뒤에 선 이가 세 명이다.
앞에 있는 아홉은 복장이 똑같았지만 뒤에 있는 이들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놈들이 건 저주가 전부 튕겨져 나갔다.
호신강기에 밀집한 에너지가 워낙 높아서 저주 같은 스킬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
쾅! 쾅!
아홉 명이 3열로 질서정연하게 돌진해 오는 것을 보며, 나 역시 내공을 전신으로 퍼트리며 그대로 마주 달려갔다.
뻐억! 퍽! 콰득!
“으악!”
앞에서 스킬을 사용하며 달려오던 이들의 몸이 볼링 핀처럼 튕겨져 나가 양옆의 복도 벽에 처박혔다.
그대로 달려 나가자, 서로 다른 주술사 비슷한 복장을 한 헌터들이 당황하며 뭔가 스킬을 쓰려고 했다.
안 되지!
피피피핑!
손가락을 빠르게 튕겨 탄지공을 사용한다.
핑거 스냅에 내공을 섞어서 던져 내는 무공으로, 내가 쓰면 그 속도는 총탄보다 빠르다!
퍽퍽퍽!
세 놈 다 혈도에 탄지공을 처맞고 나가떨어졌다.
점혈 완료.
자, 그러면. 남은 건 메인 디시인 호퍼 넬슨뿐이려나.
쾅!
호퍼 넬슨으로 짐작되는 강력한 기운을 풀풀 뿌려대는 놈이 있는 장소의 문을 박살 내고 들어섰다.
넓은걸.
이거 머시기 홀인가 뭔가 하는 장소 아닌가?
파티장으로 어울릴 법한 장소잖아. 영화 같은 데서 자주 봤음.
그만큼 사람을 가득 채운다면 수백여 명 정도는 가볍게 들어갈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대리석을 깔고, 천장과 벽면에도 화려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마치 유럽의 성처럼 천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미국에는 고성이 없으니, 이것은 호퍼 넬슨의 취향이겠지.
그리고 그 홀의 가운데.
그곳에 노년의 사내 한 명이 와인잔을 한 손에 들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외모만 보자면 평범한 인간 그 자체였다.
배가 조금 나와 있고, 근육은 그다지 없다.
나이를 조금 먹은 노년 사내.
하지만 내 ‘통찰의 눈’은 그런 평범한 육체 너머를 읽어 냈다.
[호문클루스 019번]
등급 : A+
반생반사의 인형. 연금술사이자 인형술사인 호퍼 넬슨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인형이다. 살아 움직이는 인형.
“어서 오게, 엄지척. 거창하게도 해 주셨군.”
“저를 아시나 봅니다.”
“물론이지. 그렇게 몸을 가리고 있다고 해서 모를 것 같나? 지금 이 타이밍에 이곳을 습격할 정도로 과감한 사람은 자네뿐이지 않을까?”
바지 사장은 아닌 모양이네.
그나저나 이 인형, 원거리 조종이겠지?
“나는 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그러니 결론만 말하지. 쓸데없는 데 자원을 사용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도록.”
오…. 이 아저씨. 직구를 스트레이트로 꽂아 주시는군?
마음에 들어.
물론 마음에 든다고 해도 처리할 거지만.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리는 데 자원을 사용하는 게 쓸데없다는 주장입니까?”
“당연하지. 어차피 세계는 멸망한다. 조금 더 빠르게 파멸하거나, 조금 더 늦게 붕괴하겠지. 뉴저지가 날아가는 정도는 사소한 문제야.”
아하…? 이놈들이 왜 방해하고 있는지 알겠네.
이 미친놈들은 어차피 나중에 다 죽을 사람들이니까 지금 당장 죽더라도 내버려 두라는 소리 아냐?
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구하러 가겠다는 걸 방해한 이유가 그겁니까? 당신들의 자원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이야 그렇지. 하지만 미래에 우리의 것이 될 자원이라면 어떻겠나?”
“그거 참 참신한 개소리네요.”
이 새끼들 누구 맘대로 미래에 자기네 거가 된다고 입을 털어?